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시집간 내 남편이 재벌이라니?의 모든 챕터: 챕터 931 - 챕터 940
1068 챕터
제931화
나석진이 수술실에서 나와 VIP병실로 옮겨졌다.병실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있었는데 서지현이 유리창 밖에 조용히 앉아 병상에 누워있는 나석진을 보았다.그녀의 얼굴에 참담함이 드리웠다.그녀는 사람이 너무 아프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걸 지금 알게 되었다. 울지도 웃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은 채 그러 나무처럼 그자리에서 그를 바라보기만 할뿐이었다.일분일초라도 더 보기 위해서.머리속에서 나석진이 쓰러지는 장면이 계속 재생되었다.그때 그는 피범벅이 된 채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는데 품에서 힘들게 꺼낸 다이다몬드 반지를 그녀에게 줬다.“청혼... 하는 거야.”그가 피가 낭자한 입을 열어 불분명한 발음으로 말했다.“지현아, 무서워하지마. 나는 꼭 살아서... 너랑 결혼 할 거니까.”그의 말이 그녀의 마음 깊이 박혔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피가 말라붙어 굳어진 자신의 손을 들여다 보았다.이렇게 많은 피를 흘렸었나!서지현이 입술을 깨물며 울지도 어쩌지도 못하고는 다시 한번 병실에 있는 나석진을 보았다.그러다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아저씨, 배우니까, 연기 잘 하잖아요.”“그러니까 지금 연기하는 거죠? 맞죠?”옆에 있던 강서연이 눈물을 흘렸다. 다른 사람들도 서지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수술은 윤찬의 집도하에 진행되었고 순조롭게 총알을 빼냈지만 나석진은 이미 피를 많이 흘렸기에 아무리 지금 수혈을 한다고 해도 깨어나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했다.하지만 깨어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점점 더 위험해졌다.윤찬이 그들에게 다가와 낮은 한숨과 함께 말을 했다.“다들 가서 쉬세요. 저희 쪽에서 석진형님을 극진히 모시겠습니다.”최연준이 걱정스럽게 물었다.“그럼 언제 깨어나는 거야?”윤찬이 고개를 숙였다.“저도 몰라요...”“네가 어떻게 몰라!”윤정재가 버럭 화를 냈다.“이렇게 간단한 수술도 제대로 못하고, 우리 윤씨 가문의 망신을 네가 다 하는 구나.”“아버지!”윤찬이 억울한 듯 말했다.“아버지는 한의학
더 보기
제932화
반지는 그녀의 손에 있는 것과 한쌍이었는데 그저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만약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서지현이 반지를 꼭 쥐고는 나석진이 총에 맞은 채 힘겹게 반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던 모습을 떠올렸다.“그 사람은...”그녀가 입을 열어 무언가 물어보려 했지만 목이 막혀와 한마디도 내뱉을수 없었다.윤찬이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여겨 두루뭉술하게 말해줬다.“총알이 급소가 아니라 어깨에 박혔어요. 그리고 지금은 수혈도 한 상태라 금방 깨어날거에요.”“진짜요?”“네, 진짜.”“그럼 얼마나 걸리는데요?”“그게...”윤찬이 난처해졌다.나석진은 그에게 정확히 얼마나 걸릴지 알려준 적이 없었다.‘아, 진짜! 어려서부터 품행이 바르고 거짓말을 해본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하는 거짓말이 황실 사람을 속이는거라니...’윤찬이 코를 긁적이고 머리를 긁적이며 귀가 빨개져서 억지스럽게 말했다.“그냥 잠시 기절한 것 뿐이예요. 곧 일어날 거예요, 아마도...”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놓인 반지를 더 꼭 쥐었다. 다이아몬드의 딱딱한 겉면이 그녀의 손바닥에 아프게 파고 들었다.이렇게 딱딱하니 사람들에게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불리는 거겠지.서지현이 정신을 차리며 옅게 웃었다.“저기, 혹시 제가 들어가서 간병해도 될까요?”윤찬이 잠시 멈칫했다.‘이 대사는 시뮬레이션이 없던 건데...’하지만 나석진이라면 이 상황을 반겼겠지.“사실 간병하지 않으셔도 돼요.”윤찬이 그래도 일단 예의상 거절했다.“저희 병원에 전문적인 의사와 간호사가 많아서 석진형님을 알뜰히 보살필 겁니다. 그래도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잘 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말을 마친 윤찬이 발빠르게 달려가서 무균복을 하나 가져왔다.서지현이 간호사를 따라 옷을 갈아입으러 갔을때, 사무실에 도착한 윤찬은 나석진에게 문자를 보냈다.[석진 형님, 임무 완수했습니다. 전하께서 지금 직접 간병하러 가신답니다.][저기, 전 이제 이만 가봐도 되겠죠? 좀 이따가 수술도 있고, 회진도 해야
더 보기
제933화
송이수와 송혁준은 구치소에 도착했다. 철창과 강화유리 사이로 미쳐버린 듯한 송지아가 보였다.송혁준이 인상을 쓰며 교도관에게 물었다.“의사는 찾았어요?”“정신과 전문의 세 명을 불렀는데, 모두 지아 전하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심한 조울증 증세가 있고...”“그리고요?”“검사 결과,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합니다. 일명 사이코패스죠.”송혁준이 멍해졌다. 송이수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선천적, 후천적 원인이 한데 합쳐진 결과라고 합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해 더 큰 피해를 막는 것입니다.”송이수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눈빛에는 분노, 의문, 아쉬움, 체념 등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사이코패스는 불우한 가정에서나 나오는 거 아니었던가? 송지아는 어릴 적부터 가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금이야 옥이야 자랐는데, 사이코패스라니?하지만 송혁준은 조금 예상한 듯했다. 그렇다면 어릴 적 누나가 그에게 했던 행동들이 이해가 갔다. 사이코패스라서 그런 거였다.그는 좁은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네 벽면이 모두 희멀건 회색이었다. 침대 하나, 간단한 세면도구, 변기 하나가 그 방의 전부였다. 혼자 이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그것만으로도 이미 답답해 죽을 지경인데, 이곳은 침대 시트마저 회색이었다.송지아는 그 안에서 미친 듯이 발광하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 시트를 몸에 두르고는 상자를 아무렇게나 접어 왕관인 양 머리에 쓴 채였다. 그녀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가끔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기도 했다.교도관이 웃으며 말했다.“기분은 괜찮아 보여요. 자신은 곧 여왕이 될 테니 모두 처신 잘하라고 얼마나 말하는지 몰라요!”“혁준아, 네 누나가 이 모양인데, 별로 놀란 것 같지는 않네?”송이수가 고개를 돌려 송혁준을 보며 물었다. 송혁준이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예상은 했었어요. 어릴 때, 숙부님이 저희를 데리고 사냥하러 갔잖아요.”“응, 그랬지. 근데?”“다른 사람은
더 보기
제934화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목숨을 노렸으니, 목숨값을 톡톡히 치르게 해줄 것이다!송혁준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씁쓸하게 웃었다.‘나쁜 사람이 된 건가?’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착함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해치게 될 것이었다.“폐... 폐하!”교도관이 그를 보고 깜짝 놀라며 급히 인사했다. 송혁준이 담담하게 물었다.“송지아 말인데요, 약은 먹나요?”“그게... 전 폐하께서 별다른 말씀이 없으셔서, 아직은 의사도 약도 제공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제가 잘 말해볼까요?”“숙부께서 의사를 찾지 않으셨다니, 그럼 그대로 두죠. 쓸데없는 힘은 들이고 싶지 않네요.”“하지만...”교도관이 어리둥절해졌다. 그럼 친누나더러 계속 이렇게 살라는 건가?송혁준이 그를 향해 씩 웃어 보이고는 떠났다.송임월이 병들었을 때, 가연이 찾은 의사 중 그 누구라도 진실을 말한 이가 있었는가?송혁준이 구치소를 나섰다.날씨가 너무나도 좋았다.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고, 하늘은 파랗게 물들었다. 여름 냄새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길가의 나무들도 더욱 푸르러진 듯했다.송혁준이 문득 나석진을 떠올리고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려 할 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혁준아, 나 안 되겠어.”......서지현은 VIP병실에 들어온 뒤로 나석진을 극진히 간호했다. 나석진은 여자 친구를 구하려다가 어깨뼈에 총상을 입고 중태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 척 연기하고 있었다. 서지현이 VIP병실에 들어와 그를 간호하게 되자 그는 소설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이 되고 말았다.며칠이 지났다. 나석진은 뒤척이지도 못한 채 뻣뻣하게 그곳에 누워있기만 했다.‘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하지만 지금, 그는 더 이상 못 할 것 같았다.“혁준아, 나 더는 안 되겠어. 이렇게 매일 누워만 있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그래서, 계속할 거야? 서지현 씨 주의를 끌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해? 맞다, 전에 말한 세습제 폐지, 나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혁
더 보기
제935화
서지현은 조심스레 나석진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콧대 쪽이 확실히 부어올라 있었다. 그녀는 다시 나석진의 얼굴을 살짝 눌러보았다.나석진은 아팠지만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동안의 연기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지금 같은 상황에선 무슨 일이 있어도 참아야만 했다.서지현은 한숨을 쉬며 그의 옆에 앉았다. 그녀의 커다란 눈에는 슬픔과 확신이 함께 들어있었다. 그녀는 나석진이 다시 깨어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아저씨, 사흘이나 누워있었는데, 이제 일어날 때도 되지 않았어요? 어제 윤 선생님이 수술은 아주 잘 됐다고 했어요. 곧 깨어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마취가 조금 심하게 됐대요. 하, 이런 마취과 의사는 또 처음 봐요! 아저씨, 마취가 심하다 해도 이젠 사흘짼데, 정말 일어날 때가 됐어요... 오늘 오후에 깨어나는 거로 약속해요, 오늘 날씨가 정말 좋아요, 아저씨가 깨어나면 함께 밖에 나가 산책해요!”그 말을 듣는 나석진의 심정은 더할 나위 없이 달콤했다.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그녀를 품에 안고 마음껏...그 생각을 하자 나석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그 모습을 본 서지현은 혹시 잘못 봤나 하고 급히 나석진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나석진의 심장박동이 가빠졌다.서지현이 중얼거렸다.“잘못 본 건가?”나석진은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곽보미가 이 광경을 본다면 식물인간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손뼉 칠 것이었다.서지현이 떠났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지만 그녀의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석진은 눈을 뜨고 상황을 관찰하고 싶었지만 혹여나 들통나 서지현을 화나게 할까 봐 겁이 났다.‘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서지현이 외출하면 곽보미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볼 참이었다.“아저씨.”이때 귓가에 서지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석진은 깜짝 놀랐다. 눈을 떴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서지현이 나석진의 옆에 뭔가를 내려놓았다. 이어 물소리가 들렸다.“며칠 동안 씻지도 못했는데, 몸이라도 닦아줄게요
더 보기
제936화
“아저씨, 나석진 씨, 빨리 깨어나요. 아저씨가 깨어나면 반지를 끼워줄게요. 아저씨가 어딜 가든 따라갈 거예요, 절대 안 헤어질 거예요!”나석진은 뛸 듯이 기뻤다. 연기를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얌전히 있어요, 다 닦으면 시원할 거예요.”서지현이 계속해 나석진의 몸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복근을 지나 점점 더 밑으로 향했다.나석진은 참지 못했다.지난번 손을 다쳤을 때도 서지현이 몸을 닦아주었지만, 그때는 재빨리 이불로 아래를 가렸기에 그녀가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지금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있어야 했다.“응?”서지현이 어리둥절해졌다. 천천히 솟아오르는 그곳을 보며 서지현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이... 이게 무슨 일이지?지금껏 그녀가 어떤 말 하든 아무 반응이 없었는데?서지현이 눈을 도르르 굴렸다.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아저씨! 아저씨! 내 말 들려요?”나석진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아저씨! 말 좀 해봐요!”급해진 서지현이 나석진의 얼굴을 약하게 때리기 시작했다.‘망했다, 정말 들통났어...’그가 눈을 감고 대책을 생각하고 있을 때, 서지현이 핸드폰에 맞았던 그의 코를 건드렸다.원래도 아팠는데 예고도 없이 맞았으니, 그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질렀다.“응?”서지현이 놀랐다.나석진은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눈을 뜨고는 몽롱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최대한 허약한 목소리로 물었다.“여... 기가 어디야?”서지현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나석진은 천천히 얼굴을 돌려 힘겨운 척 씩 웃어 보이고는 말을 이었다.“지... 현아, 너... 너 괜찮아?”“드디어 깨어난 거예요?”크나큰 기쁨이 서지현의 이성을 잠식시켰다. 그녀는 이 모든 게 얼마나 불합리한지는 생각하지 않은 채 나석진이 깨어났다는 사실에만 몰두해 있었다.“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울지...마...”“아저씨가 다시는 못 깨어나는 줄 알았다고요!”
더 보기
제937화
하필이면 이때, 핸드폰 화면이 밝아졌다. 윤찬이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고 시간이 멈추는 것 같았다. 서지현과 나석진은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고는 동시에 핸드폰을 낚아챘다.그러나 나석진이 상처를 입은 탓에 핸드폰은 서지현의 손에 들어갔다. 안면인식이라는 것을 안 그녀가 핸드폰을 나석진의 눈앞에 갖다 대자 잠금이 풀렸다.서지현은 나석진에게서 멀리 떨어져 메시지를 들여다보았다. 나석진이 힘겹게 일어나 그녀를 제지하려 할 때, 그녀는 이미 모든 메시지를 전부 읽은 뒤였다.[형, 이제 깨어날 때도 되지 않았어요? 지현 전하가 얼마나 걱정하는데, 너무 오래 버티는 거 아니에요? 연기를 해도 다른 병원을 찾아요. 총알 빼내는 것쯤은 작은 수술인데, 사흘씩이나 못 깨어났다는 게 알려지면 저희 의술이 안 좋은 게 아니냐, 그런 얘기가 나온단 말이에요! 맞다, 이건 마취과 의사 때문이라고 했으니, 괜히 다르게 얘기하지 마요!]나석진이 굳어졌다. 서지현은 핸드폰을 흔들거리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나석진은 급히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아, 어깨 아파...”“어깨가 아파요, 등이 아파요?”“응?”“사흘씩이나 누워있었는데, 등에 굳은살은 안 생겼어요?”나석진이 억지로 웃으며 서지현을 쳐다보았다. 고양이 같던 서지현은 이제 날카로운 발톱을 자랑하는 호랑이가 되어있었다.이내 병실에 고함이 울려 퍼졌다.“나석진!”나석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진짜 망했다.“사흘 동안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요? 당신이 못 깨어날까 봐 얼마나 자책했는데...당신이 못 깨어나면 나도 확 죽어버릴 거라고 했다고요! 그런데 연기였어요? 이게 재미있어요?”“아니, 내 얘기 들어봐, 내가 다 설명해줄게...”나석진은 울고만 싶었다. 그는 얼른 서지현의 손을 잡았다. 이제 서지현은 ‘설명 따위 필요 없다’며 그를 밀어낼 것이다. 그가 어깨를 맞은 척, 아픈 척 하면 어물쩍 넘어갈 수 있었다.“지현아, 내가 다 설명해줄게...”“그래요! 설명해봐요!”“...
더 보기
제938화
왜 생각대로 되지 않지?“얘기해요, 뭘 설명할 건데요?”나석진이 숨을 헉 들이마셨다. 서지현은 반지를 꺼내 그에게 던지고는 한 글자 한 글자 끊어가며 말했다.“거짓말쟁이!”“지현아, 그게 아니라... 난... 너무 과했어.”“변명하지 마요!”“네가 날 걱정해 줬으면 해서 그랬어! 이렇게 오래 할 생각은 없었어. 못 믿겠으면 찬이와 얘기한 걸 봐!”서지현이 눈을 크게 떴다. 기록까지 있다고?나석진은 아차 싶었다. 아무리 급해도 그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서지현은 차갑게 웃으며 윤찬의 메시지를 하나도 빠짐없이 확인했다. 나석진은 혼이 빠진 듯 침대에 앉아 천천히 한쪽으로 고꾸라졌다.“연기하지 마요, 정말 아프다 해도 안 믿을 거예요.”“지현...”“이제 그만 갈게요. 몸조리 잘해요.”서지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나갔다.나석진은 돌아눕고 싶었지만 어깨가 아파 어쩔 바를 몰랐다. 힘겹게 몸을 돌리려는데, 침대 위에 뭔가 딱딱한 게 걸렸다.서지현이 던진 반지 한 쌍이었다.그는 반지를 꼭 쥔 채 찬찬히 관찰했다. 보면 볼 수록 완벽한 공예로 만들어진 보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보석마저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다.그는 짜증스레 반지를 베개 밑에 밀어 넣고는 눈을 감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사흘 뒤, 나석진은 퇴원했다. 원래 건강한 데다 윤찬의 의술, 윤제 그룹의 약까지 더해지니 엄청난 속도로 회복한 것이다. 상처 쪽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일상생활에는 문제없었다. 다만 최근 들어 풀이 죽어있을 뿐이었다.고용인들이 수군댔다.“도련님, 설마 지현 전하께 거절당한 건 아니겠지?”“그럴 리가! 온 남양의 여자들이 모두 도련님을 탐내고 있잖아.”“하지만 온 남양의 남자들도 지현 전하를 탐내고 있는걸?”“억지 부리지 마!”“억지가 아니야, 도련님 손가락을 잘 봐. 반지 하나는 약지에, 하나는 새끼손가락에 꼈잖아. 새끼손가락에 낀 반지는 하도 작아 절반밖에 끼지 못했고. 커플링인 게 분명해. 대체 누가 커플링을 혼자 낀단 말이야?”이때
더 보기
제939화
나석진이 눈을 반짝 빛냈다.“정말?”최연준이 피식 웃었다.“솔직히 딱히 도와주고 싶진 않아요, 돕는 입장은 우리인데, 뭐 부탁이라도 해야 해요?”“아니...”나석진이 말을 꺼내려다 멈칫했다. 지금은 그가 을이었다.“어떻게 도와줄 건데요?”“그건 모르죠.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주겠다 했지, 어떻게 할지는 스스로 생각해야죠. 우리가 지현이를 화나게 한 것도 아니잖아요.”그 말을 들은 나석진이 김빠진 풍선처럼 소파에 털썩 앉았다.‘그러게 오버해서는 안 됐는데...’나석진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러다 강서연의 핸드폰을 가지고 놀고 있는 최군형을 보자 뭔가 생각난 듯 눈을 반짝였다.그는 소파에서 튕겨 일어나 최군형을 끌어안았다.“어이구, 우리 조카!”최군형은 깜짝 놀라 그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강서연이 깜짝 놀라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군형아, 너 이렇게 잘생겼는데, 연예계 쪽은 생각 없어? 삼촌이 잘해줄게, 그런데 일단은 좀만 도와줘...”“형님! 제 아들을 이용하려고요?”“방금 말했잖아요, 방법만 생각한다면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돕겠다고.”강서연과 최연준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확실히 그들이 한 말이었기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최연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어떤 방법인데요? 군형이에게 연기라도 시키겠다는 거예요?”나석진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오빠...”“물론 주인공은 나야. 하지만 군형이가 중요한 역할을 맡아줘야겠어! 지현이는 내게 화났지만, 군형이는 좋아하잖아! 군형이라면 지현이를 불러낼 수 있을 거야!”“...”강서연과 최연준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괜찮은 방법인 것 같긴 했다.“오빠, 이 방법이 통한다고 확신해요?”“당연하지!”나석진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서지현은 정말 화가 난 게 아니라 삐친 것이었다. 진심을 보여준다면 서지현도 언제까지고 그를 모른 척 하지 않을 것이었다.“그럼 그렇게 하죠.”강서연이 작게 웃으며 최군형을 안아 들었다
더 보기
제940화
“자식, 나도 네 삼촌이야!”나석진이 최군형에게 가까이 가자 최군형은 얼른 손으로 나석진을 막았다.“아냐, 아니야!”최연준이 짓궂게 웃고는 아들을 받아들고 얘기했다.“군형아, 윤찬 삼촌은 똑똑해서 안 도와줘도 돼. 그런데 이 삼촌은 조금 멍청해. 아빠가 말했지? 동정심이 있어야 한다고.”“네!”“그럼 이 멍청한 삼촌을 도와주자, 어때?”최군형이 제법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매제!”“왜요?”“아니에요.”나석진이 이를 악물고 남은 몇 글자를 뱉어냈다.“정. 말. 고. 마. 워. 요!”......날씨 좋은 주말이었다. 강서연과 서지현은 유유자적하게 교외의 풀밭에서 산책하고 있었다.서지현은 별로 나오고 싶지 않았지만 최군형의 애교스러운 목소리를 듣고는 완전히 사르르 녹아 금세 약속을 잡았다.최군형은 곧잘 걸었지만 달릴 때면 조금 뒤뚱거렸다. 그는 넓은 풀밭에서 뛰어다니며 기분 좋은 듯 깔깔 웃었다.서지현의 눈은 계속해서 최군형을 쫓아다녔다. 그가 너무도 사랑스러운 모양이었다. 강서연이 서지현의 팔을 툭 치며 물었다.“지현아, 군형이가 그렇게도 좋아?”“당연하죠, 군형이를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네 아이도 분명 저렇게 예쁠 거야!”“언니...”“아, 잘못 말했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아이 얘기했네.”서지현이 강서연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빛만 보고도 서로의 뜻을 알아낼 수 있었다.서지현은 강서연이 나석진 때문에 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강서연도 서지현이 이를 알아챈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은 씩 웃고는 다시 천천히 걸어갔다.“아직도 화난 거야?”“아니에요.”“진짜?”“저 때문에 총까지 맞았는데요. 그다음이 어떻게 됐든 그건 사실이잖아요.”강서연이 씩 웃었다. 서지현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보아하니 나석진에게도 희망이 있었다.서지현이 입을 삐죽하며 민들레 홀씨를 털었다.“날 그렇게나 오래 걱정시켜서 화난 거예요! 내가 걱정한다는 걸 알면서도 안 일어났잖아요! 정말 너무...”“맞
더 보기
이전
1
...
9293949596
...
107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