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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하교 후 나는 유신우를 기다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반쯤 걸었을 때 뒤에서 터벅터벅 소리가 들려왔다. 난 그가 유신우임을 알았지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난 여전히 그를 좋아했다. 하지만 난 그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둘 것이고 그걸 나 혼자만의 일로 만들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유신우는 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 뒤로 우리는 단 한 번도 함께 등교하자고 약속한 적이 없었다. 비록 이따금 우연히 마주치긴 했지만 그저 간단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만 건넸을 뿐, 내가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유신우는 여러 번 길에서 멈춰 섰다. 날 기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입술을 깨무는 걸 보면 나한테 할 얘기가 있는 듯했는데 난 발견하지 못한 척 그냥 지나쳐 갔다.

친구들은 그날 내가 교단에서 했던 말을 믿지 않았다. 나와 유신우가 십 년 넘게 붙어 지냈기 때문이다. 장겨울 말을 들어보니 이 일로 애들이 여러 번 모여서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가 유신우에게 화가 나서 그런 거라고, 내 화가 풀리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거라고 결론을 냈다고 한다.

난 그들이 내린 결론에 가타부타 말을 얹지는 않았다. 안 믿어도 상관없었다. 그들의 뇌를 열어서 내 생각을 들이부을 수도 없는 일이니 말이다. 어차피 사실이 내 말을 증명해 줄 것이었다.

목요일 6교시는 체육 시간이었다. 고3 학생은 다들 매일 교과서와 문제집들을 풀면서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우중충한 분위기 때문에 선생님은 우리가 우울증에라도 걸릴까 봐 체육 시간이면 우리를 운동장으로 내쫓아서 몇 바퀴 달리게 했다.

난 생리 때문에 배가 아파서 선생님에게 얘기해 나가지 않았다.

체육 시간이 시작되고 20분쯤 지났을 때 한 여학생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다짜고짜 날 데리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수진아, 수진아. 유신우 축구하다가 다쳐서 피가 엄청 많이 나. 얼른 가봐.”

그가 다쳤다는 말에 순간 이성을 잃은 나는 초조한 마음을 안고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다시 그 일을 떠올려 보면 나 또한 그때의 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십 년 넘게 유신우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녀서 습관이 됐는지 유신우와 관련된 일이라면 생각지도 않고 달려 나갔다.

그럴 만도 했다. 한때 그는 나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운동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유신우는 바닥에 앉아 오른 다리를 구부리고 있었다. 종아리 바깥쪽 살갗이 많이 벗겨져 있었다.

유신우는 고개를 숙이고 상처를 살피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입으로 상처 부위를 호호 불면서 통증을 완화하려고 했다.

“다들 비켜줘. 수진이 왔어.”

여학생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친구들은 내가 왔다는 말을 듣자 짜기라도 한 듯이 양쪽으로 비켜서서 내게 길을 내줬다.

유신우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그의 눈동자에서 어떠한 감정이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았지만 곧 내게 가장 익숙한 냉담함으로 변했다.

난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걸음을 멈추었다. 그제야 난 내가 이성을 잃고 또 한 번 그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했음을 깨닫고 자조하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일까? 유신우가 다쳤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걸 잊고 달려오다니. 피학적인 성향을 타고나기라도 한 걸까? 그렇게 수모를 당하고도 부족한 걸까?

50여 명의 반 친구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예전처럼 울먹이면서 유신우에게 달려가 물을 챙겨주고, 약을 사다 주기를, 마치 종처럼 유신우를 챙겨주기를 바라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유신우는 내 챙김을 받는 걸 원하지 않았고 나도 더는 유신우에게 잘해줄 이유가 없었다.

“의무실로 가서 치료받아.”

난 그 한마디를 남긴 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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