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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아빠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래, 우리 내일부터 집 알아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무자비하게 짓밟힌 내 마음 때문에, 그리고 온 마음 다해 날 지켜주고 사랑해 주는 엄마, 아빠 때문에. 무슨 일이 있든 엄마,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다시 침대 위에 누운 나는 잠에 들지 못했다. 지난 18년이 내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난 마음이 너무 아파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가 모든 걸 다 내주며 좋아했던 그 소년은 결국 나와 인연이 아니었다.

앞으로 우리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고, 점점 멀어질 것이다.

‘내 소년 신우야, 내 꿈아. 이제 안녕!’

...

다음 날은 주말이었다. 나는 나른하게 침대에 기대어서 일어나질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몇 번이고 날 보러 왔다. 내가 아무렇지 않아 보이자 더 자게 내버려두었다.

내가 일어났을 때는 거의 8시가 다 돼가는 시간이었다. 난 식탁 앞에 앉아 엄마가 날 위해 따뜻하게 데워준 음식을 먹었다.

아빠와 엄마는 내 곁을 지켜줬다. 너무도 조심스러운 두 분의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

내가 부족해서 엄마, 아빠에게 걱정을 끼쳤으니 내 잘못이었다.

사실 난 입맛이 별로 없었지만 엄마, 아빠가 걱정할까 봐 걱정되어 억지로 밥 한 그릇을 다 비웠고 음식도 반쯤 먹었다.

젓가락을 내려놓자마자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현관문 렌즈로 밖을 바라보았고 소리 없이 나와 아빠에게 유신우 가족이 찾아왔다고 알려줬다.

어제저녁에 있었던 일이 다시 새록새록 떠올랐다. 난 차마 그들을 마주할 수 없어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고 엄마, 아빠에게 뒷일을 맡겼다.

엄마는 문을 연 뒤 덤덤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무슨 일로 온 거야?”

“해윤아, 어제 일은 전부 신우 탓이야. 나랑 우리 남편이 신우를 데리고 사과하러 왔어.”

아줌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늦은 사과가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상대방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심장을 파낸 뒤에 겨우 사과 한마디 들었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지나갈 수 있을까?

상처는 상처다. 사과한다고 해서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신우는 그냥 솔직하게 얘기한 거야. 우리 수진이가 잘못했어. 어젯밤에 내가 혼냈으니까 앞으로 다시는 신우 귀찮게 할 일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그리고 사과는 안 해도 돼. 신우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무슨 사과를 해? 그러니까 하지 마. 다른 일 없으면 이만 돌아가도록 해. 우리 수진이 아직 자고 있어서 깰까 봐 걱정되네.”

“해윤아, 이러지 마. 신우 커가는 모습 너도 옆에서 지켜봤었잖아. 얘가 나쁜 애는 아니야. 어제 일로 신우도 많이 후회했어. 그래서 아침 일찍 사과하러 오겠다고 한 거야. 수진이가 억울한 일을 당한 건 우리 신우 탓이야. 그러니까 사과하는 건 당연하지. 해윤아, 우리를 욕해도 되고 때려도 돼. 그러니까 우리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 좀 나누면 안 될까?”

“아니, 필요 없어...”

엄마가 아줌마를 이렇게 대하는 건 처음이었다. 어제 일로 엄마는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다.

“됐어, 여보.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손님이잖아.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 얘기는 확실히 하는 게 좋으니까. 앞으로 이웃으로서 선 넘지 않도록 우리도 주의해야 해. 괜히 신우 앞길 막지 않게 우리가 신경 써야지. 정훈아, 미나 씨, 안으로 들어오세요.”

엄마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몸을 비켰고 세 사람은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아빠는 그들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한 뒤 예의를 차리며 차를 따라줬다.

예전에 아저씨는 우리 집에 오게 되면 마치 자기 집처럼 자연스럽게 아빠의 찻잎으로 차를 우려서 마셨었다.

그러나 아빠는 이제 그들을 손님처럼 대했다.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게 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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