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동이 트기 시작할 때 유선우는 잠에서 깼다. 정확히는 무언가에 의해 깰 수밖에 없었다. 품에 안고 있던 무언가가 열을 내며 그의 가운을 다 적셔버렸으니까.유선우가 눈을 떠보니 거기에는 심상치 않아 보이는 조은서의 얼굴이 있었고 손을 내밀어 만져보니 이마를 포함한 얼굴 전체가 불덩이처럼 타고 있었다.유선우는 얼른 몸을 일으켜 아래로 내려가 고용인을 불렀다."지금 당장 의사 선생님 좀 불러주세요."그러자 고용인이 다급하게 물었다."주인님, 혹시 어디 편찮으신가요?"막 계단을 다시 올라가던 유선우가 그 질문에 잠깐 멈춰서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지금 내 아내 몸이 불덩이니까 빨리 의사한테 오라고 하세요."...30분 후, 임 의사가 저택에 도착했고 그가 침실에 도착했을 때는 고용인들에 의해 어젯밤 흔적이 깔끔하게 사라진 뒤였다.임 의사는 조은서의 상태를 체크한 후 진단을 내렸다."열이 심하니 일단 링거를 맞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사모님께서 기력이 많이 쇠해지셨습니다. 이럴 때는 영양보충을 잘해주는 게 중요합니다."유선우는 조은서가 요즘 과로 때문에 끼니를 놓치는 일이 많아 이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예전에 그녀라면 이런 소리를 들을 일도 없었을 텐데...의사는 조은서에게 링거를 꽂아준 후 나가기 전 다시 한번 당부했다."오늘 하루는 누워서 푹 쉬는 게 좋을 겁니다."유선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고용인에게 의사를 현관까지 데려다줄 것을 요구했다.그렇게 고용인과 의사가 방에서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곧 침실 앞에 멈춰 섰다. 유선우는 당연히 고용인이라고 생각해 고개도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죽 좀 끓여서 가져다주세요."하지만 방에 들어온 사람은 진 비서였고, 그녀의 양손에는 저번 주에 유선우가 드라이를 맡겨뒀던 정장들이 가득 들려있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조은서를 보며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왜 다시 돌아온 거지...?’고용인이 방을 깨끗하게 치우긴 했지만, 눈썰미가 좋은 진 비서
진 비서는 그를 향한 사랑의 눈길을 숨길 수 없었다. 대학교 시절, 그녀는 다른 여자들처럼 그를 좋아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녀보다 잘난 여자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유선우가 그녀의 맞은편에 자리하자 진 비서는 금방 프로다운 모습으로 돌아와 말했다."사모님께서 돌아왔으니 오늘 같은 일은 다시 사모님께 넘기는 거로 하겠습니다. 대표님, 사모님의 생활비와 주얼리들은 계속 저한테 먼저 신청하라고 할까요?"그 말에 유선우는 마음속 깊이 짜증이 솟구쳤다. 조은서가 이혼 얘기를 꺼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거였기 때문에.유선우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진 비서는 활짝 웃으며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앞으로도 잘 관리할게요."유선우는 그런 진 비서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는 감정에 둔한 남자가 아니었고 여자가 자신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정도는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까지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건 그의 생활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지금의 진 비서는 명백히 선을 넘고 있었다.유선우는 잠깐 고민하나 싶더니 이내 담담한 목소리로 통보했다."다음 달부터 진 비서는 캐나다 지사로 발령 날 거야. 직위와 연봉은 그대로 유지하고."그 말에 잠깐 굳어버린 진 비서는 빠르게 정신을 차린 후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대표님, 저 남자친구 있어요."유선우가 아무 말이 없자 진 비서는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다음 달이면 대표님께서 제 결혼식 청첩장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그러자 유선우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그럼 좋은 소식 기대하지."진 비서는 온몸이 덜덜 떨렸다. 유선우는 그녀가 품고 있는 감정을 정확히 알아보고 그녀에게 함부로 마음을 품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진 비서는 입술을 아프게 깨물고는 끝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대표님, 혹시 조은서 씨 때문입니까?"그러자 유선우가 발을 멈추고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 진 비서가 선을 넘었으니까."유선우에게
조은서는 배가 많이 고팠는지 전복죽 한 그릇을 금세 먹어 치웠다. 그러고는 따뜻한 죽이 위를 감싸는 느낌에 조금은 기분이 좋아진 듯 보였다.유선우는 창문에 몸을 기대고 있었는데 달빛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그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자 가뜩이나 잘생긴 얼굴이 더욱더 잘생겨졌고 깔끔하게 세팅된 머리로 인해 금욕적인 분위기도 풍겼다.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창밖으로 손을 뻗어 연기가 바람에 날리도록 가만히 놔두었다. 그러자 침실 안은 어느새 니코틴 향으로 가득 찼고 그 향기는 유선우와 절묘하게 어울렸다.조은서가 식사를 끝마친 것을 확인한 유선우는 담배를 끈 후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할머니한테서 연락이 왔어. 얼굴 보고 싶으니 집에 좀 들르라고."유선우의 할머니인 최숙자는 조은서를 마음에 들어 했고 많이 예뻐해 주었다. 그녀는 이혼 얘기로 최숙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다.조은서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곧 입을 열었다."할머니께는 선우 씨가 대신 얘기해 줘요.""뭘 얘기하는데?"유선우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네가 나와 이혼 해야 하니까 못 갈 것 같다고 얘기해? 뭐가 그렇게 급한데, 이혼을 서둘려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보지?"조은서는 그와 얘기하기 싫다는 듯 방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가녀린 팔은 금세 유선우의 손에 잡혔고 그는 약간의 비웃음을 띠며 말했다."나한테 봉사 한 번에 400만 원, 어때?"그러고는 조윤서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가져와 그녀의 지문으로 잠금을 해제하고는 자신을 차단 명단에서 꺼낸 후 바로 400만 원을 그녀에게 입금했다."차준호 호텔에서 밤새도록 연주해도 고작 40만 원밖에 안 되잖아."그러자 조은서가 실소를 터트렸다."백아현을 위해 쏘아 올린 불꽃은 못 해도 2억은 되지 않나요?""그게 무슨 뜻이야?"유선우는 고개를 숙여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다시 한번 물었다."조은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그러자 조은서도 화가 나는 지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그 말에 조은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손을 들어 유선우를 밀어내며 필사적으로 그의 입술을 피했다. 그러고는 잠긴 듯한 목소리로 그를 제지하려고 했다."선우 씨, 우리 더 이상 이러면 안 돼요."하지만 잔뜩 흥분한 유선우에게 그 말이 먹힐 리가 만무했고 그는 그녀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당당하게 말했다."왜 안 되는데? 우리 아직 법적으로는 부부야."유선우는 어젯밤 그녀를 안지 못한 것을 지금 다 터트리려는 사람처럼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짓 하나하나에 녹아내리는 그녀의 모습을 뇌리에 각인시키듯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조은서는 힘을 쓰지 못하면서도 싫다는 말을 멈추지 않았고 유선우 역시 자신의 행동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때 유선우가 그녀의 몸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눈을 마주치며 음담패설을 했다."입은 싫다고 하면서 몸은 솔직하네. 네가 지금 얼마나 음란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정도야."조은서는 그 말에 화를 내며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대꾸했다."선우 씨도 똑같거든요!"유선우는 또다시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재력도 있고 얼굴도 잘생긴 유선우와 어떻게든 하룻밤을 보내려고 하는 여자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어떤 여자도 그의 침대까지는 오지 못했고 그들은 유선우가 잠자리에서 얼마나 독재자 같은 스타일인지 알 길이 없었다.반강제로 시작되는 정사는 언제나 유쾌할 리가 없었고 조은서는 지금 최대한 잠자리로 이어지지 않게 노력하고 있었다.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주인님, 할머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사모님이 여기 있는지 물으십니다...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요?"침실 안은 잠시 정적이 흘렀고 조은서는 이때다 싶어 유선우를 밀어버린 후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문 뒤에 서 있는 고용인을 향해 말했다."제가 곧 찾아뵙는다고 전해주세요."고용인은 알겠다고 한 후 몸을 돌려 아래로 내려갔다.조은서는 옷을 정리하며 유선우에게 물었다."내가 입고 온 옷은 어디 있어요?""찢어 던져버렸어."유선우는
유선우의 목소리에 잡념에서 깨어난 조은서가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차량은 교차로에 진입했고 빨간불이라 멈춰있었다.그녀는 유선우의 손을 뿌리치며 얼굴을 홱 돌리고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유선우는 조은서의 옆얼굴을 보며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잠시 그녀와의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조은서는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유선우와 결혼했고 막 결혼했을 당시 그녀는 그를 아주 많이 사랑했었다. 매일 밤 유선우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위층에서 달려 내려와 그의 가방을 들어주며 오늘 저녁은 뭔지 옆에서 조잘거렸고 항상 그를 위해 목욕물을 직접 받아주었다.그러고 저녁이 되면 유선우가 일부러 그녀를 아프게 해도 꾹 참고 싫다는 말도 못 한 채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해달라고 애원만 했었다.신혼 때의 조은서는 항상 에너지가 넘쳤고 밝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녀는 점점 웃지 않게 되었고 그에게 애교도 부리지 않게 되었다.드디어 유선우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듯 보였다. 또한, 그녀가 아무리 노력한들 그의 마음은 열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조은서는 여전히 다정했지만, 이 다정함은 부부의 의무 같은 거였고 거기에 사랑은 없었다. 그녀가 취중 진담으로 뱉어낸 말처럼 사실 그녀는 꽤 오래전부터 그를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선우는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다 마침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고 그는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조은서는 창밖 풍경을 구경하다 길거리 옆에 있는 레스토랑을 보고는 멈칫했다. 그곳은 얼마 전 그녀가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곳이었고 고작 며칠 사이에 폐업해버렸다. 의문을 품고 있던 조은서는 이내 거기에서 허민우와 마주친 사실과 그 뒤로 집 복도에서 유선우와의 일을 떠올리고 천천히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그제야 왜 유선우가 그녀를 데려다주겠다고 고집을 피웠는지 알 것 같았다."선우 씨,
위층으로 올라가 봤지만 심정희는 집에 없었다.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심정희는 유선우의 별장으로 전화를 걸지 않았다고 한다. 조은서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별장의 고용인이 심정희를 도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모처럼 출근할 필요가 없게 된 그녀는 샤워를 마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그녀는 또 유선우와 신혼 때의 생활을 꿈꿨다. 꿈속에서 유선우는 그녀에게 여전히 차가웠고 그의 말투에는 늘 짜증이 섞여 있었다. 갑자기 울린 핸드폰 소리에 그녀는 잠에서 깨어났다. 확인해 보니 유선우한테서 온 짧은 문자였다.「내일 할머니 뵈러 가는 거 잊지 마. 퇴근하고 로열 호텔로 데리러 갈게.」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유선오가 백아현을 위해 준비한 불꽃놀이가 생각난 조은서는 그가 보내온 돈을 덥석 받아 유기 동물 단체에 기부해 버렸다. 새벽 1시, 유선우의 차가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그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에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마침 조은서가 돈을 받은 알람이 화면에 떴다. 그녀가 무슨 말이라도 답장을 보낼 줄 알았다.예전의 그녀는 툭하면 그에게 문자를 보내길 좋아했다. 특별히 중요한 일이 없어도 문자를 자주 하곤 했었다. 그녀의 쓸데없는 문자에 그는 단 한 번도 답장을 한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씨 가문이 망한 뒤로 조은서는 두 번 다시 그에게 문자를 보낸 적이 없었고 더 이상 침대에서 강아지처럼 그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자신을 좋아하냐고 물은 적도 없었다. 다만 그녀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그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유선우는 혼자 차에 앉아 조은서를 생각하며 그들의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조은서는 병원에 다녀왔다. 과일을 잔뜩 사 들고 나타난 그녀를 보고 심정희는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지만 겉으로는 왜 쓸데없이 돈을 썼냐고 그녀를 꾸짖는 척했다. “며칠 전에 사 온 것도 아직 다 먹지 못했는데 왜 또 사 왔어?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지우 때문에 이지훈은 그녀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그저께 밤에는 그녀를 괴롭히기까지 했다. 근데 지금 그가 자신을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조은서는 무의식적으로 그가 좋은 마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이지훈 씨, 더 이상 날 난처하게 하지 않겠다고 했잖아요.”이지훈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그랬었죠.”말을 마친 그는 차에 시동을 걸고는 바로 자리를 떴다. 그녀는 이지훈과의 일은 한 단락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녀는 로열 호텔 56층에서 그를 또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는 차준호 등 몇몇 사람들과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어린 모델과 연예인들도 몇몇 있었다.조은서가 무대에 오르자 이지훈은 고개를 들었다. 무심코 한 그의 작은 동작을 옆에 있던 차준호가 눈치를 챘다. 차준호는 무대 위에 있는 조은서를 쳐다보고는 무심하게 카드를 냈다. “이지훈, 너 평소에는 여기 잘 안 왔잖아. 오늘은 웬일이야? 네가 여기까지 다 오고?”“왜? 반갑지 않은 거야?”담담하게 말하는 이지훈을 보고 차준호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럴 리가. 네가 맨날 와서 우리 매상이나 올려주면 좋겠어.”그 말에 이지훈은 아무 말도 없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마침 그때 유선우가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색 셔츠에 검은색 바지, 남색 얇은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있는 그는 늘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고 들어오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을 바로 사로잡았다. 차준호는 이지훈를 쳐다보았고 이지훈은 자세를 바꾸고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유선우, 너도 왔어? 왜... 은서 씨 데리러 온 거야?”그의 농담에 유선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유선우는 차준호의 맞은편에 앉아 주머니 속에서 담뱃갑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은서 데리고 본가로 가서 하룻밤 자고 올 거야. 할머니가 은서 많이 보고 싶어 하시거든.”그의 말에 차준호는 피식 웃었다.“재밌네
“너 여기 병 났다고. 잊지 마, 저 여자가 누구 와이프인지.”한편, 여자 탈의실에는 조은서밖에 없었다. 드레스를 벗고 검은 속옷만 입고 있는 그녀의 하얀 몸은 전등 아래에서 더 빛이 났다. 갑자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열렸다.문 앞에 유선우가 서 있었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며 탈의실의 문을 잠궜다...그의 행동에 조은서는 입술을 깨물었다.“유선우 씨, 여기 여자 탈의실이에요.”유선우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 그녀를 향해 걸어왔고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손에 있던 셔츠를 낚아챘다... 그러고나서 한 손으로 그녀를 옷장 앞으로 밀어내고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런 것에 익숙지가 않았던 그녀는 온몸에 닭살이 돋는 것만 같았고 몸을 살짝 떨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라도 할까 봐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유선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녀를 조용히 쳐다볼 뿐이었다. 두 사람이 부부 사이가 아닌 척... 처음 그녀의 몸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눈빛에는 욕망조차 없었다. 잠시 후, 그가 손을 풀자 그녀는 말없이 등을 돌리고는 손가락을 떨며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는 개의치 않은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유선우 씨, 뭐 하자는 거예요?”그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지난 3년 동안 그는 조은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이혼을 요구할 때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 조은서는 자신의 것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많은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노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걸 예전에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뒤에 서 있던 그가 그녀의 몸에 바싹 달라붙었다. 은은한 담배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고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수정같이 반짝이는 그녀의 피부는 연한 핑크빛으로 물들어져 더욱 매력적이었다. 유선우는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고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허스키한 목소리를 입을 열었다.“당신을 어쩌면 좋을까? 예쁜 여자는 화의 근원이라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