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리가 없잖아. 난 비싼 레스토랑 음식보다 네가 직접 해준 요리를 먹고 싶어. 네 마음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잖아. 안 그래?”“응.”임운기의 웃음기 섞인 말에 강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놓으며 앞쪽을 가리켰다.“저기 앞이 우리 집이야.”막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옆집 문이 갑자기 활짝 열리더니 잠옷 차림의 중년 여성이 쓰레기를 버리려는 듯 밖으로 걸어 나오더니 임운기를 위아래로 훑어봤다.“설아구나. 그런데 왜 낯선 남자를 데리고 왔어?”“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얘는 제 동기예요.”“동기? 아닌 것 같은데? 어린 것이 어쩜 벌써 돈에 눈을 써서는. 손님을 집까지 끌어들이면 어쩌겠다는 거야?”중년 여성은 마치 아랫사람을 교육하는 것처럼 도도한 자세를 취했다.그녀의 비아냥거리는 모욕에 강설아는 순간 화가 치밀어 억울한 표정으로 맞받아쳤다.“아주머니! 어떻게 사람을 함부로 모욕할 수 있어요?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임운기도 일순 눈살을 찌푸렸다.자기가 성매매하러 온 손님으로 오해받는 건 괜찮았지만 강설아를 몸이나 파는 여자로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설아야, 변명하지 마. 돈이 궁하면 손님도 받고 그럴 수 있지. 아줌마 다 이해해.”“아줌마! 어떻게…… 어떻게…….”마치 이해한다는 듯 괴상야릇한 말투로 비꼬는 중년여성의 모습에 강설아는 억울한 나머지 눈시울을 붉혔다.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그녀를 보자 임운기는 끝내 폭발했다.“사람이 어쩜 그래요? 설아가 아무리 그래도 그쪽 이웃인데 여자애를 그렇게 더럽히며 모욕하다니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어린 것이 어디서 어른한테 따박따박 말대꾸야? 우리 딸이 누군지 알기나 해?”인상을 팍 쓰며 소리 지르는 임운기의 모습에 놀랐는지 잠깐 움찔하던 여성은 이내 포악스럽게 소리쳤다.이에 임운기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그녀를 바라봤다.“아줌마 딸이 뭔지는 관심 없고 저 건드리지나 마세요. 안 그러면 그 결과를 감당하지 못할 테니까!”“내가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하,
“관심해 줘서 고마운데, 그런 건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강설아는 대화를 끝내려는 듯 차갑게 말했지만 링링은 멈추지 않고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설아야, 너 돈 없다고 하지 않았어?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내가 러브 바 매니저라는 건 알지? 네가 원한다면 우리 바에서 데스크 좀 봐줘. 내가 한 달에 천만 정도 벌게 해줄게.”“마음은 고맙지만, 필요 없어. 운기야 들어가자.”이미 문을 열고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던 강설아는 이 말만 남긴 채 임운기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집 안.“설아야, 저 사람들 네 이웃 아니야? 왜 말을 저따위로 해?”임운기는 두 모녀가 했던 말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만약 강설아가 그를 말리지만 않았다면 그는 그 자리에서 두 사람에게 본때를 보여줬을 거다.“사실 링링은 나랑 어릴 때부터 함께 큰 소꿉친구이자 동창이었어.”“응? 그런데 왜…….”아무리 봐도 링링은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강설아를 모욕하고 적대시하는 것 같았는데 그게 어딜 봐서 소꿉친구인지 임운기는 알 수 없었다.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자 강설아는 고개를 숙이더니 지난 일을 회상했다.“고등학교 때 링링이 남자친구를 사귄 적 있었거든. 그런데 그 남자애가 어느 날 갑자기 나한테 몰래 고백하고 내가 거절하자 링링한테 내가 자기를 꼬셨다고 말했거든. 그 일로 링링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설명도 듣지 않은 채 나를 천한 년이라며 모욕했고 그때부터 관계가 악화했어.”그제야 모든 의문이 해결되는 것 같았다.그러던 그때, 강설아가 말을 이었다.“우리 둘 사이가 악화하고 난 뒤 링링과 걔 어머니는 저렇게 자주 날 모욕하곤 해. 내 흉을 보기도 하고. 특히 링링이 술집 매니저가 된 뒤로부터 아주머니는 내가 자기 딸보다 못하다면서 계속 비꼬았어.”한참을 말하던 강설아는 억울한지 눈시울을 붉히며 눈가에 핑그르르 돈 눈물을 애써 참았다.“젠장!”이 모든 걸 들은 임운기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그저 나약하기만 한 여자애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모욕을
“너 그때 술집에서 노래하며 돈 벌던 것도 병원비 마련하려고 했던 거였지? 장학금에 그렇게 목매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고.”이제야 강설아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아니나 다를까 강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이라고 낮게 대답했다.“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네.”이건 저도 모르게 나온 한마디였다.임운기는 강설아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오고 어릴 적에 아버지를 여윈 경험은 강설아와 같았기에 그녀의 상황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하지만 다른 건 그는 지금 강설아보다 많이 행복하다는 거다. 어머니가 앓아눕지 않은 데다가 일도 하고 계셔서 그가 부담을 끌어안을 필요도 없는 데다가 가장 큰 행운인 류충재의 외손자라는 신분을 얻었기 때문이다.“힘들긴 힘들지만 이젠 익숙해졌어.”강설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엄마가 대학만은 꼭 졸업하라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 벌써 그만두고 일자리 찾았을 거야.”강설아의 경험들과 그녀의 불행을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그녀가 안쓰러워졌다.여자애가 이런 일들을 겪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지금껏 어떻게 버텨왔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하지만 강설아가 이런 어려움들을 겪었기에 다른 여자애들에 비해 특별하고 철이 들었는지도 모른다.“설아야.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내 말 믿어.”임운기는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강설아가 불행하다지만 불행 중 다행인 건 그를 만난 거다.“모든 게 다 잘될 거라고? 그러길 빌어야지.”강설아는 고개를 쳐들고 천장을 바라봤다.하지만 이 모든 게 잘 되는 게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는 데 드는 돈만 하더라도 너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깨끗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면 모를까,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한다고 해도 그 돈을 마련하는 건 평생 가도 가능성 없는 일이었다.때문에 그녀는 그렇게 많은 걸 바라지도 않는다.“됐어. 무거운
이윽고 강설아는 고개를 들며 진지하게 말했다.“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 이미 익숙해져서 괜찮아. 우리 동기도 동기지만 이 정도면 친구 맞지?”“당연하지!”임운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저녁 식사가 끝나고 임운기는 곧바로 마음속으로 계획하던 일을 제안했다.“강설아, 아직 이른데 우리 밖에 나가서 좀 놀자.”“밖에서 놀자고? 어디?”“바.”“바? 술집 말하는 거야? 아…… 난 그런 곳 싫어해.”강설아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더욱이 그녀는 임운기가 갑자기 바에서 놀자고 제안하는 게 의아했다.“걱정하지 마. 그저 단순히 놀기만 하자는 거야. 너한테 이상한 짓을 하려는 거 아니야. 내가 오늘 도와줬다고 내 요구 들어준다고 했잖아. 이거 그렇게 어려운 요구 아니지 않아?”“그…… 그래.”임운기의 부탁에 한참을 고민하던 강설아는 끝내 동의했다.그가 알고 있는 임운기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그를 믿기로 결심했다.이윽고 어머니와 인사한 그녀는 곧바로 임운기를 따라 문을 나섰다.…….약 반 시간 뒤.러브 바 문 앞.“운기야, 우리…… 여기 오려던 거였어?”술집의 네온사인 간판을 본 강설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왜냐하면 이웃집 링링이 이 술집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 바로 여기야.”하지만 임운기는 난처한 그녀의 표정을 읽지 못한 것처럼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너 설마 날 여기까지 데려온 게 링링 때문은 아니지?”이런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녀는 임운기가 갑자기 술집에 놀러 가자고 제안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러브 바’라는 간판을 보는 순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역시 총명하네. 바로 알아맞히다니.”오늘 강설아 집 앞에서 이웃집 중년 여성과 그녀의 딸 링링이 한 짓이 지금까지도 눈앞에 아른거렸기에 오늘 이곳에 온 이유도 간단했다.강설아를 위해 화풀이를 하고 체면을 되찾아 주려는 것뿐!하지만 당사자의 의견은 달랐다.
“응, 때렸어. 아까 당신이 한 말 사과 해!”임운기의 잇새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쪽한테 사과하라고? 이 봐,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여기에서 폭력을 사용했으니 당신 이제 끝이야!”남자 직원은 얼굴을 감싸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만약 돈 많은 부자가 때렸다면 그는 때리는 대로 고분고분 맞았을 텐데 옷차림부터 남루한 가난뱅이한테 맞았다는 것에 참을 수 없었다.“링링 매니저님, 문 앞에서 싸움이 일어났어요! 상황 처리 바랍니다!”때마침 옆에 있던 여자 직원이 다급히 무전기로 링링을 호출하자 강설아는 걱정되고 두려웠다.“아…… 이제 어떡해?”그녀는 임운기가 집에 오기 무섭게 누군가에게 손찌검을 날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여기 경호원도 많을 텐데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떡하지?’“걱정하지 마.”임운기는 그녀의 걱정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때마침 짙은 화장에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그들 쪽으로 걸어왔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강설아의 이웃 링링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 강설아 집 문 앞에서 그녀와 임운기를 조롱했던 사람 말이다.그리고 그녀의 뒤에는 경호원 몇 명이 따라왔다.“누구야? 감히 러브 바에서 주먹을 휘두르다니!”링링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면서 높게 소리쳤다.“링링 누님, 저 자식입니다.”그때 남자 직원이 임운기를 가리켰다.“너희들이었어?”링링은 한눈에 임운기와 강설아를 알아봤다.“강설아, 너 뭐하러 여기 왔어? 설마 여기 아가씨 하려고 마음먹은 거야?”링링은 팔짱을 끼며 피식 웃었다.강설아와 임운기를 보는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시큰둥한 기색이 가득했다.“여기 소비하러 왔어. 안돼?”“강설아, 아 자식 네 남자 친구 맞지?”임운기의 말에 링링은 대답 대신 반문했다.“그래, 나 설아 남자 친구인데 뭐 문제 있어?”링링이 대답하기도 전에 임운기는 강설아를 품에 끌어안았다.그 순간 그녀는 몸을 흠칫 떨었다. 하지만 임운기가 자기를 갑자기 안은 게 놀랍기는
임운기의 기세에 놀란 링링은 몸을 흠칫 떨더니 이를 악문 채 어렵사리 두 글자를 뱉어냈다.“아…… 아니.”“아니라면서 왜 멍하니 서 있어? 얼른 부스로 안내하라니까! 제일 좋은 부스로!”임운기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중압감이 넘쳐흘렀다.“너…….”‘지금 나더러 시중을 들라는 건가?’링링은 갑자기 드는 생각에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내가 뭐? 우리 지금 손님이야. 손님은 모셔야 하는 존재 아닌가? 제대로 안 하면 당장 너희 사장한테 고소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알아들었어?”임운기의 차가운 말투에 링링의 안색은 더 나빠졌다.임운기가 여기에서 정말로 몇백만씩 소비한다면 그녀는 확실히 그를 잘 모셔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자기를 고소하면 사장에게 문책당할 게 뻔했으니까.게다가 눈 감고도 몇백을 던져버리는 패기를 봐서는 그의 소비 능력이 몇백만 심지어는 몇천만 원도 넘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알겠냐고 묻잖아. 귀먹었어? 대답 안 해?”“알…… 알겠습니다.”링링은 언짢고 화가 났지만 여전히 억지스러운 미소를 짜냈다.“알았다면 당장 길 안내 해!”“네…… 네, 바로 안내할게요.”임운기의 호통에 링링은 여전히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사람을 부스로 안내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꽤 괜찮아 보이는 자리로 안내됐다.“가서 술 가져 와.”자리에 앉은 임운기는 이내 손을 흔들며 명령했고 링링은 그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자리를 떠났다.부스에서 얼마 떨어지고 난 뒤에야 링링은 억지로 말아 올린 입꼬리를 내리며 표정을 확 구겼다.“젠장! 강설아 남자친구 대체 뭐야? 겉보기에는 가난뱅이가 틀림없는데 어떻게 몇백만 원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을 수 있지?”링링은 평소 강설아를 만나면 그녀 앞에서 자기의 우월함을 뽐내기 바빴다.게다가 그녀가 자기보다 비참하게 생활한다는 게 그녀의 낙이었다.하지만 임운기가 강설아 앞에서 자기를 호통치고 명령했다는 게 너무 쪽팔렸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못 하는 자신이 화가
그녀의 계획은 바로 제일 비싼 술을 가져와서 만약 임운기가 소비하는 걸 거절하면 술 살 돈도 없다고 임운기를 모욕하는 거였다.하지만 만약 임운기가 거절하지 않으면 더 좋은 일이다. 이 기회에 그에게 한바탕 먹일 수 있으니까. 왜냐하면 아무리 봐도 임운기는 4천만 원을 감당하기는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심지어 그녀는 임운기가 그렇게 많은 돈을 내놓지 못한다고 확신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더 좋은 일이었다. 계산할 돈이 없다면 그때 가서 아까 받은 모욕을 모두 되갚아 주면 되니까.“원하시는 술과 음식 모두 내왔으니 천천히 즐기세요.”링링은 분명 존대로 말하면서 말투에서는 전혀 존중이 느껴지지 않았다. 더욱이 즐기라는 한마디를 할 때 강조라도 하는 듯 이를 악물었다.하지만 그 말을 내뱉고 가려던 그때, 임운기가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잠깐만, 그쪽은 가지 마.”“왜죠? 무슨 시키실 일이라도 있나요?”링링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려 임운기를 바라봤다.그녀의 모습에 임운기는 덤덤하게 손을 흔들었다.“와서 술이나 따라.”“뭐? 지금 나더러 술 따르라고 했어? 나 여기 매니저야! 술 파는 여자가 아니라고! 원한다면 다른 애들로 불러줄게!”“아니, 난 그쪽이 따랐으면 해!”장난기 섞인 미소를 짓는 임운기를 보자 링링은 끝내 화가 치밀어 올라 버럭 소리쳤다.“꿈 깨!”하지만 악에 받쳐 내뱉은 한마디에 임운기는 아무런 타격도 없는 듯 싸늘하게 웃었다.“미안한데 당신한테 거절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거절하면 사장 부르고.”“어디 불러 봐! 내가 무서워할 줄 알고? 난 매니저라서 그쪽이 사장 부른다고 해도 소용없어!”버럭 소리를 지른 링링은 두려울 게 없다는 듯 몸을 홱 돌려 떠나갔다.임운기와 강설아에게 술을 따르는 건 그녀에게 너무나 큰 치욕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강설아가 자기를 술 따르는 여자라고 놀릴 게 뻔했기에 절대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됐다.하지만 그때 임운기가 그녀의 뒤에 대고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그딴 걱정
“암요! 당연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바로 불러오겠습니다.”오준섭은 활짝 미소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에 있는 직원에게 곧바로 명령했다.“얼른 가서 링링 매니저 불러와!”“네, 사장님!”직원이 고개를 끄덕이기 바쁘게 어디론가 달려가자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강설아는 의아한 듯 임운기를 힐끗 바라봤다.‘뭐지? 운기가 저 카드를 꺼낸 뒤로 사장의 태도가 확 바뀐 것 같은데?’강설아는 당연히 블랙카드가 어떤 건지 알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 그 카드는 그저 겉보기에 조금 화려한 은행카드에 불과했으니까.그녀가 카드의 정체를 안다면 아마도 그런 의문은 생기지 않았을 거다.그러던 그때.“혹시 존함을 물어봐도 될까요?”오 사장이 아부하는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임운기라고 합니다.”“임운기?”오 사장은 낮게 중얼거렸다. 이 이름을 요즘 어디선가 분명 들어본 적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아 답답할 노릇이었다.하지만 때마침 링링이 걸어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사장님, 저를 부르셨다고요?”그녀의 얼굴에 걸린 미소에는 믿는 구석이 있다는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매니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오준섭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기 때문이다.그녀가 온 걸 발견하자 오준섭은 이내 그녀를 반겼다.“왔구나. 오늘 다른 일은 하지 마. 이 두 고객님만 잘 모시면 돼.”그리고 눈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명령하듯 말했다.하지만 그의 말에 링링은 순간 멍해졌다.“사장님, 지…… 지금 저더러 저 사람들한테 술을 따르란 말씀인가요? 저 여기 매니저입니다. 술 파는 여자 아니라고요.”“나도 알지. 서러운 거 이해하는데 오늘만 참아.”“싫어요!”링링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입을 삐죽 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강설아에게 술을 따라주는 게 그녀는 죽기보다 싫었다. 이건 그녀더러 강설아의 시중을 들라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하지만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 사장의 표정은 어두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