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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육지훈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임가영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쪼그리고 앉아 알코올 티슈를 꺼내 무릎에 묻은 얼룩을 닦아주었다.

그제야 임가영은 정신을 차렸다.

조금 전까지 10분 동안 땅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너무 집중하느라 이런 사소한 일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이제야 그녀는 무릎이 더러워졌을 뿐만 아니라 옷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파...”

임가영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살살해.”

육지훈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참아.”

그의 검고 짙은 머리카락을 바라보자 임가영의 마음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무릎은 정말 아팠지만 마음은 따뜻해졌다.

육지훈은 얼룩을 다 닦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무릎이 다쳤는데 병원에 가서 치료할래?”

임가영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니. 심하지도 않은데 밴드 붙이면 돼. 어서 집에 가자. 할아버지께서 기다리시겠다!”

그렇게 말한 후 임가영은 다리를 들어 올려 육지훈이 차를 주차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

육지훈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가만히 생각했다. 만약 정유안이 이런 부상을 입었다면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울었을 것이다.

방금 임가영이 사람을 구한 장면을 생각하자 육지훈은 그녀에게서 다른 모습을 본 것 같다고 느꼈다.

심지어 자부심도 느꼈다. 좋든 나쁘든 임가영은 여전히 그의 아내였다.

...

저녁 식사 때 임가영은 기분이 좋아서 밥을 더 많이 먹었다. 이때 가정부는 검은 탕을 두 그릇 가져와 그들 앞에 놓았다.

육지훈은 한약 냄새를 맡고 물었다.

“할아버지, 이게 뭐예요?”

“결혼한 지 2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나한테 증손자를 안겨줄 준비가 안 됐다며?”

육정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약은 해성의 유명한 한의사가 처방한 것이라 효과가 훌륭할 거야. 앞으로 가영이가 임신할 때까지 둘 다 매일 한 그릇씩 마셔.”

“네?”

육지훈은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약그릇을 바라보다가 임가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임가영도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육정근이 재촉했다.

“뭘 쳐다보고 있어? 얼른 마셔!”

육지훈은 도저히 마실 수 없었다. 냄새가 끔찍했기 때문이다.

임가영은 고민하더니 육정근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저희 아직 젊어서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이 약을 마시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

옆에 있는 육지훈은 서둘러 말했다.

“맞아요. 불임도 아니고 지금 이걸 꼭 마셔야 할까요?”

그러자 육정근은 그들을 꾸짖었다.

“됐어.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워!”

육씨 집안의 남자들은 모두 튼튼한데 어떻게 불임일 수 있겠는가?

육지훈은 할아버지를 진정시키기 위해 타협하여 말했다.

“할아버지, 아니면 저희가 먼저 시도해 보고 효과가 없으면 약을 마시는 걸 다시 고민해 볼까요?”

임가영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시도해 본다고?

뭘 시도해 보겠다는 건가?

육정근은 한참 생각한 후 말했다.

“감히 내 코앞에서 가영이를 힘들게 하지 마. 만약 가영이를 괴롭히거나 생과부로 지내게 하면 어떻게 될지 알아서 해!”

육지훈은 다시 한번 할 말을 잃었다.

‘생과부’로 지낸다는 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

침실로 돌아온 육지훈은 이불과 베개를 꺼내 다시 바닥을 폈다.

임가영은 그 모습을 보고 견딜 수 없었다.

아성 그룹 회장이 밤에 바닥에서 잠을 잔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했다.

임가영은 가볍게 말했다.

“아니면 올라와서 자. 침대는 안전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니까.”

육지훈은 잠시 멈춰서 그녀를 쳐다본 후 이불을 바닥에 계속 펼쳤다.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내가 네게 미래를 줄 수 없다면 아이 문제로 너를 묶어두지는 않을 거야.”

임가영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가슴에 쓰라림이 밀려왔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난 그냥 네가 편하게 자길 바랐는데, 방금 목이 불편해서 계속 문지르고 있었잖아.”

“괜찮아.”

육지훈은 다시 평소의 차가움을 되찾았다.

그는 이불을 펴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개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울렸다. 두 사람의 휴대폰은 같은 브랜드였기 때문에 벨소리도 같았다.

임가영은 그것이 자신의 휴대폰인 줄 알고 집어 들었다.

정유안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그녀는 휴대폰을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훈아, 어디야? 나 열이 나서 너무 힘들어... 너무 보고 싶어...”

임가영은 눈을 흘기며 차갑게 말했다.

“나예요.”

“당신...”

정유안은 잠시 멈칫하다가 즉시 물었다.

“왜 지훈이의 휴대폰을 그쪽이 갖고 있어요?”

임가영이 맞받아쳤다.

“내 남편의 휴대폰이니까 내 손에 있지, 그럼 그쪽 손에 있어야 하나요? 우리 쉬는데 전화해서 방해하지 말고 열 나면 병원에 가요. 지훈이는 의사가 아니잖아요!”

정유안은 당황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임가영은 바로 전화를 끊고 옆으로 던져 버렸다.

육지훈이 씻고 나온 후 임가영도 샤워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씻고 나왔을 때 육지훈은 방금 통화를 마친 것 같았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임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내 전화를 받았어?”

임가영은 정유안이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육지훈과 통화를 못 했으니 반드시 다시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임가영은 그를 바라보며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 내가 받았어. 왜?”

육지훈은 원망하는 듯한 눈빛을 드러냈다.

“유안이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렇게 큰일을 나에게 숨겼어? 임가영, 오늘 네가 사람을 구하는 것을 보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내 생각보다 백 배는 더 악랄할 줄은 몰랐어! 어떻게 할머니를 잃은 애한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어!”

“그 여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임가영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내가 그 여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지 어떻게 알아! 조금 전엔 열이 난다고만 말했어. 할머니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그만해!”

육지훈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말을 가로막은 다음 서둘러 옷을 입고 나가려고 했다.

그가 떠난 후 임가영은 침실의 공기가 차가워진 것만 같이 느꼈다.

오늘 누군가를 구했다는 기쁨도 이 순간 사라졌다. 임가영은 자괴감에 입술을 깨물고 바닥에 있는 이불을 거두었다.

오늘 밤 육지훈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다음 날 임가영은 혼자 학교에 갔다.

강의실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알아차리고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했다.

“이야! 저기 우리의 영웅 임가영 아니야?”

한 여자애가 조롱하듯 말하며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임가영은 노정서의 도발에 매우 화가 난 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올해 임상 기술 대회에서 내가 또 1등 할 것 같네. 넌 아쉽게 또 2등에 만족해야 할 거야.”

노정서는 너무 화가 나서 이를 악물고 임가영을 죽일 듯이 쳐다보았다.

임씨 집안은 장사로 많은 돈을 벌어서 부족함이 없었고 임가영이 평소에 먹는 음식과 입는 옷은 노정서를 질투심에 미치게 만들었다.

노정서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항상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1등만 했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한 이후 그녀는 임가영에게 모든 면에서 뒤처졌다.

왜 임가영은 그렇게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노정서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임가영, 네가 언제까지 당당할 수 있나 보자? 넌 다음 임상 기술 대회에 참가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임가영은 깜짝 놀랐다. 노정서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의 말에 약간 불안했다.

노정서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한 말일까?

이때 반장이 들어와서 말했다.

“임가영, 선생님이 사무실로 오라고 하셔.”

그제야 임가영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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