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있으면 천 리 길 떨어져 있어도 만남이 있고, 인연이 없으면 옆에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고요. 이 또한 운명이니 받아들여야죠.”도사는 마음이 언짢았지만 침착함과 예의를 지키며 말을 이어갔다.“팔찌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습니다.”허문정은 눈을 크게 뜨고는 씩씩거리며 말했다.“당신 같은 것도 도사라고. 헛소리만 하네. 저 사람보다 몇 분 늦었을 뿐인데 왜 인연이 없다는 거야? 난 혼원문의 제자라고. 당장 나 허문정에게 팔찌를 내놓지 못할까?”“못 들었어? 안 내놓으면 당신도 가만 안 둬.”혼원문은 중원에서 유명한 고대 문파이다. 번개의 채찍과 혼원검법 등 무술은 혼원문에서 가장 이름난 무술이었다.“저 사람이 바로 혼원문 문주의 관문 제자이자 소년 신의로 불리는 허문정이야?”“무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 어릴 때부터 혼원문 문주의 각광을 받았다며? 스무 살도 안 돼 대성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게 되고.”“저렇게 건방을 떤 이유가 있었네. 실력이 받쳐주니까.”사람들은 수군거리며 허문정에 대해 의논했다.그 말을 들은 허문정은 한층 더 오만해졌다.도사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혼원문이면 뭐 어때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어요. 방금 저분이 당신과 똑같이 팔찌에 대해 해석했거든요.”“그럴 리가 없어!”허문정은 다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저 사람 따위가? 누굴 겁주는 거야?”“왜 사람 만만하게 봐? 무현 님은 벌써 팔찌를 다룰 수 있다고. 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똑똑히 봤어. 그러니까 무현 님이야말로 팔찌와 인연이 있는 분이라고!”공혜리는 더는 참을 수 없어 큰소리로 반박했다.허문정이 표독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이제야 알겠네. 두 사람 지금 짜고 치는 거지? 그렇게 팔찌가 아까우면 내놓지나 말든가! 200원이면 팔찌를 가져갈 수 있다고 큰소리쳤었잖아. 그럼 그 팔찌는 반드시 내 거라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하겠어. 당장 내놔. 아니면 이 거리를 떠날 생각들 하지 마.”이 보물을 얻기 위해 허문정은 호텔 방에 틀어
그는 두 손을 쓰더니 도사의 얼굴과 가슴팍을 향해 공격을 펼쳤다.천둥소리와 함께 강한 기운이 바람처럼 그에게로 향했다.허문정은 역시 혼원문의 제자답게 번개의 채찍을 제대로 휘둘렀다.도사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은백색 빛이 띠었는데 허문정의 공격을 연이어 두 번 맞고 몸이 약간 흔들렸지만 전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도사가 영 실력 없는 건 아니네. 내가 얕봤어.”허문정은 의외의 결과에 놀랐다.그의 번개의 채찍은 이미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사부님의 5연 채찍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마스터 상대로는 가뿐히 이길 수 있는 정도였다.하지만 도사는 그의 공격을 맞고도 멀쩡하다니.게다가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이 많았다.허문정은 워낙 교만함이 몸에 배었고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니 당연히 이런 일을 참을 수 없었다.만약 이 도사를 이길 수 없다면 그동안 쌓은 명성이 모두 무너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도사는 여전히 그를 타일렀다.“그만하시는 게...”“그만은 무슨 그만이야. 확 죽여버릴라.”허문정은 거만을 떨면서 다시 한번 공격을 펼치려고 했다.도사는 인내심을 잃은 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거만하고 고집도 세구나. 너 같은 놈은 맞아야 해!”“무량천존!”도사가 주먹을 휘둘렀다.보잘것없는 한 방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담겨 있었다.그의 주먹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비치더니 하나의 거대한 비현실적인 주먹을 만들어 냈다.“겁도 없지, 내 앞에서 함부로 주먹을 놀려?”그의 공격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허문정이 거만하게 말했다.“혼원문의 묘수가 뭔지 내가 한 번 보여주지. 공격을...”“펑!”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도사의 주먹에 가슴팍을 제대로 맞았다.그는 마치 고속행진하는 화물차에 치인 듯 그대로 거꾸로 날아가 버렸다.“쿵!”허문정은 벽에 심하게 부딪혀 몸이 미끄러져 떨어졌다.그는 몸을 가누려고 애썼지만 결국 무릎을 반쯤 꿇고 말았다.그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어떻게 이럴
건방지네!허문정은 분노가 끓어올랐다. 미스터리 거물이 다시 한번 엄한 목소리로 말리지 않았다면 그는 진작 염무현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내가 저 도사는 못 이겨도 보잘것없는 네놈에게 질까?’“딱 기다려. 정말 나랑 붙을 생각이면 절대 서해 뜨지 마.”허문정은 분노를 억누르면서 이렇게 독한 말을 내뱉고는 곧바로 돌아섰다.허문정이 멀리 떠나고서야 구경꾼들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젊은 도사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전에 경멸과 멸시가 담겨 있었는데 지금은 온통 존경의 감정밖에 없었다.“도사님 젊어 보이는데 혼원문 제자를 단숨에 꺾을 줄이야, 정말 놀랍네!”“분명 도가의 정통 고수인 것 같아.”“200원짜리 보물을 판다며 비웃던 사람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는지 몰라.”도사는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더니 염무현을 향해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인연이 있으면 우리도 다시 뵙겠죠.”“안녕히 가세요.”염무현도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렇게 도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공혜리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왜 이름을 안 물어보세요?”염무현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인연이 닿으면 어떻게든 알게 되어있죠. 굳이 지금 물어볼 필요 없어요.”공혜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염무현과 도사, 두 사람의 말 모두 난해하게 느껴졌다.이 일이 마무리된 후 두 사람은 연씨 가문으로 갔다.초라하네.이게 바로 연씨 가문에 대한 염무현의 첫인상이었다.높은 건물이 아닌 평범한 느릅나무 문짝 두 개만 있었다.녹슨 문고리는 일 년 내내 바람에 치이고 햇볕에 쬐고, 또 빗물에 침식되어 얼룩덜룩해 보였다.그리고 똑같이 허름한 두 개의 돌사자까지, 아무리 봐도 연씨 가문은 대를 이은 명문 가문처럼 보이지 않았다.대문이 활짝 열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혹시... 아가씨 병 치료하러 오셨어요?”어떤 중년이 그들을 맞았다.요 며칠 동안, 각지의 의사들이 연씨 가문을 찾아왔는데 모두 거액의 보수를 위해 온 것이다.공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
그들은 경멸과 비아냥이 깃든 눈빛으로 염무현과 공혜리를 보며 손가락질을 했다.공혜리는 마음이 언짢아 눈살을 찌푸렸지만 염무현은 그들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으며 구석에 자리 찾아 앉았다.방금 이곳으로 오는 길에 중년이 말했었다. 사람들이 모두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 같이 연희주의 병을 볼 거라고, 그리고 연희주의 병을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은 바로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어중간히 눈치만 보는 사람은 바로 탈락이다.연희주를 빨리 살리고 싶은 연홍도의 마음은 굴뚝같지만 개나 소나 기회를 주는 건 아니다.만약 함부로 병을 치료하게 했다가 연희주의 병세가 점점 더 심각해지면 어쩐단 말인가?그런 경우의 수를 막기 위해 연씨 가문에서는 아예 그런 상황을 근절해야 했다.“찍.”방문이 열리더니 황토색 도포를 입은 늙은이가 우수에 찬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두 눈이 핏발 선 걸 보니 며칠 동안 잠을 설친 듯했다.그가 바로 연씨 가문의 가주인 연홍도이다.“여러분, 먼 길 오셨는데 제가 직접 맞이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희주가 많이 아프니 부디 양해를 바랍니다.”연홍도는 그들에게 인사를 건넨 후 또 말했다.“안으로 들어오시죠.”가장 앞장선 사람은 수염이 희끗희끗한 노인이었다. 그가 바로 한의학 명의 임형준이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임형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방 안의 온도가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한겨울에 에어컨을 틀어놓은 것이다. 체온 유지가 환자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데 보일러는커녕 찬 바람을 쐬게 하다니, 이 무슨 경우란 말인가?하지만 그는 곧바로 이상함을 감지했다.커다란 거실에 침대가 하나 놓였는데 얼굴이 자줏빛을 띤 소녀가 그 위에 누워 있었다. 두 눈을 꼭 감은 그녀는 숨을 불규칙적으로 몰아쉬었다.“혹시 따님께서 고열이 지속되고 있나요?”임형준이 물었다.연홍도도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했다.“희주가 한 달 전부터 미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점점 고열로 번졌는데 수많은 명의가 와서 봐도 낫질 않더군요. 그리고 바로 사흘 전에 열이 42도
“당연히 병을 치료하려고 하죠. 아니면 제가 왜 먼 길 찾아왔겠어요?”염무현은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어차피 다들 치료하지도 못할 테니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나?사람 치료하고 칠요보연을 챙겨 떠나면 그만인데 말이다.“네 이놈!”임현준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네가 뭐라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다른 사람도 수군거리더니 염무현을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정말 겁도 없네.”“참 배짱도 커. 임 선배님도 고치지 못하는 병을 자기가 나서서 고치겠다고 하니.”“뻔뻔하지. 어떻게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할 수가 있지?”“얼굴에 철판을 깔았나? 나였으면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숨었을 텐데.”연홍도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우리 연씨 가문은 비록 지금 상황이 급한 건 맞지만 이름 모를 의사에게 병을 치료받을 정도까진 아니거든. 젊은이, 내 딸의 신분이 얼마나 고귀한지 아는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당신이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지금이라도 물러서면 없던 일로 해주겠어.”염무현은 미간을 구겼다. 그는 아량이 넓어 멋모르고 말한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다.하지만 공혜리는 달랐다. 그녀는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였다.“참 보는 눈이 없으시네요. 이분이 바로 당신들이 말한 염무현 신의님이세요.”“뭐라고?”임형준은 두 눈을 크게 떴다.“지금 장난해? 그래도 당신은 꽤 능력 있어 보이는데 왜 저 사람 따라 사기 치는 거야? 윤 선생님께서 적극 추천한 신의님은 명망 높은 분이시겠지, 어떻게 저놈이겠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만만해 보여? 당신들 말을 믿게?”사람들은 모두 증오의 눈빛으로 그들 두 사람을 바라봤다.의사는 의사를 사칭하는 사기꾼을 가장 증오한다.그들은 의술로 사람을 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돈을 위해 사람 목숨까지 희생할 수 있는 무책임한 사람들이다. 돈을 뜯어내면 바로 줄행랑을 치는데, 그러면 환자나 가족들이 탓하는 건 의사뿐이다.이런 사기꾼들이 있기 때문에 의
“그럼 말해봐, 이게 무슨 병인데?”염무현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저분은 병을 앓고 계시지 않습니다.”임형준은 인내심을 잃은 듯 그를 질타했다.“헛소리 그만해! 아가씨가 저렇게 편찮아하시는데 정말 눈이 먼 거야? 연홍도 씨, 저놈은 방해하러 온 것 같아요.”연홍도도 분노가 끓어올라 어금니를 깨물었다.“마지막 기회를 줄게. 만약 요점을 말하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가만 안 두겠어.”휘릭!무사 도복을 입은 열댓 명의 사나이가 강력한 기운을 풍기며 이곳을 둘러쌌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의사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연씨 가문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으나 두 눈으로 그 위력을 직접 확인하니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염무현이 이곳을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쌤통이다!상황 파악도 하지 못하고 연씨 가문에 사기 치려고 했으니 말이다.공혜리는 긴장되어 김범식 그들을 전화로 불러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염무현도 싸움 잘하는 고수인데 굳이 무서워할 필요가 있겠는가?‘연홍도, 이 노망난 늙은이야! 감히 무현 님에게 무례를 범해? 이따가 분명 후회할 거다!’염무현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따님이 병을 알고 계시진 않지만 몸에 극한의 냉기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냉기에 맞서 싸우기 위해 고열이 나고 있는 거고요. 하지만 그 냉기가 너무나도 강력해 43도까지 열이 났는데도 대적할 수 없어 혼수상태에 빠졌고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한 겁니다.”연홍도는 코웃음을 쳤다.“뚫린 입이라고 막말하는 거 아닌데. 거짓말을 거침없이 하네. 당신이 거짓말하고 있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우리 연씨 가문은 이유 없이 사람을 처벌하지 않지. 그렇게 거짓말하기 좋아하니 어떻게 둘러대는지나 한 번 봐야겠어. 기회를 줄게.”염무현은 그 협박을 무시하고 오히려 요구를 제기했다.“따님의 맥을 짚어봐야 그 냉기가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있어요.”“좋아.”연홍도도 쿨하게 대답했다.“하지만 그
“현무는 무슨, 청룡도 봤겠다.”“저 자식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아니면 현실을 2차원 세계라고 생각하는 건가? 딱 봐도 오타쿠네, 더 볼 것도 없어.”“정말 웃기는 사람이네. 사기꾼도 아니고 바보였어?”염무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무사 도복 남자들도 그의 말에 배를 끌어안으며 깔깔 웃어댔다.임형준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네놈의 의술이 어떤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긴장된 분위기에서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도 재간이야.”공혜리도 원래 이런 미신 같은 일에는 코웃음을 쳤지만 전에 있었던 임기욱 사건을 떠올려보면 염무현도 절대 생각 없이 이 말을 뱉진 않았을 것이다.임형준이 고개를 돌려 연홍도에게 말했다.“연홍도 씨...”연홍도는 더는 그에게 말하지 말라는 손짓하고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아무래도 연씨 가문 가주는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하지만 연홍도는 화를 내기는커녕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조금 더 자세히 말해봐요.”다름 아닌 연희주가 어릴 때 같은 말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때 연홍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어린아이가 환각을 봤나, 아니면 애니메이션에 나온 내용을 현실로 착각했나 생각했다.그런데 염무현이 그때의 연희주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연홍도는 이제야 딸에게 무슨 일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염무현이 말했다.“혹시 따님께서 어떤 위험한 상황을 겪고 구조된 후에 계속 헛소리를 하고, 울고불고한 적 있나요? 제 추측이 정확하다면 아마 따님을 위해 굿을 했겠죠? 따님이 너무 놀라셨으니까. 맞죠?”연홍도는 눈을 부릅떴다.방금까지만 해도 그의 말이 긴가민가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믿게 되었다.그의 태도는 180도 바뀌더니 예의를 갖추며 말하기 시작했다.“혹시 염무현 님께서는 어떻게 아셨나요?”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방금까지 ‘이놈’, 사기꾼이라 부르더니 이제 와서 ‘연무현 님’?뭐야, 그럼 정말 저 사람이 맞게 말한 거야?그럴 리가 있겠어?현무는
그래서 염무현이 이 일에 대해 언급했을 때 연홍도가 그렇게 놀란 것이었다.아무도 알아낼 수 없는 일을 그가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세상에, 저 젊은이가 정말 대단한 재주가 있는가?’“10년 동안 희주는 별다른 증세를 보이지 않았고 우리도 이 일을 점점 잊고 있었죠.”연홍도가 미간을 구겼다.“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희주가 한 달 전부터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어요. 10년 전 증상과 매우 비슷해 참 이상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거금을 드려 명의를 찾는다는 소식을 내보냈어요. 그때 그분의 주의를 불러일으켜 다시 희주를 살려주시길 바랐어요. 염무현 님께서 우리 희주가 왜 아픈지 바로 알아내셨으니 치료도 가능하다는 뜻이겠죠? 제발 우리 희주를 살려주세요. 원하는 건 모두 드리겠습니다.”공혜리가 콧방귀를 뀌었다.“이제 와서 사정하네. 아까는 그렇게 건방진 태도를 보이더니. 사기꾼이라며 깔보고, 사람 불러 협박까지 했는데, 연씨 가문은 손님을 이렇게 접대하나?”연홍도는 얼굴을 붉히더니 다급하게 말했다.“제가 눈이 멀었나 봅니다. 두 분,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 주세요.”“다들 뭐 하고 있어? 얼른 물러서!”무사 도복을 입은 사내들이 고개를 숙이고는 모두 물러났다.임형준과 다른 의사들도 난처한 얼굴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염치 불고하고 자리에 남은 건 염무현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는 절대 쉽게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현무는 물 속성이고 따님은 극북의 땅에서 얼음 굴에 떨어졌죠. 물이 얼음으로 되면서 그 냉기가 몸에 들어가 이런 증상을 유발한 겁니다.”염무현이 미간을 구기더니 말을 이어갔다.“10년 전 일이라 사실 따님의 냉기는 아주 경미하게 남아있어 쉽게 치료할 수 있을 텐데 왜 따님을 치료해 주신 분은 냉기를 몸에 봉인했을까요?”그때 상황으로 보면 냉기를 쫓는 것이 몸에 봉인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을 것이고, 오히려 봉인하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