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원철수는 떠나지 않고 김씨 저택에 머물렀다.김서진이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바깥 정원 복도 아래에 누군가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김서진은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 다가와 한 캔을 원철수에게 건넸다.“한잔할래요?”눈썹을 치켜들고 김서진을 쳐다보던 원철수는 웃으며 건네받아 캔 고리를 ‘틱’ 하고 열고는 입술로 쭉 들이키고 눈을 가늘게 떴다.“나는 김서진 씨가 냄새 나는 장사꾼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김서진이 그를 보고 물었다.“지금도 돈을 잘 버는 사업가라고 생각합니다만... 냄새가 그렇게 심하지 않아요. 하하...”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분위기가 한껏 유쾌해졌다.김서진은 덩달아 웃으며 고개를 젖히고 술을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웃고 있던 김서진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다시 찡그렸다.“그래서 사실 주효영이 가진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별수 없으시죠?”한 손에 캔을 받쳐 들고 김서진은 고개를 살짝 숙여 원철수 쪽을 바라보았다.오늘 세 사람이 함께 있을 때 김서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임상언의 기분이 안정적이지 못했기에 말을 많이 하다가 신경을 건드리면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바이러스의 가장 직접적이고 간단한 대처방안은 바로 상세한 레시피를 아는 것인데, 우리 의학에서는 ‘증상에 맞게 약을 처방한다’ 고 하죠.”원철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의 달을 보며 말했다.“그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바로 연구를 하고 약리학적 약성을 분석하는 것인데, 물론 시간과 과정이 필요해요.”“그 실험실에 있을 때 실험 책자를 좀 봤는데 그자들이 쓰는 물건도 그다지 희귀한 것이 아니더라고요. 다만 대담하고 과감하게 시도했을 뿐이죠.”이 사람들은 사람의 목숨을 안중에 두지 않으니 당연히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그래서 결국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원철수는 잠시 후 캔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못할 건 없지만
“그래도 문제가 조금은 생길 거예요.”원철수는 손가락으로 손짓하며 싱글벙글 웃었다.김서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 없이 물었다.“그 실험 기지의 책임자는 오랫동안 소란을 피웠으니, 지금은 갇혀 있겠죠.”김서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만 봤다고 말했다. 김서진 같은 기술자는 그런 걸 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담당자...”김서진은 무슨 생각이 난 듯 입을 열었다....구치소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침울한 분위기는 엄숙하고 억압적이었다. 주현철는 딱딱한 침대에 다리를 웅크린 채 앉아 있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직도 기억나지 않았다.‘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길래 멀쩡한 백신 기지가 아직 대박을 이루기도 전에 감옥에 먼저 간 거지?’처음엔 소리를 지르며 안간힘을 쓰다가 가둬놓고는 태도도 쌀쌀맞은 것을 보고 나서야 잠잠해졌다.이곳은 너무 춥고 무서웠다. 주현철은 평생 이런 고생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곳에 앉아 벌벌 떨며 잠을 전혀 이루지 못했다.밖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지만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들어온 이후로 줄곧 누군가가 말하고 있고, 벽에 부딪히고, 문을 두드리는 등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리는듯했다. 이곳에 계속 머무른다면 미쳐버릴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그러나 곧 바깥 문이 열렸고, 이번에는 환각이 아닌 것 같은 발소리가 들렸다.발소리가 자기 앞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나는 것을 듣고서야, 주현철는 머뭇머뭇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았다.다가온 사람을 확인한 후 주현철은 눈빛을 반짝이며 눈을 힘껏 비볐다. 꿈이 아닌 것이 확실하지 침대에서 벌떡 뛰어내려 철장 앞으로 달려가 큰소리로 외쳤다.“형부, 형부 살려주세요! 형부”주현철은 한 손을 필사적으로 철창에서 내밀어 진정기의 옷을 잡으려 했지만 거리가 떨어져 있어 잡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옷자락도 닿지 않았다.“형부, 영문도 모른 채 잡혀 왔어요. 여기 너무 춥고 무서워요. 빨리 저를 구해 주세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왜 백신 기지가 불법이라고
“그런데 왜 왔어요? 날 놀려주려고요?”철창을 잡은 손을 천천히 풀고, 주현철은 스르륵 미끄러져 땅바닥에 앉아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말 이해가 안 돼요.”그대로 서서 주현철을 바라보는 진정기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진정기는 자신의 아내를 매우 사랑한다. 아내 때문에 처남에게 많은 것을 포용했다. 설령 주현철이 많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가능한 한 도와주고 이끌어주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공적인 일에서는 결코 양보한 적이 없다. 자신의 한 걸음 양보하는 것이 만장의 심연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자신을 영원히 되돌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주현철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하지만 이번에는... 우연한 사고였다!당시 주효영의 약물에 의해 통제되었는데 결국 주현철이 손에 넣기 위해 조금씩... 그 조금으로 모든 것이 흐트러졌고 차츰 백신 기지가 주효영에 의해 불법 실험의 은신처로 이용되었으니 주현철이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프로젝트를 따낸 이후로 여기저기 돈을 벌었다.주현철은 사실 비즈니스에 그다지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장기적인 안목도 없고, 충분하고 냉철한 두뇌와 논리도 없었으니 말이다.진정기는 김서진과 잘 아는 사이이고, 이야기를 오래 나누다 보니 주현철과 김서진의 차이가 조금만 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터놓고 말하면 김서진이 주씨 가문을 망하게 하려면 손가락 한 번 까딱하면 되는 일이었다.단지 독점할 마음이 없어서 체면을 세워준 것이다. 설령 주현철이 잔꾀를 부려도 못 본 척 그냥 지나쳐 버리곤 했다.“백신 기지 사업은 원래 네가 따내지 말았어야 했어.”방에는 그들 두 사람뿐이라 진정기는 담담하게 말했다.“지금까지 네가 관여한 것은 금융 관련 불법 행위뿐, 아직 심각하지 않아. 이제 백신 기지에 대해 네가 얼마나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달렸어.”진정기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주현철은 어리둥절했다.“무
“진정기, 네가 가난했을 때 우리 누나가 싫어하지 않고 결혼까지 했는데, 지금 출세했다고 누나의 당부를 다 잊어버리고 지금 나를 죽이려는 거야? 죽는다고 해도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진정기의 말을 오해한 주현철은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주혜영은 죽지 않았어.”간단한 한 마디로 욕설을 퍼붓던 주현철을 달랬다.주현철은 미처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뭐, 뭐라고요?”“주효영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잠시 뜸을 들이던 진정기가 말을 이었다.“제수씨도 알 거야.”“그럴 리가!”주현철은 믿어지지 않았다.“주효영은 폭사했어요. 경찰에서 발급한 증명서랑 부검 보고서도 있어요. 당시 화장한 후에 매장된 것을 형부도 보셨잖아요. 그때 효영의 엄마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형부 못 본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주현철은 진정기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효영이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 자신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진정기는 냉랭한 표정으로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믿거나 말거나, 이건 더는 중요하지 않아. 너의 딸은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많이 했어. 너 지금 여기에 있고, 이것들을 감당해야 하는 건 주효영이 한 짓거리 때문이야.”진정기의 말이 그에게 주는 충격은 너무나 커서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주현철은 땅바닥에 앉아 멍하니 앞을 내다보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주효영이 안 죽었다고요? 효영이가, 효영이가 안 죽었다고요?”기쁜지 화가 난 건지 확실히 말할 수 없었다!딸이 죽지 않은 것은 주현철에게 있어 매우 좋은 소식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기는 주현철이 여기에 있는 것이 모두 주효영 때문이라고 말했다.‘이건 또 무슨 뜻이지?’“저... 모르겠어요.”미간을 찌푸리고 나서, 주현철은 망설이며 말했다.“효영이 걔, 뭐 했어요?”진정기는 몇 초 동안 침묵
하지만 진가연임을 발견한 유해나는 안색이 달라졌다.“왜 왔어!”유해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외숙모.”진가연은 가볍게 인사하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 집안의 어지러운 곳을 힐끗 보았다.이미 들어서 집안이 난장판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빴다.“이런 꼴 보려고 일부러 왔지?”냉소를 지으며 유해나는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외숙모, 제가 왜 그러겠어요.”여전히 옅은 목소리로 말하는 진가연은 한숨을 내쉬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외삼촌은 주요 책임자가 아니니 죄가 무겁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도 가능한 한 형량이 가벼워질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댔어요.”이 말을 들은 유해나는 갑자기 뭔가 떠올라 표정을 바꾸었다.“너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니?”“아니, 지금 아버지 집에 계시냐는 말이야.”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 유해나는 이내 말을 바꿨다.“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무사히 돌아오셨으니 외숙모 걱정하지 말아요.”진가연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유해나는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했다.“그럼, 당연히 걱정 안 하지! 네 아버지는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구나. 지금 가장 견디기 힘든 사람은 바로 네 그 비운의 외삼촌이야!”“외삼촌이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누나랑 자랐는데, 누나도 사라졌으니 형부가 어느 정도 봐줄 줄 알았는데 네 아버지 성격이... 휴!”긴 한숨을 내쉬고 난 유해나는 눈가의 눈물을 훔치더니 매우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됐어, 과거의 일은 말하지 말자. 네 외삼촌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면회를 하러 가고 싶은데 면회도 못 하게 해. 사건은 아직 수사 중이라나 뭐라나.”“수사래, 뭘 수사한다는 거지? 네 외삼촌이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손뼉을 치며 유해나는 억울하다고 호소했다.“삼촌이 법을 어겼는지는 법원이 결정할 일이에요. 사실 외삼촌이 왜 들어갔는지 외숙모님도 모르세요?”진가연은 부드럽게 말하며 외숙모의 손목을 잡아당겨 소파 쪽으로 가더니 어지러운 물건을 걷어내고 그대로 앉았다.유해나
“외숙모, 방금 우리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셨는지 물으셨잖아요.”진가연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유해나는 말문이 막혔다.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아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눈알을 굴리며 생각해 본 후 유해나는 갑자기 몸을 돌려 진가연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가연아, 나 알아. 효영이가 너와 네 아버지를 다치게 한 건 잘못한 짓이야. 하지만 효영이는 너의 친사촌 언니이고, 너희들은 혈연관계가 있잖아. 효영이도 아직 어린애일 뿐이고, 아직 젊어서 잘못을 저지른 거야. 이미 잘못을 알고 있어.”“가연아, 효영이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유해나는 말을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너 효영이를 용서해줘. 게다가 효영이는 지금 김씨 가문 사람에게 끌려갔고, 나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 살았는지도 죽었는지도 모른 다고... 너한테 효영이를 살려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집에 이렇게 큰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유해나는 눈물 콧물 쥐어짰다. 진가연이 기억할 수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외숙모가 이렇게 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기억속에서 외숙모는 항상 환하게 웃으시고 자신에게도 상냥하시며, 늘 귀부인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머리가 헝클어지고 눈이 벌겋게 부어올랐으며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외숙모...”진가연은 한숨을 내쉬며 외숙모를 가볍게 부르고 나서 계속해서 말했다.“하지만 사촌 언니는 나를 해치고, 나에게 독을 주입했어요. 언니는 그때 우리가 친사촌 자매이며, 가장 가까운 혈연관계라는 걸 개의치 않은 것 같아요.”“...”말문이 막힌 유해나는 아연했다.망설이다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참으며 겨우 한마디를 뱉었다.“그건... 효영이가 그때 나이가 어려서 나쁜 사람의 유혹을 받았어. 전혀 몰랐고 효영이도 피해자였어!”“어쨌거나 효영이는 여전히 너와 혈육 관계야. 여전히 가족애가 있다고. 그렇지 않았다면, 너는 이미 죽었을 거야. 이렇게 커서 여기에 서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진가연은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다. 외숙모가 자기한테 정말 잘해줬다고 생각했었다. 이제야 친자식과 조카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외숙모가 잘해 주는 건 다 아빠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것이었다. 더 많은 걸 얻으려고 말이다.사촌 언니는 자기 엄마가 자기보다 더 잘 대해준다고 생각하며 질투했겠지만 진가연만 알고 있다. 어릴 때 진가연이 넘어지면 외숙모가 제일 먼저 일으켜 세운 다음, 땅이 울퉁불퉁해서 우리 꼬마 아가씨를 넘어뜨렸다고 땅을 치며 말했다.하지만 주효영이 넘어져서 무릎이라도 까지면 외숙모는 마음이 아파서 한밤중까지 울었다.어렸을 때 진가연은 설탕을 좋아했다. 분명히 그때 이미 살이 찌기 시작해서 섭취하기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먹고 싶다는 한마디에 외숙모는 다 사주었다. 그러나 주효영은 매운 쫀드기를 좋아하지만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며 먹지 말라고 했고, 거절한 후 주방에 맛은 비슷하지만 비교적 건강한 대체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어렸을 때는 몰라서 모든 것을 잘해 주는 것이 좋은 것인 줄 알았다. 커서야 깨달았다. 진정한 사랑은 허락도 있고 절제도 있는 것이라는 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아낌이라는 걸 말이다.예를 들어, 지금 주효영이 그렇게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외숙모는 여전히 자신의 딸이 매우 좋다고 생각할 것이고, 틀리지도 않고 그저 어린애라고 생각할 것이며, 어떻게든 숨기려고 할 것이다.물론, 외숙모는 주효영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유해나는 자신의 딸을 한 번도 알지 못했다. 늘 무시당하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유해나는 지금 잘못을 저지르고 극구 보상하는 어머니처럼, 무슨 일이든 딸이 용서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할 것으로 생각했다.“외숙모!”가냘프게 한숨을 내쉬고 난 진가연은 피곤함을 느꼈다.“사촌 언니의 잘못은 이미 외숙모가 대신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더는 숨길 수 없어요. 외삼촌은...”잠시 머뭇거리던 진가연이 입을 열었다.“외삼촌의 지금 상황도 사촌 언니가 저지른 일 때문이에요. 사
슬프고 힘들었다. 진가연의 마음속에서는 외삼촌과 외숙모 모두 가족이었으니 말이다.사촌 언니가 자신에게 독을 먹인 일을 알았다고 해도, 이 일을 외삼촌과 외숙모는 몰랐고 두 분과도 상관없었다. 외숙모가 몇 년 동안 자신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약을 처방한 것을 생각하면 두 분을 미워할 수 없다.물론, 자기한테 잘 보이려는 목적이 있는 건 사실이고, 자기한테 잘해 주는 것도 단순한 건 아니지만, 사람은 다 사심이 조금씩은 있으니 그것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이기심이 있는 게 무슨 잘못이겠는가. 두분 역시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결점이 있고 문제가 있더라도 확실히 자신의 가족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외숙모의 이 몇 마디 말은 진가연의 마음속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완전히 망쳐버렸다.지금 이 상황에 이르렀어도 외숙모는 모든 죄를 진가연의 머리 위에, 그리고 진가연아버지의 머리 위에 뒤집어씌우려 하며 주효영이 저지른 잘못된 일들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실망이 극에 달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진가연은 일어서서 조용히 외숙모를 바라보았다.“외숙모, 전 할 말은 다 했어요, 몸 잘 챙기세요, 갈게요.”말을 마친 진가연은 밖으로 나갔다.유해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진가연이 아무런 반응도 없을 줄은 몰랐다.‘미안함도 마음도 불안도 없이 가버리다니.’“가면 안 돼!”쫓아간 유해나는 진가연의 팔을 잡았다.“가연아. 이제 오직 너만이 네 외삼촌과 사촌 언니를 구할 수 있어. 그래, 사촌 언니는 그렇다 치더라도 네 외삼촌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잖아?”“백신 기지는 외삼촌이 맡고 있고, 안에서 누군가가 불법 실험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외삼촌이 잘못한 게 없다고요?”진가연은 또박또박 말했다.진가연은 사실 자세한 건 잘 몰랐다. 아버지한테 대충 들은 얘기지만 외삼촌이 전혀 책임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았다.“불법 실험이라니, 무슨 소리야? 너 설마 외삼촌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건 아니겠지?”유해나는 주효영이 한 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 주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