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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문을 꼭 닫지 않아서 작은 틈 사이로 거실의 모습이 조금 보였다.

유신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리 엄마와 아빠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아저씨, 아줌마, 죄송합니다. 어제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수진이를 그렇게 욕해서는 안 됐어요. 사실 수진이는 아주 착한 아이예요. 전 수진이를 그런 애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아빠는 줄곧 굳은 얼굴로 대답하지 않았고, 엄마는 잠깐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신우야, 우리 마음은 바뀌지 않아. 넌 사과할 필요 없다. 네 말이 맞아. 너희도 컸으니 앞으로 각자 인생을 살아가겠지. 수진이가 널 계속 따라다니는 것도 타당치 않아. 네가 어제 얘기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도 이 사태의 엄중함을 인지하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어제 수진이가 사람들 앞에서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잖니? 나도 수진이를 혼냈단다. 그러니까 넌 걱정할 필요 없어. 앞으로 수진이는 수진이 인생 살 거니까 너도 네 인생 살면 돼. 우린 그저 이웃일 뿐이잖아. 그렇게 특별한 사이도 아니고 말이야.”

“해윤아...”

아줌마는 뭔가 더 말하고 싶은 듯했는데 아빠가 말렸다.

“정훈아, 미나 씨. 이미 지나간 일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돌아가세요. 고3이라 바쁠 텐데 신우도 공부해야죠.”

아빠와 엄마는 문을 열고 세 사람을 내보냈다.

난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놓여있던, 유신우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박스 안에 넣은 뒤 적절한 시기에 그에게 돌려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정리해야 할 테니 깨끗이 정리하는 편이 나았다.

다음날 난 아침 일찍 일어나 평소와 같이 책상 앞에 앉아서 수학 문제를 풀었다.

엄마는 몰래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날 본 뒤 다시 문을 닫고 조용히 떠났다. 곧 주방에서 밥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밥을 먹은 뒤 난 큰 가방을 메고 학교로 갔다. 평소처럼 유신우의 집 문을 두드려서 그를 찾지는 않았다.

어젯밤 나는 이미 마음을 먹었다. 오늘부터 유신우와 확실히 선을 긋고 그를 조금씩 내 인생에서 분리해 내기로.

아주 어렵고 아프겠지만 난 내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줌마는 신기라도 있는 것처럼 내가 문을 열자마자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기쁜 얼굴로 날 보더니 내 손을 잡았다.

“어머, 수진아. 벌써 가는 거니?”

난 티 나지 않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화사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저 지금 가려고요.”

“어머, 신우 좀 기다려줄래? 둘이 같이 가. 신우가 머리가 어지럽대. 네가 아줌마 대신 신우 좀 챙겨줬으면 좋겠는데.”

난 몸을 비켜서면서 계단을 밟았다.

“죄송해요, 아줌마. 저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해요. 신우 혹시 몸이 좋지 않다면 절 찾아오라고 하세요.”

난 그렇게 말한 뒤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나는 더 이상 뻔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유신우는 아주 확실하게 자기 뜻을 전달했는데 내가 계속해 낯짝 두껍게 유신우에게 매달린다면 정말로 뻔뻔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유신우를 좋아하는 건 그와는 상관없는 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신우가 날 모욕할 자격은 없다. 나에게도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다.

아줌마는 내 말을 듣더니 적잖이 당황스러워했다. 그녀는 티 나게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엄마, 비켜줘요. 저 나갈래요.”

유신우는 가방을 들고 차갑게 말했다.

난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넨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유신우는 말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학교는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지난 10년간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우리는 언제나 함께 등교했다.

난 매일 수다쟁이처럼 끊임없이 말했고 유신우는 항상 평온한 얼굴로 내 말을 들었다.

난 그의 눈빛에서 짜증을 읽었었다. 하지만 난 내가 앞으로 유신우의 아내가 될 거로 생각해 그걸 마음에 두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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