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91 - 챕터 100
1418 챕터
제91화 조금 익숙하네
‘설마 그림이 가짜라는 걸 알아차렸나?’‘아닐 거야. 최수인 씨도 그 털보가 이 바닥에서는 알아줄 정도라고 했잖아. 게다가 구별하기도 힘들 테고. 아무리 발견한다 해도 이렇게 빨리 발견하지는 않았을 거야.’‘아닌가? 강민정이 사람을 찾아 감별해 봤나?’짧은 시간 동안 별의별 생각을 다 하던 권하윤은 그나마 담담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너 어디야!”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자 권하윤은 핸드폰을 귀에 멀리 가져갔다.“무슨 일로 전화했는지나 말해.”권하윤에게 사과할 기회를 주기 위해 전화를 한 거였는데 상대의 냉담한 태도에 민승현은 울컥해서 버럭 화를 냈다.“누군 뭐 너한테 전화하고 싶어서 한 줄 알아? 셋째 누나가 돌아왔어. 할아버지가 본가에 모이라니까 너도 빨리 와!”민씨 집안 셋째 민시영에 관한 얘기는 권하윤도 들은 적이 있었다. 모든 사람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자란 부잣집 아가씨.민씨 집안 어르신부터 숙부, 숙모, 언니, 동생 할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그렇게 사랑을 받고자란 민씨 가문 아가씨라면 도도하고 싸가지 없을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그녀의 성격 때문에 메이드들조차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소문도 자자하다.게다가 민시영은 민씨 가문에서 민도준과 가까이 지내는 유일한 가족이다.-민씨 저택권하윤이 저택 본관 거실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얌전한 규수의 웃음소리가 아니라 가족들과 화목하게 앉아 있을 때 나오는 거침없는 웃음소리였다.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권하윤마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권하윤이 도착했을 때 거실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중 맨 가운데 자리에 민시영이 앉아있었다.권하윤이 도착한 것을 보자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민시영이 몸을 일으키더니 그녀를 안았다.“승현의 약혼녀 권하윤 씨 맞죠? 드디어 만났네요. 전에는 제가 해외에 있는 바람에 두 사람 약혼식 축하주도 못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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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칼을 가지러 가다
민시영은 정면으로 민도준을 향해 달려갔지만 그녀를 보기 바쁘게 바로 몸을 피하는 민도준 때문에 허공을 안았다.열정적으로 달려갔는데 무시를 당하자 민시영은 손으로 허리를 잡으며 소리쳤다.“오빠! 또 이럴래?”“내가 어쨌는데?”민도준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왜 나 반겨주지 않아?”“더워.”귀찮은 듯 짤막하게 대답한 그가 긴 다리를 내디디며 앞으로 가는 바람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민시영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하지만 그녀가 뭔가 말하려고 하던 그때, 민도준 뒤에서 따라 들어오던 민지훈이 그녀의 어깨를 안으며 안으로 끌고 갔다.“자자, 누나, 내가 환영해.”“저리 비켜!”그 시각, 민도준이 점점 자기한테로 다가오자 권하윤의 머리는 몇 초간 동작을 멈췄다.특히 민도준이 그녀를 희롱하는 듯 입꼬리를 씩 올리며 “제수씨”라는 호칭을 부를 때는 그대로 넋이 나갔다.‘여기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데 설마 엉뚱한 말은 하지 않겠지?’권하윤은 걱정되는 마음에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민도준에게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민도준은 그녀의 표정을 본 체 만 체 하더니 상대가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자 그제야 여상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좀 비켜주지?”권하윤은 그제야 자기가 길을 막고 있다는 걸 발견했고 적잖이 당황했는지 고개를 떨구며 비켜났다.“죄송해요.”민도준이 나타나자 편안하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졌다.차를 마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만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찻잔은 이내 바닥을 보였고 방안에서는 오직 민시영과 민도준의 목소리만 가끔씩 울려 퍼졌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민시영이 7,8 마디를 하면 민도준은 그저 한 마디 대답 정도 하는 게 다였다.다행히 민지훈이 아예 대놓고 전화를 받고 있었던 덕에 분위기는 너무 어색하지 않았다.그런 분위기가 한참 동안 이어졌을 때 민지훈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동작에 사람들은 핸드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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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나랑 조금만 있자
“아!”놀란 듯한 비명소리가 원혜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그녀는 비틀거리며 민재혁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그의 다리에 꽂힌 칼과 점점 흘러나오는 피를 보는 순간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미, 미쳤어요?”부들거리며 소리치는 원혜정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채 민도준은 민재혁의 창백한 얼굴을 감상했다.“돌려주는 거야.”예전에 본가에서 벌어졌던 암살을 말하는 것임을 눈치챈 원혜정은 순간 찔렸지만 변명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민재혁이 그녀를 향해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 참.”자리에서 몇 걸음 뗀 민도준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최근에 형이 보낸 그 계집애 꽤 재밌더라. 뼈도 어찌나 단단하던지.”이러한 상황에서도 민재혁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태도로 낮게 한숨을 쉬더니 마치 말 안 듣는 동생을 대하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도준아, 너 또 뭘 오해했나 보네.”민도준은 그의 설명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그런데 뼈가 아무리 단단하다 해도 쇠보다는 못하더라.”주먹을 꽉 쥔 손이 올라가더니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행동이 이어졌다.“쾅 하고 때리니 바로 부서지던데.”민재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민도훈을 바라봤다.“그런데 형은 별로 신경 안 쓰지? 형이 기르던 개가 죽은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 아무렇지도 않지?”“도준아, 더 이상 죄짓지 마.”민도준은 그 말에 멈칫하더니 마치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듯 크게 웃었다.그리고 마치 눈물을 훔치는 듯 눈가를 닦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아주 보살님 납셨네. 형이 진짜 보살이 되어 나 교화시키길 바랄게.”미친 듯한 웃음소리는 그의 뒷모습과 함께 남쪽 별채에서 사라지자 정원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그 시각.“솨-”권하윤은 싱크대에서 찾주전자를 씻고 있었다.옷소매를 걷어올려 새하얀 팔이 훤히 드러났고 그 위로 물방울이 맺혔다가 흘러내리기를 반복했다.그러던 그때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앉았다.“아!”손에 있던 찻주전자가 손에서 빠져나와 바닥에서 산산조각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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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이제는 사람을 물기까지 해?
권하윤과 한참 동안 입을 맞추고도 만족이 되지 않았는지 권하윤 허리에 감고 있던 손은 점차 위로 올라갔다.물기 있는 손이 권하윤의 몸을 타고 올라가며 긴 물 자국을 냈지만 권하윤은 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저 몸을 버둥댈 뿐이었다.‘여기서 키스하는 것도 이미 간 떨어지는데 더 하려고 한다고?’순간 드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한 권하윤은 남자를 밀어낼 수 없자 아예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습!”그제야 권하윤을 놓아준 민도준의 눈에는 순간 검은 소용돌이가 몰아쳤다.“내가 너무 오냐오냐해줬나 보네? 이제는 사람을 물기까지 해?”“저 정말 차 끓여야 해요. 이렇게 오래 나왔는데 돌아가지 않으면 사람들이 의심할 거예요.”“그래서 뭐?”잔뜩 긴장해서 겨우 말을 내뱉은 권하윤과 다르게 민도준의 말투는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그 말에 권하윤은 말문이 턱 막혔다.민도준은 뭘 하든 손해 보지 않을 테지만 이 일이 만약 발각되기라도 하면 그녀는 매장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하지만 이 순간 그녀는 감히 화를 낼 수 없었다.민도준이 어디에서 묻혀왔는지 모를 피를 덕지덕지 묻혀온 것도 있지만 지금 그의 상태는 그녀가 보기에도 많이 이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속에는 마치 당장 사람을 공격하려는 듯한 맹수가 숨어 있는 듯 위험해 보였다.이 순간 그의 화를 돋울 수 없기에 권하윤은 할 수 없이 낮고 간질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들키기라도 하면 저 곧바로 민씨 집안에서 쫓겨날 거예요. 잘못하다간 할아버님께서 민씨 가문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저 죽일 수도 있다고요.”권하윤은 고개를 쳐들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제가 죽는 건 괜찮은데 그러면 앞으로 민 사장님 보지 못하잖아요. 앞으로 더 같이 있고 싶은데. 혹시 민 사장님은 제가 죽어도 괜찮아요?”민도준은 자기 품에 안긴 권하윤이 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걸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마치 태생이 남자 마음을 훔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어찌나 입에 발린 말만 골라 하는지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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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별 볼일 없는 집안
다행히 그 소리는 주위의 소리에 뒤덮여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오히려 사람들은 궁금한 듯 이성호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민시영에게 캐묻기 바빴다.“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이성호 교수님이 옥상에서 투신자살했거든요. 그리고 가족 모두가 가스 폭발 사고로 죽어 시신의 흔적도 찾지 못했대요.”민시영은 아쉬운 듯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교수님 딸이 엄청난 천재라고 하던데 그 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대요.”“이성호라면 나도 연주회를 들으러 많이 갔었는데 왜 자살했대?”민시영이 잠시 망설이는 사이 그녀의 어머니 장현정이 끼어들었다.“그 사람 여학생들과……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게 알려졌대요. 그런 일이 세상에 알려졌으니 얼굴 들고 살 수 없었나 보죠.”분명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모두 뜻을 알아차리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때 장현정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우리 시영이도 그때 이성호한테 배우려고 찾아가려고 했었는데 그런 일이 나버린 거 있죠.”“어머나. 교수라에 음악가라는 양반이 어떻게 그런 더러운 짓을 저리를 수 있대요.”“그러게 말이에요.”장현정은 공감하는 듯 민시영을 돌아봤다.“그때 시영이가 거기를 안 갔으니 망정이지 만일 그 짐승만도 못한 놈에게 잘못 걸리면 어쩔 뻔했어요.”어머니의 관심 어린 말투에 민시영은 별로 동의하지 않는 듯 뭐라 반박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이내 다른 화제로 넘어가는 바람에 끼어들 수 없었다.그 과정에 권하윤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있었다. 사람들이 본인 가족을 입에 담으며 모욕하고 비방하는 걸 들으면서도 그녀는 그저 테이블 아래에 놓인 손을 꽉 그러쥘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고통을 전해주었다.그 고통 덕분에 그녀는 끝까지 평온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그녀가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성호라는 세 글자를 거론 때마다 그의 음악적 성과를 다룸과 동시에 더러운 죄명을 들먹이게 될 거다.심지어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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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꿇어
밤 12시.민시영의 방 창가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굵은 팔이 창턱을 잡으며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하지만 민시영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매니큐어를 바르는 데 열중했다.“늦었네.”“저택의 경비가 너무 삼엄했습니다.”남자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꿇어.”이 시각 민시영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셋째 아가씨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상대를 모욕하는 듯 명령했다.케빈은 그녀의 명령에 아무 주저 없이 무릎을 꿇자 곧이어 그녀의 발이 케빈의 가슴을 밟았다.“예쁘게 발라.”케빈은 민시영 손에 들고 있던 매니큐어를 받아들고 그녀의 발톱을 칠했다.그의 능숙한 솜씨로 보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그 사이 민시영은 몸을 뒤로 젖혀 침대에 누웠다. 마치 치마 아래의 광경이 훤히 드러난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그때 그녀는 천장의 등불을 가는 눈으로 바라보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아무리 봐도 권하윤 왠지 낯익단 말이야.”“주의하지 못했습니다.”케빈의 짧은 대답이 불만이었는지 민시영은 옆에 놓여 있던 다른 한쪽 발로 케빈의 가슴을 차버렸다.그 힘은 결코 작지 않았지만 케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탄탄한 가슴 근육은 간단한 운동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실전과 연습을 통해 단련되어 강철 벽과도 같았다.때문에 민시영의 발길질은 그에게 그 어떠한 충격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를 찼던 민시영의 발만 아플 뿐이었다.이에 화가 난 민시영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케빈의 얼굴을 세게 내리쳤다.“그럼 네가 주의 깊게 본 게 뭔데?”바닥에 꿇어앉아 있던 케빈은 빨갛게 된 민시영의 손바닥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쳐들어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아가씨요.”그의 말에 민시영은 멈칫하더니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리고 케빈의 가슴을 밟고 있던 발이 점차 아래로 내려가다가 멈추더니 힘을 주었다.낮은 신음 소리가 케빈의 입술을 뚫고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는 고통이 섞여 있었지만 약간의 쾌락도 섞여 있었다. 고개를 든 채 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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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진퇴양“남”
잠시 후.권하윤은 조수석을 바라봤다.“그러니까 나더러 네 형의 주의를 돌리라고? 네가 서류 훔칠 수 있게?”“훔치다니! 나 민씨 집안 다섯째야. 그런 내가 뭘 훔치는 그런 일을 할 것 같아?”버럭 화를 내던 민승현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할아버지가 형이 적절한 파트너를 선택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셔. 이건 형을 관심해 주는 거라고.”할아버지 앞에서 어필할 기회가 많지 않은 민승현에게는 이번이 절호의 기회였다. 게다가 이건 할아버지가 그에게 내려준 임무였기에 그는 반드시 멋지게 완수할 생각이었다.문제는 1차 입찰 명단은 민도준의 금고에 있기 때문에 그는 사람을 시켜 민도준의 주의를 돌리고 그 사이 훔쳐볼 계획을 세운 거다.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권하윤이 된 거고.권하윤은 그의 계획을 들은 순간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자신만만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말문이 막혔다.“네 형이 무슨 내가 손가락 까닥거리면 나한테 올 줄 알아?”“당연히 아니지. 그러니까 할 말 있다고 불러내거나……”민승현은 스스로도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아니면, 음, 아! 아니면 형한테 물이라도 뿌려.”그 말을 들은 순간 권하윤은 화가 나서 웃음이 나왔다.“민승현, 너 정말 경영학과 졸업한 거 맞아?”그녀의 비아냥거림에 민승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왜 나만 이런 거에 신경 써야 하는데? 너도 생각 좀 하면 안 돼? 남들은 아내가 있으면 내조해 준다는데 내가 이제 너하고 결혼하면 뭔 소용 있겠나 싶다!”권하윤은 더 이상 민승현과 말도 섞기 싫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하지만…….‘민도준이 물론 민승현의 이 유치한 속임수에 넘어갈 리 없겠지만 내가 옆에서 도왔다는 걸 안다면…….’여기까지 생각한 권하윤은 바로 핸드폰을 찾았다. 이 상황은 반드시 민도준한테 미리 말해야 했다. 적어도 강요당한 거라는 말이라도.민승현을 배신한 건 솔직히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다.첫째는 이 일 자체가 원래 민승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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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약혼남을 도와 나 엿 먹이는 거야?
권하윤은 살아생전 자기가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두 남자의 지켜보는 가운데 권하윤은 할 수 없이 뻣뻣한 자세로 정수기 옆으로 걸어갔다.하지만 허리를 숙이는 순간 그중 한 줄기 시선이 뜨거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물 흐르는 소리가 멎자 권하윤은 물을 받은 컵을 들고 조심스럽게 민도준의 앞으로 다가갔다.“물드세요.”하지만 민도준은 의자에 느긋하게 기댄 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권하윤은 할 수 없이 허리를 숙여 물을 그의 앞까지 대령했다.민승현의 시선은 권하윤에게 가려져 두 사람의 상황을 볼 수 없어 그저 초조해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머릿속에는 온통 권하윤이 넘어졌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권하윤은 그를 도울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때문에 컵을 받쳐 들고 물이 쏟아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행동했다.그녀의 몸이 민도준 위에 엎드릴 정도로 숙여졌을 때에야 민도준은 손을 뻗었다. 하지만 물컵에 거의 닿으려던 순간 손을 다시 뒤로 뺐다.“아!”권하윤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놀라 몸을 흠칫 떨었고 그 바람에 컵이 기울더니 민도준 몸에 물이 쏟아졌다.남자의 가슴팍을 흥건히 적신 물자국을 보자 권하윤은 순간 얼어붙었다.엄연히 말하면 이 상황은 그녀를 탓할 수도 없었다. 만약 민도준이 갑자기 손을 뒤로 빼지만 않았다면 그녀가 놀라 물을 쏟는 일도 없었으니까.하지만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민승현은 기뻐서 하마터면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그는 다급히 앞으로 달려가 권하윤에게 화내는 듯 그녀를 꾸짖었다.“권하윤! 넌 어쩜 할 줄 아는 게 없어? 형 옷 다 젖었잖아. 얼른 화장실 가서 건조기로 말려 줘.”그는 마침 전에 미리 연습이라도 해놓은 듯 자연스럽게 대사를 쳤다.민도준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재밌는 듯 상황을 지켜봤다.그리고 권하윤이 속으로 민도준이 당연히 거절할 거라고 확신하던 그때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입을 열었다.“뭐, 그러면 부탁해 제수씨.”민도준의 승낙을 받자 민승현은 흥분을 주체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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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제수씨 피부 연해서 타면 안 좋아
온기가 느껴지는 민도준의 옷을 받아 든 권하윤은 상반신을 노출한 그를 보는 순간 분위기가 점차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갑자기 분위기가 닳아 오르기라도 할까 봐 그녀는 민도준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내내 고개를 숙인 채 건조기로 그의 옷을 말렸다.“웅웅”거리는 바람 소리는 마침 그녀를 도와 어느 정도 민도준을 속일 수 있었다.현학적인 설이 있는데 사람은 제3의 눈이 있어 시각적으로 감지할 수 없는 자기장 같은 걸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미치 지금처럼. 권하윤은 분명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등 뒤의 남자가 자기한테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등 뒤에 전해지더니 천천히 그녀를 감싸안았다.권하윤은 살짝 버둥거리며 낮게 경고했다.“그만해요. 저 옷 말리고 있잖아요.”하지만 그녀의 허리를 감싼 팔은 더욱 힘 있어졌고 웅웅 거리는 건조기 소리를 뚫고 남자의 가벼운 웃음소리가 정확히 그녀의 귀에 꽂혔다.“말릴 거 계속 말려. 나는 내가 할 거 할 테니까.”“…….”그 시각, 화장실 밖.민승현은 부들부들 떨며 금고의 문을 햔해 손을 뻗었다.전에 민도준이 금고를 열 때 훔쳐본 적 있어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너무 김장한 탓인지 여러 번 실패 후 겨우 정확한 숫자를 입력했다.민승현은 문을 열면서도 계속 화장실 방향을 주시했다.블랙썬의 화장실은 방음이 너무 잘되어 안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그저 계속 들려오는 건조기 바람 소리로 두 사람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걸 판단했다.손을 뻗어 입찰서를 가지려는 순간 그의 손은 이미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입찰서가 더러워져 민도준이 나중에 발견하기라도 할까 봐 그는 바지에 손을 몇 번 문지른 후에야 서류에 손을 댔다.하지만 안에 놓인 입찰서는 고작 하나뿐이었다.그 사실이 민승현은 믿기지 않았다. 입찰을 한 번만 진행하는데 고작 입찰서가 한 장 장뿐이라니 말이 안 됐다.보통 소규모 프로젝트도 약 2, 3 차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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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형이랑 뭐 했어?
권하윤의 눈동자는 심하게 움츠러들더니 민도준을 마치 미친놈 보듯 바라봤다.역시나 말이 너무 지나쳤는지 민승현도 이상한 낌새를 차렸다.그는 권하윤과 민도준을 번갈아 보면서 의심을 키웠고 그가 의심하고 있다는 걸 권하윤은 바로 눈치챘다.하지만 이런 상황을 뭐라 설명할 수도 없었다. 설명할수록 오히려 사실이 되어 버리니까.권하윤은 오히려 담담한 태도로 여상스럽게 말했다.“고마워요.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그리고 자연스럽게 민승현의 팔짱을 꼈다.민승현도 그제야 지금 떠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녀와 함께 민도준에게 작별을 고했다.하지만 블랙썬을 나오는 순간 그는 권하윤의 손을 뿌리쳤다.“씨발, 너 아까 형이랑 화장실에서 뭐 했어?”“네가 계획한 일이잖아. 그런데 그걸 나한테 물어?”권하윤은 눈썹을 살짝 치켜뜨며 되물었다.그 말에 순간 말문이 막힌 민승현은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난 너더러 형 시선을 딴 데로 돌리게 하라고 했잖아! 그런데 네가 그 안에서 형이랑 무슨 짓을 했는지 누가 알아! 그런 적 없다고 하지 마! 그런 짓 안 했으면 형이 왜 그런 말 했겠어!”“응?”권하윤의 맑은 두 눈은 서늘함을 띠고 있었다.“네 말은 지금 내가 너를 도와 도둑질을 도운 것도 모자라 네 형 꼬시기까지 했다는 거야? 내가 뭐 죽고 싶어 환장한 줄 알아?”“어…….”민승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어불성설이었다.민도준의 눈에 뵈는 게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를 꼬시려고 한다면 절벽에서 줄타기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민승현의 화는 곧바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채 권하윤에게 따져 물었다.“정말 아니야?”“네 형한테 물 쏟고 일부러 시간 끄느라 나 이미 충분히 힘들어. 더 이상 성명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네 마음대로 생각해.”권하윤은 민승현에게 의심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려 떠나갔다.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는 속으로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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