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Chapter 81 - Chapter 90
855 Chapters
제81화
아마 어딘가의 구석에 숨어있을 것이다.하지만 그때, 백윤서가 커다란 화물차 앞에 서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오빠, 소월이에요.”전연우가 속도를 늦추었다. 정체불명의 차에 오르고 있는 장소월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세상에. 어떻게 모르는 사람의 차에 올라탈 수 있어요? 설마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죠? 우리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전연우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괜찮아. 상관할 필요 없어.”“정말 이렇게 놔둔다고요?”전연우는 운전에만 집중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화물차는 빠르게 달려 그들의 시선 속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백윤서는 차의 속도가 뚜렷하게 빨라지고 있음을 느끼고는 살짝 겁이 나 전연우에게 속도를 늦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화물차를 쫓고 있다는 생각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들이 십자로에 도착했을 때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전연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을 밟아 계속하여 달렸다. 하지만 코너를 돌고 나니 화물차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오빠... 우리 놓쳤어요. 이제 어떻게 해요?”백윤서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전연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너무나도 차가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싹하게 만들기까지 했다.‘장소월, 너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야!’...장소월은 백미러로 전연우의 차를 성공적으로 따돌렸음을 확인했다.그녀는 이번 기회에 전연우에게 자신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백윤서의 일로 그녀는 이미 상처를 받았다. 또다시 괴롭힌다면 그 아픔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불어날 것이다.그녀를 태워준 사람은 물건을 운송하는 기사님이었는데 그의 아내와 함께였다.두 사람은 모두 정이 넘치는 착한 사람들이었다.장소월이 아버지와 싸우고 어머니를 찾으러 간다는 말을 듣자 곧바로 그녀를 차에 태웠다.40여 분 뒤, 장소월은 한 낡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그들 부부와 작별 인사를 마친 후 그녀는 기억을 더듬으며 십자로를 건넜다. 지하에서 풍겨오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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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이곳은 오 아주머니가 밖에서 세를 맡아 살고 있는 월세 몇십만 원 정도 하는 집이었다.남쪽을 향하고 있어 채광은 아주 좋았다. 만약 오 아주머니의 이 방이 없었다면 그녀는 정말 길가에 나앉았을 수도 있다.이번은 두 번째로 이곳에 오는 것이었는데 첫 번째는 전연우가 몰래 백윤서에게 공주 원피스를 사준 것 때문에 왔었다.그는 종래로 그녀에게 사준 적이 없다.그녀가 발견한 뒤 난리를 피우며 자신에게도 사달라 요구했지만 전연우는 더더욱 그녀에게 윽박질렀었다.공주가 어떻게 그런 억울함을 견뎌내겠는가.장소월은 화가 나 홧김에 집을 나가버렸다.그때가 바로 처음 가출한 날이었다. 그녀가 백윤서의 치마를 갈기갈기 찢어버린 탓에 전연우가 그녀를 달래지 않고 화를 냈기 때문이었다.오 아주머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분노에 씩씩거리고 있는 그녀를 데리고 이곳에 왔었다.당시 그녀는 이곳 지저분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상류사회의 삶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으니 말이다.아주머니가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절대 이곳을 찾지 못할 것이다.이것도 나쁘지 않다. 대학 졸업은 못 하겠지만 밖에 나가 돈을 벌며 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장소월은 걸레에 물을 묻혀 먼지가 앉은 책상을 닦아내고 침대 시트를 간 다음 바깥 화분에 물을 주었다.일을 마친 뒤 그녀는 아주머니의 옷을 들고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상처에 물이 닿으니 또다시 통증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곳엔 뜨거운 물이 없어 찬물로 씻을 수밖에 없었다.이어 그녀는 누렇게 색이 바랬지만 깨끗한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아냈다.장씨 집안을 떠나니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자유가 느껴졌다.침대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땐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배에선 끊임없이 꾸르륵 꾸르륵 소리가 새어 나왔다.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면을 삶은 뒤 간단히 간장에 비벼 먹었다.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음에도 장소월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배를 채울 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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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역시 난 이모가 제일 좋아요!”장소월이 방긋 웃으며 앞으로 걸어가 오 아주머니를 껴안았다.그러고는 기대에 찬 얼굴로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도시락을 받아안고 작은 밥상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편히 잘 살면 되지 왜 뛰쳐나왔어요? 어르신과 도련님이 모두 걱정하고 있다는 거 모르는 거예요? 오늘 밤에만 여기에서 자고 내일은 돌아가요.”“날 설득할 필요 없어요.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요. 그들의 눈엔 난 아무런 소용도 없는 사람이니 걱정하지도 않을 거예요.”아주머니는 싱크대에 놓여있는 냄비와 간장을 발견했다. 그녀가 없으니 저토록 간략하게 먹은 것이다.고귀하신 아가씨가 왜 이런 고초를 겪어야 한단 말인가.오 아주머니는 가슴이 아파졌다. 어릴 적부터 그녀가 성장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으니 자신의 딸과도 같아 마음이 저릿해진 것이다.“아가씨, 점심으로 이걸 먹은 거예요?”장소월이 허겁지겁 탕수육을 집어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반찬거리가 없어 면을 삶아 먹었어요. 간장을 너무 많이 나서 좀 짜더라고요. 그리고... 이모, 이 간장 변한 거 아닌가요? 먹을 때 맛이 좀 이상하던데.”오 아주머니는 장소월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이마를 살짝 밀며 말했다.“유통기한도 안 봤어요? 먹고 배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요. 이제 먹지 말아요. 내일 내가 집에 데려다줄 테니까 어르신한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세요. 그러면 이번 일은 별 탈 없이 넘어갈 거예요.”장소월이 움직이던 젓가락을 멈추고 단호히 말했다.“전 이미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계속 가라고 등을 떠민다면 지금 바로 이 집에서 나가겠어요.”그녀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문밖을 향해 걸어갔다.아주머니는 다급히 일어서 그녀를 막아 세웠다.“돌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요? 설마 평생 이런 보잘것없는 곳에서 살려고요?”“왜 안 되는데요?”“이런 어지럽고 낡은 곳이 뭐가 좋다고요. 아가씨, 제 말 들으세요. 우리 함께 돌아가요, 네?”“이곳이 뭐가 어때서요? 이모까지 절 내쫓으면 전 정말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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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오 아주머니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장소월이 눈을 비비며 시계를 보니 아직 여섯 시, 해도 채 뜨지 않은 시간이었다.“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더 자요. 거의 다 했어요.”장소월은 등 뒤에서 아주머니의 허리를 끌어안고 아래턱을 그녀의 어깨 위에 살포시 얹었다. 나른하고 애교 많은 고양이와 같은 모습이었다.“무슨 맛있는 음식을 하는 거예요?”“기름 연기가 많이 나니까 나가요. 더러워지면 안 되잖아요. 세수 용품을 좀 사 왔어요. 아가씨의 집에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저급한 브랜드지만 일단 쓰세요. 오늘 밤 제가 가서 물건들을 가져올게요.”“저급한 브랜드면 뭐가 어때서요. 이모가 사 온 거라면 전 다 좋은걸요.”“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가서 씻어요. 이것만 다 하면 완성이에요.”“네.”장소월이 입고 있는 잠옷은 오 아주머니가 입던 낡은 옷이었는데 촌스러운 디자인이라 한눈에 봐도 지긋한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옷이었다.하지만 장소월의 몸에 걸쳐지니 더할 나위 없이 멋들어졌다.그녀는 발에 투명한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고 화장실로 들어갔다.세수를 마쳤을 때 오 아주머니는 밥을 먹을 시간도 없어 다급히 문을 나섰다.방 안엔 장소월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밥을 먹었다.떠나기 전 아주머니는 학교에 지각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하지만 그녀는 학교에 가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로 인해 퇴학당한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그녀는 많이 먹는 편이 아니라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조금 쉬고 난 뒤 그녀는 뭐 더 살 것 있나 주위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조금 전 아주머니는 그녀에게 10만 원을 주고 백윤서에게로 갔다.장소월은 에코백을 들고 긴 머리를 집게로 높이 얹었다. 손엔 오이 하나가 들려있었고 몸엔 여전히 오 아주머니의 낡은 옷을 입고 있었다.대체 누가 그 모습을 보고 부잣집 아가씨라고 예상이나 하겠는가.“아가씨, 어디로 가려고요?”장소월이 문을 잠그며 말했다.“주위를 좀 둘러보려고요. 아주머니는 뭘 하러 나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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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확실히 약간 어수선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너무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위생 상태가 서울 시내보다 좀 뒤떨어진 것뿐이었다.이곳은 개발을 거치지 않아 모두 구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거리엔 시장이 열려 있었는데 한 바퀴 돌아보니 물가는 꽤 저렴한 편이었다.이곳은 서울의 가장 끝자락이라 이 골목을 지나가니 넓은 바다가 나타났다.장소월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모래사장에 뛰어 들어가 눈을 감고 깊게 호흡했다.그녀는 슬리퍼를 벗어 던지고 맨발로 모래를 밟았다. 바닷물은 좀 차가웠지만 머리에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은 그녀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그녀는 바닷가에서 군데군데 보이는 조개를 주우며 천천히 걸어갔다.그때 그녀의 귓가에 노기등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봐. 당신 누구야? 여긴 내 구역이라는 거 몰라?”장소월이 몸을 펴고 뒤를 돌아보았다. 레게 헤어스타일에 진한 화장을 덧칠한 여자가 씩씩거리며 그녀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팔뚝엔 문신까지 그려져 있었는데 만만치 않은 여자 두목 같은 모습이었다.장소월이 무슨 상황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여자가 그녀의 손에 들린 물건을 확 낚아챘다.“넌 어디에서 온 촌년이야? 왜 처음 보는 얼굴이지? 이 가방엔 뭐가 들어있어? 나한테 갖고 와!”“난...”“됐어!”여자는 장소월의 에코백을 거꾸로 들고 안에 있는 물건을 탈탈 털어냈다.“다 쓸데없는 것들이네. 역시 촌년은 촌년이야.”엽시연은 카드놀이에서 진 대가로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게 된 것이다.그것 때문에 화가 났던 터에 마침 화풀이 할 먹잇감이 나타난 것이다.장소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물건과 에코백을 줍고는 그녀와 충돌하기 싫은 마음에 곧바로 자리를 뜨려 했다.하지만 상대는 호락호락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내가 너한테 가라고 했어?”그 말투는 조폭이나 다름없었다.장소월이 물었다.“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엽시연은 손에 들고 있던 삽을 그녀에게 던지며 말했다.“날 만난 건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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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엽시연, 인대호, 너희들 또 난동을 피우는 거야?’돌연 먼 곳에서 살집이 퉁퉁한 중년 남자가 슬리퍼를 신고 야구방망이를 든 채 걸어왔다.그는 장소월에게 다가가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걱정스레 물었다.“아가씨, 저놈들이 괴롭힌 거예요?”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엽시연이 못마땅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남자는 장소월을 알고 있는 듯 또다시 물었다.“아가씨가 바로 오 아주머니가 서울에서 데려온 사람이에요? 이름이... 소월이라고 했던가?”“장소월이요.”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장소월이었어요. 오늘 오 아주머니가 가기 전 아가씨를 잘 지켜달라고 나한테 신신당부했거든요. 아까는 너무 바빠 신경 쓰지 못했어요. 이제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있는 한 이놈들은 아가씨한테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할 거예요.“시연아, 너 여자애가 왜 이렇게 사납게 하고 다녀! 그리고 너희들, 자꾸 수업 땡땡이치고 몰려다니며 양아치 짓 할래? 다들 빨리 돌아가. 나한테 혼나기 전에.”엽시연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이 뚱땡이 아저씨야, 왜 우리가 하는 일에 끼어드는 거예요? 오지랖 부리지 말고 가던 길 가세요. 나이 먹고 어린 여자나 탐하는 꼴이라니. 흥.”“너 뭐라고 했어? 한마디만 더 하면 네 아빠한테 다 이를 거야.”“진짜 재수 없어.”엽시연이 장소월을 쏘아보며 말했다.“거기 촌년, 너한테 한 말이야.”“대호야, 물건 챙겨, 우린 다른 데로 가자.”인대호 무리 남자들이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챙겨 엽시연을 따라 자리를 옮겼다.장소월이 말했다.“고마워요. 아저씨가 없었다면 큰일을 당했을 거예요.”“뭘 이런 간단한 일로 고맙기는. 나와 오 누님은 오랫동안 친구로 지낸 사이예요. 앞으론 이곳에 오지 말아요. 저놈들이 종종 이곳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기 때문에 위험해요. 밖에 나가 구경하고 싶다면 내가 다른 곳에 데리고 가줄게요.”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럴게요.”장소월은 바닥에 떨어진 조개를 주워 에코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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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그들도 이곳 식당에 들어오는 듯했다.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열리더니 그들이 우르르 줄지어 들어왔다.“와. 이게 대체 몇 가지야. 평소 우리한텐 왜 이렇게 잘해주지 않은 거야! 뚱땡이 아저씨 사람 차별하는 것 봐.”“배고파 죽겠어. 나한테 젓가락과 그릇을 줘.”“넌 손 없어?”“아가씨... 저쪽으로 좀 가봐요. 나 못 들어가겠어요.”“...”장소월은 의자를 움직여 그에게 길을 내주었다.엽시연은 다리 하나를 올려 그녀의 맞은편 의자를 밟고는 다짜고짜 그녀 앞에 놓여있던 탕수육을 갖고 와 게걸스레 먹기 시작했다.“술이 왔어.”마른 몸집의 남자가 맥주 한 상자를 안고 들어온 뒤 발을 휘저어 문을 닫았다.“내가 해달라고 할 땐 절대 안 해주더니. 너 정말 대단한 여자네!”엽시연이 돌연 장소월을 보며 말했다.“이봐, 촌년, 너 아직 어디에서 왔는지 말하지 않았어. 외지 사람이야?”노란 머리 남자가 말했다.“형님, 딱 봐도 곱게 자란 모범생 같은데 너무 겁주지 말아요.”“왜? 마음 아파? 저렇게 예쁜 여자가 널 거들떠나 볼 것 같아? 저런 여자는 도와줘도 소용없으니까 입 다물어.”장소월이 주전자를 갖고 와 컵에 물을 붓고는 한 모금 들이킨 뒤 컵을 내려놓았다.“난 다 먹었으니까 천천히 드세요.”그녀가 일어서려고 할 때 손 하나가 그녀의 다리를 눌렀다.“급할 게 뭐가 있어요. 좀 더 얘기하다가 가요.”장소월은 그들이 두렵다고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나쁜 사람인가? 그저 상대하기 껄끄러운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진정한 나쁜 사람은 그들과 다르다.그들은 그녀를 겁에 질리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딘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 느낌은 그녀가 처음으로 가져보는 것이었다.“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그녀의 옆에 앉아있던 노란 머리와 녹색 머리 남자 두 명이 그녀의 몸을 훑으며 빙그레 웃고는 말했다.“형님, 이 아가씨는 형님을 무서워하지 않는데요? 이제 형님도 한물갔네요.”“입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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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죄송해요. 천천히 들어요. 전 바쁜 일이 있어 먼저 갈게요.”장소월은 혼자 지내는 데에 익숙해져 친구라는 건 만들지도, 믿지도 않았다.이번엔 그들도 가는 그녀를 잡지 않았다.장소월이 방을 나섰을 때 현광원이 앞치마를 입고 손엔 요리 한 접시를 든 채 안에서 걸어 나왔다.“아가씨, 이렇게 빨리 다 먹은 거예요? 그놈들이 또 괴롭혔어요?”“아니요.”“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사실 저들도 그리 나쁜 놈들은 아니에요. 그저 장난을 치고 싶어 하는 것뿐이에요.”“저도 알아요. 전 물건을 살 게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알았어요. 내일도 밥 먹으러 와요. 돈은 받지 않을 테니까 마음껏 먹어요.”장소월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장소월은 그곳을 떠난 뒤 몸에 맞는 옷 몇 벌과 신발 몇 개를 샀다. 변방 지역이라 가격은 별로 비싸지 않았다.그녀는 이곳에서 오랜 시간 머무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그녀는 줄곧 현광원의 식당에서 종업원직을 맡아 일했다. 식사 제공에 하루 일당 십만 원이었으니 꽤 괜찮은 보수였다.낮엔 손님이 별로 없어 한가했고 밤엔 비교적 바삐 돌아쳐야 했다.처음엔 너무 힘들어 허리, 다리 어느 곳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점차 익숙해졌다.그녀는 지금까지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음에도 그리 어려워하지 않았다.그동안은 가질 수 없었던 평온하고 자유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감시도 없고, 통제도 없고, 안락함도 없고, 부드럽고 푹신한 침대도 없고, 예쁜 옷도 없다...장소월은 그렇게 천천히 일반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본래 하얗고 가냘팠던 손은 물에 담그고 설거지를 한 탓에 껍질이 벗겨지고 거칠어졌다.오 아주머니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장소월이 이곳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마 백윤서를 보살피느라 바쁠 것이다.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오 아주머니는 절대 그녀가 이런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이번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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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장표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이봐, 장소월 맞지? 주문할 테니까 이쪽으로 와.”장소월은 그릇을 든 채 못 들은 척 그녀와 비슷한 나이의 누군가를 쳐다보았다.그 사람의 이름은 이혜성이었는데 그녀 역시 이곳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장소월은 고소한 듯 웃고 있는 이혜성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몸을 홱 돌려 걸어갔다.“이봐, 주문하겠다고 한 말 못 들었어?”장소월은 접시를 내려놓고 손을 깨끗이 씻은 뒤 메뉴판을 들고 그들에게 걸어갔다.“무슨 요리를 주문하시겠습니까?”그녀가 기록하려 펜과 작은 공책 하나를 가져왔다.다섯 쌍의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향긋한 먹이를 보는 허기진 늑대와도 같은 역겨운 눈빛에 배 안에 있는 것 모두를 토해낼 것만 같았다.그중 한 명이 말했다.“아가씨, 돈이 부족한 거야? 부족하면 나한테 말해. 이 오빠한텐 돈이 넘쳐나니까.”그가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상 위에 올려놓고는 안에서 50만 원을 꺼냈다.“오늘 오빠와 놀아준다면 이 돈은 네 거야.”돌연 귀를 찌르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혜성이 낸 것이었다.“죄송합니다. 전 이곳의 임시 직원일 뿐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메뉴를 더 주문하시겠어요? 하지 않겠다면 전 가보겠습니다.”“뭐가 그리 바쁘다고 그래. 지금 이 식당에 손님은 우리밖에 없잖아. 얼른 앉아서 오빠들과 술이나 마시자.”뚱뚱한 남자 한 명이 파란색 의자를 자신의 옆으로 끌어당겼다.장소월은 그의 말을 무시해 버린 채 몸을 돌렸다.그때 남자가 책상을 힘껏 내리쳤다.“제기랄, 간사한 년, 고상한 척하기는. 진짜 학생이면 왜 이런 곳에서 그릇이나 나르고 있는 건데!”장소월은 몇 걸음 걷다가 멈춰 선 뒤 호주머니에서 분홍색 다이아몬드가 박힌 고급 브랜드 지갑을 꺼내 학생증을 빼내고는 그들의 눈앞에 가져갔다.“아저씨들, 똑똑히 보세요. 이건 제 학생증이에요. 학생증 사진 속 학생이 바로 저고요. 전 제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에요. 아시겠죠? 그러니까 앞으로 헛된 말을 지어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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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남자가 다른 한 손으로 장소월의 옷을 낚아챘다. 단추를 푸니 안에 있던 하얀색 나시가 드러났다.순간 모든 사람들의 눈빛이 번뜩였다.장소월은 옷깃을 꽉 움켜쥐고 힘껏 그의 손목을 깨물었다.그 통증에 남자는 곧바로 손에 힘을 풀었다.드디어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장소월은 온 힘을 다해 밖으로 도망쳤다. 그때 어둠 속에서 그녀는 누군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목엔 은색 목걸이를 걸었으며, 한 손은 외투 호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엔 담배를 든 강용이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그 외에도 더 있었다. 백윤서, 엽시연...장소월은 백윤서가 이곳에 왜 왔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유를 막론하고 절대 그녀에게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강용은 고개를 숙이고 백윤서와 말하고 있었으니 아마 그녀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장소월은 다급히 반대 방향으로 집을 향해 도망쳤다.“제기랄, 그년 빠르기도 하네.”장소월은 멈추지 않고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도착하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한참 뒤에야 안정을 되찾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저녁 12시, 침대에 누워 잠들었던 장소월이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그녀는 꿈속에서 예전에 그녀를 괴롭혔던 변태 망나니를 만났다.애써 잊으려 했던 기억이 또다시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그때의 광경이 또렷이 눈앞에 그려졌다.그녀는 어두운 방 안에서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당시의 끔찍한 광경이 또다시 나타난 것이다...장소월은 오 아주머니가 집에서 가져다준 핸드폰을 꺼내 처음으로 전원을 켰다.문자 알림음이 끊임없이 울렸다. 거의 모두 강영수가 보내온 것이었다. 13일 동안, 백 개를 훌쩍 넘는 개수였다.대부분은 그녀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왜 답장을 하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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