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음이 한참을 울렸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더욱 당황했다. 표정은 굳어졌고 코끝에는 땀방울이 맺혔다.그들을 태운 차는 이미 최상 빌라로 들어서고 있었다.강서연은 역시나 차에서 잠이 들었다. 최연준은 모두를 향해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내고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최군성은 헤드셋을 끼고 휘파람을 불며 부럽다는 눈빛으로 아빠를 쳐다보았다.“형, 난 언제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아빠가 엄마를 대하는 것처럼 평생 아껴줄 수 있는데.”최군형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제야 최군성은 형의 안색이 창백하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는 것을 보아냈다.“무슨 일 있어?”최군형은 그를 흘깃 보고 돌아가 쉬라고 한 뒤 홀로 정원의 구석까지 걸어갔다. 계속해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봤으나 여전히 받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몇십 개의 가능성이 떠올랐다.어쩌면 그 오솔길을 걷다가 위험에 처했을 수 있다. 어쩌면 구자영에게 당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최군형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전용기를 불러 강주로 돌아가려 할 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여보세요?!”“... 무슨 일 있어요? 목소리가 왜 그래요, 무섭게!”최군형은 멈칫했다. 이내 스르르 긴장이 풀렸다. 자신이 들어도 정상적인 목소리 같지는 않았다. 어릴 적부터 감정을 감추는 데 익숙한 사람에게 이런 반응은 확실히 비정상적이었다.“큼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기, 그러니까, 방금, 방금 당신이 해변에서 산책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라도 걸어서 알려주려고요. 날이 추운데 옷 많이 입고 다녀요!”최군형이 헛기침하고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강소아가 어리둥절해졌다.“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지금 여름이잖아요!”“아, 그럼 날이 더운데 옷 많이 입고 다녀요.”“최군형 씨! 어떻게 된 거예요? 오성과 강주는 그리 멀지도 않은데, 왜 지구 반대편에 있는 것 같죠?”강소아가 깔깔거리며 물었다. 최군형은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일을 왜 멋대로 말해?”최군형이 동생을 다그쳤다. 최군성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형, 정해지지 않았다는 일이 뭐야? 육소유야, 강주 여친이야?”“너...”“때리지 마!”최군성이 선수 쳤다. 최군형은 주먹을 내리고는 최군성을 흘겨보았다.눈치 빠른 최군성은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척척 알아맞히곤 했다. 정곡을 찔릴 때는 정말 한바탕 때려놓고 싶었다.“형, 내가 정리해 줄게!”최군성이 히히 웃으며 팔을 뻗어 형의 머리칼을 정리하고는 무언가 생각난 듯 그를 바라보았다.“자, 다 정리해 줬는데, 나한테 어떻게 보답할 거야?”“주먹맛 좀 볼래?”“아니.”짧게 대답한 최군성이 진지하게 말했다.“형, 내가 정리한 게 맞다면 여자 친구 사진 좀 보여줘.”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최군형이 서늘하게 동생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주춤한 최군성이 말했다.“어, 그러니까... 형, 지금 문제는, 그 육소유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른다는 거지?”최군형이 귀찮다는 듯 동생을 흘겨보았다.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경섭 삼촌과 우정 아줌마는 너무 기뻐서 사고가 잘 안되는 것 같고, 그 육소유도 경섭 삼촌과 닮은 구석이 있고 말이야.”“응, 그런데?”“그러니까 그 두 분은 진짜 육소유가 돌아온 게 맞다고 확신하고 있어! 그러니 진가를 가려내는 건 우리 둘이 해야 해.”최군성이 비장한 표정으로 형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중점은 한 마디도 없었다.최군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알아. 지금 어떻게 해야 해? 정말 그 여자랑 결혼이라도 해야 한단 말이야?”“그럴 필요는 없어. 하지만 양가 부모님이 모두 이 일을 기억하고 계시는데,일부러 반항할 필요도 없어. 부모님 말씀을 따르는 척하며 육지유의 DNA표본을 구하는 거야. 형, 양가 측에서 모두 당연히 결혼하는 거로 생각하시는데, 그럼 연애하는 척이라도 하지 그래? 연애하면 손도 잡고 입도 맞추잖아. 그럼, DNA 표본을 구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니야?”“최군성!”
최군형이 그를 풀어주었다. 형제는 나란히 정원을 걷고 있었다. 똑같이 훤칠한 그림자였지만 한 명은 묵묵히 걷고 있었고 한 명은 어깨를 부여잡고 아프다는 듯 콧소리를 내고 있었다.최군형은 만족스럽게 웃고는 최군성의 목덜미를 잡고 그를 끌어왔다. 믿음이 안 갈 때가 많은 동생이지만 방금 한 말은 그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졌다.“먼저 강주에 가서 키스하고 와.”그녀와... 키스를.최군형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다셨다. 심장이 멋대로 뛰기 시작했다.“형? 형!”최군성이 소리를 질러서야 최군형이 정신을 차렸다.“왜 그래? 얘기하는데 듣지도 않고!”그들 형제는 어릴 적부터 투덕댔지만, 그 우애만큼은 의심할 수 없었다. 최군성이 어떤 말을 하든 최군형은 항상 집중해서 들었었다.그제야 최군형은 확신했다. 형은 강주에 가서부터 완전히 달라졌다.최군형이 두어 번 헛기침하며 말했다.“아, 듣고 있었어. 방금 무슨 말 했어?”“...”‘듣고 있었다며?’최군성이 입술을 삐죽대고는 다시 한번 말했다.“부모님 정말 알콩달콩 사신다고! 부러울 지경이야.”“부러워할 필요 없어. 우리도 두 분처럼 살 테니까.”“형, 아빠는 딸을 얻고 싶어 했는데 엄마는 우리 둘을 낳으셨으니, 아빠께서 실망하시진 않으실까?”“그러진 않을걸?”“형! 그래도 아빠가 엄마랑 잘 살아서 다행이다. 다른 집처럼 바람피우고, 사생아라도 데려오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최군형은 지적장애인을 보는듯한 눈길로 최군성을 쳐다보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마, 그럴 리 없어.”하지만 바로 그때, 최군형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사생아?그는 육씨 가문에서 봤던 그 여자를 떠올렸다. 육소유는 육경섭과 닮은 구석이 있을 뿐만 아니라 DNA도 일치했다.설마, 경섭 삼촌 사생아는 아니겠지?“아, 왜 꼬집어!”최군성이 큰 소리로 외쳤다. 최군형이 아랑곳하지 않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군성아, 육소유랑 경섭 아저씨랑 닮은 것 같아?”
“어...”최군성이 난처해했다. 그도 오늘 처음 육소유를 봤는데, 당연히 자세히 보지 못했다. 심지어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가끔 고개를 들 때 슬쩍슬쩍 볼 수밖에 없었다.최군형은 동생이 대답하지 못하자 입을 삐죽거리며 동생을 흘겨보았다.“좋은 방향이 될 수 있겠어. 이곳부터 조사해 보자!”이는 최군형의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어디부터 조사하든 상관없었지만, 손잡고, 입을 맞추는 등 애정행각은 절대로 안 됐다.“늦었는데 얼른 들어가서 자자.”최군성도 졸렸는지 이에 승낙하고는 하품하며 최군형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최군형은 길을 걸을 때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형, 뭐 봐?”“표...”“비행기표? 전용기가 남아도는데 표를 사선 뭐하게?”“비행기가 아니라, 기차.”최군형이 담담하게 말했다.......최군형은 기차를 타고 강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무리 설득해도 그는 확고했다.강서연은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조용히 말했다.“그럼, 일등석을 예약해 줄게.”“아뇨!”최군형이 손을 내저었다.일등석?VIP 통로로 나오는 걸 들키기라도 한다면 강소아가 의심할 게 아닌가?강소아에게 그는 도련님이 아니었다. 그의 모든 행동은 너무 귀티가 나서는 안 됐다.“괜찮아요, 엄마. 일반 자리면 충분해요.”“이... 군형아, 사실대로 말해봐. 대체 뭐 때문이야?”강서연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최군형은 긴장하면 코를 만지작대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 그는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손을 코로 올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최군형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엄마,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기차 일반석은 어떨까 하고요. 사람 냄새도 맡고 싶고.”최연준과 강서연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군형이가 어디 아픈 거 아닌가?’다음 날, 최군형은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최군형에게는 생소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역을 나서자 강소아가 사람들의 맨 앞줄에서 그를
최군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디라도 좋았다. 이 한마디를 최군형은 평생 기억할 것이다.“이제 집에 가요!”강소아가 폴짝거리며 앞장서 걸었다. 최군형은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은 작고 가늘었다. 뛰어가는 모습이 꼭 토끼 같았다.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다. 강우재는 가게에, 소정애는 주방에 있었다. 강소준도 공부에 열중하느라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최군형과 강소아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풉 하고 웃었다.하지만 얼마 뒤, 강소아는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거실의 서랍장들을 뒤지고 있었다. 최군형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물었다.“뭐 찾아요?”“어... 집에 있겠는데, 어디 갔지...”“뭐 찾아요? 도와줄게요.”“군형 씨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전에 화랑에서 산 무명 화가의 그림을 찾고 있어요.”강소아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최군형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그건 왜요?”“그림 시합에 나가려 하는데, 전에 구자영이 와서 저보고 학교 화실에서 연습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군형 씨, 학교에 있는 공용 화실인데 왜 제가 쓰면 안 되는 거예요?”강소아가 고개를 숙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맞아요! 그런데 구자영은 왜 그렇게 한 거예요? 연습을 방해하려고요?”“아뇨, 구자영은 실력이 형편없어서 매번 제 숙제를 베껴가요! 이번에도 제 작품으로 참가할 생각인가 봐요.”강소아가 최군형의 눈을 쳐다보며 답했다. 최군형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그런데 이게 찾으려는 그림과 무슨 상관이 있어요?”“그... 그 그림을 찾아서 구자영을 망신당하게 하려고요!”“그림 한 장으로 망신당하게 할 수 있어요?”“구자영도 이번 시합에 참여했어요. 하지만 걔 실력으로는 본선에도 못 나갈 거예요. 그래서 제 그림을 베끼려는 거고요. 걔가 화실에 올 때부터 눈치챘어요. 아, 내 그림을 베끼려 하는구나!”“정말 보여준 건 아니죠?”“당연히 아니죠! 그 이후로 밤마다 몰래 제 그림을 이곳에 옮겨왔어요. 그리고 한 선배
최군형이 보여준 그림들을 본 강소아는 그 명쾌한 색채와 붓놀림에 깊이 빠졌다. 특히 그 반딧불이 그림은 찬사가 아깝지 않았다. 강소아가 감탄을 내뱉었다.“어느 분이에요? 정말 잘 그렸어요! 직접 그림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최군형이 작게 웃었다. 외할머니는 전문 화가도 아니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반딧불의 빛”은 20년 전 오성에서 400억 원에 팔렸었다.그림 좀 그린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몰랐다. 필경 외할머니는 계속 남양에 있었기에, 먼 강주까지 그 명성이 닿기란 어려웠다.윤문희는 천성이 겸손한 사람이라 인터넷에서도 그녀의 그림을 찾기 힘들었다. 전문적인 그림 사이트 VIP만이 그녀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아는 사람은 더욱더 적었다.따라서 외할머니의 그림을 모작하는 건 가장 좋은 방법일 터였다.최군형은 강소아더러 컴퓨터를 켜게 하고는 그림 몇 장을 그녀의 컴퓨터에 전송했다.“마음에 드는 걸 골라서 모작해 봐요!”“뭘 고를 지 모르겠어요! 이 선배님 화풍이 남다르신데, 대 화가시죠?”“...아뇨, 하지만 이분 그림은 제게 많아요.”강소아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최군형도 살 수 있을 정도면 크게 유명한 사람은 아닐 터였다.“아쉽네요, 이런 그림은 비싼 가격에 팔려야 할 텐데.”최군형은 급히 그림 도구들을 세팅하고는 들킬세라 말을 아꼈다.“꼭 그런 것도 아니죠. 어서 그려요. 조금 뒤에 밥 먹을 거예요.”“네!”강소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딧불의 빛”을 골랐다.......“이 그림 정말 특별해요! 제가 모작해 낸다면 구자영이 틀림없이 베껴갈 거예요!”최군형이 그녀와 함께 웃었다. 그림 보는 눈이 좋았다.강소아는 빠른 속도로 스케치를 끝내고는 색을 칠했다. 그 과정은 실로 고단했다.그녀는 작품에 대한 요구가 높은 사람이라, 모작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최대치를 끌어내려 했다. 팔레트의 물감이 몇 번씩 바뀌었다.
강소아는 하룻밤을 꼬박 그려 “반딧불의 빛”을 모작해 냈다. 그림이 마른 뒤 그녀는 당당하게 그림을 학교 화실에 걸어놓았다.수업 중 교수가 이번 시합을 언급하며 말했다.“이번 시합에 많이들 참여해 봐, 좋은 기회야. 이 시합으로 주목받아서 유학 가게 된 학생들도 많아. 그러니 열심히 해봐. 정말 유학의 기회를 얻게 되면 인생이 바뀌는 거야!”강소아가 작게 웃었다.수업이 끝난 후 강소아는 조용히 구자영의 뒤를 밟았다. 구자영은 역시나 화실로 가고 있었다. 그녀는 문가에서 주위를 둘러보고는 화실로 들어가더니 핸드폰을 꺼내 “반딧불의 빛”을 자세히 찍고 도망쳤다.먼 곳에서 강소아는 이 모든 광경을 녹화하고 있었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너였어? 깜짝 놀랐잖아!”강소아가 손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하수영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여기서 뭐 해? 잘생긴 남자라도 본 거야?”“아니...”강소아는 하수영의 팔을 잡고 그녀를 인기척 없는 곳으로 이끌었다. 자신의 계획을 하수영에게 알려주려는데, 갑자기 최군형의 당부가 생각났다.“이 일은 누구와도 말하면 안 돼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강소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강우재 부부한테 너무도 잘 보호받아 온 터라 그녀의 세계는 단순하고 깨끗했다. 기쁜 일도, 비밀도 친구와 얘기하는 게 그녀에게는 당연하였다. 하지만 최군형의 생각은 달랐다.“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모든 걸 다 꺼내 보이면 안 된다고.”“하지만 수영이는 저와 가장 친한 친구인데요!”“어머님은 별로 안 좋아하시잖아요.”그 말에 반박할 수는 없었다. 최군형은 웃으며 그녀의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순간 두 사람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세상의 다른 건 모두 사라지고 서로만이 남은 것 같았다.최군형이 헛기침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풀며 말했다.“어머님 말씀 들어요. 그렇게 모든 걸 내보이지 마요. 네?”강소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번호를 누르는 하수영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전화가 통하는 순간 그녀의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여보세요?”“허허. 하수영 씨.”남자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요즘 물건 참 많이 사던데요!”하수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카드들을 그냥 주는 게 아니란 걸 진작 알아챘어야 했다. 그들은 줄곧 그녀의 소비를 감시하고 있었다.“네. 리미티드 가방이랑 샤넬 정장 그리고 화장품 몇 개를 샀을 뿐이에요… 왜요? 사면 안 돼요?”“그것들만 산 게 아닐 텐데요…”전화에서 종이를 휘리릭 펼치는 소리가 났다.“스포츠카도 샀다고 명세서에 적혀있는데요!”“지하철 타기 싫어요. 좀 편하게 살려고 산 건데 뭐가 문제예요?”남자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건… 다 제가 받아 마땅한 것들이에요!”하수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강소아의 샘플을 가져오고 강소아를 견제하지 않았더라면 당신들의 계획이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었을까요?”“음? 받아 마땅한 것들이라고…”남자가 하수영의 말을 곱씹더니 쓴웃음을 지었다.“선생은 역시 하수영 씨를 잘 아시는군요!”“그게 무슨 말이죠?”통제하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웃기만 했다. 그러더니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눈물점을 찍는 것 말고 그녀의 외모를 크게 바꿀 방법이 없을까요?”“거기서 더 어떻게요?”하수영이 코웃음을 쳤다.“성형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한데 선생이 그 돈을 쓰려고 하시겠어요?”“여자애가 말을 그렇게 톡톡 쏘면서 하지 말아요. 귀엽지 않거든요!”“돈을 조금 썼을 뿐인데 굳이 전화해서 물어볼 필요 있어요?”하수영이 화를 냈다.“잘 들어요. 날 계속 화나게 했다가는 강소아를 데리고 오성에 갈 거예요! 그때 가서 당신들이 어떡할지 보자고요!”“아가씨.”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충동하지 말아요. 그러지 않았다가는… 두 사람이 오성에 가기 전에 죽을 수도 있어요!”겨우 20대 초반인 하수영은 협박받는 걸 지극히 싫어했지만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