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리는 회사를 나서기 전에 먼저 화장실을 들렀다. 역시나 생리의 징조가 조금 보였다.화인 그룹의 건물 아래에서는 택시 잡기가 어려웠다. 택시를 타기 위해서는 몇백 미터 정도 걸어야 했다.그때 서준혁의 차가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더니, 서서히 여자의 앞에 멈춰 섰다.창문이 내려가더니 서준혁의 준수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무심하게 신유리에게 물었다. “오늘 운전 안 했어?”신유리는 잠시 멈칫했다. “정비 맡겼어.”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어젯밤에 이미 차 정비 맡겼다고 말했는데… 보아하니 제대로 안 들은 것 같았다.“집에 가는 거야? 아니면 어디 가는 거야?” 그가 또 물었다.“집에.”“타.” 서준혁은 고개를 끄덕였고, 신유리는 의식적으로 조수석에 앉아 있는 송지음을 쳐다보았다.그녀의 입가에 걸린 웃음은 무척이나 경직되어 있었다. 그녀는 미간을 조금 찌푸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서준혁을 타일렀다. “우리 뭐 사러 가기로 했잖아요. 유리 언니한테 약속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요? 우리가 괜히 방해하는 거 아니에요?”서준혁은 고개를 들어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좀 기다려야 하는 데 괜찮아?”안 괜찮을 건 또 뭐야.하지만 그녀는 송지음의 눈에 담긴 방어심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됐어. 친구가 데리러 오기로 했어.”마침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연우진이었다.연우진이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신유리는 담담한 얼굴로 핸드폰을 흔들며 말했다. “전화 왔네.”그 말에 송지음은 바로 고개를 돌려 서준혁을 꾸짖었다. “봐요. 제가 약속 있을 거라 말 했잖아요.”안도하는 말투였다. 신유리는 아무 말 없이 옆으로 발걸음을 옮겨 전화를 받았다.서준혁의 시선은 줄곧 그녀를 따라가고 있었다. 송지음이 소매를 잡아당기자 그는 그제야 서서히 시선을 거두었다.송지음은 입술을 깨물며 백미러 너머로 보이는 신유리의 모습을 쳐다보았다.그녀는 단정한 모습으로 서 있었고, 긴 머리는 바
신유리의 말은 무척이나 직설적이었다. 연우진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싫다고 해도 상관없어.” 신유리는 고개를 숙였다. 자기가 생각해도 좀 별로였다. “그냥 한 말이야.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연우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유리야, 미안해. 근데 이유는 물어봐도 될까?”“아무것도 아니야.” 신유리가 입을 열었다. “솔로인지 너무 오래라 연애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그녀는 서준혁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연우진도 딱히 더 묻지 않았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연우진은 여전히 다정하게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었다.결국 그들은 집 앞에서 서준혁을 만나게 되었다.검은색 벤틀리는 바로 연우진의 차 옆에 멈춰 섰다. 서준혁은 담담하게 차에서 내리는 신유리를 쳐다보더니 곧이어 시선을 자연스럽게 연우진에게 옮겼다.연우진은 그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서준혁은 그의 말에 대꾸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신 비서 수완이 일 쪽에서만 대단한 게 아니었네.”신유리는 그의 말 속에 숨은 조롱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도무지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가 먼저 송지음을 옆에 둔 것이다. 그는 혹시라도 송지음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할까 그녀보고 남자 친구를 찾으라며 은근히 암시까지 했었다.또 뭘 비꼬고 있는 거지?신유리의 시선은 아래도 떨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연우진과 작별을 고했다. “번거롭게 했네. 옷은 잘 빨아서 나중에 돌려줄게.”그 말에 연우진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필요 없어. 입던 옷인데 뭐.”신유리는 그 말이 예의 차리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사실 오늘 그녀가 한 말은 조금 경솔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발언은 연우진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을 것이다.연우진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준 것도 그가 어릴 때부터 받은 훌륭한 교육과 매너 덕분이었다.신유리의 예상대로 생리는 앞당겨졌다. 한밤중이 되자 밀려오는 아픔에 식은 땀까지 흐르고 있었다.
송지음의 얼굴을 보게 되었을 때 신유리는 자신의 표정을 아주 잘 감추었고 있었다. 그녀는 가벼운 목소리로 송지음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송지음은 오늘 특별히 꾸몄다. 안 그래도 어리고 앳된 얼굴에 블러셔까지 올라가니 무고함이 한층 더 깊어졌다. 옆집에 사는 여동생 같았다.“유리 언니, 하 부장님이 고쳐야 한다면서 서류를 하나 보냈어요. 저는 오늘 약속에 안 가고 집에서 서류를 수정한다고 말했는데, 그런데…”말을 하던 그녀는 참지 못하고 옆에 있는 서준혁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제야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준혁 씨가 언니 오늘 안 간다고, 언니가 도와줄 수 있다고 했어요.”신유리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에 있는 서류를 확인했다. 그녀가 틀림없이 승낙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서준혁을 쳐다보았다. “네 뜻이야?”“우서진이랑 녀석들이 우리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어. 어차피 넌 안 가잖아. 야근이라고 생각해.” 서준혁의 눈빛은 무척이나 담담했다. “야근 수당 챙겨줄게.”아랫배에서 갑자기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그녀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미안. 내가 몸이 안 좋아서.” 그녀가 말했다.그녀의 말에 서준혁의 인상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신유리가 서준혁이 뭐라고 말하려 한다고 생각하던 그때, 송지음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요. 언니가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준혁 씨, 역시 내가 가서 고치는 게 좋겠어요. 무슨 일이든 다 유리 언니한테 부탁할 수는 없잖아요.”그녀의 말투에는 고민과 자책이 섞여 있었다. 그 말에 신유리를 고개를 숙인 채로 한참을 침묵하더니 다시 고개를 들었다. “줘. 내가 할게.”단지 그녀가 손을 뻗어 서류를 받기도 전에 뱃속의 통증이 다시 한번 그녀를 찾아왔을 뿐이었다.순간 신유리는 참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고 하마터면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그때, 힘 있는 손 하나가 그녀의 팔을 부축했다. 신유리는 고개를 들었고, 서준혁이 한 손
서준혁은 송지음을 데리고 약속에 참석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싸웠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송지음은 굳은 얼굴로 한쪽에 앉았고, 서준혁도 딱히 그녀를 달래주지는 않았다.우서진과 서준혁은 사이가 좋았다. 그는 술잔을 든 채로 그의 옆에 앉더니 몇 마디 잡담을 나눈 후에야 본론으로 들어갔다.“준혁아, 너 저 아가씨랑 진심이야?”서준혁의 얼굴에는 아무런 파동이 없었다. 그는 담담한 말투로 되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아니야. 그냥 이 말하고 싶어서. 진지하게 만나는 거면 얼른 가서 달래줘. 괜히 애타게 만들지 말고.” 우서진은 뭔가 생각이 있는 듯 송지음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나이가 어렸다. 그래서인지 얼굴에 속상함과 억울함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다.우서진은 관심 없는 듯 코웃음을 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신유리처럼 성격 좋고, 네가 손 흔들면 바로 꼬리 흔들며 다가 올거라고 생각하지마.”서준혁의 무리에 있는 사람들이 신유리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신유리가 너무 도도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서준혁밖에 없었고, 다른 사람들 말에는 대꾸도 해주지 않았다.두 번째 이유는 그녀가 서준혁의 어떤 말도 들어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마치 성격이라는 게 없는 것처럼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서준혁이 여자랑 논다고 호텔을 예약하라는 말에도 그녀가 직접 방 카드를 그에게 건네줄 정도였다.이런 재벌 2세들은 타고난 우월감이 있어서 말 잘 듣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 잘 듣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았다.그래서 신유리가 그들의 무리에도, 그들의 눈에도 들지 못하는 것이었다.잠시 앉아 있던 그는 바로 다른 사람을 찾으러 갔다. 그가 떠나자마자 송지음이 우물쭈물 그에게 다가왔다.서준혁은 시선을 내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화났어?”송지음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화 안 났어요. 그냥 유리 언니를 볼 때마다 자꾸 나도 모르게 두 사람 옛날 일이 떠오를 뿐이에요.”그녀는
신유리가 대표 사무실에서 인사이동 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화인 내부에 퍼지게 되었다. 오전 내내 그녀의 앞에 다가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러 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다행히도, 평소에 회사에서 도도하게 지낸 데 습관된 덕분에 감히 진짜로 그녀에게 다가와 입을 놀리는 사람은 없었다.이제 금방 직책을 받아서 그런지 인수인계받아야 할 일이 무척이나 많았다. 점심에 나갈 시간이 없었던 그녀는 회사 구내식당에서 대충 한 끼 때울 수밖에 없었다.엘리베이터를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대표 사무실 직원들이 송지음을 둘러싸며 떠들썩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사람은 눈치가 있다. 신유리가 서준혁에게 유배까지 당한 이 상황에 송지음의 신분이 요동한다는 건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녀의 환심을 사고 싶어 했다.신유리는 담담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엘리베이터를 탔다.오히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 껄끄러워졌는지 말소리가 조금 작아졌다.송지음 혼자 그녀를 쳐다보며 자연스럽게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신유리에게 물었다. “유리 언니, 밖의 일은 할만해요? 준혁 씨한테 물어봤는데, 밖이 언니를 더 필요로 한데요. 나중에 아마 다시 부를 거예요.”만약 그녀의 말투에 섞인 의기양양함을 무시한다면, 꽤나 진심 어린 말이긴 했다.신유리는 그녀의 말에 대충 응답했다. 무척이나 냉정했다.서준혁이 그녀를 다시 부르든지 말든지, 그녀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어디서 일하든 의미는 비슷했다.송지음이 이겼다는 생각에 얼굴의 웃음기를 참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대기업의 생활 템포는 무척이나 빨랐다. 오후, 신유리가 퇴근하기 전, 그녀는 갑자기 접대가 있다는 소식을 받게 되었다.접대를 하면 술을 마셔야 했다. 하지만 신유리의 생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그녀가 도착했을 때, 클라이언트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그녀는 물 만난 고기처럼 클라이언트를 응대했고, 세잔의 술잔이 지나갔을 때, 양쪽은 이미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연우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두 손으로 신유리의 팔을 잡았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괜찮아?”신유리는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녀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느릿느릿하게 몸을 세우고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말투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너였구나. 미안. 미처 못 봤어.”“유리야.” 연우진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신유리는 그런 그를 쳐다보았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입술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눈꼬리에도 취기가 어느 정도 물들어 있었다.연우진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곧이어 그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데려다줄게.”신유리가 연우진을 따라 밖으로 나갈 때, 우서진과 다른 사람들이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우진의 모습에 그가 입을 열었다. “GT에서 좀 더 놀래? 하준우가 그러는데, 거기에 요즘 쌔끈한 여자가…”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서진은 연우진의 뒤에 서서 인상을 찌푸리는 신유리를 보게 되었다. 그의 말소리는 순식간에 멈춰버렸다.연우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유리 집에 데려다줄 거야. 너네끼리 가.”신유리는 몸매가 늘씬했다. 연우진의 옆에 있는 그녀의 모습은 참대와 다름이 없어 보였고 무척이나 꼿꼿했다.우서진은 풉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핸드폰을 들어 그들의 뒷모습을 단톡방에 올려버렸다.옆에 있던 친구가 그 모습을 보고 궁금증을 자아냈다. 우서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신유리, 정말 여성스럽지 못하지 않냐? 남자랑 같이 가는데도 아무 생각이 안 들어. 쯧. 어쩐지 준혁이가 한밤중에서 송지음한테 밥 배달 하러 가더라.”신유리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단톡에 올린 사진을 확인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들을 놀리기도 했다.신유리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원래 클라이언트에게 문자를 보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잘못 누른 탓에 단톡방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뒤로가기를 누르려던 그때, 송지음의 메시지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유리 언니랑 우진 씨 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서준혁이 깊은 눈동자로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손가락을 구부리며 책상을 두 어번 더 두드렸다.그가 신유리의 이름을 부르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신유리, 남 탓 하지 마.”그 말에 신유리는 순간 당황했다. 그녀는 서준혁에게 되물었다. “내가 남 탓한다고?”서준혁은 무척이나 태연했고,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신유리는 눈을 감으며 한참 동안 감정을 추슬렀고, 한참 후에야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가 뭐라 말하려 하던 그때, 송지음이 안으로 들어왔다.송지음은 에코백을 멘 채로 똑바로 서준혁에게 다가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퇴근했어요. 이제 가요.”말을 끝낸 후, 그녀는 그제야 신유리를 본 것처럼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신유리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송지음은 눈을 깜박이더니 뭐가 생각난 듯 갑자기 입을 열었다. “유리 언니, 오후에 쥴리 언니보고 준혁 씨 회의 끝났다고 언니한테 말하라고 했는데. 왜 안 왔어요?”쥴리는 화인의 오래된 직원이었다. 신유리가 금방 회사에 들어오게 됐을 때, 그녀에게 적지 않는 괴롭힘을 당했었다.신유리와 쥴리가 서로 대꾸하지 않는다는 건 화인의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송지음이 쥴리보고 말을 전하라고 한 것도 분명히 일부러 그런 것이다.어쩐지, 나보고 남 탓한다고 하더라.신유리는 조용히 서준혁을 쳐다보며 그에게 펜을 건네주었다. “서…” 말을 이어 나가던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말을 바꾸었다. “서 대표, 사인해.”그 말에 서준혁은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피식대고는 펜을 들어 사인을 했다.송지음은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꼬리는 선명하게 올라갔다.그녀가 서준혁을 끌고 사무실을 나설 때까지, 신유리는 그녀의 발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준혁 씨, 같이 레스토랑 탐방하러 가면 안 돼요?”다정하게 행동할 때면, 그는 정말 부드럽고 세심했다. 단지 아쉽게도 그녀는 그의 다정함을 느껴본 적 없을 뿐이었다. 신유리는 그의 몸
신유리는 고개를 돌려 서준혁을 쳐다보았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물 묻은 셔츠를 벗더니 그것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는 신유리를 쳐다보며 눈썹을 들썩였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가늠할 수 없었다.신유리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고개를 돌려 가벼운 목소리로 연우진에게 말했다. “출장 중이야.”말을 끝낸 후 그녀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에게 서준혁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서준혁은 그녀를 쳐다보더니 이내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연우진?”“응.”“둘이 언제부터 그렇게 친해진 거야?”신유리는 서랍에 있는 타올을 꺼내더니 넋을 놓은 채로 그의 말에 대답했다. “우리 계속 친했어.”서준혁은 시선을 거두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청아가 예약한 방은 스위트 룸이었다. 침대는 무척이나 컸고 거실에는 작은 소파도 놓여 있었다.그녀는 서준혁이 샤워를 끝낸 후에 바로 소파에서 잘 줄 았았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그는 웃옷을 벗은 채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머리는 촉촉이 젖어있었고 쇄골에는 아직 닦이지 않은 물기가 남아있었다. 그 물방울들은 그의 피부를 따라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더니 결국 선명한 복근 사이로 사라졌다.서준혁은 자연스럽게 침대에 앉으며 신유리에게 타올을 던졌다. “닦아.” 그의 말투는 무척이나 간결했다.신유리는 그때 서류를 검수하고 있었다. 그 말에 그녀는 조금 얼어버렸다.잠시 후, 그녀는 타올을 받아 들더니 서준혁의 옆에 꿇어앉았다.신유리는 서준혁의 머리를 많이 닦아줬었다. 항상 서준혁이 머리가 아플까 걱정이 됐던 그녀는 그에게 먼저 제안을 했고, 몇 번 거절하던 그는 이내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었다.하지만 그것도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언제부터인지 서준혁은 더 이상 그녀보고 머리를 닦으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서 야릇한 일을 하고 난 후에도 그는 항상 젖은 머리로 자리를 떠나곤 했다.신유리는 열심히 그의 머리를 닦아주었다. 그때 서준혁이 옆에 두고 있었던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신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