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모든 챕터: 챕터 501 - 챕터 510
530 챕터
제501화
그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나상준은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듯이 차우미를 쳐다보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 나상준의 모습을 본 차우미는 말없이 입술을 달싹거리며 시선을 거두고 핸드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여덟 시 사십일 분이었다. 어느덧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상준 씨가 많이 피곤했나 보네.’어제저녁에 차우미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그녀 옆에서 그녀를 보살펴 준 뒤 오전에 다시 그녀를 호텔에 데려다주고 일하러 갔기에 나상준은 별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나상준은 아마도 호텔에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호텔에 도착한 뒤 허영우에게 전화해서 의사를 불러 달라고 하지 않으면 허영우더러 나상준을 병원에 데려가라고 할 생각이었다.허영우는 그들의 이혼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한 차우미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일에는 여러 가지 해결방법이 있다.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차우미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나상준도 아무 미동이 없었다. 차 안의 분위기는 조용했고 밖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아홉 시가 넘어 차가 호텔에 도착했고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차 문을 열어주자 나상준은 정장 외투를 들고 차분하게 차에서 내렸다.나상준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차우미는 그제야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린 나상준은 차우미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계단을 올라 호텔로 들어갔다.마치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처럼 서로 갈 길을 가는 모습이었다.차우미는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을 바라봤다. 나상준은 평상시대로 걷는 모습이었지만 차우미보다 키가 컸기에 그녀와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차우미는 그를 쫓아가지 않고 뒤에서 걸어가며 그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모습을 지켜봤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나상준은 차우미를 기다리지 않고 층수를 눌러 먼저 올라갔다.나상준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차우미를 바라봤다. 아무 감정도 담겨있지 않는 눈빛이었다.밖에 있던 차우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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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2화
이것은 차우미가 나상준과 이혼한 이후 처음으로 허영우와 하는 통화였다. 예전과 다름없는 허영우의 호칭이 귓가에 들려왔다.“허 비서님, 지금 회성이에요?”“네, 사모님.”차우미도 대략 예상했던 일이다. 허영우는 나상준의 옆에서 제일 인정 받는 비서였기에 허영우는 항상 나상준의 가는 곳을 따라다녔다.허영우의 대답을 들은 차우미는 마음이 놓였다.“그렇군요, 다름이 아니라 상준 씨가 지금 아파요. 허 비서님이 의사 선생님 좀 불러주세요.”“아프다고요?”허영우가 조금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냐하면 아까 오후에 나상준이 회사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그의 얼굴에서 불편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허영우가 놀라는 목소리를 들은 차우미는 그가 오늘 나상준을 못 만난 거라 생각했다. 만약 만났다면 발견했을 테니까.“네. 목소리도 갈라지고 안색도 안 좋아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입맛도 없는 것 같고 기침도 했어요.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상준 씨가 가려 하지 않아서 의사 선생님 불러 상준 씨가 정말 아픈 건지 확인해 봐요.”“그런 일이 있었군요. 지금 바로 의사 선생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네, 수고해요.”“아니에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사모님.”나상준과 이혼 하기 전과 별반 다름없는 허영우의 공손한 태도에 차우미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녀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제 더는 허영우에게 연락할 일이 없을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네.”대답을 마친 차우미는 전화를 끊었다.허영우는 일 처리를 잘하는 사람이었기에 그에게 상황을 전달한 차우미는 한 시름 놨다.차우미는 더는 나상준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오늘 저녁 밥 먹을 때 하종원이 했던 말을 회상했다.일이 난관에 부딪혔으니 해결해야 했다.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씻고 나면 일할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았다.그래서 차우미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기로 하고 방으로 돌아가 씻고 휴식을 취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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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3화
허영우는 핸드폰 연결음을 듣고 있었다. 나상준이 이내 전화를 받았고 나상준의 목소리를 들은 하성우는 깜짝 놀랐다.“대표님, 정말 아프신 거예요?”허영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상준은 차우미가 허영우에게 연락했음을 알았다.“응.”하영우가 마음을 졸이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지금 당장 의사 부를게요.”말을 마친 허영우가 전화를 끊으려 할 때 나상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부르지 마.”허영우는 멍해졌다.‘부르지 말라고? 이게... 무슨 뜻이지?’나상준의 말을 들은 허영우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이건 나상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닌 것 같았다.허영우가 이내 입을 열었다.“조금 전에 사모님께서 연락이 왔어요. 대표님께서 아프니까 의사를 부르라고 하셨어요.”잠시 멈칫하던 허영우가 계속 이어 말했다.“대표님, 정말 의사 부르지 않아도 돼요?”“응.”나상준이 확실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아파도 평소와 같이 이성적이었다.나상준이 대답을 들은 허영우는 나상준이 정말로 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그런데 왜일까?이건 나상준답지 않았다.처음으로 허영우는 나상준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나상준은 창문을 통해 어둠이 짙게 깔린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차우미에게 말해. 네가 출장을 가서 의사를 부를 수 없게 됐다고.”그의 말을 들은 허영우는 순식간에 나상준의 마음을 눈치챘다.나상준은 일부러 의사를 부르지 않고 병원에도 가지 않았으며 차우미를 걱정시켰다. 그는 차우미가 직접 자신을 보살펴주기를 바랐다.두 사람은 이혼했기에 어떤 일은 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허영우는 차우미와 별로 접촉한 적이 없었지만 차우미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매우 규칙적이고 예의를 차리는 사람이었다.예전에 나상준이 아플 때면 허영우에게 전화하지 않고 항상 차우미가 알아서 보살펴줬었다. 조금 전 차우미가 허영우에게 전화를 한 거로 봐서는 나상준과 자신은 더 이상 상관이 없는 사람이니 허영우가 알아서 하라는 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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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4화
차우미는 나상준에게 이런 습관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는 성격이 내성적이었고 말을 붙이기 쉽지 않은 것 같았지만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 아니었다.어떤 사람들은 성격이 괴팍하고 다른 사람과 만나는 걸 싫어했지만 차우미가 알고 있는 나상준은 괴팍하지 않았다. 나상준은 단지 함부로 웃지 않는 사람일 뿐이었다.허영우가 말한 점이 나상준에게는 없다는 것을 차우미는 기억했다.하지만 나상준이 언제부터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걸 싫어하게 됐는지 차우미는 의아했다.그녀가 미처 생각해 내기도 전에 허영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어느 방에 묵고 계시는지 아시나요?”일분일초라도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빨리 말하는 허영우의 말에 차우미는 하던 생각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몰라요.”“제가 문자로 방 번호 보내드릴게요. 사모님께서 가셔서 대표님 좀 잘 보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사모님.”말을 마친 허영우는 다급히 전화를 끊었다.통화가 끊긴 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핸드폰도 허영우의 다급함을 아는 것인지 뚜뚜 거리는 소리가 빠르게 느껴졌다.통화가 끊긴 소리에도 차우미는 한참을 멍해 있다가 핸드폰을 내려놨다. 핸드폰에는 문자가 두통 와있었는데 모두 허영우가 보낸 문자였다.차우미는 문자를 확인했다.[사우스 호텔, 39층, 3918.][그럼, 수고하세요. 사모님.]허영우는 호텔 이름과 나상준이 묵고 있는 층수, 방 번호를 그녀에게 보냈다.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하기 어려웠다.허영우가 보낸 간절한 문자를 보며 차우미는 그가 정말 방법이 없어 자신에게 연락한 거라 생각했다.아니면 허영우가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았을 테니까.허영우의 일 처리 능력을 차우미는 알고 있었다.차우미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창밖을 바라본 뒤 다시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원래 오늘 일찍 잠자리에 들려 했지만 그러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날 저녁 자신이 구매한 약과 어젯밤 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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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5화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차우미는 바로 거절했을 테지만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상준이었다.그는 그녀에게 위험한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어젯밤, 술에 취한 나상준의 모습에 그녀는 겁에 질렸었지만 오늘 그는 술을 마시지 않은 아픈 상태였기에 무서워할 이유가 없었다.생각에 잠겨 있던 차우미는 문이 열리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조금 더 흘러갔다.그녀는 생각을 멈추고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9시 37분이었다.정말 늦은 시간이었다.‘뭐야, 잠든 건가? 아니면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한 건가? 아니면 혹시 다른 사람과 함께 있나?’차우미의 눈살이 순식간에 찌푸려졌다. 그녀는 하던 생각을 멈추었다. 나상준의 병이 더 심각해지면 골치가 아팠기에 그녀는 손을 들어 초인종을 누르려 했다.이때,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차우미는 당황스러웠다.‘뭐야? 소리를 들었잖아?’문이 열리고 차우미가 반응하기도 전에 나상준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정신을 차린 차우미는 입술을 벌리고 무의식적으로 말을 하려 했지만 나상준의 모습을 본 차우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예전의 나상준은 양복으로 자신을 꽁꽁 감싸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차갑기 그지없는 양복을 벗어 던지고 샤워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방금 목욕을 마치고 욕실에서 걸어 나온듯한 모습이었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바쁘게 달려 나온 것인지 아니면 아파서 정신이 없어서인지 그는 허리의 끈을 대충 묶은 모습이었다. 헐렁한 가운 사이로 그의 가슴이 훤히 드러났고 가슴 복근이 선명하게 보였다.물기를 닦지 않고 바로 샤워 가운을 입은 것인지 그의 목과 가슴에는 온통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물방울들이 자연스럽게 그의 목과 가슴을 타고 점점 아래로 흘러내렸다.뚜욱, 뚜욱...머리카락도 젖어있는 게 닦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물이 그의 발아래로 떨어지며 사람의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소리를 냈다.생각지도 못한 나상준의 모습에 차우미의 얼굴이 빨개졌다.그녀는 재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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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6화
여태껏 본적 없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고 눈부셨다.나상준은 차우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매, 볼, 코, 입술 그리고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의 가늘고 긴 목도 아름다운 색상으로 물들어져 있었다.그는 아름다운 차우미의 모습을 보다가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그렇게 대답도 하지 않고 말없이 안으로 들어갔다.차우미는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볼 때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자신을 바라볼 때 긴장됐다.그녀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 나상준을 찾아온 게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가 자신의 마음을 의심하며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있었다.조금 전에 똑똑히 설명한 그녀는 더 이상 말하는 건 불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는 걸 제지하지 않았다.이와 동시에 차우미의 머릿속에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그녀의 말은 거짓 없는 사실이었다. 나상준이 만약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그녀는 물건을 내려놓고 떠나가려 했다. 그리고는 하성우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 뒤 하성우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의사를 부르던지, 아니면 나상준을 병원에 데려가던지 해야 했다. 비록 이렇게 늦은 시간에 하성우에게 연락하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하성우에게 연락하는 걸 제외하고는 다른 해결방법이 없었다.차우미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에게 머물러 있던 시선이 사라지며 뚝뚝 거리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무언 가를 느낀 차우미는 고개를 돌려 샤워 가운을 입고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상준을 바라봤다.‘내 말을... 믿는 건가?’믿는 것 같았다.3년을 부부로 살았었기에 차우미가 나상준에 대해 아는 것만큼 나상준도 그녀에 대해 알았다.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그는 잘 알았다.마음이 놓인 차우미는 안으로 들어가 문을 살짝 닫았다.나상준은 소파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그의 모습은 마치 차우미가 알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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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7화
예전에 이곳은 아주 조용했었다. 모든 것이 조용했던 이곳에 한 사람이 많아진 이후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침실에서 들려오는 옷장이 열리는 소리와 그녀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 그리고 물건을 뒤지는 소리에 이곳은 더는 조용하지도 썰렁하지도 않았다.모든 것에 온도가 느껴졌고 따뜻했다.자신도 모르게 나상준은 가슴이 떨려왔다. 마음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으며 그의 마음을 태웠다.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담요를 찾기 바빴다. 이글거리는 나상준의 눈빛이 마치 차우미를 태울 것만 같았다.침실도 컸지만 침대는 더 컸다. 침대 위에는 베개와 깔맞춤인 이불이 가지런히 깔려있었다. 옷장 안에 있는 옷들도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했다. 차우미는 찾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얇은 담요 하나를 발견했다.담요를 꺼낸 그녀는 뭔가 생각이 난 듯 수건과 드라이어를 찾으러 갔다.나상준의 머리카락이 완전히 젖어있었기에 말려줘야 했다. 특히 그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기에 한기가 머릿속으로 들어가 머리가 아플 수 있었다.차우미는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보며 찾았다. 얼마 안 되어 발견한 그녀는 담요와 수건, 드라이어를 들고 침실에서 나왔다.그녀는 나상준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발밑의 길을 보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고 나상준은 침실에서 나오는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엄청 진지해 보였다. 마치 지극히 원칙적인 선생님처럼 매우 엄밀한 모습이었다.나상준은 더는 눈을 감지 않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빤히 쳐다봤다.소파 뒤로 간 차우미는 한쪽에 수건과 드라이어를 놓은 뒤 그에게 담요를 덮어줬다. 될수록 그를 보지 않은 채 말이다.그러나 나상준을 보지 않고 그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우미는 어쩔 수 없이 나상준을 힐끗 쳐다보며 그에게 담요를 덮어줬다.이렇게 덮어주면 담요가 밑으로 흘러내릴 수 있었기에 차우미는 담요 양쪽을 잡고 그의 허리 뒤로 끌어당겨 꼼꼼히 덮어준 뒤 목 뒤에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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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화
나상준을 보지 않은 차우미는 주위의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담요로 매듭을 지은 뒤 그를 바라봤다. 살결이 보이는 곳 없이 없자 그녀는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안심했다.자신이 방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행동한 것이 이상할 수 있었기에 차우미가 입을 열었다.“상준 씨가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것 같아. 지금 이렇게 적게 입고 있으면 감기가 더욱 심해질 수 있으니 담요를 덮고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한시름 놓으며 시선을 거두고 수건을 가져왔다.나상준이 담요를 덮고 있었기에 보이지 말아야 할 곳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차우미도 더 이상 아까처럼 긴장하며 불편해할 필요가 없었다.나상준의 머리를 닦아주려던 차우미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다른 사람의 머리를 닦아줘 본 적이 없었기에 자신이 잘 닦지 못해 그를 아프게 할까 봐 걱정했다.나상준의 모습을 보아하니 움직이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닦아주지 않는다면 나상준은 이 상태로 있을 게 뻔했다. 그렇게 된다면 감기가 더 심해질 것이기에 차우미는 수건을 들고 소파 뒤로 갔다. 그녀는 나상준의 검은 머리카락을 보며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상준 씨, 머리가 젖어있는데 먼저 닦아 줄래? 닦지 않으면 머리가 아플 수 있어.”차우미는 원래 나상준의 머리를 닦아주고 싶었지만 나상준이 싫어할 것 같았다. 머리는 사람에게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머리를 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나상준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했다.그래서 나상준에게 먼저 물어보고 닦아달라고 하면 그때 닦아줄 생각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상준의 의견을 구하는 거였다.나상준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아무런 미동도 없이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머뭇거림이 담긴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는 TV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손과 발이 담요에 꽁꽁 덮인 모습이 마치 밧줄에 묶인 것처럼 결박당한 모습이었다.나상준이 입을 열었다.“내가 지금 스스로 닦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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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화
아주 좋지 않았다.누구나 아플 때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는 TV에 비친 그녀의 보습을 바라봤다.차우미는 나상준을 상사를 대하는 것처럼 대하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다른 곳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기에 아무 잡심도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남녀 간의 정과 사랑은 그녀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그녀는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긴장해 하지도 않았으며 나상준을 좋아하는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일할 때처럼 진지하고 냉정한 모습이었다.차우미가 나상준을 정상적인 남자로 대하고 있지 않았기에 나상준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녀의 손놀림은 부드럽고 섬세했지만 자상하지는 않았으며 조심스럽고 신중했다.자신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가락에 닿았음에도 그는 그녀에게서 어떠한 온도도 느낄 수 없었다.그녀는 차가웠다. 김온 옆에 있을 때처럼 따뜻하지 않았다.이 순간, 무언가가 그의 심장에 쿵 하고 떨어졌다.가만히 앉아 있던 그의 눈빛에 어두움이 일렁이면서 방 안의 분위기가 바뀌었지만 차우미는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정신은 온통 나상준의 머리카락에 있었다.차우미는 나상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가 아파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머리에 있는 물기를 닦아낸 뒤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려줬다.그녀의 부드러운 손가락이 그의 머리카락 사이를 누볐다. 굵고 단단한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등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수많은 풀 사이를 지나가는 것처럼 차가웠지만 생명력으로 가득했다.이 순간, 차우미는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는 더 이상 눈썹을 찌푸리지 않았고 마음속에 있던 긴장감도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그녀의 표정이 부드러워졌고 편안해 졌다.나상준은 차우미가 자신의 머리를 만지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뒀다. 그의 눈에 있던 어두움이 무서우리만치 더욱 짙어졌다.수건이 아닌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부드럽고 섬세하게 그의 머리카락 사이를 누비자 답답하던 그의 마음이 순간 굳어졌다가 이내 풀렸다.모든 먹구름이 걷히고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왔다. 모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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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0화
차우미는 나상준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사람이 잠들었을 때와 잠들지 않았을 때가 매우 달랐다.편안한 모습으로 잠에 빠진 모습이 깨어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지금 나상준의 모습은 평상시처럼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지 않았다.그는 낮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했다. 수많은 일을 내려놓고 완전히 휴식을 취했다.그를 보고 있던 차우미는 가슴이 아팠다.높이 올라간 만큼 위험한 것이다. 그가 결코 쉬운 자리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차우미는 밖을 쳐다봤다. 이미 아주 늦은 시간 임에도 그는 아직 약을 먹지 않았다.제일 중요한 것은 의사에게 진찰을 받지 않았기에 현재 나상준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예전에 차우미 어머니에게 직업병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감기에 걸리기 마련이다. 감기에 걸려 여러 차례 의사에게 찾아가 진찰을 받은 뒤로는 어떤 약은 어떨 때 먹어야 하는 약인지 알게 된 어머니께서 평상시에도 감기약을 집에 준비해두곤 하셨다. 감기 기운이 조금 있을 때에는 약을 먹으면 금방 나았고 심할 때는 병원으로 갔다.그 뒤로 차우미도 약을 준비해두는 습관이 생겼고 나상준과 결혼한 3년 동안에도 계속 그렇게 해왔었다.나상준이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기에 차우미는 약과 체온계를 챙겨왔다. 그의 체온을 측정한 뒤 열이 나는지 확인하고 어떤 약을 먹일지 생각해 보려 했다.차우미는 지체하지 않고 체온계를 꺼낸 뒤 나상준을 바라봤다. 평상시 같으면 곤히 잠든 그를 보고 가만히 내버려 뒀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반드시 체온을 재야 했다. 차우미는 그를 깨우지 않고 소파 뒤로 가서 체온계를 그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띠 하는 소리와 함께 체온계에 체온이 나타났다. 38.5도였다.정말 열이 나는 그의 모습에 차우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체온계를 넣은 뒤 해열 시트를 꺼내 포장을 뜯은 뒤 다시 나상준의 뒤로 가서 그의 이마에 붙여줬다.차우미는 나상준이 깬 걸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나상준은 TV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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