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은 바짝 마른 입술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한 마디를 뱉었다.“보면 모르겠냐?”“하연 씨?” 나운석은 입을 크게 벌리고 하연을 가리켰고 또 서준을 가리켰다.“너?”결국 다시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했다. “나는...”“이게 다 무슨 일이야!”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운석은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았다. 여신님을 위해 받아들여야 할 사실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태현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어리둥절한 운석 옆으로 다가왔다.“운석아, 친구의 아내를 속이면 안 되지. 너는 이번에 일을 너무 크게 벌였어.”운석은 갑자기 화가 났다.“이혼했다며! 이제 자유롭게 연애해도 되는 거 아냐?”운석이 한서준을 밀고 건성으로 말했다.“하연 씨 처음 알았을 때 네 전처인 줄 몰랐다.”하연은 침착하게 서준의 곁을 지나쳤다. 그러자 뒤에서 싸늘하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냥 설명하면 되지 않아?”하연은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이런 질문을 하는 겁니까?”하연은 말을 마치고 쿨하게 자리를 떠났다.“가지 마세요! 여기에 여기 세 사람과 무슨 일인지 같이 이야기해보고 오해도 풉시다.” 운석은 하연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서준은 어두워진 얼굴로 떠났고 안태현은 서준의 뒤를 쫓아갔다.운석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너무 혼란스럽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튿날 아침, 운석은 비서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하연의 사무실로 뛰어들었다.하연은 눈을 들기 귀찮아서 서류에 코를 박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뭐 하러 나한테 왔어요? 좋은 친구들은 운석 씨한테 손가락질 안 하나 봐요?”“밤새 못 자고 생각해 봤는데, 여전히 하연 씨를 포기할 수 없어요.” 운석은 꼿꼿이 서서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그리고... 하연 씨에 대한 나의 감정이 더 확실해졌어요!”하연은 어이가 없었다.“이 정도로요?”하연의 기억 속의 이 사람은 천박하기 그지
[이런 불효 자식! 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하연이잖아! 너와 정혼한 HT그룹 외동딸 최하연!]운석의 아버지 나훈철 회장은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큰 목소리로 운석에게 고함을 질렀다.나훈철이 운석을 B시로 발령을 내주었던 것은 운석이 하연과 가깝게 지냈으면 하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민은 원래 나훈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 운석에게 하연이 누구인지 직접 알려주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운석이 DS그룹에 출근할 수 있도록 했다.‘이런 천하에 막돼먹은 아들놈이 여전히 눈치 없이 어른의 면전에서 보란 듯이 약속을 깨고, 아직도 하연이를 못난이라고 큰소리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다니!’나훈철은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꼈고, 화면 밖으로 나가 운석을 직접 따끔하게 훈계하고 싶었다.운석이 일어서며 사람의 이목을 끄는 매력적인 눈으로 하연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운석은 정말 기억 속의 못난이와 눈앞에 있는 자신의 아름다운 여신이 동명이인이 아닌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내가 추앙하는 나의 여신님이... 내가 죽어도 결혼하고 싶지 않았던 그 혼인 상대였다니!”운석은 그 자리에서 펑 하고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아니야, 이건 거짓말이야. 사실일 리가 없어!”운석은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을 한 후,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하연은 운석을 보면서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하연은 태블릿은 놓아둔 채, 혼자 사무실에서 오랫동안 웃었다.군자가 원수를 갚는 데는 10년도 늦지 않는 법이었다.‘저 원수가 지금처럼 겁에 질려 정신없는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1등짜리 복권에 당첨된 것보다 훨씬 기쁘고 신나네!’때마침 하민에게 전화가 걸려왔다.“큰오빠, 저한테 무슨 일 있으세요?” 최하연은 말투가 여유로웠다.[너는 파혼을 당했으면서 이렇게 큰일에 웃음이 나오니?]전화기 너머의 하민은 자신이 아끼던 여동생이 뜻밖에도 이렇게 운석에게 외모 때문에 미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약간 화가 났다.“물론 즐겁
서영이 어색하게 웃었다.“그럴 리가요. 전 얼마 전까지 외국에 있었어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은 믿지 마세요.”이수애 여사가 서준의 만류를 무릅쓰고 몰래 시아버지를 통해 일을 처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서영은 감옥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체조나 하는 신세였을 것이다.하연이 차갑게 서영을 힐끗 보았다.“감옥에서 나왔으면 개과천선해서 착하게 살아야지. 내 숍을 또 부수고 행패를 부리면 이번에는 초범이 아니라 재범으로 감옥에 들어가는 건데 겁도 없어. 너 알아서 해, 나는 모르니까.”“나 감옥에 안 갔다고! 귀먹었어?”서영은 참지 못하고 하연에게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다가 예나에게 가로막혔다.“지금 2 대 1인데, 몸 싸움하게?”서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눈앞의 두 사람을 한꺼번에 상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분해서 씩씩거리고 이를 갈며 말했다.“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너희들 숨기에는 이미 늦었어!”한서영은 한서준에게 절대 먼저 나서서 하연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었다.“너 겁나는 거 다 알아. 우리 자기는 너 같은 계집애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예나가 의기양양하게 하연의 어깨에 기대어 말했다.서영은 마음속으로 화가 나서 두 주먹을 꼭 쥐었지만 화풀이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 조용히 같이 왔던 일행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직원들은 서영과 함께 왔던 명문가 아가씨들이 이미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고, 아무도 서영의 연락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만 전할 뿐이었다.그 작은 무리로부터 배척당했다는 수치심이 들자, 서영은 여전히 분개한 눈빛으로 아직 매장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하연은 예나를 도와 팔찌 몇 개를 착용해 보았는데 모두 별로 맘에 들지 않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두 고객님, 혹시 팔찌 하나 더 안 가져가셨나요?” 직원의 눈은 친절한 거짓 웃음을 지었지만 의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뒤에 다른 직원 한 명이 달려왔다.“확실히 한 점이 부족한데, 직접 찾아
하연이 입가에 조롱하는 웃음을 띠며 서영의 앞에 섰다.“왜 멍하니 있어? 빨리 경찰에 신고해! 나 이렇게 기다리고 있잖아.”서영은 초조해져서 온 얼굴이 땀투성이가 되어 핸드폰을 손에 꽉 쥐고 어쩔 줄 몰라 했다.“내 가방 안에 있어야 할 팔찌가 왜 네 가방에 들어갔는지 궁금하니?”한서영은 순간 멍해졌다.“나는 도대체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네.”“너 정말 네가 내 가방에 물건을 넣는 걸 내가 못 봤을 거라고 생각해?”하연이 엄하게 물었다.서영이 목걸이를 훔쳐 하연의 가방에 넣을 때 하연은 마침 옆에 있던 거울을 통해 서영이 일을 꾸미는 것을 보았고, 서영이 몸을 돌릴 때 잽싸게 그 목걸이를 꺼내어 서영의 가방 안에 넣었다.예나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고, 비로소 큰 그림의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한서영, 너, 너는 정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렇게 나이가 어린 데도 못된 짓을 꾸밀 생각을 해? 참 대단하다!”“지난번에 너를 구치소까지 보낼 생각은 아니었어. 근데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아직도 그 일에서 배운 게 하나도 없네. 그러면 내가 오늘 한씨 집안 대신 너 좀 따끔하게 가르쳐야겠다!”하연이 고개를 돌려 점원에게 말했다.“112로 신고해서 경찰 부르세요!”“신고하지 마. 경찰 부르지 말라고!”서영은 점원을 막고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게 했다.그 순간 서준으로부터 온 전화가 울리자 서영은 전화를 받고 울기 시작했다.“오빠, 빨리 와서 나 좀 구해줘. 이 사람들이 나를 경찰로 넘기려고 해.”예나는 기가 찼다.“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잘못은 자기가 저질러놓고, 오히려 억울하다고 울고 있네.”서준은 마침 바로 근처에 있어서 몇 분 내로 금방 매장에 도착했다.들어오자마자 하연의 일행과 서영이 서서 대치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오빠! 이 사람들이 여럿이서 나를 괴롭혀!”서영이 큰 소리로 울며 하연과 친구들을 가리켰다.서준의 냉엄한 눈빛으로 하연을 힐끗 쳐다보고, 얼굴을 돌려 차가운 목소리로 서영에게
서영은 하연 앞에 가기 싫어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목소리는 모깃소리만큼 작았다.“그게..., 미안하게 됐어.”예나가 화가 나서 거칠게 말했다.“더 크게 말해, 안 들려!”한서영은 두 손을 꼭 맞잡고 눈을 딱 감고 조금 더 크게 말했다.“미안하다고 말했잖아! 미안하다고!”“됐지?” 서영은 고개를 돌려 서준을 보았다.“오빠.”서영의 표정이 우는 것보다 더 딱해 보였다.서준은 차갑게 말했다.“나 말고 하연 씨에게 사과해야지.”서영은 어쩔 수 없이 하연 쪽으로 몇 발짝 걸어갔다.“사과했으면 됐지, 뭐 하러 경찰까지 불러 조사를 받게 하냐고? 사과만 하면 경찰 조사 안 받아도 된다는 건가? 한 대표님, 너무 이기적이시네.”하연이 붉은 입술로 서준을 비웃었다. 서준은 하연의 이런 태도 때문에 전혀 상황을 종잡을 수 없었다.“괜히 도둑으로 몰려서 꼼짝없이 잡혀갈 뻔했는데, 명문가 한씨 집안사람이면 말 한마디로 죽음도 면하는 금수저인 거야?”가족들이 하도 오냐오냐하며 키워서 서영의 못된 행동은 어른이 되어서 점점 더 심해졌다. 하연은 서영을 혼쭐낼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가흔은 하연의 태도에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미친 듯이 울고 발광하는 서영을 또 한 번 연행해갔다.서영이 경찰에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서준의 얼굴이 걱정 때문에 어두워졌다.“작은 다이아몬드 팔찌 하나 때문에 이렇게 문제를 키울 필요가 있나?”서준이 하연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언제부터 이렇게 몰인정한 사람이 됐지?”이혼 전, 하연은 서준과 관련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참았었지만, 이혼하자마자 완전히 한씨 집안사람들이 원수처럼 느껴졌다. 이혼 후에 돌변한 하연의 태도 때문에 서준은 하연이 점점 더 낯설게 보였다.서준은 서영에게 사과도 시켰고, 목걸이 값을 직접 지불해서 하연에게 사주겠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성에 안 차는지 계속 불만인 하연을 이해할 수 없었다.“그래? 난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잘 몰랐던 거지.” 서준은
가흔은 전시회에 온 대중들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하연이 압도하는 이 무대의 연출은 너무 완벽했다.반대쪽에서 무대를 보던 운석은 이때 그 누구보다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하연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한동안 온통 서글프고 실의에 빠져 지냈다. 운명의 장난이라 생각했다. 자기 손으로 너무나 완벽한 운명의 상대를 밀쳐낸 것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했다.운석은 한때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으로 생각하고 이제 하연을 잊기로 결정했다.그러나 하연이 등장하는 것을 본 후, 다시 참지 못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마치 그날 밤 건물 옥상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엄마, 저것 봐, 또 그 재수 없는 계집애야!” 구석에 앉아있던 서영이 이수애를 조심스럽게 잡아당기며 말했다.이수애는 말투가 매우 좋지 않다.“네가 말 안 해줘도, 나도 다 보여.”“그래.” 서영은 입을 다물었다. 서영은 두번이나 감옥에 들어간 일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비참하게 욕을 먹었다. 지금은 가족들 앞에서 마음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이수애는 그 ‘바다의 눈물'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차라리 이를 악물고 이 목걸이를 사서 잃었던 명예를 되찾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최근 한씨 집안의 위상이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수애는 명품 매장에서 하연의 VVIP카드로 한번 모욕을 당했고, 서영은 다이아몬드 팔찌 건으로 경찰서에 두 번이나 연행되었다.최근 B시 상류층 여성모임에서 이수애와 서영의 평판은 형편없었다. 사람들이 서영과 이수애 하면 돈도 없고, 부자인 척하며, 좀도둑질이나 한다는 몇 가지 단어를 떠올리는 상황이었다.마지막 전시품이라 최하연은 스탠드에서 내려온 후에도 푸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풀지 않았다.가흔은 총 디자이너로서 내빈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VERE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묵묵히 고생해 주신 스태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물론
“너 사람 잘 못 건드렸어!”이수애는 이를 악물고 이 한 마디를 하연에게 내뱉으며 서영을 끌고 사람이 적은 곳으로 몸을 피했다.하지만 기자들 무리가 두 사람의 뒤를 바짝 쫓았던 탓에 잠깐 동안은 관중석보다 두 사람의 주위가 더욱 시끄러웠다.쇼케이스가 끝났다.무대 뒤로 돌아온 하연이 ‘바다의 눈물'을 한쪽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았다.예나는 또 다른 분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하연은 앉아서 예나가 단체방에 공유한 쇼케이스 현장 사진을 보고 있었다.[나나양: 자기야, 봐봐! 우리 둘 다 너무 예쁘지?][이쁜이: 하트 뿅뿅! 너무 예쁘다!][여은이: 해외 출장 가는 것만 아니었으면 가서 꼭 보고 싶었는데. 이리 와, 안아줄게.][가으니: 오늘 수고했어! 저녁에 다 같이 모이자.][나나양: 오늘 정말 웃겨 죽을뻔했다니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VERE을 사버리겠다는 하연이 전 시어머니 태도에 웃겨서 눈물이 다 났어.] [이쁜이: 그 사람은 아직도 내가 자기 며느리인 줄 아나 봐.]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대기실 문이 열리고 잔뜩 화가 난 이수애와 서영이 들어왔다.하연은 입가에 경멸하는 웃음을 띠며 싸움에서 진 수탉 같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아까 들은 욕으로는 부족했나요? 그래서 욕을 더 들으려고 직접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너는 오늘 이 목걸이 꼭 나한테 팔아야 해!”이수애는 들어오자마자 최하연에 의해 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인‘바다의 눈물’을 언뜻 보았다. 저렇게 비싸고 예쁜 것을 장난감처럼 대충 벗어던져 놓은 것을 보자 질투심이 폭발할 것 같았다.구겨진 체면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연의 목걸이를 자기가 사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귀가 잘 안 들리면 병원에 가세요. 안 팔 거라고 했는데 잘 안 들리시나 보네요.” 하연은 휴대전화를 한쪽에 놓고 거울을 보면서 계속 귀걸이를 빼고 있었다.“목걸이 값이 얼마가 됐든 상관없어, 꼭 살 거야!”“그만하시죠.”하연이 여유롭게 말했다.이수애는 화가 나서 현기증이 몰
“오빠, 나 믿지? 나랑 엄마 지금 이 모양 이 꼴 된 거, 다 저 여자가 한 짓이야.”서영은 서준이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수애도 일어나서 계속 말하려다, 갑자기 흥분하면서 쓰러졌다. 옆에 있던 서영이 이수애를 얼른 부축했다.하연은 오래전부터 이수애와 서영의 이런 속임수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상대를 비웃는 하연의 말투에는 당당함이 배어 있었다.“맞아, 내가 그랬어.”하연은 이 사람들과는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았다. 몸을 돌려 대기실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서준이 문 앞을 가로막았다.하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떨어져서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비켜.”초주검이 된 이수애와 서영의 모습을 본 서준은 하연에게 기울었던 마음의 저울추가 다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언제까지 화만 내고 있을 거야?”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하연은 이것이 근래에 들은 것 중 가장 웃긴 농담이라고 느꼈다.“내가 무슨 화를 냈다고 그래?”“내가 당신 여동생과 어머니한테 손찌검을 당한 거, 이혼 전에 당신 집에서 괴롭힘당했던 걸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고?”“정말 다정한 효자 나셨네.” 하연은 어이없어 고개를 저었다.“내가 뭐 하러 저런 더럽고 역겨운 사람들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겠어?”“그렇게 고상하신 분이 손버릇은 아주 나쁘네!”서영은 또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가 기절한 이수애를 일으켜 세웠다.“당신들 스스로 이렇게 화를 자초하잖아, 더러운 파리처럼 계속 내 주변을 맴돌면서 괴롭히는데, 내가 당신들 마음까지 헤아려줘야 하는 거야?”“식구들 단속 잘 해. 동네 창피하게 나와서 웃음거리 되지 말고.”하연의 날카롭고 차가운 눈동자로 서준을 째려보았다.“다시 한번 이렇게 제멋대로 무례하게 행동하면, 그때는 변기 물 세례로 끝나지 않을 거야.”서준은 여전히 커다란 돌부처처럼 움직이지 않은 채 차가운 눈으로 하연을 바라보았다.“그래도 한때는 부부 사이였는데, 이렇게까지 듣기 거북하게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