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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러니 이젠 달라질 것이다.

...

나와 유신우의 악연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줌마와 우리 엄마는 아주 친한 친구였는데 우연히도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층에 살게 되어 한 가족처럼 지냈다.

우리 엄마가 날 임신했을 때, 유신우는 기저귀를 차고 걷는 연습을 하던 아기였다.

아줌마는 나무 그늘에서 그림자로 놀고 있던 아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해윤아, 네가 혹시 딸을 갖게 된다면 우리 아들이랑 결혼시키자. 그게 좋을 것 같지 않아?”

우리 엄마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지. 아이가 태어난 뒤에 스스로 정하게 하자.”

“아가, 이리 와 봐. 우리 아들, 아줌마 배 속에 있는 여동생을 아내로 삼는 거 어때?”

유신우는 엄마의 다리 위에 엎드려서 엄지를 쪽쪽 빨면서 생글거렸다. 그러면서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아내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우리 엄마와 아줌마는 크게 웃었고 두 엄마는 그 자리에서 내 결혼 상대를 정했다. 내가 겨우 단추만큼 컸을 때 말이다.

내가 아내라는 말을 이해했을 때는 거절하기에 너무 늦은 상태였다.

게다가 나는 거절할 생각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좋은 아내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항상 자신을 다그쳤고, 언제나 유신우를 첫 번째로 두었다.

과자를 먹더라도 난 하나만 먹고 나머지 하나는 호주머니 안에 넣어 유신우의 것을 남겨두었다. 그러다 유신우가 내키지 않는 얼굴로 과자를 먹어주면 난 무척 기뻐했다.

조금 더 큰 후엔 유신우가 학교 뒷마당에서 다른 사람과 주먹다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우리 둘의 가방을 안고 옆에서 관전하며 그를 응원했다. 그리고 욕먹을 위험을 무릅쓰고 내 용돈으로 약을 사서 그의 상처에 발라줬었다.

유신우가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때, 난 멍하니 화단 옆에 앉아 그의 가방을 봐주고, 그에게 물과 타월을 가져다주고, 가끔은 그를 응원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유신우는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날 향해 눈을 흘겼다.

난 유신우를 나의 신처럼 생각하며 그를 걱정하고, 그와 함께했다. 나는 유신우를 정말, 정말 많이 좋아했다.

난 내가 유신우에게 잘해주는 것만큼,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만큼, 유신우도 날 좋아할 거로 생각했다.

그러다 추석에 날 향해 불같이 화를 내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유신우에게 나는 그저 끈덕지게 들러붙는 옆집 동생이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날 싫어했다.

그래서 매번 나를 볼 때마다 미간을 찡그리고, 내 앞에서는 잘 웃지도 않았던 것이다. 날 바라보는 유신우의 시선은 언제나 차가웠다.

“수진아, 오늘 일은...”

엄마는 우리 집 소파에 앉아서 날 끌어안은 채로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날 위로할 생각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엄마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애지중지 키워온 딸이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모욕당하고 부정당할 줄은. 날 사랑하는 엄마이기 때문에, 난 엄마가 나만큼이나 괴로울 거로 생각했다.

엄마와 아줌마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었는데 우연히도 이웃이 되었고 그렇게 20여 년을 함께 지냈다.

아줌마와 엄마는 친자매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 일로 나와 유신우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와 아줌마 사이에도 금이 갔을 것이다.

엄마는 아줌마와의 우정을 아주 중요시했고 난 엄마가 난처해하거나 슬퍼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난 비록 어렸지만 감정이란 건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난 엄마를 닮아 성격이 털털하고 솔직한 편인 동시에 자존심이 아주 강해서 한 번 결정한 일은 절대 번복하지 않았다.

또 당당하고,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절대 매달리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나는 유신우를 내 마음속에서 뿌리째 뽑아버릴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다만 그 과정이 조금 많이 아프고,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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