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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임가영은 그렁그렁한 눈물을 애써 떨구려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길어. 일단 씻을게.”

“잠깐만, 할 말이 있어.”

육지훈이 손목을 꽉 잡자 임가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제저녁 네가 살리려고 한 사람, 바로 유안이 외할머니셔. 병원으로 이송되는 길에 돌아가셨어. 임가영, 설마 그 할머니가 유안이랑 어떤 관계인지 진작에 알고 있었던 거야?”

육지훈은 의심의 눈초리로 따갑게 쳐다보았다.

임가영은 두 눈이 휘둥그레한 채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 할머니가 정유안 씨 외할머니라고?’

육지훈은 정유안한테 복수하려고 외할머니를 죽였다고 의심하는 모양이었다.

이 순간, 임가영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절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어떤 누구한테 손가락질받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

임가영은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피식 웃기만 했다.

“뭐 어쩌려고? 아, 정유안 씨가 뭐 어쩌려고 그러는 건가?’

육지훈은 이 말투에 화가 치밀어 올라 그녀의 턱을 꽉 잡았다.

“그러니까, 인정하는 거지?”

“내가 인정하든 말든 뭐가 중요해?”

분명 웃고 있었지만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부정한다고 해도 믿어줄 건 아니잖아. 그래, 내가 졌어. 정유안 씨 상대가 아니라는 거 인정할게.”

하지만 애써 강한 척하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파 났다.

그러다 번뜩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내가 설마 걱정하고 있는 건가?’

육지훈은 애써 이런 감정을 숨기려고 했다.

“유안이는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랑 함께 자랐어. 설마 너를 모함하려고 일부러 죽였겠어?”

임가영이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육지훈, 내가 어제 사람 살릴 때 너도 옆에서 직접 봤잖아! 내가 언제 죽이려고 했다고 그래? 왜 정유안 씨 말만 믿고, 네가 두 눈으로 직접 본 사실을 믿지 못하는 건데!”

육지훈이 냉랭하게 말했다.

“내가 직접 보긴 했지만 난 의대생이 아니라서 잘 몰라. 의사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고 들었어. 그리고 넌 유안이를 미워하잖아!”

“그래! 미워하는 거 맞아!”

임가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근데 난 의사고 우리 엄마도 의사야. 난 어릴때부터 아픈 사람을 도와주라고 배웠어. 절대 그런 양심에 찔리는 짓 할 일도 없다고!”

육지훈이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면서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런데 지금 너를 고소하겠다고 하잖아. 임가영, 얼른 사과해. 그리고 이 일은 나한테 맡겨.”

아무리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기 와이프라 인생이 망하는 꼴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임가영은 코를 훌쩍거리며 애써 울음을 참으려고 단호한 눈빛으로 육지훈을 쳐다보았다.

“내가 사과하면 그 죄를 인정하게 되는 거잖아! 육지훈, 그 사람들이 고소하고 싶다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얼마든지 고소하라고 해! 난 떳떳하니까!”

“육씨 가문은 어떡하라고!”

육지훈이 소리 질렀다.

“너도 이젠 육씨 가문의 사람인데 고소를 당하면 아성 그룹의 주가도, 육씨 가문의 명예도 곤두박질칠 거라고. 임가영, 무조건 사과해야 해!”

그는 온통 육씨 가문과 정유안만 신경 쓰고 있었다.

임가영은 전혀 마음에도 없었다.

임가영은 마음이 찢기는 듯이 아파 왔다.

‘이 혼인 생활을 유지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결국엔 비수가 날아와 내 가슴에 꽂히네... 오로지 상처받는 건 나뿐이었어.’

임가영은 순간 실성하더니 더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육지훈, 육씨 가문에 폐를 끼치지 않을게. 전에 이혼하고 싶다며? 해.”

임가영은 애써 눈물을 닦아내면서 말했다.

“이혼서류에 사인할게. 이혼해. 이러면 더 이상 육씨 가문의 사람이 아닌 거잖아. 어때, 만족해?’

‘이혼’이라는 두 글자가 육지훈의 귀에 꽂혔다.

‘내가 원하던 거였잖아. 그런데 왜...’

이때, 원인 모를 감정이 밀려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임가영이 또박또박 말했다.

“정유안 씨가 고소하고 싶다면 고소하라고 해. 패소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난 떳떳하니까!”

“당장 따라와.”

육지훈이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임가영은 깜짝 놀라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어디 가려고! 육지훈, 이거 놔!”

“내 마음이야.”

육지훈은 이를 꽉 깨문 채 어두운 표정으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임가영은 영문도 모르고 끌려 나갈 뿐이다.

1층으로 내려가려고 했을 때, 마침 변호사와 이야기를 마친 임명재를 마주치게 된다.

“육 대표님?”

임명재는 개처럼 끌려 나가는 딸 모습에 화가 났다.

“가영이 놔주세요. 충격받은 아이를 그렇게 대하시면 안 돼요.”

육씨 가문이 해성에서 깊은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면, 권력이 강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진작에 쥐어팼을 것이다.

임가영을 대하는 꼴을 보니 2년 동안 좋은 대접을 받았을 리가 없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육지훈은 전혀 임명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 간섭하지 말아 주세요.”

임명재가 즉시 이들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육 대표님, 가영이는 제 딸입니다. 그래서 제가 꼭 간섭해야겠습니다. 육 대표님은 와이프가 억울함을 당했는데 왜 이런 태도입니까?”

임명재는 정유안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육지훈의 태도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육지훈은 더는 임명재와 왈가부왈할 인내심이 없었다.

이때 임가영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그거 알아? 내 한마디면 임씨 가문이 파산당할 수도 있다는 거. 임가영, 더는 날 자극하지 마.”

임가영은 이 말에 순간 소름이 끼쳤다.

구레나룻마저 하얘진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육지훈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임명재에게 말했다.

“아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일찍 돌아올 테니까.”

그렇게 육지훈과 함께 집 문을 나서게 되었다.

...

가는 길, 육지훈이 신신당부했다.

“이따 장례식장에 도착하면 예의 갖춰. 유안이 가족분들한테 사과만 해. 그러면 뒷수습은 내가 할 테니까.”

눈빛이 공허해진 임가영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래. 사과해도 되는데 내일 나랑 이혼하러 법원가기로 약속해.”

육지훈의 손은 핸들을 꽉 잡는 바람에 핏줄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이번은 ‘이혼’을 언급한 지 두 번째였다.

쿨하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목구멍이 막혀 그저 “응.”이라고 대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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