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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난 힘겹게 웃음을 쥐어 짜내며 엄마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렸다.

“엄마, 괜찮아요. 전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바보 같은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울지 말아요.”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음에 담아두지 않겠다는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살펴보았다.

난 엄마의 눈을 마주보기가 겁나서 목이 마른 척하며 주방으로 가서 물을 따라 마셨다.

엄마만큼 자기 자식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난 엄마가 내 말에 속지 않았을 거로 생각했다.

예상대로 엄마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수진아, 공부 열심히 해. 열심히 해서 앞으로 더 나은... 우리 수진이 이렇게 훌륭한데 분명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짝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널 좋아하지 않는 건 걔 손해야. 걔 분명 후회할 거야.”

난 컵을 들고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오직 나만 알았을 것이다. 내가 마신 물이 뜨거운 눈물이 되어 마음속에서 흘렀다는 걸.

18년간 이어왔던 감정을 정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난 일찍 침대 위에 누웠지만, 머리가 무거워서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어렵게 잠기운이 몰려왔다. 벽을 사이에 둔 유신우의 집은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싸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벽의 방음 효과가 꽤 좋아서 아줌마가 흐느끼는 소리와, 아저씨의 혼내는 소리와, 유신우가 화를 내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싸우는 소리가 오래도록 지속된 건 확실했다. 난 한참 동안 그 소리를 듣다가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아빠와 엄마도 분명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건 그들 집안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아빠도, 엄마도 그들 집안일에 관여할 권리는 없었다.

난 저녁에 잠에서 깼다. 안방 문이 닫혀 있지 않아서 엄마의 작게 울먹이는 소리와 아빠의 다정하게 달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빌어먹을 자식,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 수진이를 욕했어. 우리가 그동안 걔를 얼마나 예뻐했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말이야. 우리 수진이를 절대 좋아할 리 없다고? 우리 수진이가 뻔뻔하게 쫓아다녔다고? 우리 수진이가 평생 걔만 좋아할 줄 알고? 우리 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짝을 만날 거야. 신우 걔 어쩜 그렇게 사람이 인정이 없을 수 있어? 우리 딸이 거기 서서 울 때 내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우리 착한 딸이 뭘 잘못해서 걔한테 그렇게 모욕당해야 하는 건데? 걔가 뭐가 그리 잘났다고.”

“목소리 좀 낮춰. 수진이 듣겠어. 내가 보기엔 지금 얘기한 게 차라리 나아. 우리 수진이는 걔 꽤 좋아하는 것 같던데. 우리 수진이한테 마음도 없으면서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봤을 거야.”

“그렇긴 해. 좋아하지 않으면 말라지. 우리 수진이도 걔 이제 안 좋아해. 우리 수진이 좋은 대학 가면 훌륭한 애들 많이 만날 텐데, 그때 가서 제발 만나달라고 와서 애원해도 절대 받아주지 않을 거야. 미나도 그래. 항상 똑똑하던 애가 아들은 왜 잘 못 가르친 건지. 정말 화가 나. 난 절대 걔네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건 안 되지. 애들이 어떻게 항상 부모 마음대로 되겠어? 신우 걔는 어렸을 때부터 주체적인 애였어. 어렸을 때는 가르칠 수 있더라도 크면 그게 어디 쉽겠어? 미나 씨가 수진이를 얼마나 예뻐했는지 우리 다 알잖아. 애들 일 때문에 어른들끼리 사이가 틀어지는 것도 좋지 않아.”

“하지만 분이 풀리지 않는 걸 어떡해. 우리 딸이 그 집안 때문에 어떤 수모를 당했는데. 우리 수진이를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지 당신도 알잖아. 난 마음 아파서 걔한테 욕 한 번 하지 못했어. 하지만 이건 내 잘못도 있어. 미나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의를 했을 때 동의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건 그냥 해본 말이었겠지. 신경 쓰지 마. 앞으로는 절대 입에 담지도 말고. 우리 딸은 똑똑해서 알아서 잘할 거야.”

“내가 그러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 우리 수진이가 이 일로 크게 상처받았으면 어떡해? 그 빌어먹을 자식이 뭐가 그리 잘나서 우리 수진이를 모욕하는데! 여보, 우리 이사 가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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