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가영은 육지훈의 말뜻을 이해하고 저도 모르게 침대맡으로 슬슬 피했다.곧 그녀의 종아리가 육지훈에게 잡혀 끌어당겨졌다.육지훈은 무거운 몸으로 임가영을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임가영은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밀어내며 황급히 물었다.“육지훈, 뭐 하려는 거야?”“몰라서 물어? 남자와 여자가 침대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육지훈의 냉랭한 기운이 덮쳐오면서 그는 짐승처럼 격렬하게 임가영의 목에 키스했다.“그만해!”임가영은 겁을 먹고 발버둥 쳤다.“육지훈, 이러지 마! 날 만지지 마!”임가영은 그날 밤의 남자도 이렇게 거칠었던 것이 생각났다.그날 밤 기억이 떠오르는 게 싫었다. 육지훈이 계속 이렇게 하면 임가영은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임가영이 아래서 울고 있으니 아무리 냉철한 육지훈도 더 이상 이런 방법을 그녀를 괴롭힐 수는 없었다.사랑 없이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처벌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육지훈은 임가영을 괴롭히지 않고 두 손을 그녀의 몸 옆에 놓고 불쌍한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왜 울어?”육지훈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이혼하기 싫으면 다른 남자 때문에 나랑 하는 거 거부하지 말아야지! 네 남편은 나야!”육지훈은 여자를 강요하기 싫었다. 더군다나 임가영처럼 다른 남자와 잤던 여자는 더욱 싫었다.그래서 옷장에서 이불과 베개를 꺼내어 바닥에 폈다.임가영은 너무 억울했다.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피임약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낯선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말해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다음날 일어났을 때 육지훈은 온몸이 너무 아팠다. 한 번도 이렇게 바닥에 누워서 잔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두 사람이 같이 내려오는 것을 보자 육정근은 마음을 살짝 내려놓았다.이때 육지훈의 휴대폰이 울렸다. 정유안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임가영이 흘끗 쳐다보자 사진 한 장이었는데 아마도 정유안이 차린 정교한 아침 식사 같았다. 육지훈은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식탁에 음식
육지훈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임가영에게 다가갔다.그러고는 쪼그리고 앉아 알코올 티슈를 꺼내 무릎에 묻은 얼룩을 닦아주었다.그제야 임가영은 정신을 차렸다.조금 전까지 10분 동안 땅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너무 집중하느라 이런 사소한 일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었다.이제야 그녀는 무릎이 더러워졌을 뿐만 아니라 옷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아파...”임가영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살살해.”육지훈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조금만 참아.”그의 검고 짙은 머리카락을 바라보자 임가영의 마음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무릎은 정말 아팠지만 마음은 따뜻해졌다.육지훈은 얼룩을 다 닦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무릎이 다쳤는데 병원에 가서 치료할래?”임가영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아니. 심하지도 않은데 밴드 붙이면 돼. 어서 집에 가자. 할아버지께서 기다리시겠다!”그렇게 말한 후 임가영은 다리를 들어 올려 육지훈이 차를 주차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육지훈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가만히 생각했다. 만약 정유안이 이런 부상을 입었다면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울었을 것이다.방금 임가영이 사람을 구한 장면을 생각하자 육지훈은 그녀에게서 다른 모습을 본 것 같다고 느꼈다.심지어 자부심도 느꼈다. 좋든 나쁘든 임가영은 여전히 그의 아내였다....저녁 식사 때 임가영은 기분이 좋아서 밥을 더 많이 먹었다. 이때 가정부는 검은 탕을 두 그릇 가져와 그들 앞에 놓았다.육지훈은 한약 냄새를 맡고 물었다.“할아버지, 이게 뭐예요?”“결혼한 지 2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나한테 증손자를 안겨줄 준비가 안 됐다며?”육정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약은 해성의 유명한 한의사가 처방한 것이라 효과가 훌륭할 거야. 앞으로 가영이가 임신할 때까지 둘 다 매일 한 그릇씩 마셔.”“네?”육지훈은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약그릇을 바라보다가 임가영을 힐끗 쳐다보았다.임가영도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육정근이 재
임가영은 선생님 사무실로 향했다.“임가영, 어제저녁 학교 앞에서 한 할머니를 살려드린 적 있어?”선생님이 엄숙하게 물어보자 임가영은 멈칫하고 말았다.분명 칭찬받으려고 한 짓인데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임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제가 살려드렸어요.”선생님은 한껏 나무라는 말투였다.“그 할머니 돌아가셨어. 가족분들이 네가 이상한 약을 먹이는 바람에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넌 아직 학생이라 의사 면허증도 없는 거잖아.”임가영이 놀라고 말았다.“병원에서도 할머니를 살려내지 못했어요? 그런데 선생님, 분명 제가 살려드렸을 때는 의식이 돌아왔단 말이에요. 살려드리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을 수도 있어요.”“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선생님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말투였다.“내가 진작에 말해줬잖아. 아직 배우는 단계라 아는 척하면 안 된다고. 거봐, 지금 할머니 가족분들이 너도 그렇고, 우리 학교를 고소하겠다고 그러잖아! 얼마나 큰 사고를 저질렀는지 알아?”임가영은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저는 잘못한 거 없어요! 저는 의대생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니면 할머니께서 눈앞에서 돌아가시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요.”“일단 당분간은 휴학하고 집에서 잘 반성하도록 해.”선생님이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이번 일로 학교에까지 피해를 주게 된다면 너는 미래가 끝장날 줄 알아!”임가영은 믿기 어려운 듯 고개를 흔들었다.“왜 저를 휴학시키는데요? 저는 분명 해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살려드리려고 그런 거라고요. 제가 왜 휴학해야 하는데요?”“학교 측 결정이야. 나는 그냥 알려주는 것뿐이고.”선생님이 또 한 번 환기시켰다.“살려드리려고 그랬다고? 그 할머니가 그날 저녁에 바로 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선생님 사무실에서 나온 임가영은 억울하고 씁쓸한 마음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의대생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쓸쓸히 학교에서 쫓겨날 줄은 몰랐다.교문을 나서자마자 어디선가 날아온 구정물때문
임가영은 그렁그렁한 눈물을 애써 떨구려 하지 않았다.“말하자면 길어. 일단 씻을게.”“잠깐만, 할 말이 있어.”육지훈이 손목을 꽉 잡자 임가영은 눈살을 찌푸렸다.“어제저녁 네가 살리려고 한 사람, 바로 유안이 외할머니셔. 병원으로 이송되는 길에 돌아가셨어. 임가영, 설마 그 할머니가 유안이랑 어떤 관계인지 진작에 알고 있었던 거야?”육지훈은 의심의 눈초리로 따갑게 쳐다보았다.임가영은 두 눈이 휘둥그레한 채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그 할머니가 정유안 씨 외할머니라고?’육지훈은 정유안한테 복수하려고 외할머니를 죽였다고 의심하는 모양이었다.이 순간, 임가영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절망스럽기 그지없었다.그 어떤 누구한테 손가락질받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임가영은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피식 웃기만 했다.“뭐 어쩌려고? 아, 정유안 씨가 뭐 어쩌려고 그러는 건가?’육지훈은 이 말투에 화가 치밀어 올라 그녀의 턱을 꽉 잡았다.“그러니까, 인정하는 거지?”“내가 인정하든 말든 뭐가 중요해?”분명 웃고 있었지만 씁쓸하기 그지없었다.“내가 부정한다고 해도 믿어줄 건 아니잖아. 그래, 내가 졌어. 정유안 씨 상대가 아니라는 거 인정할게.”하지만 애써 강한 척하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파 났다.그러다 번뜩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내가 설마 걱정하고 있는 건가?’육지훈은 애써 이런 감정을 숨기려고 했다.“유안이는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랑 함께 자랐어. 설마 너를 모함하려고 일부러 죽였겠어?”임가영이 울먹거리기 시작했다.“육지훈, 내가 어제 사람 살릴 때 너도 옆에서 직접 봤잖아! 내가 언제 죽이려고 했다고 그래? 왜 정유안 씨 말만 믿고, 네가 두 눈으로 직접 본 사실을 믿지 못하는 건데!”육지훈이 냉랭하게 말했다.“내가 직접 보긴 했지만 난 의대생이 아니라서 잘 몰라. 의사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고 들었어. 그리고 넌 유안이를 미워하잖아!”“그래! 미워하는 거 맞아!”임가영이 버럭
차량은 결국 장례식장에 도착했다.제단의 정중앙에는 정유안 외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놓여있었다.장례식장을 찾은 수많은 사람 중에 임가영을 때린 두 아줌마도 있었다.이들은 목이 터져라 울부짖고 있었다.후줄근한 옷차림과 상스러운 말투는 정유안과 완전히 딴판이었다.제단 옆 상주 자리에는 정유안이 무릎 꿇은 채 상복을 입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임가영은 이 모든 것을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정유안의 외할머니가 돌아갔다고 해도 동정심이라곤 생기지 않았다.육지훈은 뒤따라오라면서 먼저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더니 정유안을 부축했다.“유안아, 가영이를 데려왔어.”육지훈의 말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가영이 사과를 받아줬으면 좋겠어.”정유안은 임가영을 힐끔 쳐다보더니 그제야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고개를 쳐들면서 울먹거렸다.“지훈아, 난 다른 사람 거 탐낸 적도 없는데 네 와이프는 왜 이렇게 잔인해? 내가 싫으면 나한테 복수하면 되지, 왜 우리 외할머니를 죽여?”임가영은 사과할 마음 없이 피식 웃기만 했다.그러더니 정유안을 가소롭게 쳐다보았다.“증거 있어요? 제가 당신 외할머니 죽였다는 증거? 다른 사람 거 탐낸 적 없다고요? 제 실험실에 와서 제 남편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한 게 누군데요? 저한테 이혼하라고 협박한 게 또 누군데요!”육지훈은 멈칫하고 말았다. 임가영이 쉽게 사과하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사과는커녕 더 화만 돋굴 줄은 몰랐다.그는 임가영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당장 입 다물지 못해?”이때 임가영이 핸드폰을 꺼내 육지훈과 정유안을 촬영했다.“고소하겠다면서요? 할 테면 하세요. 저도 모함 죄, 명예훼손죄로 고소해 버릴 거니까!”임가영이 계속해서 차갑게 말했다.“그리고 제 얼굴에 있는 상처 보셨죠? 당신 친척분이 하신 거예요. 이런 거 뭐라는지 아세요? 집단폭행이라고 해요! 아무도 도망가지 못해요!”정유안은 피해자인 척 육지훈의 품에 안겨 흐느꼈다.육지훈이 소리쳤다.“임가영, 미쳤어? 여긴 장례식장이라고!”임가영
임가영이 억지 미소를 지었다.“말했으면 뭐. 너도 저 사람들이랑 똑같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잖아.”“가영아...”육지훈은 하염없이 그녀의 이름을 부를 뿐이다.“우리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네가 내 와이프인 이상 아무도 너를 건드리지 못해!”고개를 든 임가영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아까 이 한마디에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졌는지 모른다.“누가 좋은 남편인 척하랬어?”말은 이렇게 해도 애교스러운 말투를 보면 내심 좋은 듯했다.갑작스러운 애교에 육지훈의 마음이 찌릿해졌다.그는 임가영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면서 말했다.“할아버지가 보시면 또 무슨 난리를 치실지 모르겠네.”임가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할아버지께서 정유안 씨 정체를 알면 난리 날까 봐 그러는 거겠지!”육지훈이 피식 웃었다.“이래서 여자는 너무 똑똑해서 안 돼. 똑똑한 척해서도 안 되고.”임가영도 육정근이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그녀는 육지훈을 힐끔 보더니 육정근한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할아버지.”임가영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저랑 지훈이 당분간 본가에 못 갈 것 같아요. 요즘 실습을 다니는 곳이랑 너무 멀어서 아침에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어서요.”육정근이 허허 웃었다.“그래, 편한 대로 해. 실습이 중요하지. 지훈이가 괴롭히면 언제든지 할아버지한테 말해.”임가영은 일단 육정근을 안심시켰다.임가영은 온 하루 밥 한 끼도 못 먹어 속이 허했는지 배를 끌어안으면서 말했다.“배고파. 희숙 아줌마한테 먹을 것 좀 준비하라고 해봐.”“내가 해고시켰어.”육지훈이 냉랭하게 말했다.“그리고 다른 도우미 아줌마들도 다 해고시켰어.”임가영은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육지훈을 쳐다보았다.그러자 육지훈이 설명했다.“이제부터 이 집안에는 우리 둘뿐이야. 만약 무슨 소식이 새어머니의 귀에 들어가면 네가 몰래 알려준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임가영은 저번에 이금란이 몰래 고자질한 것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을 해고시
사실이 왜곡된 기사를 보고 있던 임가영은 손 떨리는 느낌에 얼른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일반인으로서 이런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질지 몰랐다.평소에 아무리 굳세고 강하다고 해도 이런 사건을 맞닥뜨리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온 세상에 퍼진 소문을 막을 수가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다.문을 열자 하혜인이 헐레벌떡거리면서 말했다.“가영아, 이거 분명 누군가가 너를 모함하려고 그러는 거지? 누구야? 그 불륜녀야? 난 네가 이런 짓을 했을 거라고 절대 안 믿어!”하혜인의 이유 없는 믿음에 임가영은 감동되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아빠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믿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이 모든 사건의 원흉은 바로 육지훈이었다.임가영은 잠긴 목소리로 그날 있었던 일을 전부 하혜인에게 말해주었다.마지막에는 지친 듯 한숨을 내쉬었다.“그 할머니가 정유안 씨 외할머니일 줄은 난 생각도 못 했어. 아마도 원래부터 심폐기능이 떨어져 있어서 오래 살지 못할 운명이었던 거야. 그래서 병원에서도 살려내지 못했던 거고.”“세상에 이런 일이.”하혜인은 화가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정유안한테 따지러 가고 싶었지만 또 한 번 확인해 보려고 했다.“그러니까 외할머니를 살려드렸는데 그 집 친척들이 네 몸에 구정물을 뿌렸다고? 그게 사람이야? 그리고 얼굴에 있는 상처도 그 사람들이 한 짓이야? 이런 짐승보다도 못한 놈들!”“혜인아, 나 힘들어.”임가영이 갑자기 울음이 터뜨리자 하혜인이 등을 다독여 주면서 위로했다.“괜찮아, 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방법 좀 생각해 볼게. 정 안되면 내가 아빠한테 돈 달라고 해볼게. 댓글부대에 부탁해서 댓글 방향을 돌리면 되지. 다음부터 사람 살릴 땐 조심해. 그 불륜녀랑 엮인 건 알아서 피하자고!”임가영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의사로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응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양심을 버리면서까지 한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 나가는 모
요 며칠 육지훈이 정유안과 함께했을 거라는 생각에 표정이 차가워졌다.“상관하지 마. 그리고 난 멍청하게 정문으로 들어갈 일도 없어. 실험실 옆에 작은 문이 또 하나 있는데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정말 멍청하긴.”육지훈이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었다.“아까 기사님이 먼저 가보셨어. 이거 봐봐!”임가영은 사진을 보고 난 뒤 그제야 무서워졌다.평소에 아무도 지나치지 않는 실험실 쪽에 있는 옆문에도 기자들이 빼곡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육지훈이 진지하게 물었다.“왜 갑자기 학교로 온 거야? 지금이 어느 때인데 실험이 그렇게 중요해?”임가영이 우울해하면서 말했다.“같은 반 친구가 실험 쥐들이 굶어 죽을 것 같다고 말해줬거든.”육지훈이 물었다.“언제 연락이 왔는데?”“그게 중요해?”임가영이 어이없어하면서 째려보았다.육지훈은 임가영이 보는 앞에서 기사님에게 전화해 기자들이 언제부터 그 옆문에 몰려들었는지 물었다.돌아온 대답은 한 시간 전이었다.임가영은 그제야 깨달았다.‘글쎄 난데없이 내 실험 쥐를 걱정해 준다 했어. 결국엔 이것 때문이였어?’육지훈이 말하려던 것도 이거였다.심지어 임가영보다 더 빨리, 더 전면적으로 문제를 파악한 것이다.임가영은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풀이 죽은 채 말했다.“미안해. 내가 흥분하면 안 되었어.”육지훈은 은근슬쩍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가끔 가시 없는 고슴도치도 귀여울 때가 있었다.육지훈은 더는 캐묻지 않기로 했다.“됐어, 집에 가. 이 일은 내가 해결할 테니까.”“안돼. 이대로 가면 안 돼.”임가영이 불쌍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실험 쥐한테 아직 먹이 못 줬단 말이야.”육지훈이 멈칫했다.“죽으면 다시 사면 되잖아! 지금 이 상황에서 학교 가면 안 된다고. 아니면 기사가 또 어떻게 날지 몰라!”“나는 안 돼도 너는 되잖아!”임가영이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쳐다보았다.육지훈은 황급히 그녀의 두 눈을 피하면서 어색하게 마른기침했다.“임가영,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나보고 쥐한테 먹이를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