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애경은 그녀보다 고작 몇 살 더 많고 아주 요염하게 생겼다. 김석진은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 후 내연녀였던 진애경을 집에 들였다. 까놓고 말해서 그녀는 김씨 일가에서 떳떳하지 못한 내연녀 취급이나 당하고 있다.김석진이 하도 그녀가 좋다고 하니 가족들도 조금 체면을 세워줬을 뿐이다.한편 진애경은 항상 김하린과 맞서는 걸 좋아한다.전생에 김하린은 둘째 큰아버지 김석진의 면을 봐서 진애경을 양보해주었다. 하지만 몇 년도 안 돼 김씨 일가가 몰락하자 진애경도 가차 없이 김석진을 버리고 전 재산까지 탈탈 털어갔다.이번 생에는 절대 이런 여자의 체면을 봐줄 리가 없다.“하린 씨, 숙모님 말씀이 거북하게 들리겠지만 이건 명색이 우리 김씨 집안의 가족 연회잖아요. 하린 씨는 결혼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남편이 당연히 함께 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옆에 있던 김씨 집안의 방계 친척이 입을 열었다.“그래, 전화라도 해봐. 우리가 좀 더 기다리면 되지.”주변 사람들도 하나둘씩 맞장구를 쳤다.김하린은 이 사람들의 속셈을 너무 잘 안다.김씨 일가의 산업은 꽤 많은 편이다. 이 사람들은 오늘 가족 연회를 빌미로 박시언과 협력할 기회를 쟁취하려는 것이다.“네가 정 그렇게 전화하기 어려우면 내가 대신 해볼게. 우리 다 한 가족이고 조만간 서로 볼 사이잖아.”진애경이 옆에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김하린을 쳐다봤다.해성에서 박시언과 김하린이 정략결혼을 한 사이란 걸 모르는 이가 없다. 박시언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고 예전의 김하린은 늘 그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아양을 떨었다. 이 또한 해성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한편 박시언이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숙모가 신경 써줘서 고맙지만 시언이는 약속이 있어서 못 와요. 그 사람 일하는 데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일하느라 못 오는 거니 딴 사람이랑 함께 있느라고 못 오는 거니?”진애경은 지금 박시언이 밖에 딴 여자가 있다고 대놓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다.김하린은 싸늘한 눈길로 진애경을 쳐다봤다.하지만 진애
“그분은 우리 회사 직원이에요. 저랑 함께 선물 고르러 가준 거예요. 여자들이 선물을 고를 때 더 꼼꼼할 것 같아서 데리고 갔을 뿐이죠.”박시언은 그윽한 눈길로 김하린을 바라봤다.만약 그의 속내를 진작 알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김하린도 지금 이 눈빛에 홀딱 넘어갈 게 뻔하다.진애경은 애틋한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표정 관리가 잘 안 되었다.그녀는 박시언이 여대생을 만나는 중이라고 똑똑히 전해 들었었다! 게다가 박시언이 김하린을 싫어하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시언이는 젊고 유능한 인재일 뿐만 아니라 우리 하린이도 엄청 아껴주네. 하린이 너한테 맡긴 건 나도 아주 마음이 놓여. 큰형도 하늘에서 분명 시름 놓고 계실 거야. 그리고 이건 가족 연회니까 너무 격식 차릴 필요 없어.”김석진이 들뜬 얼굴로 박시언을 안으로 들였다.김하린은 박시언의 팔짱을 끼고 나지막이 말했다.“연기 꽤 잘하네.”“너도 마찬가지야.”박시언은 또다시 차가운 목소리로 돌아왔다.자리에 앉은 진애경은 줄곧 마음이 안 내켰다. 그녀는 박시언과 김하린을 힐긋거리며 두 사람한테서 흠을 잡지 못해 안달이었다.“숙모,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왜 자꾸 이쪽만 쳐다보는 거죠?”김하린이 갑자기 말을 꺼내자 진애경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너랑 시언이가 사이가 참 좋아 보여서 그래. 소문과는 전혀 다르네.”“소문은 믿을 바가 못 돼요. 숙모도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믿는 거예요?”김하린은 박시언에게 고기를 한 점 집어줬다.박시언은 담백한 음식 위주로 먹는데 이번에는 내색 없이 고기를 먹었다. 이어서 가시 바른 생선을 김하린의 앞접시에 내려놓았다.진애경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그러게... 소문은 소문일 뿐이야. 오늘 보니까 철저히 알게 됐어. 시언이는 우리 하린이를 정말 지극히 챙기는구나.”옆에 있던 김석진이 두 사람의 모습을 빤히 지켜보다가 의아한 듯 물었다.“하린아, 너 언제부터 생선찜을 먹게 된 거야?”진애경은 남편의 말을 듣더니 정신을 번쩍 차리고 드디
전생에 박시언의 말 한마디면 그녀를 곤경에서 구해줄 수 있었는데 정작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옆에서 매정하게 지켜보기만 했다.여기까지 생각한 김하린은 제 손등에 올린 박시언의 손을 툭 쳐냈다.이에 박시언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다행히 이 제스처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연회가 끝난 후 박시언과 김하린은 나란히 손을 잡고 김씨 일가를 떠났다. 문밖을 나선 후 김하린은 손을 빼냈다.박시언은 텅 빈 손이 살짝 적응이 안 됐다.잠시 후 김하린이 먼저 물었다.“여긴 왜 왔어?”“혼자 오면 서운함을 당할 걸 뻔히 알면서 왜 기어코 혼자 오려고 한 거야?”김하린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너한테 물었었잖아.”박시언은 입술을 앙다물었다.“오늘 은영의 생일이라 그리로 가봐야 해.”“소은영 생일이라고?”김하린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근데 여길 왜 와?”박시언은 그 누구보다 소은영을 중히 여긴다.김하린의 말투에 이 남자는 저도 몰래 미간이 구겨졌다.“이 가족 연회는 우리 집안과 너희 집안이 관련된 자리이니 당연히 와야지.”“겉과 속이 달라도 너무 달라.”김하린이 나지막이 구시렁댔다.박시언은 그녀의 말이 잘 안 들렸다.“뭐라고?”김하린이 침묵했다. 전생에도 박시언은 가족 연회가 열리는 걸 알았지만 그녀와 함께 와준 적이 없다. 항상 그녀 홀로 까다로운 진애경이나 다른 방계 친척 어르신들을 상대하게 내버려 두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안 가겠다는 핑곗거리조차 귀찮아서 지어내지도 않았다.“소은영 생일 같은 중요한 날에 네가 가서 함께 있어 줘야 하는 거 아니야?”“그건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고.”소은영 얘기에 박시언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은영이는 어려서부터 부모 없이 자랐고 애가 참 사려 깊고 착해. 너희 집안 가족 연회라는 걸 알자마자 나한테 전화 와서 일단 여기부터 다녀오라고 했어. 나도 연회 끝나거든 금방 가서 함께 생일을 보내겠다고 약속했고.”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박시언은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걸 알아챘다.김하린은
지난번에 김하린이 화려하고 요염한 롱 드레스를 입었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과 김하린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박시언은 항상 소은영을 어린아이처럼 챙겨줄 뿐 여자로 대한 적이 거의 없다.오늘 밤에 반드시 이 기회를 잘 이용하여 박시언에게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끼익.”문이 열리고 소은영도 심장이 마구 쿵쾅댔다.박시언이 안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대뜸 이 남자의 품에 안겼다.“은영아?”“안 오실 줄 알았어요.”소은영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잔뜩 서운한 척하며 말했다.박시언은 그녀를 가볍게 밀어냈다.“오늘 네 생일이잖아. 온다고 약속했으면 꼭 와야지.”소은영은 그의 말을 들은 순간 두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하지만 박시언은 그녀의 옷차림과 방 안의 장식을 보더니 저도 몰래 미간이 구겨졌다.“시언 씨, 제가...”“은영아, 이런 옷은 너랑 안 어울려.”소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박시언이 대뜸 그녀의 말을 잘랐다.소은영은 잠시 넋 놓고 있었다.박시언은 옆에 있는 스위치를 눌러서 불을 환하게 켰다.“오늘 고른 생일 선물 마음에 들어?”“네...”그녀는 박시언이 방금 한 말을 미처 알아듣지도 못했는데 그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이 비서한테 말해서 이 방 예약하라고 했어. 네 친구들 불러서 다 같이 놀라고 한 거야. 게다가 여기 학교랑 가까워서 내일 학교 가기도 편해.”소은영은 멍하니 넋을 놓았다.박시언이 이어서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나는 저녁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어서 이만 갈게. 너도 일찍 자.”“시언 씨!”박시언이 나가려 하자 소은영은 재빨리 뒤에서 그를 끌어안고 울먹였다.“혹시... 제가 뭐 잘못했나요? 왜 갑자기 가려는 건데요?”박시언은 자신을 안고 있는 그녀의 두 손을 가볍게 내려놓았지만 차마 심하게 몰아붙이지는 못했다. 그는 목소리를 내리깔았다.“나는 네가 주변 환경에 영향받지 말고 공부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어.”소은영은 가슴이 움찔거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박시언은 어느새 떠나고 없었다.이 비서는 호텔 밖에 차를 대
김씨 일가의 가족 연회가 끝난 지 며칠 만에 김하린은 A대의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그녀가 A대의 대학원생으로 입학했다는 사실은 업계 내에서 초특급 뉴스로 거듭났다.A대가 금융계 최고의 대학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김하린은 금융을 접해본 적이 없는 명문가 딸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엮는 자체가 이미 아주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다.“띠리링...”김하린은 오후에 김석진의 전화를 받았다.김석진은 전화기 너머로 매우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하린아, 너 정말 A대에 합격했어? 그 소문 가짜지?”“당연히 진짜죠.”김하린도 딱히 숨길 생각이 없었다. 이 바닥에는 영원한 비밀이 존재하지 않으니까.김석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대체 얼마를 써서 A대에 들어간 거야? 아니면 박시언이 도와줬니?”“그냥 운 좋게 수능 봐서 합격한 거예요. 시언이가 도와준 거 아니에요.”“그럼 돈 쓴 거네?”김석진이 끝까지 우겨댔다.“어떻게 네 아빠가 물려준 유산으로 그런 짓을 벌여?! 그 돈은 네 미래를 위한 비상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못 살아!”김석진의 말을 들은 김하린은 저도 몰래 미간이 구겨졌다.“큰아버지, 혹시 제 은행 계좌를 조회하셨어요?”“그건, 다 널 위해서야! 4천억이라니! 어떻게 그 돈으로 A대에 들어가려고 사람을 매수하냐고? 소문이라도 퍼지면 우리 집안 사람들 무슨 체면으로 머리를 들고 다녀? 넌 창피하지도 않아? 이대로 뻔뻔스럽게 살아갈 셈이야?”김석진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지금 바로 A대 가서 그 돈 돌려받고 이 학교 그만둬.”김석진의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 마치 김하린이 이 돈으로 학교 측 사람들을 매수하여 A대에 입학했다고 단정 지을 기세였다.이건 진애경이 꼬드겨서 그녀에게 전화하라고 시킨 게 틀림없다. 김하린은 바로 알아챘다.한편 그 부지에 관한 일은 아직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없고 또한 진애경이 꼼수를 부리도록 내버려 둘 리도 없다.김하린이 말했다.“큰아버지, 그 돈은 돌려받을 수
진애경이 괜히 그녀가 뒷돈을 주고 A대에 입학한 거라고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또한 4천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날린 것만 아니었어도 김석진은 절대 김하린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그가 전화를 끊은 후 김하린은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진애경이 벌써 아빠가 물려주신 유산에 눈독을 들이고 있네? 이제 막 소문이 떠돌자 황급히 큰아버지를 부추겨서 내 은행카드를 조회한 거야?’아무래도 진애경은 일찌감치 음모를 꾸민 듯싶다.김하린이 은행 전용 번호로 전화를 걸자 상대가 곧장 받았다.“안녕하세요 김하린 씨,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자산을 다른 카드로 옮기려고요.”“네, 추후 전담 요원이 하린 씨를 위해 서비스해드릴 겁니다.”김하린이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만약 우리 가족이 제 은행 자산에 관해 묻는다면 미리 저한테 말씀해 주시겠어요?”“네, 알겠습니다, 김하린 씨.”김하린은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4천억으로 그 부지를 산 바람에 은행카드에 자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빠가 물려주신 유산을 줄곧 이 카드에 넣어두었고 오직 김석진만 이 일을 알고 있다.그가 이토록 중요한 일까지 진애경에게 말할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진애경은 역시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다.개강하는 날, 김하린은 아침 일찍 일어났고 유미란도 준비 물건을 미리 챙겨놓았다.유미란은 그녀가 홀로 이 물건들을 챙기는 걸 보더니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대표님도 참 너무 하시네요. 오늘 사모님 개강일인 걸 뻔히 알면서 돌아와서 좀 도와주시면 어디 덧나나요?”“괜찮아요, 아줌마. 시언이 없으면 저는 오히려 더 홀가분해요.”김하린의 말을 들은 유미란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전의 사모님은 매일 이다시피 대표님이 돌아오길 바라셨으니 말이다!“띠리링...”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김하린은 고개 숙여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는데 서도겸한테 걸려온 전화였다.요 며칠 서도겸은 실종된 것처럼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오늘 갑자기 무슨 일로 전화 온 걸까?전화기 너머로 서도겸의 낮은 웃음소리가
단번에 집 한 채를 샀으니 안 비쌀 리가 있을까? 그곳은 일반 학군이 아니라 귀족학교 근처의 집이다!여기까지 생각한 배주원은 운전하며 백미러로 서도겸을 매섭게 노려봤다.“방금 뭐라고?”김하린은 그의 말이 잘 안 들렸다.이에 서도겸이 답했다.“여기 괜찮다고. 너무 비싼 건 아니래.”그 시각 차가 커브 길을 돌면서 급정거를 했다. 김하린은 제대로 앉지 못하고 곧장 넓고 단단한 품에 쓰러졌다.머리 꼭대기에서 차갑고 진중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배주원, 운전 똑바로 해.”“알았어!”‘사랑 앞에서 우정은 정말 볼품없구나!’그들의 차가 A대 맞은편의 한 고급주택 앞에 도착했다. 서도겸은 전자카드 한 장을 김하린의 손에 쥐여주었다.“개인정보는 내가 대신 입력해줬어. 앞으로 출입할 때 이 카드를 긁으면 돼. 이 주택은 프라이빗 보장이 잘 돼 있고 입주자 대부분이 유명인사들이라 새로운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을 거야.”김하린은 이 주택을 쭉 둘러봤다.A대에 다니기로 했을 때 그녀도 여기서 집을 구하려 했었다.하지만 이 주택은 단지 비싼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지내려면 반드시 자격을 평가받아야 한다.서도겸은 그녀에게 이 집을 구해주느라 엄청 신경을 썼을 것이다.“들어가 봐. 방 구조가 마음에 드는지 한번 둘러봐.”서도겸은 한결 부드러운 눈길로 변했다.김하린은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그녀의 집은 가운데 있는 13층으로 역시 전망이 가장 좋은 자리였다. 문을 열자 방안에서 은은한 향기가 코를 찔렀고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우면서 심플해서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김하린이 아무 말도 없자 배주원이 얼른 말했다.“이봐, 하린이는 이런 거 절대 안 좋아한다니까! 어떤 여자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해? 다들 소녀 감성을 좋아하겠지.”“아니, 나 너무 마음에 들어.”김하린이 서도겸을 쳐다봤다.“고마워.”“안 갑갑해?”“전혀. 난 심플하고 조용한 게 좋아.”이곳에는 모든 일상생활용품이 갖춰져 있고 향초와 커피머신 같은 물건까지 마련되어
김하린은 오후에 출석체크하러 학교에 갔다. 심플한 캐주얼 차림이지만 캠퍼스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너무 예쁜데? 신입생이야?”“전에 본 적 있어? 우리 학교 학생이 맞긴 맞아?”“전에 입시 때 본 것 같기도 하고, 신입생이겠지?”주위 사람들이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김하린을 힐긋거렸다.이때 나름 잘생긴 선배가 달려오며 선뜻 물었다.“안녕? 우리 학교 신입생이야?”김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요.”“기숙사 어디야? 내가 바래다줄까?”“아니요, 괜찮아요. 저 기숙사 안 살아요.”“그럼 함께 출석체크하러 가자. 난 3학년이야. 1학년은 제1강의동에서 출석체크할 거야.”“아니, 난 제2강의동에서 해.”“뭐?”자칭 선배라는 남자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김하린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난 제2강의동에서 출석체크한다고.”“하지만 거긴...”‘대학원생들이 출석체크하는 곳이잖아?!’‘선배’는 김하린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그녀는 고작 스무 살 남짓한 어린 소녀인데 A대의 대학원생으로 입학하려면 적어도 3년에서 5년 좌우 수능을 준비해야 한다. 김하린은 아무리 훑어봐도 다 늙은 여자 대학원생들과 비교할 바가 안 됐다.“제2강의동 바로 저기 있네. 고마워 학생.”김하린은 ‘선배’에게 웃으며 인사한 후 돌아서서 제2강의동으로 들어갔다.요 며칠 소은영은 줄곧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다. 박시언은 며칠째 그녀에게 연락 한 통 없고 만나려는 의향이 아예 없었다. 유가람과 안소이마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유가람이 참지 못하고 질문을 건넸다.“은영아, 네 그 남친 말이야, 왜 줄곧 아무 연락도 없지?”“그러게 말이야. 두 사람 설마 그 여자 때문에 헤어진 건 아니지?”안소이도 질문을 보탰다.소은영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요즘 출장 갔어. 괜한 생각 하지 마.”“헐! 이 사람 지난번에 너희가 말했던 은영의 남친 좋아한다던 그 여자 아니야?”이때 또 다른 룸메가 갑자기 그녀들 앞에 휴대폰을 내밀었다.다름이 아니라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