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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염무현은 금침을 하나 꺼내더니 번개와 같은 속도로 공규석의 천문혈에 놓았다.

이어서 백혈, 관자놀이, 풍혈에 침을 놓기 시작했다.

침은 놓으면 놓을수록 속도가 빨라졌다. 손이 보이지 빠른 속도가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허세 부리긴.”

이승휘가 조롱하며 말했다.

유재영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침을 꿀꺽 삼켰지만 별반 나아지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지금 침을 놓고 있는 혈 자리 모두 사람 목숨을 좌우지하는 죽음의 혈 자리에요. 보통 사람은 건드리지도 못하는데, 저러는 걸 보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거예요.”

이승휘처럼 앞뒤 꽉 막힌 서양 의학 신도와는 달리 유재영은 국내 의학을 조금 배운 적이 있었다. 하여 염무현의 솜씨가 비범하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안 될 줄 알면서도 끝까지 버티는 거지. 뭐가 대단하다고. 왜 멘토는 같은데 우리가 이렇게 차이 나는지 알겠지? 넌 너무 쓸데없는 걸 믿어서 그래. 평생 나 같은 경지는 도달하지 못할 거라고.”

평소라면 유재영은 수치스러워서 얼굴을 붉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선배의 교훈을 들은 체 만체하고는 침대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뭔가 익숙하다고 했는데 오랫동안 실전된 <마손 취혼침> 이네. 전해지는데 의하면 짧은 시간 내에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는 그 침구술이잖아.”

아홉 개의 금으로 만든 침을 아홉 개의 대응되는 죽음의 혈에 꽂아 넣는 침구술이었다.

다른 의사라면 감히 하나도 놓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이건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니라 살인이었다.

하지만 염무현은 과감했다. 공규석은 이미 심장이 멎었기에 강력한 방법을 쓰지 않으면 목숨을 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개뿔, 그걸 누가 믿어?”

이승휘는 이미 생각을 마쳤다. 염무현이 아무렇게나 침을 놓는 바람에 공규석이 죽었다고 발뺌할 셈이었다. 그때 직선을 유지하던 바이털이 올라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심박수가 돌아왔고 혈압도 같이 상승했다.

이승휘는 너무 놀라서 얼굴이 빨개졌다.

“이럴 수가. 이건 불가능해. 아, 죽기 직전에 정신이 잠깐 돌아온 거네. 그래, 그게 맞아.”

김범식이 더는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죽기 직전에 돌아왔다고? 너 정말 우리 형님 잘되는 걸 못 보는구나. 재주가 꽝인 것도 비길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지 못하고 있잖아 지금. 그 권위라는 게 사라질까 봐. 너 같은 건 우리 같은 양아치만도 못해. 그러면서 뭐? 권위? 낯짝이 저렇게 두꺼워서야.”

공혜리는 정상으로 돌아온 바이털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빠 이제 다 나은 거예요?”

“그냥 목숨만 건졌을 뿐 다 나으려면 아직 멀었어요.”

염무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공혜리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현 님,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염무현은 주야장천 침만 놓았다. 이번에는 가슴 쪽으로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댓 개의 금으로 만든 침이 정확하게 혈 자리에 꽂혔다.

유재영은 흥분하며 오버스럽게 고아댔다.

“세상에, 세상에! 이번엔 <월식 해독침>이네요. 이건 <마손 취혼침>보다 더 정밀한 침구술인데.”

“살아생전에 실전된 두 침구술을 동시에 보게 되다니,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네요.”

이승휘는 미간을 찌푸렸다. 원래도 유재영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더 무시했다. 그러니 자기는 업계 권위인데 유재영은 겨우 지방 병원에서 원장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염무현은 그저 운이 좋아서 얻어걸린 게 틀림없다고 여겼다.

이승휘는 점차 안정을 되찾더니 공규석이 아까 가사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뼈를 뚫는 간단한 시술로 죽을 수는 없으니 지금은 그냥 다시 깨어났을 뿐이라고 했다.

염무현이 금으로 만든 침을 하나 더 놓으면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승휘를 쏘아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신도 고치기 어렵다고 했는데, 제가 한번 고쳐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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