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마음이, 그리고 유신우를 향한 나의 신앙과 미래를 향한 동경이 전부 거기에 적혀 있었다.그 일기들은 내 청춘이었다.피식 웃는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유신우는 방문에 기대어 장난스럽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난 황급히 일기들을 서랍 안에 넣었고, 유신우는 날 향해 웃었다.“왔어?”“어, 잠꾸러기야. 이제 깨어났어?”유신우는 다가와서 엉덩이를 들어 내 책상 위에 앉더니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느껴졌다.나와 그의 사이가 멀어진 것은 꽤 오래된 일이었다.유신우가 갑자기 다가오자 낯선 기분이 들었다. 나는 불편함에 못 이겨 옆으로 피했다.“응.”예전이었다면 유신우가 내게 다가왔을 때 설렜을 것이다.그러나 이젠 그가 다가오면 피하고 싶었다.“수진아, 시험 어떻게 봤어?”유신우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즐거움이 보였다.“나 몇 번이나 왔었는데 그때마다 네가 자고 있었어. 너 정말 잘 잔다.”“그래.”난 고개를 숙이고 그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난 책상 위에 놓인 장식품을 만지작거리면서 그와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사실 난 시험을 꽤 잘 봤다. 하지만 나와 그 사이에는 이미 간극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예전처럼 그와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없었고 그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두려웠다.내 마음을 통제할 수 없을까 봐, 다시 그에게 빠져들게 될까 봐 무서웠다.그리고 결국 내가 바쳤던 모든 것들이 우습게 될까 봐 무서웠다.유신우를 마주하게 되면 난 항상 자신을 타일렀다. 유신우는 오빠고 난 동생일 뿐이라고,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수진아, 솔직히 얘기해 봐. 너 여전히 나한테 화 나 있지?”나의 냉랭함을 눈치챈 건지 유신우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날 한동안 쳐다보더니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다시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다. 그러나 난 그의 손을 피했다.유
옆 반에는 김현주라는 전학생이 있었다. 작은 키에 동그란 얼굴, 짧게 일자로 자른 단발머리, 그리고 웃을 때마다 보이는 대칭되는 작은 보조개까지, 아주 귀여운 여학생이었다.난 유신우가 그녀와 같이 다니는 걸 여러 차례 보았다. 손을 잡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난 몇 번이나 마음이 아팠다.수능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 답을 맞춰본 날, 유신우가 김현주의 손을 잡고 구석에 숨어 그녀와 같은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는 걸 난 내 두 눈으로 보았다. 유신우는 김현주의 기사가 되어 평생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고 했었다.당시 나는 마음이 아파 죽을 것 같았다.한 사람의 정력은 유한하다. 유신우는 기사가 되기를 선택했는데 어떻게 또 날 지켜주겠는가? 유신우는 그저 자신의 자책감을 덜고 싶었던 것뿐이다.나도 사람이다. 난 또 한 번 상처받기 싫었고, 더 오래 아프기 싫었다. 애정행각을 벌이는 그들의 모습을 매일 같이 지켜보는 건 내게 큰 상처였기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난 18년 동안 유신우에게 내 애정을 쏟았다. 그리고 이젠 날 위해 살 것이다.그러니까 그들과 같은 대학교에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나와 유신우는 같은 날 지망을 썼다.유신우는 지망을 다 쓴 뒤 토끼처럼 내 방으로 뛰어 들어와서 들뜬 목소리로 내게 선택했느냐 물었다.난 그의 눈동자가 빛나는 걸 보았다.그건 나 때문이 아니었고 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응.”“경한대 썼지? 올해 경한대에서 모집인원을 확대해서 너라면 분명 붙을 수 있을 거야.”“유신우, 김현주도 경한대 쓴 거야?”사실 묻고 싶지 않았다. 대답은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결국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물었다.여전히 유신우에게 희망을 품고 있다니, 얼마나 멍청한가? 하지만 유신우가 좋은 걸 어쩌겠는가? 유신우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활짝 웃었다.“응. 걔 엄청 소심하잖아. 내가 곁에 없으면 매일 울까 봐 겁나.”난 애써 슬프지 않은 척했다.유신우는 바보 같았다. 그를 그리워할 때 나도 매일 같이 울었었는데, 유
확인 버튼을 누르기 전, 난 지망을 경한대에서 다른 명문대 성문대로 고쳤다. 성문대의 한국화 전공은 전국적으로 유명했고 또 많은 대가를 배출해 냈다고 한다.경한대에 가고 싶지 않은 나에게 성문대는 최고의 선택이었다.아저씨와 아줌마는 내게 경한대를 썼냐고 물었었는데 난 대충 얼버무렸다.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 난 오랫동안 넋을 놓았다.나와 유신우는 같은 세계 사람이 아니었다. 대학교를 다른 곳으로 간다면 나와 유신우 사이에 더욱 확실하게 선이 그어질 것이다.유신우는 자기 합격통지서를 들고 우리 집으로 달려와서 내걸 보고 싶다고 했다.“수진아, 네 합격통지서 좀 보자. 이건 내 거야. 너도 봐봐.”유신우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그건 내 기억 속 오랫동안 날 잠 못 들게 했던 미소였다.난 평온한 얼굴로 그에게 합격통지서를 건네주었다. 학교 이름을 확인한 유신우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뜻밖이라서, 놀라서 그랬을 것이다.난 어렸을 때부터 유신우의 말을 잘 따랐었다. 그래서 내가 대학교 지망 같은 중대한 일에 있어 그의 뜻에 어긋나는 결정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그는 내가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란 걸, 그가 날 바꿔놓았다는 걸 의식하지 못한 듯했다.“수진아, 왜 그런 거야?”그는 상처받은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유신우, 난 널 잃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팠어. 난 나까지 잃을 수는 없어. 넌 내가 필요 없고 날 사랑하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날 그냥 보내줘.’“선생님이 성문대 한국화가 내게 더 잘 맞을 거라고 했거든.”난 덤덤히 웃으면서 그의 시선을 피했다. 난 내 대답을 들은 그의 표정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지 않았다.“망했다. 너 아직도 날 미워하는 거지? 네가 나랑 다른 대학교를 선택한 걸 우리 엄마가 알게 된다면 나 맞을지도 몰라.”“그럴 리가 없어. 우리 가까이 살아서 아줌마가 정말 널 때리려 한다면 내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내가 아줌마한테 직접 설명할게. 너 맞지 않게.”난 덤덤히 대답했다.유신우는 갑자
엄마는 내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 옷자락으로 울어서 빨개진 눈가를 닦으며 중얼거렸다.“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성문대 좋은 학교더라. 한국화 전공은 경한대보다 더욱 훌륭하고. 그곳에서 학교 잘 다녀. 최대한 석박사 과정까지 수료했으면 좋겠다. 나랑 너희 아빠는 몇 년 뒤 은퇴할 거야. 그곳에 남고 싶다면 우리가 거기로 이사 갈게. 그러면 너희 아빠도 북부 지역의 뚜렷한 사계절과 추운 겨울을 경험할 수 있겠다.”“왜 울고 그래? 신혁이 거기 있잖아. 내가 보기엔 신혁이가 신우보다 훨씬 듬직해. 그리고 신혁이도 우리 수진이를 잘 챙겨줬었잖아. 신혁이가 있으니 우리 딸은 분명 괜찮을 거야.”아빠와 엄마의 배려와 애정에 내 마음속의 우울과 미련이 옅어졌다.그때 나는 유신우의 곁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에 지망을 쓸 때 온전히 나만 고려했었다. 그래서 아저씨 집에 아들이 한 명 더 있고, 그 오빠가 내가 선택한 성문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걸 잊었다.어떤 일들은 운명일지도 몰랐다. 돌고 돌아, 나는 또 유신우 가족의 곁에서 살게 되었다.그래도 다행히 상대는 유신우가 아니라 항상 날 여동생처럼 아껴주던 유신혁이었다.유신우는 나보다 하루 일찍 떠났다. 그를 배웅해 주고 싶었지만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니 집 문을 나설 용기가 생기지 않아서, 현관문 렌즈를 통해 몰래 그를 보았다.유신우는 큰 캐리어를 끌고, 큰 가방을 메고 우리 집 문 앞에 2분간 서 있었다.나는 내가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걸 유신우에게 들킬까 봐 서둘러 코와 입을 막고 숨소리를 죽였다.아저씨가 재촉하고 나서야 유신우는 걸음을 뗐다.그의 꼿꼿한 뒷모습과 뻣뻣한 머리, 심플한 티셔츠와 청바지, 검은색 스니커즈까지, 그에게서 활력이 느껴졌다.난 문을 사이에 두고 유신우가 한 걸음, 한 걸음 집을 떠나는걸, 내 세계에서 떠나는 걸 지켜보았다.그의 뒷모습은 계단에서 사라졌다. 난 비틀거리면서 베란다로 나가 구석에 몸을 숨긴 채 천천히 멀어져가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자주 연락하지 않았다. 보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은 적도 많았다.유신우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와 만나고 있었고 난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도, 나의 사적인 감정 때문에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무리 그가 보고 싶어도 먼저 그에게 문자를 보낸 적은 없었다.연락을 줄이는 건 몹시 어려웠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난 그를 떨쳐내기로 맹세했다.겨울 방학 때쯤 유신우는 내게 언제 돌아가냐고 연락했다.난 휴대전화 속 그 몇 글자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난 생각하지 않고, 보지 않으면 정말로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다.하지만 그가 보낸 문자를 보았을 때, 그리움은 마치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내 마음을 휩쓸었다.나는 휴대전화를 들고 그의 프로필 사진을 바라보면서 바보처럼 울었다.난 여전히 그를 좋아했고, 여전히 그를 잊지 못했다.하긴, 18년의 세월을 어떻게 쉽게 잊을 수 있을까?하지만 잊지 못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우리는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내게는 내 세계가 있었고 유신우에게는 유신우의 세계가 있었다. 난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장을 써 내려갔다.[아직 결정하지 못했어. 어차피 길이 겹치는 것도 아닌데 난 신경 쓰지 마.]그날 오후, 유신우는 인스타에 게시물을 올렸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글과 함께 사진 두 장이 업로드되었는데 한 장은 항공권 두 장의 구매 내역이었고, 다른 한 장은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은 사진이었다.마음이 너무 아팠다.난 홀로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에 올랐다.북부 지역은 겨울 방학이 긴 편이라 나는 집에서 오랫동안 편하게 지낼 수 있었고, 매일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건 내가 대학교에 있을 때 꿈에도 바라던 것이었다.유신우는 나보다 며칠 일찍 돌아왔다. 내가 돌아온 걸 알게 된 뒤 그는 이따금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나와 대화를 나눴다.유신우는 매번 웃는 얼굴로 날 찾아왔다. 난 그것이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화해를 청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순간 심장이 아팠다. 달았던 수박이 순간 맛없어졌다.난 유신우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수박 껍질을 그릇 위에 놓은 뒤 지저분해진 내 몸을 닦았다.‘유신우, 그거 별 뜻 없이 한 말이야?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거야? 널 좋아했던 나는 얼마나 노력해야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난 어쩌면 평생 묵묵히 내 어린 시절의 감정을 안고 외롭게 홀로 지내야 할지도 몰랐다.유신우는 진짜 너무 지독했다.날 좋아하지 않는 걸로도 부족해 이젠 나 혼자 편안하게 살려는 것마저 방해하려고 했다.‘제발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 줘, 제발!’두 가족은 설날을 함께 보냈다.우리 세 식구는 아저씨의 초대를 받았다. 엄마와 아줌마는 설날 메뉴를 고민했고 아빠와 아저씨는 TV를 보면서 수다를 떨었다.TV에서 설날 특집으로 나오는 각종 예능과 드라마 때문에 명절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난 할 일이 없어서 몇 번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아줌마가 날 잡으며 유신우의 방에 가서 놀라고 했다.난 거절하지 않았지만 그의 방에 찾아가지도 않았다. 난 소파 구석 자리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보았다.예전에 있었던 일이 좌우명처럼 항상 내 머리 위에 떠 있어 잊을 수가 없었다. 유신우는 그 일로 내게 사과를 했지만 난 여전히 그가 껄끄러웠다.난 내가 너무 속 좁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 됐든 내 마음에 남은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고, 어쩌면 영원히 아물 수 없을지도 몰랐다.난 그를 좋아하면서도 그와 가까워지는 걸 피하려고 했다. 난 왜 이러는 걸까?“왜 혼자 여기 이러고 있어? 버림받은 강아지처럼.”갑자기 휴대전화를 빼앗긴 나는 깜짝 놀랐다.유신우는 키도 컸고 팔도 길었다. 그는 한 손으로 소파 손잡이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휴대전화 화면을 보고 있었다.난 너무 심심해서 예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는 그 드라마가 재밌어서가 아니라 아주 길어서 시간을 때우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드라마 보고 있는데 왜 뺏어
유신우는 내게 휴대전화를 던져주었고 나는 황급히 받았다. 곁눈질로 본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난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떻게 그와 지내야 할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가까이 있으면 싫어했고 너무 멀어져도 싫어했다.내가 어떻게 하든 유신우는 항상 트집을 잡았다.휴대전화를 받은 나는 드라마를 볼 생각이 사라졌다. 나는 조금 전 그가 했던 말을 끊임없이 곱씹었다.여자들은 너무 생각이 많다니.여자들이라는 건 나와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유신우는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특이해서 여자애들과 지내는 걸 싫어했고 난 그의 곁에 있는 유일한 여자애였다. 유신우가 가리킨 다른 상대가 김현주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유신우는 단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줬던 애정은 오롯이 내 일이었다.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뒤 휴대전화 갤러리를 클릭한 나는 오랫동안 소장해 왔던 사진들을 하나둘 삭제하기 시작했다.그건 내게 살갗을 벗기는 것만큼 고통스럽고 아쉬운 일인 동시에 또 아주 평온한 일이었다.전부 삭제하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9시쯤, 유신혁에게서 영상 통화가 걸려 왔고 다들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수진아, 이리 와. 신혁이가 너한테 할 얘기가 있대.”난 얌전히 아줌마 곁에 앉았다. 휴대전화 속 유신혁은 웃음기 띤 눈빛으로 조용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수진아, 교수님이랑 이곳저곳 다니느라 널 마중 나가지 못했네. 어때? 학교는 괜찮아?”“응.”1년 못 본 사이에 신혁 오빠는 더욱 성숙해진 것 같았다. 그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유신우도 잘생겼는데 유신혁은 유신우보다 더욱 준수했다. 특히 눈가의 점 때문에 아주 매혹적인 느낌을 주었다.“먹는 건 괜찮아?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어?”“안 빠졌는데? 음식은 입맛에 잘 맞는 것 같아. 특히 떡갈비가 맛있어.”나의 식탐 많은 모습에 유신혁은 활짝 웃으며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그래, 나 3, 4월쯤 돌아갈 건데 그때 떡갈비 사줄게.”유신
행복한 순간은 언제나 빠르게 지나간다. 한 것도 없는데 또 개강할 때가 되었다.난 엄마와 아줌마의 요구에 못 이겨 결국 유신우와 같은 날 떠나는 항공권을 샀다.공항에 도착하자 김현주가 길가에 서서 유신우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유신우는 부모님의 시선을 피해서 기쁜 얼굴로 김현주에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김현주의 손을 잡은 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연애 중인 그들은 하루라도 얼굴을 못 보면 서로를 그리워했다.난 질투 때문에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지 않으려고 했고, 혼자 캐리어를 끌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공항은 아주 컸고 많은 사람들이 각자 바쁘게 움직였다. 이건 그들의 운명이었다.앞으로 우리의 삶 또한 이렇게 될 것이다.난 눈물을 머금고 속으로 묵묵히 그와 작별 인사를 했다.이번 학기는 저번 학기보다 학업량이 많았다. 나는 잡념을 없애고 공부에만 열중했다.그러다 문득 나는 내 마음이 점점 고요해짐을 발견했다.난 우리 과에서 주최한 시합에 참여했는데 성적이 아주 좋아서 과에 소문이 났다.초빙교수는 내 그림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내게 내가 이해한 행복을 꽃으로 그려보라고 했다. 잘 그린다면 내 그림을 전시회에 전시할 것이며 날 자신의 지도학생으로 받아줄 거라고 했다.그 교수님은 한국화 업계에서 지위가 아주 높았기에 그의 지도를 받는 건 모든 한국화 전공 학생이 꿈에도 그리던 일이었다.난 교수가 원한 학생이었기에 다른 학생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고 동시에 작화 수준도 그만큼 높아야 했다.나는 한 달간 공을 들여 그림을 완성한 뒤 긴장되는 마음으로 교수님에게 그림을 보여줬다. 그때 교수님은 누군가와 영상으로 회의하고 있었다.내가 나가려는데 교수님이 날 향해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내 그림을 영상 속 상대방에게 보여주면서 평가를 부탁했다.회의가 끝난 뒤에야 난 상대가 교수님이 지도하는 학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교수님은 온라인으로 학생들의 과제물을 봐주고 있었다.그리고 내 그림은 다시 한번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