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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정식 여자 친구

”말할게 뭐가 있다고.” 신유리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우유를 데울 생각이었다. 곧 생리라 커피는 마시고 싶지 않았다.

“마실래?” 그녀가 서준혁에게 물었다.

대답 대신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서준혁의 뒷모습과 닫힌 문이었다.

어젯밤엔 비가 내려서 그런지 바닥은 많이 축축했다. 신유리의 차는 정비소에 끌려갔다. 택시를 타고 회사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래로 내려갔을 때, 그는 서준혁을 마주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차가운 얼굴을 하며 마치 그녀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고, 신유리도 눈치 빠르게 그의 차를 타고 회사에 간다는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신유리는 평소보다 몇분 늦게 회사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낮은 웃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고, 역시나 동료 몇 명이 송지음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송지음의 책상에는 아래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의 포장 봉투가 놓여있었다. 안에는 커피 몇 잔이 들어있었다.

신유리의 모습을 보자마자 송지음은 미소를 지으며 천진난만하게 인사를 했다. “유리 언니, 빨리 와서 아침 드세요.”

그녀의 말에 신유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 이미 먹고 왔어.”

“하지만 제가 특별히 사 온 커피인데… 계산도 준혁 씨가 했고요.” 송지음은 이제 준혁 씨라는 말이 입에 붙은 듯했다. 그녀는 커피 한잔을 신유리에게 건네주며 진지하게 말했다. “유리 언니가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요. 시럽은 안 넣었어요.”

신유리는 젖살이 아직 덜 빠진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신유리의 얼굴에는 아무 감정도 없었다. “고마워. 근데 내가 요즘 커피 생각이 없어서.”

그 말에 송지음의 얼굴에 걸려있던 웃음이 굳어버렸다. 그녀는 어색하게 손을 거두며 연약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해요, 유리 언니.”

신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점심 휴식 시간, 휴게실을 지나가던 그녀는 우연히 동기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신유리 무슨 허세를 부리고 있는 거야? 송지음이 서 대표 정식 여자 친구가 된 마당에 아직도 잘난 척하는 거야?”

신유리의 신경은 전부 송지음의 정식 여자친구라는 말에 집중되었다.

서준혁은 노는 걸 좋아했다. 주위에 각양각색의 여자가 스쳐 지나갔지만, 이번처럼 정식 여자 친구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신유리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후 내내, 신유리는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다. 곧 퇴근 시간이 다가오던 그때, 서준혁이 갑자기 그녀를 사무실로 불렀다.

“다음 주 출장, 너랑 금부장이 갔다 와.” 사무실 문은 열려 있었고, 서준혁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냉랭했다.

신유리는 알고 있었다. 송지음의 자리에서 마침 사무실 안의 상황이 잘 보인 다는 사실을.

그녀가 대답했다. “다른 일 없으면 먼저 가볼게.”

생리가 오는 며칠 동안 그녀는 항상 몸이 안 좋았다. 허리는 시큰거리고 등은 아팠으며 뱃속에 마치 돌이라도 꽂은 듯 불편했다.

신유리는 마음속으로 시간을 계산했다. 이번에 주기가 조금 앞당겨 진 것 같았다.

“너 송지음이 산 커피 안 마셨어?” 서준혁의 그윽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깊은 눈동자로 신유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신유리는 몸이 불편한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몸이 안 좋아서, 안 마시고 싶었어.”

그 말에 서준혁은 멈칫하더니 이내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지음이는 자기가 너한테 뭐 잘못한 줄 알더라. 억울해하던데.”

신유리는 바로 상황을 알아차렸다. 송지음이 서준혁에게 고자질을 한 것이었다.

그녀는 서준혁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다음에 줄 땐 그냥 받아.”

신유리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던 그때, 그녀는 미처 거두지 못한 송지음의 눈빛과 마주하게 되었다.

눈빛에 담긴 탐색과 경계가 미처 숨겨지지 않았고, 얼굴에는 웃음이 걸려있었다.

신유리는 누군가를 응대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지쳐있었다. 그녀는 바로 자리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더니 바로 회사를 떠나려 했다.

고개를 들자마자 송지음이 서준혁의 팔짱을 끼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무척이나 다정했다.

짐을 정리하던 그녀의 행동이 멈칫했고, 이내 자신을 부르는 송지음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유리 언니, 주말 약속 잊지 말고 꼭 와요.”

신유리는 그제야 주말에 어쩔 수없이 허락한 약속이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남자 친구까지 데리고 가야 하는 그런 약속 말이다.

역시나, 바로 송지음의 발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우진 씨 데려오셔도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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