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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난 이제야 깨달았다. 유신우의 인내와 묵인은 그때의 그 우스운 약속과는 무관하다는 걸 말이다. 유신우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게 싫증이 나 있었다. 그저 오랫동안 참았을 뿐이다.

아마도 추석 때 식사하면서 엄마와 아줌마의 말에 큰 자극을 받아서, 장소 따위, 결과 따위 상관하지 않고 그런 소동을 일으켰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모든 사람에게 우리 둘은 절대 이어질 수 없다는 걸, 그러니까 두 번 다시는 우리 둘을 엮지 말라고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유신우, 난 네 말을 전부 기억해 뒀어. 난 네가 말한 대로 할 거야. 난 마지막으로 네 말에 따를 거야. 내가 진짜 많이 좋아했던 널 이젠 보내줄 거야.’

그날 등굣길에 우리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침 햇살은 따스했고 나와 유신우는 남남처럼 걸었다.

내가 먼저 교실로 들어갔고 유신우가 뒤이어 들어왔다. 예전에는 유신우가 먼저 교실로 들어갔는데 이제는 내가 그를 앞섰다. 생각해 보면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친구들은 우리 둘 얘기로 자주 농담을 했다. 그들은 나와 유신우가 언제나 찰싹 붙어 다닌다고 했었다.

우리 둘이 나란히 교실로 들어오자 뒷줄에 앉아 있던 남학생들이 휘파람을 불면서 짓궂은 장난을 쳤다.

“우리 반 잉꼬부부가 왔네.”

평소 자주 치던 장난이었다. 난 그 말을 들으면 짜증이 나는 동시에 조금 기쁘기도 했다. 비록 사귀는 건 아니었지만 난 그를 진심으로 내 남자 친구처럼 생각했고 최선을 다해 그에게 잘해주려고 했었다.

오늘도 그들은 평소처럼 장난을 쳤다. 그들은 달라진 게 없지만 내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다.

난 본능적으로 유신우를 힐끗 보았다. 유신우는 굳은 얼굴로 바지 호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 자리에 가서 앉더니 문제집을 꺼내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유신우의 냉담한 표정을 보자 난 마음이 콕콕 쑤셨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일들은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다.

‘나와 완전히 연을 끊을 생각이라면 내가 도와줄게.’

난 가방을 자리에 내려놓은 뒤 교단에 서서 50명 넘는 반 친구들을 향해 난생처음 나와 유신우의 관계를 해명했다.

“얘들아, 나와 유신우는 이웃이라서 같이 등하교하는 것뿐이야. 우리들 집이 정말 가깝거든. 다들 오해하게 해서 미안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야. 나와 유신우는 그냥 이웃일 뿐, 아무 사이 아니야. 그러니까 멋대로 넘겨짚지 말았으면 좋겠어. 적절치 않은 농담도 안 했으면 좋겠고. 이해 좀 해줘.”

교단에서 내려오니 친구들의 의아한 눈빛이 유신우에게로 향한 게 보였다. 유신우는 다쳐서 그런지 안색이 아주 나빴다.

쉬는 시간이 되자 장겨울은 나를 사람 없는 곳으로 끌고 가더니 내게 왜 그런 얘기를 했냐고 물었다.

난 전날 밤 있었던 일을 장겨울에게 설명해 주었고, 장겨울은 불같이 화를 냈다.

“유신우 이거 정말 나쁜 놈이었네. 싫으면 그냥 얘기하면 되잖아. 누가 걔 아니면 안 된대? 걔 왜 그러는 거야, 대체? 그냥 대놓고 널 모욕한 거잖아.”

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면 내가 좀 과했는지도 모르지. 걔 마음을 내가 크게 신경 쓰지 못한 것 같아. 앞으로는 안 그럴 거야.”

“수진아, 슬퍼하지 마. 난 네 편이야. 넌 앞으로 꼭 널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게 될 거야.”

장겨울은 날 와락 끌어안으면서 상처받은 내 마음을 위로해 줬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겨울의 말대로 나에게는 무수히 많은 미래가 있었다. 그리고 난 틀림없이 내가 좋아하는, 동시에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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