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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누가 그렇게 부르도록 허락한 거란 말인가?

육지훈은 임가영을 꾸짖으려 했지만 그녀가 이미 전화를 끊은 뒤였다.

정유안의 안색이 좋지 않은 얼굴을 바라보던 임가영은 마침내 전례 없는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유안 씨, 봤죠?”

임가영은 정유안 앞에서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

“남편이 데리러 온다고 하네요. 유안 씨가 지훈이와 먼저 만났든 말든 지훈이가 본가로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나 임가영이에요!”

임가영은 말을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나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유안 씨 천천히 마셔요. 커피는 내가 살게요.”

그렇게 말한 후 임가영은 커피숍을 걸어 나갔다.

며칠 동안 답답하고 막혀 있던 가슴이 이 순간 드디어 숨통이 트였다.

...

곧 육지훈의 차가 임가영을 데리러 해성 대학교 입구에 도착했다.

할아버지가 직접 그를 키웠기 때문에 그는 항상 할아버지를 존경했다.

이 때문에 육지훈은 할아버지를 화나게 하지 않기 위해 임가영을 데리러 직접 왔다.

그녀가 차에 타는 것을 본 육지훈은 차갑게 말했다.

“임가영,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지 마.”

“알았어.”

임가영은 순순히 동의했다.

그녀는 정유안이 자신을 찾아온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지훈이 정유안에 대한 마음을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임가영이 자신의 여자를 괴롭혔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육지훈은 그녀가 말대꾸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조금 전 호칭에 대해 추궁하지 않고 본가를 향해 차를 몰았다.

육씨 집안 저택은 해성의 남쪽에 있는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었다.

몇 년 전 외국의 한 거물이 1600억 원을 주고 이 저택을 사려고 했지만, 육정근은 가소로운 듯 미소만 지었다.

매달 15일은 육씨 집안의 가족 연회 날이었다. 육지훈의 아버지와 새어머니도 참석했다.

이때 육지훈의 이금란은 미소를 지으며 육정근에게 말했다.

“아버님, 우리 세빈이가 요즘 아버님 건강이 좋지 않으시고 천식이 또 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특별히 외국에 전문가를 만나러 갔기 때문에 오늘 함께 식사하러 오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버님께 대신 사과의 말씀을 전해 달라고 했어요.”

그러자 육정근은 약간 놀라며 말했다.

“세빈이가 언제 그렇게 철이 들었지?”

이금란의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고, 그녀는 서둘러 말했다.

“세빈이는 항상 효심이 지극한 아이였어요. 얼마 전에는 대학을 졸업한 지 오래되었으니 이제 자기도 아성 그룹에 들어가서 형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세빈이는 지훈이와 함께 아버님의 근심을 덜어드리고 싶다고 했어요.”

이 말을 듣고 육지훈의 표정이 약간 가라앉았다.

그가 임가영과의 결혼에 동의했을 때 육정근에게서 경영권을 자신에게 넘기고 육세빈이 아성 그룹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었다.

그런데 육정근이 이금란에게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단 말인가?

아버지 육진봉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아버지, 언제쯤 아성 그룹에 세빈이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실 건가요? 지훈이도 회사에서 잘하고 있지만 회사가 너무 커서 혼자서는 힘들 거예요.”

육진봉이 전처와 이혼하고 이금란과 재혼한 후 육정근은 육진봉이 아성 그룹에서 맡았던 직책을 빼앗고 오히려 육지훈에게 회사의 경영권을 물려주었다.

육진봉과 이금란은 막내아들마저 육정근에 의해 배척당할까 봐 두려워서 육세빈을 대변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육정근은 가볍게 기침을 하며 말했다.

“세빈이는 아직 어려서 경험을 더 쌓는 것이 좋겠어. 현재 회사에는 세빈이에게 적합한 자리가 없어.”

그러자 이금란의 표정이 즉시 어두워졌다.

그녀는 육지훈이 곁에 있는 한 육정근이 육세빈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임가영은 육지훈 옆에서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아도 그들의 대화를 분명히 들었다.

이때 육정근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고 심각한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가영아, 살이 더 빠진 것 같네. 밥 많이 먹어라.”

육정근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지훈이가 잘해 주지? 널 괴롭히는 건 아니지?”

임가영은 육지훈을 흘끗 보고 억지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지훈이가 잘해 줘요.”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이금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닌 것 같은데? 지훈이가 한 달에 집에 가는 시간이 얼마 안 된다고 들었는데? 집에 가서도 너랑 방을 따로 쓴다며?”

“뭐라고? 방을 따로 써?”

육정근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

“어떻게 된 거야?”

육지훈은 입술을 깨물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임가영을 바라보았다.

별장에 도우미들은 전부 그가 직접 뽑은 사람들이라 절대 밖으로 소문을 낼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이금란이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육정근이 믿지 않을까 봐 이금란이 덧붙였다.

“아버님, 가영이가 저희 집에 들어온 지도 2년이 지났는데 아직 아무 소식이 없네요. 지훈이도 가영이도 나이가 어려서 임신해야 정상인데 말이에요.”

육정근은 무언가가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훈아, 서재로 따라 와.”

임가영은 겁이 나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록 할아버지에게 혼나게 된 건 육지훈이 잘못한 게 맞지만 왠지 너무 걱정되었다.

...

서재에서 육정근과 육지훈은 아무 말도 없이 대치하고 있었다.

한참 있다가 육정근이 입을 열었다.

“지훈아, 내가 너더러 가영이와 결혼하라고 한 건 가영이가 우리 육씨 집안에 시집와서 괴롭힘당하라고 그런 게 아니야. 내 목숨은 가영이의 엄마가 살린 거야!”

“할아버지, 가영이와 결혼한 건 이미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양보였어요. 그 이상은 절대 못 해요.”

육지훈의 목소리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육정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방금 네 새엄마 말도 들었겠지만 네가 그렇게 가영이를 대하면 나도 다시 후계자에 대해 공정하게 고민해 볼 수밖에 없어. 어쨌든 세빈이도 내 친손자니까 말이야.”

결국 육지훈은 참고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당시에 큰 희생을 치르며 임가영과 결혼했으니 이제 와서 모든 것을 망쳐버릴 수 없었다.

육진봉은 육지훈이 엄마의 사랑을 가장 필요해한 6살 때 그의 친엄마를 내쫓고 이금란과 결혼했다.

오랫동안 친엄마를 찾아봤지만 끝내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지금도 친엄마가 살아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속 원한이 이렇게 큰데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잘할게요.”

결국 그는 할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다.

자신이 있는 한 절대 육진봉과 이금란이 편하게 지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육정근이 그렇게 쉽게 육지훈의 말을 믿을 리가 있겠는가.

“오늘부터 가영이랑 들어와서 지내.”

육정근이 엄숙하게 명령하듯 말했다.

“나한테 증손주를 안겨주면 그때 내 수중에 있는 아성 그룹 지분과 경영권을 전부 너에게 넘겨줄게.”

...

그렇게 육지훈과 임가영은 육씨 집안 저택으로 들어와서 지내게 되었다.

육정근은 당연히 그들에게 안방 하나를 내주었다.

임가영은 걱정돼서 긴장한 마음으로 어두운 표정의 육지훈을 바라보았다.

육지훈은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고개를 들어 자신의 눈을 마주 보게 한 다음 물었다.

“이금란이 어떻게 우리 둘 사이의 일을 아는 거야? 너 이금란이랑 친해?”

임가영은 육지훈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을 알고 재빨리 설명했다.

“네가 그 여자를 싫어하는 거 알아. 나도 그 사람 싫어. 내가 왜 그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겠어?”

하지만 임가영의 말은 육지훈을 설득하지 못한 듯했다.

육지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나랑 자고 싶었어? 그럼 오늘 만족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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