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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임가영은 선생님 사무실로 향했다.

“임가영, 어제저녁 학교 앞에서 한 할머니를 살려드린 적 있어?”

선생님이 엄숙하게 물어보자 임가영은 멈칫하고 말았다.

분명 칭찬받으려고 한 짓인데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임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살려드렸어요.”

선생님은 한껏 나무라는 말투였다.

“그 할머니 돌아가셨어. 가족분들이 네가 이상한 약을 먹이는 바람에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넌 아직 학생이라 의사 면허증도 없는 거잖아.”

임가영이 놀라고 말았다.

“병원에서도 할머니를 살려내지 못했어요? 그런데 선생님, 분명 제가 살려드렸을 때는 의식이 돌아왔단 말이에요. 살려드리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을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선생님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말투였다.

“내가 진작에 말해줬잖아. 아직 배우는 단계라 아는 척하면 안 된다고. 거봐, 지금 할머니 가족분들이 너도 그렇고, 우리 학교를 고소하겠다고 그러잖아! 얼마나 큰 사고를 저질렀는지 알아?”

임가영은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

“저는 잘못한 거 없어요! 저는 의대생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니면 할머니께서 눈앞에서 돌아가시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요.”

“일단 당분간은 휴학하고 집에서 잘 반성하도록 해.”

선생님이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이번 일로 학교에까지 피해를 주게 된다면 너는 미래가 끝장날 줄 알아!”

임가영은 믿기 어려운 듯 고개를 흔들었다.

“왜 저를 휴학시키는데요? 저는 분명 해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살려드리려고 그런 거라고요. 제가 왜 휴학해야 하는데요?”

“학교 측 결정이야. 나는 그냥 알려주는 것뿐이고.”

선생님이 또 한 번 환기시켰다.

“살려드리려고 그랬다고? 그 할머니가 그날 저녁에 바로 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선생님 사무실에서 나온 임가영은 억울하고 씁쓸한 마음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의대생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쓸쓸히 학교에서 쫓겨날 줄은 몰랐다.

교문을 나서자마자 어디선가 날아온 구정물때문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어 두 명의 아줌마가 사납게 달려오면서 임가영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러면서 울부짖기까지 했다.

“이 빌어먹을 년아! 우리 엄마 살려내!”

임가영은 처음 겪어보는 광경에 어안이 벙벙했다.

상대방이 힘껏 머리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두피마저 찢어질 듯이 아팠다.

“이거 놓고 말씀하세요!”

임가영이 몸부림쳤다.

“그런 거 아니라고요!”

하지만 눈이 뒤집힌 이들을 향해 아무리 설명해 보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임가영은 이들의 난폭함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바로 이때, 누군가 힘껏 이들을 밀쳐냈다.

“제 딸을 건드리지 마세요!”

임명재가 갑자기 달려와 임가영을 등 뒤에 숨기면서 이들에게 삿대질했다.

“신고하셔도 좋으니 말로 해결합시다!”

이때 임명재의 기사님도 달려왔다.

두 아줌마는 서로 쳐다볼 뿐이다.

두 남자가 나서서 임가영을 보호하고 있으니 계속 난동을 부릴 용기도 없었다.

“딱 기다리고 있어! 우리 엄마를 죽인 대가를 치르게 할 거니까!”

이들이 떠나고 난 후, 임가영은 얼굴이 창백한 채 부들부들 떨면서 차마 울지도 못했다.

“가영아, 가영아, 괜찮아?”

임명재는 황급히 임가영을 차에 태웠다.

“아빠랑 병원에 가자.”

임가영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안 갈래요. 가기 싫어요.”

이제는 병원이라는 단어를 듣기도 싫은 모양이었다.

임명재는 임가영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럼 집으로 가자!”

...

임씨 가문.

나희애는 임주희의 머리마저 헝클어진 초췌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딸을 데려가라는 해성 대학의 연락을 받고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되었지만 임가영이 다쳐서 돌아올 줄은 몰랐다.

나희애와 임주희는 임명재가 임가영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야 좋아할 수 있었다.

임주희는 심지어 웃음까지 터뜨렸다.

“쌤통이야 아주! 맨날 잘난 척하더니 얼굴까지 다 버렸네!”

나희애도 음흉하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정말 우리 대신 분풀이를 해줘서 다행이야!”

이 모녀가 깨 고소하고 있을 때 도우미 아줌마가 헐레벌떡 달려 들어왔다.

“사모님, 작은 아가씨. 밖에 손님 오셨어요. 큰 아가씨 찾는다고 합니다.”

“가영이를?”

나희애는 순간 두 눈이 반짝거렸다.

“설마 그 집 사람들이 복수하려고 집에 찾아온 건 아니겠지?”

임주희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얼른 들어오라고 하세요!”

하지만 육지훈의 등장에 나희애와 임주희는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왜 육지훈이 찾아온 거지? TV나 신문에서만 보던 사람인데...’

임가영이 육씨 가문에 시집간 지 2년 동안 처음으로 실물을 만나보는 것이다.

임주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육지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

‘내가 임가영보다 못한 게 뭔데? 저런 분한테 시집간 사람이 왜 내가 아니라 임가영인건데?’

“형부, 저희 언니 찾으세요?”

임주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상냥하게 말했다.

“언니한테 좀 일이 있어서 방금 집에 도착했어요. 어떤 할머니를 살려드리려다...”

육지훈이 냉정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알아요. 어디 있어요?”

이런 냉정함에 임주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육지훈은 그녀를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희애는 마치 자애로운 엄마인 척했다.

“가영이 방금 애 아빠가 안방으로 데려갔어요. 제가 같이 가드릴까요?”

깔끔하던 평소와는 달리 꾀죄죄한 모습을 보이면 육지훈이 정떨어져할 것 같아 냉큼 임가영의 방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문이 열리고, 임가영이 놀라운 표정으로 육지훈을 쳐다보았다.

‘정유안 씨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거 아닌가? 왜 장례식에는 안 가고... 설마 내 소식을 듣고 일부러 찾아온 걸까?’

임가영은 갑자기 감동받았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길 가다 넘어진 아이가 애써 울지 않으려고 참고 있었는데 엄마가 ‘안 아파?’라고 묻는한마디에 울음이 터진 것처럼 말이다.

나희애가 옆에서 속으로 비꼬았다.

‘이런 여우 같은 년! 우리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더니 지훈이를 보자마자 불쌍한 척하네.’

육지훈은 임가영의 초췌한 모습을 보고 당황하고 말았다.

이때 나희애가 관심해 주는 척했다.

“어머, 가영아. 왜 이렇게 다쳤어? 그 사람들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때려. 네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겉으로는 임가영을 걱정해 주는 척했지만 분명 그녀를 탓하는 것만 같았다.

육지훈은 이 말을 믿었는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임가영을 쳐다보았다.

나희애는 목적 달성한 줄 알고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들 나누세요. 마실 것 좀 준비해 오겠습니다.”

나희애가 떠나고, 육지훈은 임가영의 방으로 들어갔다.

“먼저... 샤워하고 올게.”

임가영은 당황스럽기만 했다.

산발이 된 채로, 온몸에 구정물이 묻은 채로 육지훈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임가영은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스레 욕실로 들어가려다 육지훈에게 잡히고 말았다.

“얼굴은 어떻게 된 거야?”

육지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걱정하는 눈빛으로 임가영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이런 표정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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