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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박시언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남자가 어떻게 이 사건의 데미지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걸 모를 리 있을까?

만약 심각했다면 아침에 그녀에게 했던 전화 한 통으로 절대 끝날 리가 없겠지.

김하린이 말했다.

“그래. 어차피 내가 먼저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당연히 네 뜻대로 해야지.”

“나랑 함께 기자회견에 나가주면 돼.”

“그게 다야?”

김하린은 어리둥절했다.

박시언이 지금 그녀를 이용할 기회를 흔쾌히 포기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는 수중의 신문을 내려놓았다.

“다정한 부부 사이로 지내야 해. 네 생각처럼 쉬운 일 아니야.”

박시언의 표정을 본 그녀는 곧바로 상대의 마음을 캐치했다.

하긴,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다정한 행동을 하는 건 실로 역겨운 일이니까.

이러니까 전생에 박시언도 그녀와 함께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걸 줄곧 거부했겠지.

그녀와 다정한 부부 사이로 보이는 것은 박시언에게 있어 너무 힘든 일이다.

“조건 없이 다 너한테 맞춰줄게.”

말을 마친 김하린은 후회가 밀려왔다.

박시언은 유미란에게 단아하고 우아한 드레스를 준비하라고 시켰다. 순백의 화이트 색상은 저도 몰래 소은영을 떠올리게 했다.

전생에 이 드레스는 아마 소은영이 입고 나갔을 것이다.

박시언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소은영을 위해 특별히 맞춤 제작을 해주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김하린이 떡하니 이 드레스를 입고 있다.

“난 이거 별로야.”

“참아.”

박시언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네가 클럽이나 드나든다는 이미지를 지우려면 반드시 우아하고 순수한 드레스를 입고 나가야 해.”

김하린은 입을 꾹 다물고 마지못해 드레스를 입었다.

이번 기자회견은 모건 그룹에서 새로 오픈한 부동산 매물 판매를 홍보하기 위해 개최한 행사였다. 유명 언론사들은 전부 자리에 참석했다.

김하린은 박시언을 따라 차에서 내린 후 그의 팔짱을 끼고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완벽한 미소를 지었다. 뭇사람들 앞에서 둘은 한없이 애틋한 부부 사이란 걸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한편 가까운 곳에서 소은영은 평범하디 평범한 샤넬 원피스를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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