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는 거야?” 신유리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등 뒤에서 서준혁의 냉혹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 말에 신유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난 그냥 서류 수정하라고 말하러 온 거야.”“네가 쟤한테 서류를 수정하라고 한다고?” 서준혁의 말투에는 조롱이 조금 섞여 있었다. 그는 담백한 눈빛으로 신유리를 쳐다보았다.신유리는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신유리가 예전처럼 송지음을 부려 먹고 있다고 오해한 것 같았다.그녀는 조금 움찔거렸다. “이 서류, 송지음이 준 거야…”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송지음이 눈시울 붉히며 서준혁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녀가 낮고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준혁 씨, 유리 언니 탓이 아니에요. 요즘 아빠 일 때문에 너무 속상해서… 그래서 서류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어요.”입을 우물거리던 신유리는 결국 목젖까지 올라온 말들을 다시 삼켜버렸다.그녀는 서준혁을 쳐다보며 그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지음이 요즘 집에 일이 좀 있어. 무슨 문제 생기면 네가 먼저 처리해.” 결국 그는 차갑게 말 한마디를 던지며 송지음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갔다.신유리는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더니, 이내 서류를 들고 사무실을 떠났다.오후, 신유리가 일부러 송지음의 트집을 잡아 그녀를 혼냈다는 사실이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되었다.신유리가 화장실에서 들었을 때, 소문은 이미 신유리가 송지음 아빠가 사고 난 사이에 일부러 그녀를 괴롭혔다는 내용으로 버전이 업그레이드 되어있었다.소문 속의 송지음은 얌전하고 불쌍한 인턴이었고, 서준혁은 다정하고 세심한 대표였다. 그녀만 뻔뻔하고 못된 서브 여주의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그들은 마치 그 장면을 직접 본 것처럼 열정적으로 토론했다.신유리는 태연하게 화장실 문을 열었고, 아무 표정 없이 손을 씻고 자리를 떠났다. 남은 사람들은 어색함에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자리로 돌아오자, 오전의 그 인턴은 다시 겁에 질린 얼굴로 그녀의 앞에 섰다. “유리 언니, 홍 주임님이 서류 빨리 달라고 재촉하세요.
신유리는 멈칫하더니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그녀는 의식적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준혁을 쳐다보더니 입술을 오므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 급한 일 있어. 당신들이랑 밥 먹을 시간 없어.”송지음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서준혁의 옆으로 걸어갔다. 엄청 억울한 일을 당한 듯한 모습이었다.서준혁은 차가운 얼굴로 신유리를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송지음의 손을 확인했다.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마치 송지음을 달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그 말에 송지음은 고개를 흔들었다. “난 괜찮아요. 준혁 씨, 우리 이제 가요. 오늘 아빠한테 사골 가져다준다고 했잖아요.”말을 끝낸 후, 그녀는 자발적으로서 서준혁의 손을 잡으며 자리를 떠났다. 신 유리를 지나칠 때 특별히 그녀를 쳐다보기까지 했다.서준혁은 그렇게 송지음이 이끄는 대로 걸어갔다. 그는 걸음이 빨랐다. 하지만 송지음의 뒤를 따르는 그는 세심하게 속도를 늦춰 주었다.신유리 외할아버지의 상황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그냥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스쿠터에 스쳐 발목을 다친 것뿐이었다. 며칠 쉬면 괜찮아지는 부상이었다.걱정이 되었던 그녀는 외할아버지보고 입원하라며 고집을 부렸다. 의사에게 증명을 떼고 병원비를 지불하려던 그때, 그녀는 마침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준혁을 만나게 되었다그는 혼자 그곳에 서 있었고, 손에는 보온병까지 들려 있었다.신유리의 모습에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왜 여기 있어?”신유리는 움찔하더니 이내 손을 들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녀의 말투는 무척이나 담담했다. “가족이 입원했어.”그녀는 항상 담담한 말투였다. 말에 엄청난 감정이 섞여 있지는 않았다.하지만 잠시 침묵을 지키던 서준혁은 피식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신유리를 쳐다보고 있었고, 검은 눈동자에는 냉랭함과 번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유리야, 요즘은 전처럼 재미없지는 않네.”신유리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신유리는 숨을 얕게 쉬며 제자리에서 있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서준혁을 쳐다본 후에야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뱉어냈다. “예전에 약속했잖아. 우리 외할아버지 잘 보살펴준다고.”이건 아주 옛날의 일이었다. 그때 신유리는 처음으로 서준혁을 외할아버지에게 데리고 갔고, 그는 그녀가 얌전하게 자신을 따르기만 한다면 그녀의 외할아버지를 잘 보살펴주겠다고 말했었다.신유리는 말을 잘 들었고, 항상 얌전했다. 하지만 나중이 되자 서준혁은 인내심이 사라지고 말았다.그 말은 아주 오래된 말이었다. 서준혁이 과거를 한참이나 회상한 후에야 입을 열 정도로 오래된 말이었다. 그가 신유리에게 물었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어?”그의 대답에 신유리는 고개를 숙였다. “기억 안 나면 그냥 못 들은 걸로 해.”“나가 봐. 시간 있으면 갈게.” 서준혁이 대답했다.그는 정확한 답을 알려 주지 않았고, 신 유리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퇴근할 때 그녀는 사무실에서 서준혁을 1시간이나 기다렸다. 하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저녁을 지나고 있었다.어르신은 금방 밥을 다 먹고 침대에 기대 책을 보고 있었다.신유리의 모습에 그는 책을 내려놓으며 그녀에게 관심을 표했다. “저녁은 먹었어?”비록 저녁을 먹진 않았지만 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먹고 왔어요.”그의 말에 어르신은 고개를 흔들며 책망이 섞인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유리야 할아버지 속이지 마. 네 얼굴색이 이렇게 안 좋은데. 저녁 안 먹은 게 분명해.”말을 끝낸 그는 더듬거리며 서랍을 열더니 안에서 케익 두 개를 꺼내 신유리에게 건네주었다. “오후에 학교 선생님들이 가져다준 거야. 일단 먹고 있어.”“맞다, 준혁이…” 그는 케이크를 신유리에게 건네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말에 신유리는 의식적으로 대답을 뱉어냈다. “준혁이 일 하느라 바빠요. 요즘 중요한 클라이언트가 있어서 다 야근하고 있거든요.”그 말에 어르신은 당황하고 말았다. 그는 신유리의 얼굴을 보며 엄
신유리는 눈썹을 찡그리며 무의식적으로 서준혁을 바라보았고, 서준혁은 대답할 생각 없이 그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신유리는 그를 오래 따라다닌 만큼 서준혁의 눈빛만 보아도 그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지금 서준혁은 그녀가 스스로 해명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외할아버지도 눈썹을 찡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리야?”신유리는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서준혁을 한 번 바라보고 눈을 내리깔고는 외할아버지에게 작게 얘기했다. “아주 오래전 일이에요.”말을 마친 신유리는 손에 힘을 풀고 손을 뻗어 캐리어를 끌었다. “먼저 모셔다 드릴게요.”그녀가 캐리어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서준혁이 캐리어를 낚아채어 끌고 갔다.그는 캐리어를 들어 신유리의 외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제가 들어드릴게요.”“오빠, 우리는 그럼 병실에서 기다릴게.” 송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매우 예의 바르게 신유리의 외할아버지에게도 인사를 했다. “할아버님 감사합니다.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빌어요.”엘리베이터가 로비에 도착하자 신유리는 걸음을 멈췄다. “여기까지면 돼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손을 뻗어 캐리어를 챙겨 떠나려고 했다.서준혁이 말을 하기도 전에 신유리의 외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준혁아, 얘기 좀 하고 싶구나.”신유리가 눈을 살짝 찌푸리며, 핑계를 대려고 하던 참에 서준혁의 전화기가 울렸다.신유리가 그와 가까이 있어 발신인이 송지음인 것을 보았다.그녀는 시선을 한쪽으로 돌렸지만 서준혁은 자리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전화를 받았다. 신유리는 송지음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고, 서준혁이 ‘응’하고 대답하는 소리만 듣고 전화를 끊었다.그는 표정 변화 없이 신유리의 외할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지만, 지금 일이 생겨서 힘들 것 같습니다.”입으로는 죄송하다고 했지만 태도는 분명했다.신유리는 아래를 보며 캐리어를 건네받아 위층에서 내려왔고, 2분도 채 걸리지 않아 송지음이 그를 찾아와 있었다.그녀는 캐리어를 끌면서, 외할아버지
“신유리?” 우서진이 코웃음을 치며 약간 경멸하며 말했다. “걔 지금 옆방에서 오원영, 그 늙은이랑 같이 있는데. 너희들 그 늙은이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는군.”오원영은 성남 비즈니스계에서 다루기 어렵기로 유명한 사람으로, 능구렁이 같은 성격에 교활해 신유리가 벌써 다섯 잔도 넘게 마셨지만 그는 여전히 일과 관련된 얘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오히려 그녀에게 술을 따라주며,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유리 아가씨의 명성은 익히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이렇게 아름다우실 줄이야. 서대표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사실 신유리는 주량이 좋지 않아, 외부 접대자리에 도와줄 사람과 함께 다녔지만 오늘은 적합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그녀는 술잔을 막고 싶었지만, 오원영이 기회인 듯이 그녀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유리 아가씨는 역시 젊어서 피부가 정말 좋으시군요.”신유리는 어지러움을 참고 손을 빼며, 불편한 마음을 참고 일어나 말했다. “죄송하지만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그녀는 술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 세면대를 붙잡고 한참을 진정시킨 후에야 그 역겨운 느낌을 억누를 수 있었다.신유리는 화장실에서 나와 긴 호텔 복도를 매우 천천히 걸어갔다.오원영이 그녀의 몸을 보던 시선을 생각하니 속이 메스꺼웠다.복도의 방 하나를 지나가는데 문이 갑자기 열려 신유리와 방 안의 사람들의 눈이 마주쳤다.우서진은 신유리를 마주칠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 몸에서 술 냄새를 맡고는 무의식적으로 두 걸음을 물러섰다.신유리가 고개를 들어 그를 한 번 쳐다본 후 시선이 서준혁에게로 옮겨갔다.그녀가 입을 열어 얘기했다. “죄송합니다.”우서진이 전화를 받으러 그녀를 지나쳐가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길 막지마”문 앞에는 신유리만 남아 어떻게 해야될지 몰랐다. 발이 바닥에 박힌 것처럼 제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안에서 누군가 “신유리.”라고 부를 때까지.신유리가 고개를 들어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문 닫아.”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녀가 말없이 문을 닫
합정의 협력사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사람을 보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이전부터 서준혁은 항상 신유리를 데리고 왔기 때문에, 책임자는 바로 두 사람을 향해 다가갔고, 얼굴 가득 미소를 띄고 있었다.송지음은 한쪽에 소외되어 서준혁의 소매를 잡고 하얀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이 회사와는 여러 번 협력한 적이 있어 계약에 관해서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신유리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서준혁과 상대측 사장에게 한 부씩 건네고, 습관적으로 송지음에게 지시했다. “식당 예약하는거 잊지마.”송지음은 온몸이 굳은 채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했고, 조금 난감해 하고있었다.게다가 신유리에게 인턴 대우를 받았다.송지음은 입술을 깨물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서준혁을 바라보며 눈이 빨개지기 시작했다.신유리가 말을 마치고 나서야 생각나서 그녀에게 얘기했다. “미안해, 예슬 씨로 착각했어.”송지음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유리 언니.”신유리는 잠시 멈칫하고 그녀를 힐끗 보더니 눈을 들어 뒤에 있는 양예슬을 보고 지시했다. “호텔 예약해요, 조대표님 취향 아직 기억하죠?”송지음의 얼굴이 더욱 하얘졌다.저녁도 먹지 않고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먼저 호텔로 돌아가 쉬겠다고 했다.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서준혁을 바라봤다. “준혁 오빠, 나 좀 데려다 줄 수 있어?”서준혁은 조대표와 저녁을 먹어야해서, 신유리는 그가 그러지 않을 줄 알았지만 서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데려다 줄게.”그는 고개를 돌려 신유리에게 당부했다. “이따가 올게.”그러나 서준혁은 식사 자리가 끝날 때까지도 오지 않았다.신유리는 문 앞에서 조대표를 배웅한 후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송지음과 서준혁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다.합정의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신유리는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다.그런데 어디서 새어나갔는지 그녀와 오원영이 실랑이를 벌이던 그날 밤의 사진 한 장이 떠돌기 시작했다.사진
신유리가 잠시 멈칫했다. “당신이 찍었다고요?”“그때 별 생각없이 찍었어요.” 아무래도 남의 사생활을 침해한 것이기 때문에 청년은 스스로 말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게다가 후에 그도 서준혁이 신유리를 객실에서 데리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다만 사진을 다 보냈기 때문에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최근 신유리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듣고서야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저는 정재준이라고 합니다.” 그는 귀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 일은 아무래도 저 때문에 피해를 보신 것 같아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신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재준을 바라보며 그날 밤 그녀에게 방문을 닫으라고 했던 남자인 것을 기억해냈다.정재준은 스스로도 오래 머무르는 것이 민망했는지 몇 번이나 사과를 하고 떠났다.신유리는 내내 말이 없던 연우진을 보며 물었다. “또 다른 일 있어?”“괜찮아?” 연우진의 따뜻한 목소리에는 배려심과 관심이 담겨 있었다. “요즘 일이...”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신유리가 말을 끊었다. “나는 아무 상관 없어.”연우진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고, 그의 눈에는 약간의 무력함이 담겨 있었다. 그가 말했다. “그럼 저녁 같이 먹을까?”신유리와 연우진은 접객실에서 있다가 사무실로 돌아가려는 순간 양예슬이 허겁지겁 달려왔다.그녀는 신유리를 보고 숨을 고르고 나서야 말했다. “유리 언니, 비서실에서 고객이 난동을 부리고 있어요.”양예슬은 말을 꺼내기 힘들어 보였고, 신유리가 비서실에 가서야 그 고객이 여자인 것을 알았다.비서실의 여우년이 자신의 남편을 유혹한다면 욕을 하고 있었다.여비서는 욕을 먹으며 얼굴이 빨개졌다 하얘졌다를 반복했고, 신유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다. “여사님, 일단 진정하시고 천천히 얘기하시죠.”하지만 그 여자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로 신유리의 말을 전혀 듣지 않은 채 신유리를밖으로 밀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있어 밀쳐지면서 발목이 꺾여 넘어질 뻔했지만 누군가 뒤에서 그녀를 잡아주었다.
양예슬은 망설여졌다. 신유리와 송지음의 관계는 화인 그룹의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었다.신유리는 개의치 않고 서류를 들고 올라갔다.운이 좋게도 올라갔을 때 송지음과 쥴리는 화장실에 가 있었고, 신유리는 서류를 들고 서준혁을 바로 찾았다.서준혁은 그녀일 줄 몰랐는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신유리는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사인이 필요해.”서준혁은 받아서 바로 서류를 펼치고 펜을 들어 서명했다.신유리는 그의 동작을 바라보며 속눈썹을 떨었다.서준혁이 그녀에게 가르쳐준 첫 번째 수업은 계약서를 꼼꼼히 읽으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익숙한 사람이 건네더라도 자세히 봐야 한다.“발목은 좀 어때?” 서준혁은 서명을 하면서 무심코 대화 주제를 찾았다.신유리가 조용히 “괜찮아졌어.”라고 대답했다.“단합대회에 참석할 수 있어?”“응.” 신유리는 그가 계약서에 서명을 마치고 건네주는 것을 받아들고 막 떠나려는데 서준혁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무팀에 가서 청구해. 의료비는 회사에서 처리할 거야.”신유리는 제자리에 서서 서준혁을 바라봤다.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누가 동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는데, 회사에서 이번 일을 가지고 홍보하려는 것 같아.”그의 눈빛은 매우 담담했고, 신유리에게 조금의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신유리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더니 잠시 후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아프냐고 한 마디쯤은 물어볼 줄 알았어.”서준혁은 펜을 든 손을 잠시 멈추었다가 말했다. “보상은 두 배로 해줄 수 있고, 유급휴가도 가능해.”“...그래.”신유리가 사무실에서 나오자 돌아오는 송지음이랑 쥴리와 마주쳤다.송지음은 신유리가 서준혁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눈에 담긴 긴장과 경계를숨기지 못한 채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유리 언니, 무슨 일로 올라오셨어요?”신유리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쳤다.송지음은 대답을 듣지 못하자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화인의 이번 단합대회는 온천 호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