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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내 남자 친구가 되어줄래?

신유리는 회사를 나서기 전에 먼저 화장실을 들렀다. 역시나 생리의 징조가 조금 보였다.

화인 그룹의 건물 아래에서는 택시 잡기가 어려웠다. 택시를 타기 위해서는 몇백 미터 정도 걸어야 했다.

그때 서준혁의 차가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더니, 서서히 여자의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가더니 서준혁의 준수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무심하게 신유리에게 물었다. “오늘 운전 안 했어?”

신유리는 잠시 멈칫했다. “정비 맡겼어.”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어젯밤에 이미 차 정비 맡겼다고 말했는데… 보아하니 제대로 안 들은 것 같았다.

“집에 가는 거야? 아니면 어디 가는 거야?” 그가 또 물었다.

“집에.”

“타.” 서준혁은 고개를 끄덕였고, 신유리는 의식적으로 조수석에 앉아 있는 송지음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걸린 웃음은 무척이나 경직되어 있었다. 그녀는 미간을 조금 찌푸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서준혁을 타일렀다. “우리 뭐 사러 가기로 했잖아요. 유리 언니한테 약속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요? 우리가 괜히 방해하는 거 아니에요?”

서준혁은 고개를 들어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좀 기다려야 하는 데 괜찮아?”

안 괜찮을 건 또 뭐야.

하지만 그녀는 송지음의 눈에 담긴 방어심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됐어. 친구가 데리러 오기로 했어.”

마침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연우진이었다.

연우진이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신유리는 담담한 얼굴로 핸드폰을 흔들며 말했다. “전화 왔네.”

그 말에 송지음은 바로 고개를 돌려 서준혁을 꾸짖었다. “봐요. 제가 약속 있을 거라 말 했잖아요.”

안도하는 말투였다. 신유리는 아무 말 없이 옆으로 발걸음을 옮겨 전화를 받았다.

서준혁의 시선은 줄곧 그녀를 따라가고 있었다. 송지음이 소매를 잡아당기자 그는 그제야 서서히 시선을 거두었다.

송지음은 입술을 깨물며 백미러 너머로 보이는 신유리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단정한 모습으로 서 있었고, 긴 머리는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이목구비는 뚜렷했고 안색은 담담했다.

신유리 같은 여자와 마주하는데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송지음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곧이어 그녀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서준혁의 팔짱을 꼈다. 그녀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준혁 씨, 아직 유리 언니한테 미련 남은 건 아니죠?”

서준혁의 눈 밑에 일렁이던 파도는 이미 사라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송지음을 쳐다보더니 가볍게 말했다. “쟤가 언제부터 연우진이랑 만나기 시작한 건지 생각하고 있었어.”

그 말에 그의 팔짱을 끼고 있던 송지음의 손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억울함이 조금 많아졌다. “많이 신경 쓰여요?”

서준혁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연우진이 불쌍해서 그래.” 그의 말투에는 경멸이 섞여 있었다.

그는 또 몇 마디 말을 더 하며 여자를 달래주었다. 서준혁은 엑셀을 밟더니 바로 차를 몰아 자리를 떠났다.

시동이 걸리는 소리에 신유리는 고개를 돌렸다. 서준혁의 차는 이미 꽤 멀리 멀어져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한참 동안 머뭇거린 후에야 연우진의 저녁 식사 초대에 응했다.

바로 근처에 있었던 연우진은 바로 그녀를 데리러 왔다. 그는 손에 들린 쇼핑백을 신유리에게 건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어제는 너무 급해서. 선물이야.”

연우진은 항상 그랬다. 행동이 온화하고 움직임이 우아하며 다정하고 세심했다.

그와 함께 할 때마다 신유리는 편안함을 느끼곤 했다. 그녀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드문 친구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신의 부탁이 더 무리하게 느껴졌다.

신유리는 마음속으로 한참 동안 머뭇거리며 내내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연우진이 그 머뭇거림을 알아채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신유리는 고개를 숙이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 혼자 해결할 수 있어.”

연우진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고는 미소를 띠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네 얼굴은 고민 가득한 모습인데? 나한테 얘기해 보는 건 어때?”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떠보듯 그녀에게 물었다. “서준혁 여자 친구 때문에 그래?”

신유리와 서준혁의 일은 무리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었다. 단지 서준혁이 인정하지 않아서 감히 대놓고 말하는 사람이 없을 뿐이었다.

너무 무례했을까 걱정이 됐던 그가 막 수습을 하려던 그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는 신유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남자 친구가 되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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