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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시간은 물 흐르듯 흘렀고 두 가족 사이도 한결 좋아졌다. 물론 예전처럼 친근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와 유신우 사이에도 벽이 생겼다.

난 그 뒤로 그의 방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의 집에 찾아간 적도 아주 드물었다. 우리 가족과 유신우의 가족이 함께 식사하게 되더라도 최대한 빠져나갔다. 그리고 유신우와 단둘이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최대한 그와 멀리 떨어진 채로 침묵을 유지했다.

그해 설날, 우리 가족은 집에서 설을 보낼 생각이었지만 아저씨와 아줌마가 우리를 몇 번이나 초대했고, 결국 부모님은 그들의 초대를 거절하지 못했다.

난 빠질 생각이었다. 어쩌다 휴일을 보내는 건데 푹 쉬고 싶었다. 그리고 유신우와 가까이 있는 게 싫었다. 유신우의 곁에 있으면 그의 차가운 표정과 무정한 말들이 떠올라서 괴로웠기 때문이다.

난 유신우가 날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난 소파에 앉아 헤드폰을 쓴 채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유신우가 소리 없이 내 옆으로 와서 섰다.

사실 난 그가 온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모른 척했을 뿐이다.

유신우가 내 헤드폰을 벗겨버려서 난 어쩔 수 없이 눈을 떠야 했다.

그의 이목구비는 여전히 준수했다. 난 한때 내가 좋아했던 그의 검은 눈동자에 비친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야?”

내가 입을 열었다.

유신우는 내 곁에 앉았고 난 티 나지 않게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모습을 본 유신우는 불쾌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수진아, 사실 나 너한테 사과하려고 온 거야.”

“뭐라고?”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너한테 사과하려고. 그날은 내가 잘못했어. 너한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됐는데. 내가 널 좋아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널 진심으로 싫어했던 적은 없어. 앞으로도 난 너를 내 여동생처럼 여길 거야.”

“그래서?”

“그러니까 수진아, 앞으로 우리 같이 등하교하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 엄마랑 너희 엄마가 우리 때문에 계속 걱정할 거야.”

나는 울지 않으려고 이를 꽉 깨물었다. 그의 사과는 내 상처를 들쑤시는 것과 다름없었다. 차라리 사과를 안 하는 편이 나았다. 그랬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천천히 잊혀졌을 텐데 말이다. 유신우는 나로 하여금 다시금 그 일을 떠올리게 했다.

‘유신우, 너 정말 지독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수능이 끝나고 나니 십여 년간 내 어깨를 짓눌렀던 무거운 중압감이 사라졌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나는 이틀 내내 잠만 잤다.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날 깨울 수 없었다.

사실 난 몹시 슬펐다.

여동생으로 생각하든, 미래 아내로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우리는 십여 년간을 함께 했고 자주 만났었다. 그러나 앞으로 대학교에 가서 각자 삶을 살게 된다면 나와 유신우는 지금처럼 이렇게 지낼 수 없을 것이다.

나와 그의 인생길에 더는 교집합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난 너무 슬펐지만 털어놓을 곳이 없어 그저 이불 안에 숨어 스스로 마음을 치유했다.

난 이렇게나 못났다. 유신우가 큰 수모를 안겨줬음에도 난 여전히 마음을 접지 못했다. 그를 너무 좋아해서 자아조차 잊었다.

유신우가 날 욕해도, 사람들 앞에서 수모를 줘도 여전히 그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수능이 끝나고 4일 뒤, 유신우가 날 찾아왔다.

이날, 더는 잠이 오지 않았던 나는 책상 앞에 앉아서 예전에 썼던 일기를 펼쳐봤다. 난 그것을 소장해야 할지, 아니면 태워버려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금 나와 그의 관계를 보면 태우는 게 옳았다. 그러나 18년간 묵묵히 내 모든 걸 바쳐서인지 미련이 남았다.

유신우에게, 그리고 그에게 쏟아부었던 내 애정에 미련이 남았다.

일기를 쓰는 습관은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것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해 몇 권이나 썼는데 나와 유신우에 관한 모든 것들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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