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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 순간 육지훈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오늘 술자리에서 요리가 문제 있었는지 아니면 술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는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부드럽고 향기로운 여인의 몸에 닿자 육지훈의 욕망은 더욱 솟구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임가영의 무력한 목소리와 반응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육지훈은 지쳐서 잠들었다.

임가영은 온몸이 짓눌린 듯 뼛속까지 고통이 느껴졌다.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다급히 치마를 입은 뒤 더듬거리며 어두운 방에서 나왔다.

허둥지둥 대며 엘리베이터에 타자 마침 한 젊은 여성과 부딪쳤다.

“죄송합니다.”

임가영은 창백한 얼굴로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버튼을 눌렀다.

정유안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고개를 돌려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한 채 틈 사이로 임가영을 바라보았다.

육지훈의 아내 아닌가? 그녀의 자리를 빼앗은 여자!

여기 꼭대기 층에는 로열 스위트룸밖에 없는데 설마 임가영이 육지훈의 방에서 뛰어나왔단 말인가?

그럼 그들은... 한 건가?

마음속에서 질투심이 들끓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했고 오늘 술자리에 있던 사람들까지 매수해 시간도 계산하고 약까지 준비했는데 결국 또 임가영에게 뺏긴 것이다!

정유안은 신속히 방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잠든 육지훈의 숨소리만 들렸다.

그제야 정유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지더니 입고 있던 옷들을 전부 벗고 육지훈의 곁에 누웠다.

...

클럽에서 나온 임가영은 육지훈의 별장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육지훈이나 별장에 있는 도우미들이 그녀의 모습을 볼까 봐 겁이 났다.

결혼 생활 2년 동안 육지훈은 임가영의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보는 남자에게 순결을 빼앗긴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임가영은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택시를 잡은 그녀는 일단 본가로 가기로 했다. 적어도 일단 어디 가서 샤워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니까 말이다.

임가영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임주희와 나희애는 거실에서 조 감독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지금쯤 임가영은 조 감독과 잤겠죠?... 급해 죽겠는데 조 감독은 왜 아직도 전화가 없는지. 서브 여주 자리를 나한테 주겠죠?”

임주희의 눈빛에 욕심이 가득했다.

옆에 있는 나희애는 실눈을 뜨고 말했다.

“뭐가 그렇게 급해. 아직 11시 좀 넘었잖아? 조 감독은 업계에서 잘 놀기로 소문 난 사람이야. 그렇게 쉽게 임가영을 놓아주겠어?”

모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임가영이 더없이 어두운 표정으로 걸어 들어왔다.

“임... 임가영?”

임주희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왜 돌아왔어?”

임가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내가 집에 돌아오면 안 돼?”

나희애도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하며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영아, 오늘 왜 할머니 생신 연회에서 먼저 나갔어? 우리한테 말도 하지 않고 말이야. 네가 갑자기 가서 할머니가 기분 나빠지셨잖아.”

임가영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두 모녀의 모습을 보자 오늘 밤 그녀를 시에릭스 클럽으로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순결이 깨지자 임가영은 화가 나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희애의 뺨을 힘껏 내리쳤다.

임주희는 분노하며 소리쳤다.

“임가영, 네가 감히 우리 엄마를 때려? 지금 당장 할머니랑 아빠 부를 거야. 너 딱 기다려!”

그러나 임가영은 임주희의 손목을 잡고 확 잡아당겼다.

검은 눈동자에서 섬뜩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임주희에게 말했다.

“맘대로 해. 사람 부르고 싶으면 불러. 오늘 밤에 있었던 일은 시에릭스 클럽에 있는 모든 감시카메라를 돌려서라도 아빠에게 알릴 거야. 너 아빠 손에 죽을 줄 알아!”

그러자 나희애와 임주희는 오늘 밤 일이 임명재에게 들통날까 봐 안색이 변했다.

임명재와 전처가 이혼할 때 임가영은 너무 어렸고 중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우울증까지 걸렸었다.

그래서 임명재는 임가영에게 늘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 있은 일이 사소한 것도 아니라 만약 정말 알려지게 되면 나희애와 임주희는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임가영은 그들이 마음에 찔려 불안해하는 것을 알고는 임주희를 바닥으로 힘껏 밀치고 지친 몸을 이끌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희애는 재빨리 임주희를 일으켜 세우며 임가영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임주희는 불안해하며 물었다.

“엄마, 임가영이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거예요? 조 감독이랑 확실히 잤을까요?...”

“무조건 잤을 거야.”

나희애는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임가영 목에 있는 자국들 못 봤어? 조 감독이 힘을 많이 썼나 보네.”

그러나 임주희는 걱정되어 물었다.

“이제 임가영은 우리를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 정말 감시 카메라를 확인하고 아빠한테 말하면 어떡해요? 방금 임가영의 모습은 마치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나희애는 차분하게 말했다.

“뭘 걱정해? 임가영은 육씨 집안의 며느리야. 감히 오늘 일을 밖으로 알리겠어? 부끄러워서 어떻게 살려고?”

그제야 임주희는 마음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엄마, 얼른 조 감독에게 전화해 봐요. 내가 언제부터 촬영할 수 있는지 물어봐 줘요.”

나희애는 조영욱에게 전화를 걸고 아부하듯 말했다.

“조 감독님, 오늘 밤 우리 가영이랑 좋은 시간 보내셨나요?”

“말도 마요. 오늘 밤 내가 예약했던 그 로열 스위트룸을 누가 뺏어갔어요. 거물급 인사라고 하던데요.”

조영욱은 흥이 깨진 듯 말했다.

“그쪽에서 보내 준 미인을 나는 보지도 못했다고요.”

그 말을 들은 나희애는 안색이 확 바뀌었다.

“뭐라고요? 거물급 인사요? 그럼 감독님은 그 방에 가지 않으셨다는 말씀이에요?”

그렇다면 임가영과 잠자리를 가진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임가영의 목에 분명히 키스 마크가 남아 있었다.

“됐어요. 따님 촬영은 다음에 얘기해요.”

조영욱은 원했던 일이 성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태도가 좋지 않았다.

임주희는 화가 나 발을 동동 굴렀다. 기대했던 첫 드라마가 이렇게 수포가 된단 말인가?

임가영은 계단에 서서 두 모녀를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에서 오늘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다 알 수 있었다.

나희애와 임주희는 임가영을 조영욱에게 보내려고 했는데 로열 스위트룸을 갑자기 누군가에게 빼앗겨 버린 것이다.

조영욱조차 건드리면 안 되는 거물급 인사에게 임가영이...

그녀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 눈을 꼭 감았다.

오늘 밤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임주희와 나희애를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 일은 임씨 집안과 육씨 집안, 그리고 자신의 체면이 걸린 일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했다.

임가영은 욕실로 가서 자신의 몸에 남은 흔적들을 바라보았다.

오늘 밤 그 일을 겪고 난 뒤 자신이 더러워진 것 같았다.

첫 경험을 남편이 아닌 다른 낯선 남자에게 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물소리와 함께 더 슬프게 울려 퍼졌다.

...

밤새 생각해도 도저히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임가영은 어젯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에 바로 시에릭스 클럽으로 향했다. 감시 카메라 영상을 돌려 보거나 고객 정보를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임가영이 들은 대답은 그녀를 실망하게 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클럽을 이용한 고객 정보는 절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어젯 밤 저희 클럽 카메라가 해킹을 당해 밤새 정상 작동이 되지 않았거든요. 조금 전에 고쳐서 어젯밤 영상은 없습니다.”

시에릭스 클럽은 해성에서 최고급 클럽이라 배후의 세력이 무시무시하다. 그렇기에 임가영 같은 평범한 여자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임가영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어젯밤 일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만약 이 일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 소문이라도 나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이다.

임가영은 지친 몸으로 육지훈의 별장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피임약도 샀다. 22살인 임가영은 경험이 별로 없었지만 알 건 다 아는 성인이었다.

약을 복용한 후 약통을 서랍 안에 넣었다. 그리고 갑자기 잠이 몰려 와 침대에 누워 잤다.

임가영이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점심이 되었다. 어느새 육지훈이 돌아와 침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검은 정장에 은회색 넥타이를 맨 그는 유난히 우아해 보였고 더욱 차가워 보이기도 했다.

임가영은 깜짝 놀랐다.

어젯밤에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마음에 찔렸다.

게다가 평소에 육지훈은 손님방으로 바로 갔지 한 번도 침실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육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오며 담담하게 말했다.

“조금 전에 집에 들어오니까 아주머니께서 네 안색이 안 좋다고 하길래 어디 아픈 건 아닐까 해서 들어와 봤어.”

그 말을 들은 임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육지훈이 약통 하나를 그녀 앞에 던졌다.

“침대 옆 서랍에서 체온계를 찾으려고 하다가 이걸 봤는데, 뭐야?”

육지훈의 말투는 평온했지만 오늘따라 더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임가영은 오늘 샀던 피임약을 보자 뜨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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