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과 육명선은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년 남자가 황급히 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고 입술을 달싹이더니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소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정현아, 무슨 일로 날 찾았어?"박씨 집안에서 실종된 그 사람과 너무 닮아서 매번 볼 때마다 그는 참지 못하고 멍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박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앉으라고 지시했다"이사님은 불법 자금 모집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육영 그룹의 대표로 되기 전에 박태준은 육정현의 신분으로 육 씨네 사람들은 한 번 만났던 적이 있었다. 육명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가 진짜 육정현이 아니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그를 대표로 앉히기로 한 결정에 대해 육 씨네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다.'시골에서 데려온 허약한 사람인 주제에... 외국 유학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대학도 못 다녔으면서 무슨 근거로 육영 그룹의 후계자가 되려고?'가장 격렬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육명선의 아들이었다. 억지로 심은 기억과 맞지 않는이상함을 느끼지 않도록 기민욱이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할 수 있었다.육명선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그의 뜻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제가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제가 뭐라고 해야 합니까? 육영 그룹은 지금 당신이 관리하고 있고 저는 기껏해야 배당금을 받는 주주인데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육 이사님도 이 일의 주모자가 기민욱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저는 그에게 권력을 준 적이 없습니다. 그가 어디서 육영 그룹의 도장을 손에 넣었는지, 어떻게 육씨 가문의 직원들이 그의 뒤를 봐주도록 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정현아,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아닐까? 나는 기민욱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와 친분도 없어. 회사 사람들은 그가 네 동생이라고 하지 않았어? 네 동생이면 네가 그냥 가버리면 안 되지. 육영 그룹이 어렵게 조금 올랐던 주식이 지금 하한가로 떨어졌는데
강혜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좀 나른할 뿐이야.”그녀는 입구를 슬쩍 보았다."태준이는? 같이 돌아오지 않았어?”"바쁜 것 같아서 제가 먼저...”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혜정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발신자 표시를 보고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전화 좀 받을게."그녀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위층으로 올라가서 통화를 이어 나갔다.강혜정은 위층으로 가서 박태준이 돌아올 때까지 내려오지 않았다.텅 빈 거실을 둘러본 그는 휠체어를 끌고 신은지의 옆으로 가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비록 두 사람은 지금 함께 살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스킨십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왜 너 혼자야? 우리 엄마는?"예전 같으면 매번 돌아왔을 때마다 모여서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마치 친 모녀를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가 대접받지 못하는 사위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다."어머니는 전화를 받으시러 위층에 가셨는데 아직 안 내려오셨어.”박태준이 2층 쪽을 바라보자 마침 도우미 아주머니가 과일을 잘라 왔다."내가 올라가서 부를게.”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아프면 오르내리기가 불편할 것 같아 인테리어 할 때 엘리베이터를 설치했었다.강혜정은 방에 있었는데 전화는 끊긴 지 오래였다. 노크 소리가 들려서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녀는 박태준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태준아.”"아주머니가 과일을 잘라주셨어요. 같이 먹으러 가요.”"기민욱은 정말 죽었어?"경찰이 공지를 냈지만 강혜정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네.""그럼 해결된 거야?”"해결됐지만 불법 자금 모집이 재경 그룹의 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아직은 당분간 박태준의 신분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어요.”강혜정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기민욱은 몇 년 동안 외국에 있었고 귀국해도 가끔일 뿐이라서 인맥은 발전시키지 못했어.”경인 시에는 최근 인사이동이 많았다. 재경 그룹 외에 일부 관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민욱의 나이로는 절대
식사를 마친 박태준과 신은지는 신당동으로 돌아갔다.차를 세운 후 그녀는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꺼냈고 그가 자리에 앉은 후에야 뒷문을 열고 쇼핑백을 꺼냈다.그는 그녀가 오후에 쇼핑하러 간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부모님께 선물도 사 드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지금 손에 든 쇼핑백을 보고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신은지가 돈을 쓰는 것이 두렵지 않았고 되려 그녀가 돈을 충분하게 쓰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다른 남자들이 돈을 내주지 못할 정도로 쓰면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 할 텐데.'이렇게 생각한 그는 그녀에게 블랙카드를 주려고 했다.집에 들어서자 그녀는 쇼핑백에서 선물 세트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전에 주기로 했던 지갑이야. 마음에 드는지 봐봐."항상 반응이 빨랐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건네진 선물 상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 지나서야 대답했다."네가 준 거라면 다 좋아.”“..."깁스한 다리를 쳐다본 신은지가 입을 열었다."오늘 샤워할 때는 바디워시 말고 세제를 써 봐. 느끼한 것 좀 빼자."그는 그녀가 방금 자신을 힐끗 본 것이 과연 때릴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것이라고 의심했다."하지만 드라마 남자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하면 보통 웃으면서 결혼하고 싶다고 그러지 않아?"이 말은 그가 전에 로맨스 드라마 댓글을 보고 배운 것이었다."앞으로 로맨스 말고 전쟁 드라마나 봐."'대사가 좀 별로지만 느끼하진 않으니까.'"…"'아내가 받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그녀의 철벽에 그는 그 애정 어린 말들을 참고 묵묵히 선물 상자를 뜯어야 했다. 한 마디만 더 하면, 진짜로 목욕하는 바디워시를 세제로 바꿀까 봐 두려웠다.지갑의 디자인은 매우 심플했고 박태준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이전 지갑에서 카드와 현금을 모두 꺼내 새 지갑에 넣은 후에야 고개를 들어 신은지를 보았다."고마워."충격을 받은 나머지 좋아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쇼핑백에서 또 다른 선물 세트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퇴원 축하하고 집에 온
이것은 전에 강이연이 기증한 관이었다. 이미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유리 진열대에 보관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손을 거친 유물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복원을 시작할 때부터 복원가 완료될 때까지 계속 참여하기를 원했다. 만약 중간에 다른 사람으로 교체된다면 그녀는 항상 자신의 아이를 빼앗기는 느낌을 받았었다. 다른 사람도 같은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임 관장은 몇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는 그들이 모두 온 후에야 입을 열었다."다들 네가 돌아오고 나서 함께 복원하기를 원했어. 위에서 여러 번 재촉했었는데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빨리 끝낼 수 있겠네.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내도록 하자."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떠났다. 그들의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이 관이 처음 국내로 돌아왔을 때 큰 소동이 일어났었다. 국내외 복원사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는 복원 사업이었다. 만약 복원하지 못하면 그 소식이 외국까지 전해지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윗사람들도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신은지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임 관장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팀장이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은지야, 드디어 돌아왔네. 네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정말 손을 대지 못하겠어.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어."그녀는 50대 중반의 상냥한 남자를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이게 무슨 칭찬이야, 과분하게 치켜세우는 거지...'그들의 직업은 비록 암투는 적지만 스승과 제자를 이어주는 계승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노인과 스승에 대한 존경을 매우 중시했다.그녀는 두 손을 모아 용서를 빌었다."팀장님, 저를 계속 그렇게 나쁘게 말하시면 저는 목을 그어서 여러분의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된 것을 축하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독하게 하지 마세요. 본인이 더 많은 휴식 시간을 가지려고 저한테 던져주다니요. 제가 없는 건 괜찮지만 선생님들도 없어지면 어떡할 거예요? 제가 이 관을 다 복원하고 나면 아마 퇴직할 나이가 될 거예요. 그러면
그는 계속 박태준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제야 휠체어를 밀고 있는 그의 원수 황지훈을 보았다.박태준의 깁스한 다리를 본 진영웅은 병문안을 가지 않았던 자신이 미웠다. 자신을 때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만회할 기회는 있었다.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그는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고 황지훈을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입을 열었다."대표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대표님이 계시지 않으셔서 저는 요즘 뭘 하든 손에 잡히지 않았고 대표님을 학수고대했어요. 대표님이 돌아오시는 것만 기다리다가 살도 빠졌어요. 대표님이 밖에서 잘 먹지 못하고 따뜻하게 입지 못할까 걱정했어요."박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거짓말을 가차 없이 까발렸다."탕비실의 체중계 네가 망가뜨린 거지?"새빨간 거짓말을 하면서 몸무게를 재보지도 않는 건가. 요즘 박태준이 다친 것 때문에 일이 줄어들어서 살찐 것이 분명했다. 이번에는 박태준이 반년 실종되었지만 만약 그가 1~2년 동안 실종된다면 그는 애완동물 가게의 가필드 고양이보다도 더 뚱뚱해질 것이었다.진영웅이 굳은 얼굴로 당황스럽다는 듯 말했다."네?"그의 말을 듣고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배를 만져보았다. 다행히 그의 복근은 아직 있었다. 비록 선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배가 볼록하지는 않았다.그가 배를 만지는 것을 보고 박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도 자기의 배를 만져보더니 복근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러다가는 복근 8개는 무슨, 6개도 남지 않을 것이었다. 박태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놔.""..."진영웅은 할 말을 잃었다. 가만히 있다가 왜 또 화를 내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아무도 휠체어를 밀지 않았지만 자기절로 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편협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휠체어는 이미 원격조종이 가능했기 때문에 박태준은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자기의 휠체어를 밀어줄 인력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
진유라의 눈이 커지면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다. 아이는 혼자서도 키울 수 있으니 말이다.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하지만 잠깐 더 생각해 보더니 포기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동물을 키우는 것과 달랐다. 아이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야 했다. 모성애뿐이 아니라 부성애도 있어야 했다.하지만 그녀가 고개를 젓기도 전에 곽동건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어왔다."안 돼.”진유라는 너무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걸상에서 펄쩍 뛰었다. 고기 위의 고춧가루가 목에 걸려 기침이 끊임없이 나왔다. 간신히 기침을 멈추었지만 말도 제대로 이어서 하지 못했다."귀신이에요? 무슨 소리도 안 내고 걷다가 갑자기 소리를 내요?”곽동건은 눈초리를 치켜올리며 대꾸했다."당신 곁을 세 바퀴 돌아서 당신이 눈치챘을 때야 소리를 내라, 이 말이에요?”진유라는 기침 때문에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연거푸 맥주 두 캔을 마셨지만 목 안은 여전히 얼얼하게 아파왔다. 또렷한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렇지 않아도 밝은 눈동자는 지금 더욱 밝아졌고 그녀는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았다."아이는 제가 낳는데, 아버지를 버리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죠? 그 쪽이 무슨 근거로 절 대신해서 대답하죠? 당신이 그러지 말라고 하면 저는 더 그럴 거예요! 게다가 쌍둥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찾아 쌍둥이를 낳을 거라고요.”곽동건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진유라는 굳이 그와 맞서려 했다.'어차피 신당동을 나가면 내가 매일 어떻게 사는지, 언제 애를 낳는지 지켜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곽동건은 얼굴을 찌푸리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아이는 물건이 아니에요. 돈만 써서 먹여 살리면 되는 것도 아니고. 아이도 또한 교육을 받아야 돼요. 어머니와 아버지, 이 두 역할은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모두 없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극단적인 냉담함이나 애정 결핍, 심지어 성격상의 결함을 초래할 수도 있고요. 이러한 영향은 모두 평생 가는 거예요.""그리고 아티스트라고
말투며 내용이며 사람의 상상을 자극하곤 했다.‘한 번 하자니? 뭘 해?’신은지는 박태준의 날카로운 눈빛과 마주했다.박태준은 물론이고, 그녀조차 무슨 진유라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 못했다.진유라는 의미심장하게 윙크를 하고는 그녀를 향해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남들이 들을 수 없을 줄 알았던 목소리로 말했다.“한 번에 만 원인데 두 사람과 놀 수 있어. 게다가 잘생기고 몸매도 좋아. 무엇보다 기술도 좋단 말이지...”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곽동건은 진유라의 팔을 끌고 갔다.“아파...”진유라는 원래도 중심을 잘 못 잡았는데 곽동건에게 팔을 잡히니 마치 고속으로 회전하는 드럼세탁기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세상이 빙빙 돌아가는 것 같아 방금 누군가와 얘기했는지 생각할 새도 없었다.“이거 놔요, 나 좀... 토하고 싶어요.”그녀는 미간을 구기며 곽동건의 부축을 거절하려고 했다.하지만 그의 손을 밀어낸 후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도 전에 몸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넘어지려고 했다.다행히 곽동건은 계속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기에 상황이 좋지 않자 바로 그녀를 다시 안았다.정원에서부터 주차장까지 거리는 한참 되었다.곽동건은 진유라를 부축하며 한참 동안 걸었다. 하지만 그녀의 걸음은 느렸고, 게다가 이리저리 흔들며 중심도 못 잡았기에 곽동건은 아예 그녀를 들어 안았다.진유라가 살고 있는 곳은 신당동과 조금 멀었다.곽동건은 잠깐의 고민 끝에 대리기사에게 그의 집 주소를 알려줬다.곽동건의 집은 번화가에 있었는데 70평이 넘는 단독 주택이었다. 빛이 잘 들어오는 남향인 데다가 거실에서는 경인 시의 가장 큰 인공 호수가, 침실에서는 주택의 정원이 잘 보였다. 투명한 통유리에 원래도 넓은 집을 더 넓어 보이게 했다.곽동건은 진유라를 소파에 내려놓은 후 주방에 가서 그녀를 위해 술을 깰 수 있는 차를 끓였다.이때 진유라는 점점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그녀는 기괴한 자세로 소파에서 일어나고는 두 손으로 그가 건넨 차
“나보다 뭐든 다 잘한다고요?”곽동건이 눈썹을 씰룩거렸다.“뭐든 다 잘하는 남자가 겨우 만원으로 같이 게임을 놀아줘요? 게다가 자기, 여보라고 하며 불러줘요?”“...”진유라는 말문이 막혔다.만 원은 한 사람의 값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에 만 원이었으니 한 사람에 오천 원인 격이다.하지만 이 사실을 드러내면 분명 비웃음당할 게 뻔했다. 그리고 방금 게임할 때는 남자가 부른 애칭이 전혀 문제없는 것 같았는데 이제 돌이켜보니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그녀는 곽동건을 힐끔 바라봤다.차가운 얼굴의 그는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그런 얼굴로 그녀에게 ‘자기’라고 말하고 있으니 설레는 감정은커녕 오히려 찬물에 맞은 것처럼 바로 진정이 되었다.게임도 껐으니 괴물 죽일 때의 긴장감도 사라졌다. 그리고 방금 가셨던 취기가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진유라는 너무 피곤해 옆에서 휴대폰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곽동건을 신경 쓸 새도 없었다.“너무 피곤해요. 나 잘래요.”진유라는 발을 뻗어 신을 신으려고 했다. 분명 거기에 있었는데 막상 발을 내딛고 보니 바닥을 밟은 것이었다.“뭐지?”진유라는 몇 번이나 신을 신으려 했지만 빗나가지 않으면 아예 바닥을 헛디디게 되었다. 어쨌든 보일러 때문에 춥지는 않았지만 말이다.그러다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바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바닥에는 단단한 타일이 깔려 있어 고통을 완화하는 장치가 전혀 없었다.진유라는 넘어진 후 너무 아파 눈물까지 날 지경이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곽동건은 어이가 없었다.그는 진유라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녀를 미처 잡지 못했다.그녀가 넘어진 걸 보고 다급하게 웅크려 앉아 그녀를 부축하려 했다.“안 다쳤어요?”“움직이지 마요.”진유라가 목소리를 떨며 곽동건의 동작을 제지했다.“아파요.”“어디가 아파요?”허공에 뜬 그의 손은 몇 번이나 그녀를 어루만져주고 싶었지만 다친 곳이 어딘지 몰라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겉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