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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백지수표

태현은 서준의 성토에 순간 당황했다. 서준은 하연에게 져서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나는 저 바람기 있는 여자를 상대도 안 하고 싶지만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네.”

“그래?”

하연의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태현이 깜짝 놀랐다.

그는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며 당황하여 말했다.

“소리도 없이 어디서 나타난 거야?”

“당사자가 여기 있는데 바로 물어보면 되잖아?”

하연은 팔짱을 끼고 똑바로 섰다. 눈동자 속의 상대를 압도하는 기세는 예전 그대로였다. ‘내가 방금 자기를 욕한 걸 들었나?’

서준은 조용히 한쪽에 비껴 서서, 관심 없는 척 하연을 여러 번 곁눈질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서준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다.

“쳇, 원래 당신 같은 여자한테는 관심 없었어. 네 돈줄이나 얼른 찾아가.”

태현은 하연에게 가라고 손을 휘저으며 제멋대로 깔보는 투로 말했다.

하연은 하이힐 신은 발로 몇 걸음 더 앞으로 걸어갔다. 하연의 이 기세 때문에 태현은 자기도 모르게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무도 말 안 해줘? 안태현 씨, 당신이 다른 사람을 험담할 때 말이야... 정말 동네 노점상 같다는 거.”

태현은 갑자기 화가 났다.

“최하연 씨! 이혼하고도 내 친구 앞에서 어슬렁거리며 내 친구들의 일에 방해나 하고 다니고 말이야! 최하연 씨 같은 계집애들 이미 충분히 많이 봐왔어, 그런 당신이 나를 비웃어?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겨 죽겠네.”

마침 이때 청소부가 청소차를 밀고 지나가자 하연은 바닥 발 매트를 닦은 걸레를 빤 오수가 든 통을 들어 태현의 몸에 끼얹었다.

태현은 오늘 리넨 소재의 흰색 양복을 입었는데 하연이 뿌린 오수에 온통 젖어 위아래로 옷 색깔이 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속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야말로 완전히 다 벗은 것보다 훨씬 더 못한, 참으로 딱한 상황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상반신을 가리려고 했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하반신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허둥지둥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최하연! 당신이 감히 나한테 덤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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