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신 시집간 내 남편이 재벌이라니?: Chapter 911 - Chapter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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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1화
깊은 밤, 만물이 침묵 속에 잠들었을 때.서궁에는 새로운 손님이 찾아왔다.송이수는 아무도 곁에 두지 않고 혼자 내전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송임월의 침대 앞에 도착한 그는 손으로 건조한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서지현도 똑같은 색깔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목이 메이기 시작했다.시간이 참으로 빠르지, 그때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던 그 남매가 벌써 중년이 되고 모든 것이 변해버렸으니.깊게 잠든 송임월은 꿈속에서라도 그 작은 베개를 끌어안고 있었다.송이수가 움직여 보았지만 송임월이 워낙 꽉 끌어안고 있어 전혀 꺼낼 수가 없었다.그는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알아, 내가 왕위를 지현이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송이수의 눈에는 다시 빛이 반짝였고 그의 표정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그는 송임월 침대 앞에서 혼잣말을 이어갔다.“난 정말 지현이가 네 딸이자 내 조카일 줄 몰랐어. 내 왕위는 너에게서 뺏어온 것이니 지금 너에게 돌려주는 것도 마땅하지만...”“하지만 임월아, 너도 알다시피 한 나라의 군주는 절대 가벼운 자리가 아니야. 남양의 군주는 실권이 없지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거든. 그래서 복잡한 국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해.”“혁준이는 어려서부터 내 옆에서 자랐으니 내가 손수 가르쳐준 것도 많아. 그리고 혁준이가 매번 잘 해냈거든. 하지만 지현이는... 슬럼가에서 살면서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했지. 심지어 남양에 처음 왔을 때는 자신의 이름도 쓸 줄 몰랐다고. 그런 지현이에게 군주의 자리를 넘겨줄 수는 없어.”송임월은 움찔하더니 몸을 돌려 송이수를 등졌다.어렸을 때 오빠와 사이가 틀어졌을 때도 송임월은 이렇게 그에게 등졌었다. 그럴 때마다 송이수는 한참을 달랬어야 했고, 결국 인형까지 하나를 선물해 줘야 송임월은 제대로 화가 풀리곤 했었다.송이수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지금 그가 아무리 많은 인형을 선물한다고 해도 송임월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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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2화
최연준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송혁준은 담담하게 웃더니 나지막이 말했다.“사실... 연준 씨도 진작 알고 있었겠죠? 서연 씨가 워낙 똑똑하니 이 일에 대해 얘기했었겠죠.”“연준 씨.”송혁준이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 얘기는 여기까지예요. 앞으로 다시는 꺼내지 않을 겁니다.”“만약 제가 즉위하고 다시 만나게 되면 우리는 군주와 서민의 관계로 변하겠죠. 그때면... 규칙대로 움직입시다!”송혁준은 웃으며 그와 악수하려 했지만 최연준은 망설이며 그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그렇게 송혁준의 손은 허공에 떠 있었다. 조금 무안하긴 했지만 충분히 예상했던 상황이었다.“괜찮아요.”송혁준이 손을 내려놨다.“하고 싶은 얘기는 다 해서 여한이 없네요. 연준 씨가 이렇게 잘 사는 것을 보니 정말 진심으로 기뻐요. 서연 씨를 소중히 여기세요, 아주 좋은 여자니까.”“저도 알고 있어요.”최연준이 덤덤하게 대답했다.“아드님은 앞으로 남양에서도 매우 존귀한 존재가 될 겁니다.”“전하...”“제가 지켜드릴게요.”송혁준이 나지막이 말했다.“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서연 씨와 아드님을 지킬 겁니다.”최연준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아무 생각도 없이 송혁준을 도와줬던 것뿐인데 그가 마음속에 이렇게 오래 기억할 줄은 몰랐다.“전하, 마음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최연준이 정색하며 말을 이어갔다.“앞으로 제 아들은 오성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겁니다.”“이렇게 거절할 필요는 없는데.”송혁준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거절이 아니라...”최연준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말이 나온 김에 전하께 제 속마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 전하를 도운 건 저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이니 이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그놈들이 잘난 척하며 사람 괴롭히는 것도 정말 못 봐주겠더군요.”“알아요, 다 알고 있어요.”송혁준이 말을 가로챘다.“하지만... 다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제 잘못이죠.”“연준 씨, 저는 어려서부터 남들과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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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3화
송혁준은 머리가 하얘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눈앞에는 웃는 얼굴의 최연준이 보였다.방금의 포옹은 우정의 상징이었으나 그에게는 평생 기억할 만큼 좋은 기억이 될 것이다.송혁준이 크게 웃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몇 미터 걸어 나가다 다시 뒤돌아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최연준은 그곳에 잠깐 서있다가 찬바람이 불어오자 심호흡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실내로 들어갔다. 아내를 품에 안고 그녀의 내음을 느끼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언뜻 비친 검은 그림자가 카메라 렌즈를 서서히 내렸다.......최연준이 집으로 들어오자 그를 맞이한 건 강서연의 모습이 아닌 부엌에서 풍겨오는 향기였다. 그는 씩 웃으며 걸어들어가 바삐 돌아치는 이 작은 여인을 꼭 끌어안았다.“아!”강서연은 깜짝 놀라 그녀의 허리께에 감싸진 두 팔을 팡팡 쳐댔다.“기척 좀 내고 다녀요!”“여보.”“왜요?”“여보.”“왜 그래요?”“여보!”“미쳤어요?”강서연이 인상을 쓰며 손을 최연준의 이마에 갖다 댔다. 최연준이 크게 웃으며 그녀를 꼭 안았다. 그저 강서연을 부르고 싶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혁준 씨랑 하루 종일 얘기하더니, 왜 갑자기 이래요?”“서연아, 혁준 씨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알고 싶지 않아요.”“혁준 씨가 날 좋아한대.”“그래서, 그거 자랑하려고 온 거에요?”“네 생각이 어떤지 궁금해서.”강서연이 흠칫했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최연준은 구현수 행세를 할 때를 제외하곤 강서연을 속인 적이 없었다. 어떤 일이 있든 그녀만은 절대 속이지 않겠다고 했다.제법 약속을 잘 지키는 모양새였다. 송혁준에게 고백받은 일까지 강서연에게 알려주다니...강서연은 웃으며 조금 생각한 뒤 진지하게 대답했다.“혁준 씨 좋은 사람 같아요, 우리 사이를 망치지도 않고 오히려 나서서 지켜줬으니, 우리가 혁준 씨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최연준은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담담하고 따뜻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강서연이 다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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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4화
강서연은 어깨와 목을 주물렀다. 금방 걸음마를 뗀 최군형이 걷기 싫어졌는지 매일 엄마 주변만 맴돌았다. 최군형이 부쩍 살이 오른 지라 매일 최군형을 안고 있는 강서연은 죽을 맛이었다.최연준은 급히 강서연을 소파에 끌어다 앉히고는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강서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왜 혁준 씨가 싫지 않냐면... 혁준 씨는 정말 좋은 사람 같아서요. 김유정, 임나연 씨는 모두 다른 목적을 가지고 당신에게 접근했지만, 송혁준 씨는 정말 당신에게 진심이에요. 아무리 둔하다 해도 그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요.”“응? 어떻게 구분한 건데?”“송혁준 씨는 당신이 날 대하는 것처럼 당신을 대하니까요!”강서연이 주저 없이 대답했다. 최연준은 따뜻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며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결이 비슷한 사람끼리는 눈빛 하나로도 알아볼 수 있잖아요. 송혁준 씨는 김유정, 임나연 같은 사람들과 아예 달라요. 그리고 난 송혁준 씨가 당신을 좋아해도 상관없어요.”“왜?”“당신은 언제나 내 옆에 있을 거니까요! 이번 생에도, 다음 생에도, 다다음 생에도...”강서연이 몸을 돌려 최연준의 목을 끌어안았다.최연준은 순간 너무나 기뻐 머리가 멍해졌다. 그는 애틋한 눈길로 강서연을 쳐다보며 엄지손가락으로 강서연의 볼을 어루만졌다. 창문 너머로 별이 반짝였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모든 게 완벽했다.그런데 너무나 기뻐서였을까, 최연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언제나 네 옆에 있는다고? 여보, 자신감이 대단한걸?”“그게 무슨 뜻이에요?”강서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최연준이 순간 정신을 차렸다. 한기가 척추를 타고 온몸에 퍼졌다.강서연이 최연준의 손을 뿌리쳤다.“최연준 씨, 그게 무슨 뜻이에요? 자신감이 대단하다니?”“...”“나는 그 정도 사람이 못 된다 이거에요?”“아니, 그게 아니라...”“그럼 뭔데요!”강서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최연준은 후회막심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제 혀를 뽑아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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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5화
숙이는 몸을 벌벌 떨면서 두려운 눈길로 송지아를 쳐다보았다. 좋은 기회였다.계속 고집부렸다가 정말 그 약물을 맞기라도 한다면 큰일 날 터였다. 송지아는 이 약물로 그녀를 통제하려 할 것이고, 뜻대로 안 되면 약물을 과량 주사해 숙이를 처참하게 죽게 할 것이다.죽으면 안 돼, 숙이의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꿇어앉아 송지아에게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전하, 열다섯 살부터 전하를 보필하면서 갖은 일은 모두 겪어왔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지만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저도 사정이 있었어요!”“그래? 어떤 사정?”“윤씨 집안 아가씨가 제 동생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대신 옥이 언니와 저더러 증인이 돼 달라고...”“그럴 줄 알았어!”“폐하,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무엇이든?”“네!”송지아가 웃으며 그녀에게 편지봉투 한 장을 던져줬다. 숙이는 떨리는 두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편지봉투를 열었다. 어두운 불빛을 빌어 그녀는 사진 속의 사람을 유심히 살펴보았다.“혁준 폐하? 최연준 씨?”“눈썰미 있네. 무엇이든 다 하겠다고 했으니, 날 도와 이것만 좀 처리해 줘. 일이 성사되면 섭섭하지 않게 챙겨줄 거야.”숙이가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서지현은 머리가 흐리멍덩한 것이 마치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잠깐 사이에 그녀는 황궁의 보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남양왕이 직접 그녀에게 왕관을 씌워줬고, 공작과 백작들이 모두 그녀를 전하로 모셨다.과거 궁에서 그녀를 쉽게 봤던 시녀들도 지금은 그녀 앞에 납작 엎드린 채 아부하고 있었다.서지현은 이 상황이 썩 편하진 않았다. 그녀는 왕관의 보석들과 옷에 새겨진 수놓이들을 매만지며 믿을 수 없는 상황을 실감하고 있었다. 게다가 서궁의 정신 나간 임월 전하가 그녀의 어머니라니...서지현은 천천히 걸어가 송임월의 앞에서 몸을 숙였다. 송임월은 아직도 침대에 앉아 그 베개를 끌어안은 채 아가, 아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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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6화
얼마 지나지 않아 송임월의 약 먹을 시간이 돌아왔다.서지현은 특별히 윤정재에게 부탁해 송임월이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약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윤정재는 난처한 듯 아동용 약을 개발하는 연구원들을 불러왔다.덕분에 송임월은 특제 약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반딧불 모양에 달콤한 맛이 나는, ‘반딧불 에너지’라 불리는 약이었다.서지현은 시녀의 손에서 물컵과 약을 받아 들고는 웃으며 송임월에게 말했다.“반딧불 에너지 먹을 시간이에요!”“이렇게 오래 먹었는데, 언제 반딧불이로 변하는 거야?”“반딧불이가 되고 싶어요?”송임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지현이 송임월의 베개를 가리키며 말했다.“그럼 아가는 어떡해요?”그 말에 송임월은 표정을 굳히고는 급히 베개를 끌어안았다.“미안해요, 잘못 말했어요! 엄마, 엄마가 반딧불이로 변한다면 아이도 따라서 변할 거예요!”“진짜?”“네! 서궁에서 제가 제일 좋다면서요? 그런 제 말도 안 믿는 거예요?”송임월이 한참을 생각하다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믿어.”“그럼 어서 약 먹어요. 반딧불 에너지가 있다면 금세 좋아질 수 있을 거예요. 그래야 아가도 보호할 수 있고요. 그렇죠?”그 말에 설득된 송임월이 순순히 약을 먹고는 물까지 꿀꺽꿀꺽 마셨다. 윤정재는 물을 많이 마셔야 신진대사를 촉진해 약효가 더 빠르게 돈다고 신신당부했었다.서지현은 묵묵히 송임월의 곁을 지켰다. 어느새 송임월이 잠들었다.서지현이 궁전을 나섰다. 오후의 태양이 나른하게 대지를 비추고 있었다. 풀과 꽃들이 모두 내리쬐는 햇볕에 축 늘어진 채였다. 새들도 지쳤는지 똑같은 소리만을 뽑아내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뜨거웠다.서지현은 서늘한 정전에 앉아있었다. 다섯 명의 고용인이 그녀에게 부채질까지 해줬다. 그녀 옆에도 시녀 세 명이 서있었고, 앞에도 시녀 두 명이 꿇어앉아 그녀에게 과일을 먹여주고 있었다.갈증을 느낀 서지현이 손을 뻗자 옆의 시녀들이 웃으며 유리잔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서지현은 그들의 대우에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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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7화
하지만 감히 명령을 거스를 순 없다는 듯이 그들은 모두 물러갔다. 마지막 시위가 나가면서 내전의 문을 조심히 닫았다.서지현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있다가 모두 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석진이 웃으며 달려가 서지현을 안으려는데...“잠깐만요.”서지현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실 말씀이 있다면 거기서 하세요!”“응?”나석진이 어리둥절해졌다.‘또 뭐 하는 거야?’서지현은 몰래 나석진을 쳐다보았다. 이런 모습도 제법 재미있었다. 계속 놀리고만 싶었다.“지현아, 뭐 하는 거야?”“지현아? 지금 제 이름을 마음대로 부르시는 건가요?”“...”혹시나 송임월의 약을 잘못 먹은 게 아닐까 하고 나석진은 생각했다.“이제 그만해! 황궁에 한 번 들어오기도 쉽지 않아, 오늘은 혁준이 즉위식을 준비하느라 아버지와 함께 들어온 거야. 지현아, 시간도 없는데...”“어! 가만히 서 있어요!”“너...”“왜, 제 말이 우스워요?”나석진은 주먹을 쥔 채 솟구쳐 오르는 혈압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서지현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차라리 괜찮았으나, 방금 분명히 서지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장난치는 게 분명했다.“그래, 여기 있을게. 전하, 더 하실 분부라도?”“음... 난 속이 좁고 뒤끝도 있어요.”“뭐?”“처음 봤을 때 아저씨가 날 살인범 취급했었죠?”“아...”“병원에서 두 번째로 봤을 때는 날 비웃고, 내 머리도 눌렀고요. 내가 호텔에 있을 땐 시도 때도 없이 내 머릴 때렸잖아요!”“어...”“그리고, 헬기에서 남양 거주 증명서를 줄 때에도 던져서 줬잖아요? 그게 마침 내 머리를 명중했고요.”나석진이 얼굴을 감싸쥐었다. 190의 건장한 남자가 얼굴을 감싼 채 혼나는 모습도 볼만한 구경거리였다.“아저씨, 내 머리와 뭐 있기라도 한 거예요?”“그럼 말해, 어떻게 복수할 건데?”서지현은 나석진이 방심한 틈을 타 그의 곁에 다가가 섰다.“우리 사이에 무슨 복수에요? 아저씨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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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8화
나석진의 눈이 커다래졌다.“너...”어릴 적부터 금이야 옥이야 자라왔는데,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맞다니? 이럴 수가!나석진은 화가 나 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신난 서지현을 보니 화가 사르르 풀려버리고 말았다.“이렇게 말랐는데, 손힘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나석진이 미소 지었다. 서지현은 턱을 한껏 쳐들고 득의양양하게 나석진을 쳐다보았다. 이때 나석진이 서서히 서지현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서지현은 벽 한구석으로 몰려 있었다.나석진은 지난번처럼 한쪽 손을 벽에 짚은 채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그윽한 눈에 온통 그녀의 모습이 담겼다.서지현은 얼굴이 한껏 달아올랐다. 고요한 내전 속에 자기 심장 소리만이 울리는 것 같았다.“뭐... 뭐 해요? 전하 앞에서 무례하게!”서지현이 외쳤다. 하지만 나석진의 눈에 그녀는 그저 발톱을 세운 새끼 고양이처럼 아무런 위협도 없는 존재였다.나석진이 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전하, 방금 인사를 올렸잖아요!”“그래도 이건 무례한 거예요!”나석진이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매만졌다.“이것도 전하께서 주신 건데.”“네?”“혼사와 같은 일은 홀로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전...”“당연히 제가 해야죠!”서지현이 어리둥절한 사이 나석진이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그녀가 몸부림쳤지만 끄떡없었다. 나석진은 서지현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팍에 밀착시켰다.서지현은 그의 가슴을 퍽퍽 치며 고개를 돌려 환하게 웃었다.“전하, 황궁 생활이 불편하시죠?”“네...”“가요, 나가서 놀아요!”그 말이 끝나자 베개 하나가 나석진의 뒤통수를 명중했다.“아!”나석진이 짜증이 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어떤 자식...”하지만 베개를 던진 장본인의 얼굴을 확인한 뒤 나석진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꾼 뒤 나긋나긋하게 말했다.“어머니! 깨셨어요? 어머님 보러 왔다가 마침 전하를 만나 얘기하던 참이었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약은 계속 쓰고 있죠? 걱정 마세요, 윤 회장님은 제 이모부시니, 가장 좋은 약을 주셨을 거예요. 호전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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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9화
그녀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나석진을 쳐다보다가 서지현의 앞으로 달려가 자기 몸으로 두 사람을 떼어내려 애썼다. 나석진도 그녀 앞에서는 순순히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나쁜 놈! 나쁜 놈! 지난번에 우리 아가 괴롭힌 놈!”나석진은 말문이 막혔다. 방금 어머니라고 부른 건 다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서지현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엄마, 그게 아니라요, 아저씨는 날 괴롭힌 게 아니라... 그런데 잠깐, 아저씨를 알아요?”송임월은 정신이 오락가락해 종종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했지만 나석진더러 ‘지난번’의 나쁜 놈이라고 했다.서지현은 기쁜 나머지 소리 지를 뻔했다.“엄마! 윤 회장님 약이 효과가 있나 봐요,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어요!”“윤 회장... 아, 아니야, 윤 회장 아니야. 어릴 때 봤는데, 이 사람보다 윤 회장이 훨씬 잘생겼어!”송임월이 나석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석진은 순간 굳어버렸다. 자기 아빠보다 못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윤정재보다 못하다니! 송임월이 또 어떤 말을 뱉어낼지 벌써부터 무서워졌다.“흥, 나쁜 놈!”나석진을 흘겨본 송임월이 서지현의 팔을 이끌며 말했다.“나랑 가자... 저놈이랑 놀지 마, 나쁜 놈!”“풉...”서지현은 크게 웃으며 나석진에게 괴상한 표정을 지어 보인 후 엄마 뒤를 따라갔다. 18년 동안 느껴보지 못한 사랑이라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아저씨는 잠깐만 있어요... 어차피 다른 데 가지도 않을 테니까.’나석진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심호흡하고는 다시 궁전 밖으로 걸어갔다.본래는 서지현을 황궁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보통의 커플들처럼 데이트하려 했다.놀이공원에 가고 싶었다. 회전목마를 타는 그녀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태양 아래 서서히 녹아가는 콘 아이스크림을 먹고, 솜사탕도 먹고 싶었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는 영원히 그의 마음속에 박혀있을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은...나도훈은 아직도 송이수의 서재에 있었다. 아직 한참은 더 걸릴 것 같았다.갈 곳 없는 나석진은 황궁 속을 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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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0화
나석진이 허리를 숙여 여자의 모자를 벗겼다. 숙이였다!“너 얼굴이...”숙이가 슬픈 얼굴로 황급히 면사포를 써 얼굴의 상처를 가렸다. 나석진은 알겠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여기 말고, 다른 데서 얘기하자.”나석진이 숙이를 부축했다. 숙이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린 채 주춤거리며 나석진을 따라나섰다.두 사람은 바깥의 찻집을 찾았다. 주인이 숙이의 차를 식탁에 올려놓자 숙이가 본능적으로 이를 피했다.나석진은 인상을 썼다. 그녀의 얼굴에 생긴 흉터가 생각났다.“도련님... 저, 송지아 전하에게 잡혀갔었어요.”나석진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재판이 끝난 뒤 윤씨 가문에서 사람을 시켜 숙이와 옥이를 보호하게 했었다. 가연 왕후가 형을 선고받고, 옥이도 문제없이 빠져나왔는데, 숙이는 왜?“제 동생이 아직 병원에 있어서요. 어느날 집에 갔는데 송지아 전하 부하들이 거기 있었어요. 저도 그날따라 경호원을 데리고 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잡혀갔어요.”“그래서?”숙이가 면사포를 벗었다. 핏자국이 역력하게 드러났다.“이게 다 송지아 전하 짓이에요.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마약을 주사하겠대요... 그 말에 응하고서야 겨우 도망 나왔어요.”“어떤 일을 시켰어?”숙이가 사진을 꺼냈다. 최연준과 송혁준의 사진이었다. 정상적인 포옹이었지만 각도 탓인지 두 사람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나석진이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지만 이를 티 내지 않고는 물었다.“이게 다야? 혁준이는 나 씨, 윤씨 가문과 모두 친해, 매제와는 학교 친구이기도 하고. 친구 사이에 포옹은 별거 없잖아. 사진 한 장이 뭘 설명할 수 있는데?”“혹시... 모르세요? 혁준 전하 어떤 분인지 잘 아시잖아요.”“너...”“혁준 전하가 왕위를 계승한다면, 왕후를 맞아들이진 않을 거잖아요. 남양의 보수적인 분위기로 봐서 이런 국왕을 받아들일 것 같지도 않고요.”“그게 무슨 뜻이야? 혁준이가 국왕 자격이 없다는 거야? 네가 그런 걸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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