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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내가 떠나는 건 모두의 예상을 비껴간 일이었다. 친구들은 내가 떠난 뒤 열띤 토론을 벌였다. 별의별 얘기가 다 나왔지만 난 못 들은 척했다. 걸음을 멈추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렀고 그 사건이 있고서 보름이 지났다. 난 조금 외로웠지만 동시에 아주 자유로웠다

유신우의 얼굴이 가끔 머릿속에 떠오르긴 했지만 난 그의 얼굴이 떠오르면 다른 것에 주의를 돌리며 그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도저히 내 자신이 통제되지 않을 때면 문제집을 꺼내서 풀었다.

그날 밤은 달이 아주 크고 별이 아주 밝았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나서 난 복습할 것들을 한가득 안은 채로 장겨울과 이세영과 인사한 뒤 홀로 집으로 돌아갔다.

밤경치가 예뻐서 기분이 꽤 좋았던 나는 언젠가 들어봤었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걸었다.

그러다 다음 가사가 뭔지 고민하고 있을 때 유신우가 갑자기 모퉁이에서 튀어나와 내 앞에 섰다.

유신우는 아주 잘생겼다. 눈도 눈썹도 예쁘고, 피부는 하얗고 몸은 마르고 키가 컸다.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외모였다.

그러나 아무리 잘생겨도 이젠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갑자기 그를 마주하게 되자 나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불쾌했던 기억이 순간 떠오르면서 가슴이 아팠다.

유신우와는 더는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른쪽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떠나려고 했는데 유신우가 나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또 한 번 내 길을 막았다.

난 조금 짜증이 나서 시선을 들어 그를 보았다. 난 최대한 평온하게, 덤덤하게 말했다.

“무슨 볼일 있어?”

“볼일 없으면 너랑 같이 하교할 수 없는 거야? 예전에는 우리 항상 같이 집으로 돌아갔잖아.”

난 씁쓸하게 웃었다. 그건 예전이고 지금은 달랐다.

“볼일 없으면 난 먼저 가볼게. 안녕.”

난 또 한 번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유신우가 재빨리 내 팔을 잡았다.

“나수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꼭 이렇게 무정하게 굴어야겠어?”

“유신우, 나 집 갈 거야. 비켜줬으면 좋겠어.”

“나수진.”

유신우는 이를 악물고 낮게 말했다.

“대체 뭘 어쩌고 싶은 거야? 나랑 다시는 얘기 안 할 거야? 내가 말 좀 심하게 했다고 이렇게 오랫동안 삐져 있는 거야? 내가 사과했잖아. 너 언제부터 이렇게 쪼잔했냐?”

유신우는 모를 것이다. 그가 내뱉은 말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말을 한 의도가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신경 쓰는 건 그것이었다.

유신우는 평생 모를 것이다. 그에게는 말을 좀 심하게 한 것뿐이지만, 내게는 엄청난 상처였다는 걸 말이다.

대수롭지 않아 하는 그의 태도에 나 또한 화가 났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유신우, 네가 원한 게 이거잖아. 난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줬어. 그런데 뭐가 불만이야? 내가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말해 봐. 네가 바라는 대로 해줄게.”

그에게서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들으니 등골이 오싹했다.

“나랑 선을 그을 거라면 아예 이사를 하지 그래? 그러면 더 확실하지 않겠어?”

“그래. 우리 아빠 지금 집 알아보고 있어. 하지만 집을 사는 건 큰일이라 지금 당장은 어려워. 돌아가서 아빠한테 빨리 알아보라고 얘기할게. 걱정하지 마. 지금 당장은 이사 갈 수는 없지만 앞으로 내가 널 귀찮게 할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그래, 너 잘났다.”

유신우는 안색이 아주 나빴다. 그는 내가 홧김에 한 얘기인지 알아보려는 듯 날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짧게 말을 내뱉고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가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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