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희를 대하는 조은혁의 행동에는 조금의 부드러움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소파 위, 카펫 위, 곳곳에 그가 만들어 낸 흔적이 흩뿌려져 있었고 큼직한 유리창 위에도 그녀의 입가에서 흘러나온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혁은 눈치채지 못했고 오직 자신의 욕구에만 몰두하느라 그녀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다.그날 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박연희는 차가운 침대에 웅크린 채 유리창 너머로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세기 시작했다.조은혁의 옆에 머물러 있다면 아마 빨리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반년, 어쩌면 두세 달 만에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진범이... 그래. 그녀에게는 아직 진범이가 있다.B시에 돌아온 후, 박연희는 진범이에게 해마다 엄마가 직접 준비해준 새 옷을 입게 하도록 몇 년 동안 입을 수 있는 옷을 여러 벌 사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진범이에게 책도 골라주어야 했다. 조은혁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기게 된다면 진범이에게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녀의 수중에 아직 돈이 좀 있으니 그 돈을 장씨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그녀가 진범이 대신 저축하도록 해야 한다.정말 사고나 다른 일이 생기더라도 그녀의 진범이는 고통받지 않을 것이니까.진범아, 하나뿐인 진범아... 박연희가 어찌 진범이를 두고 안심할 수 있겠는가?밤에 그녀는 고열에 시달리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후에 다시 내렸다.새벽녘에야 돌아온 조은혁의 몸에는 은은한 향수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데 박연희는 단번에 그 향이 이미연의 것과 같은 제품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덜미에는 아직 썸타는 흔적이 남아 있다.이것으로 박연희에게 벌을 주려는 것일까?그러나 아쉽게도 박연희는 곧 죽을 운명이다.어느덧 벌써 오전 9시가 되고 이들이 체크아웃까지 한 시간이 남은 시점이었다.박연희가 먼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옷 갈아입고 올게요.”그러나 손목이 잡히고 조은혁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진통제!그래! 지금 박연희에게 필요한 것은 진통제이다....깊은 밤, 하와이의 밤거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박연희는 외투를 두르고도 온몸이 으슬으슬 추웠는데 이 또한 병이 났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이전에는 그녀도 이렇게 추위를 타지는 않았다.거리마다 각양각색의 약국이 가득 차 있었는데 박연희는 마침내 24시간 영업하는 약국을 찾아냈다.박연희는 불빛이 환한 약국 안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직접 진통제 두 상자를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직원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그녀를 거절해버렸다.“의사의 처방전이 없다면 저는 약을 가져다줄 수 없어요.”그러자 박연희는 두툼한 지폐 두 묶음을 카운터에 놓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현금 400만 원이었다.직원은 깜짝 놀라서 좌우를 슬쩍 둘러보더니 즉시 현금을 들어 위폐 감별기에 넣어 검사하였다... 한바탕의 와글와글 소리 속에서 박연희가 건넨 것은 놀랍게도 모두 진짜 지페였다.박연희가 다시 창백한 입술을 열어 말을 꺼냈다.“처방전을 400만 원에 살 수 있나요?”“할 수 있죠! 당연히 할 수 있죠.”직원은 돈을 잘 쌓아두고 CCTV를 피해서 자신의 가방에 넣고는 몸을 돌려 박연희에게 약 다섯 상자를 건네주었다.“세 상자는 제가 더 준 셈 치죠. 하지만 이 약은 하루에 두 알만 먹을 수 있고 그래도 참을 수 없다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어쨌든 병은 치료해야 하지 통증만 멈춘다고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제가 보기에 손님도 돈이 모자라지 않는 것 같은데.”박연희는 그저 싱긋 웃어 보이고는 약 다섯 상자의 포장을 뜯고는 조심스럽게 핸드백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녀의 모습에 직원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약 하나 사러 오는데 뭘 그렇게 간첩 같이 굴어요. 맞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하와이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남쪽 지역 사람이죠? 여기에서는 남쪽 사람이 제일 인기가 많아요. 밖에 나갈 때 카드도 안 쓰고 이렇게 현금을 쓰니까요.”“아니요. 그냥 핸드폰을 잃어버렸어요.”박연희
조은혁이 힘을 주는 바람에 손목으로부터 통증이 밀려왔다.박연희는 그 예쁜 여자 연예인의 뒷모습을 뚫어지라 바라보더니 한참이 지나 가볍게 입을 열었다.“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소란을 피우는 것도 자격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그녀의 쌀쌀맞은 태도에 조은혁은 좀 불쾌해졌다.그때 밤바람이 몰아치자 박연희가 격하게 기침을 해댔다.조은혁은 그녀의 옷이 얇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혼자 나왔어?”“약 사러 나왔어?”박연희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혹여나 조은혁이 그녀의 가방을 검사할까 봐 두려워 얼버무렸다.“네. 생리가 와서... 아랫배가 아프더라고요.”조은혁은 별다른 의심 없이 믿어주는 눈치였다.그가 차에 타라고 하자 박연희는 결국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를 따라 차에 탔다.차 안은 따뜻했지만 다른 여자가 남긴 향수 냄새가 그대로 남아 있어 박연희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조은혁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고 더욱이 그의 관심을 끌기 싫어 필사적으로 참았다.그녀는 조금 아파서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가냘픈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오랜 시간 동안 그들은 계속하여 침묵을 유지했고 차가 호텔 주차장에 주차되어서야 조은혁은 비로소 손짓했다.운전기사는 눈치껏 먼저 차에서 내려 차 옆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차 안이 워낙 좁은 터에 두 사람만 남으니 더욱 비좁아 보였다.조은혁은 고개를 숙여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뽑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놀았다.길쭉하고 훤칠한 손가락으로 담배를 끼우고 있으니 그 화면은 어두운 불빛 속에서 상당히 눈을 즐겁게 하였다.한참 뒤 그는 박연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박연준은 이미 풀려났어.”순간 박연희가 멈칫하고 그를 바라보았다.이윽고 그녀는 쉰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마워요.”그러자 조은혁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재빨리 물었다.“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세 글자만 남았나? 박연희, 만약 내가 지금 너에게 다시 한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휴대폰 너머 상대에게 몇 마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작은 바에는 알약의 내부 포장이 아직 남아 있었다.조은혁은 그 포장지를 주워들어 살펴보았는데 그는 보자마자 이것은 병원에서 처방한 약이라는 것을 알아냈다.그가 박연희를 올려다보았다.“이건 어떻게 산 거야? 그리고 또, 전에 네가 생리통을 앓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이번에는 왜 이렇게 아파하는 거야?”박연희는 가슴이 천둥이 울리는 것마냥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속삭였다.“그분도 처음에는 팔아주려 하지 않았는데 제가 그 사람에게 4만 원을 주니 그제야 방법을 대서 팔아준 거예요.”“그리고 생리통은 이번에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 거예요.”조은혁은 긴 손가락으로 그 약 포장지를 가지고 놀다가 결국 한 마디 내던졌다.“이 약은 위를 상하게 하니 자주 먹지는 마.”어물쩍 넘어가게 되자 박연희는 심장이 큰 바위처럼 땅에 떨어지는 기분이었다....다음날, 그들은 B시로 돌아갔다.정오 무렵, 검은색 캠핑카가 천천히 럭셔리한 별장으로 들어섰고 장씨 아주머니는 많은 고용인들을 거느리고 일찍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진범은 장씨 아주머니 품에 순순히 안겨 있었는데 하얗고 통통하게 잘 자란 모양이다.엄마를 본 진범이는 짧은 두 팔을 벌리고 끊임없이 박연희를 찾았다.“움마, 움망.”전에는 박연희도 앞날이 창창하다고 생각했었다.그래서 진범이는 조은서의 곁에서 자라고 그녀는 그를 그리 많이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자신을 보호해야만 진범이와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박연희는 진심으로 진범이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그녀가 진범이를 안은 순간, 진범이의 몸을 만지고 진범이의 냄새를 맡고 또 진범이의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진범이는 그녀의 몸에서 나온 그녀의 혈육이다.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박연희는 주체할 수 없었다.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아이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그의 존재를 한껏 느꼈다.뜨
곧이어 그녀는 자신이 조은혁과 재혼했다고 밝혔다.이 소식은 마치 천둥 번개와도 같이 장씨 아주머니의 귀에서 폭파되었다. 장씨 아주머니는 한참 만에야 이 소식을 소화해 내고는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사모님, 왜 그러셨어요! 동거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아요. 대표님께서 싫증이 나실 때까지 기다리면 되죠. 근데 이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남은 혼인 증서는 앞으로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어요.”장씨 아주머니는 너무 슬픈 마음에 눈물을 훔쳤다.그러자 박연희는 쓴웃음을 지었다.“장씨 아주머니, 아주머니도 제가 그와 결혼하는 것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왜 바깥에 그렇게 많은 여자들은 불구덩이에 뛰어들려고 하는 걸까요?”“그건 그 여자들이 대표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돈이나 육체적 쾌락만 추구하면 되지만 사모님은 다릅니다. 사모님께서는 일찍이...”장씨 아주머니는 목이 메어 거의 말을 잇지 못했다.“사모님께서는 한때 푸대접을 받으신 적이 있지만 결국은 그림의 떡이 됐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그림의 떡...박연희는 흰 얼굴에 이 다섯 글자를 곱씹으며 허무하게 웃었다.그렇다. 그녀와 조은혁의 감정은 흡사 그림의 떡과도 같다.그녀는 줄곧 조은혁의 감정을 진짜라고 여겨왔었다.사실, 모두 그녀의 환상이었지만 말이다.오직 진범이만이, 오직 그녀가 10개월 동안 품어 태어난 진범이만이 진실한 것이다...박연희는 천천히 얼굴을 어린아이에게 밀착시켜 슬픔을 표했다. 이윽고 그녀는 장씨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번에 돌아오면 꼭 부탁할 게 더 있으니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장씨 아주머니는 속으로 원인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결국, 그녀는 그동안 오랜 시간 박연희를 봐주었으니 이 여자아이는 너무 많은 고생을 겪었고 큰 충격을 받지 않았더라면 절대 이런 낙담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장씨 아주머니는 박연희의 입에서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저에게
지난번 구치소에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항상 아쉬움으로 남았었다.이제 아무도 그들의 재회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사실 어려서부터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다.박연희는 작은 얼굴을 그의 가슴에 파묻고 가늘게 떨리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오빠, 왜 전에 나한테 말 안 했어? 왜 안 알려줬어!”만약 그녀에게 알려줬다면, 어쩌면, 그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후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그토록 조은서를 좋아했는데.아마 현재의 그는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복수하고 난 후의 쾌감이 어떻게 평생의 긴 외로움을 상쇄할 수 있겠는가?그녀는 집안 원수든, 그녀의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의 아버지는 원래 썩어빠진 인간이기에 그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관심 없었다.그저 오빠만 행복하고, 영원히 그녀의 곁에서 함께 해주길 바랐다.그녀는 박연준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한편, 박연준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박연희를 달래주었다.“연희야, 이 세상에 후회 약은 없어. 만약 있다면 내 모든 생명과 바꿀 의향은 있어. 그렇게 된다면... 조은서에게도 그렇게 많은 아쉬움이 없을 것이고 너도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을 것이고 나는 아마도 그녀의 곁을 지킬 수 있겠지. 은서의 변호사가 되고 은서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될 거야. 애인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항상 내 자리가 있을 거야. 은서의 아이도 날 보면 연준 아저씨라고 다정하게 불러주겠지...”그러자 박연희는 눈을 치켜뜨고 눈물로 희미해진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오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았어.”박연희는 핸드백에서 박연준의 이름으로 된 항공권을 꺼냈다.그 순간 박연준은 넋을 잃고 말았다.박연희는 연약한 몸을 추스르며 오빠에게 미소를 지었다.“오빠, 외국에 가서 살아. 스위스! 오빠 스키 제일 좋아하잖아. 얼마나 좋아.”그러자 박연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불렀다.“박연희.”박연희는 가늘게 입술을 떨었다
그러자 박연준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연희야, 나와 함께 가자!”같이 간다고...그녀라고 하여 왜 함께 가고 싶지 않겠는가?하지만 박연희는 떠날 수 없다. 그녀는 진범이를 데리고 갈 수 없다. 한 발짝 물러서서 정말 데려간다고 해도 그녀는 아마 공항에서 제지될 것이다. 그리고 조은혁이 화가 나면 그때는 그 누구도 도망갈 수 없다.박연희는 눈을 내리깔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박연준의 손등을 가볍게 내리쳤다.박연준은 정말 심장을 쥐어짜는 듯 아프고 말로 이룰 수 없는 괴로움에 사로잡혔다.“오빠, 나 좀 내버려 둬. 스위스로 가도 좋고, 작은 섬으로 가도 좋고... 가서 잘 살아.”박연희가 눈물을 글썽였다.“우리 둘 중 누군가는 꼭 살아있어야 해. 그러니까 잘 살아.”그녀를 바라보는 박연준의 눈길이 깊고 그윽했다...박연희는 핸드백에서 100억 원짜리 수표를 꺼내 짙은 색의 책상 위에 가볍게 얹어 놓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연 그녀의 목소리는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다.“2년 전, 난 어리고 무지해서 무고한 사람을 해쳤어. 은서 씨가 나를 도와 하와이에 가서 그 가족을 안정시켜줬어. 이건 내가 빚진 거야, 오빠, 그러니까 오빠가 나를 도와 수표를 은서 씨에게 건네줘.”박연희는 이 이별이 결국 영원한 이별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그리고 그녀의 오빠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겠지.아니나 다를까, 조은서의 소식을 들은 박연준은 즉시 정신을 차렸다....한 시간 후, 도시 에센셜 구역에 있는 THEONE 레스토랑. 점심 식사 시간이 한창일 때, 조은서는 마침 가게에 있었고 그녀는 구석의 2인석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앞에는 레모네이드 한 잔만 있었다.맞은편에는 식당 매니저가 앉아 그녀에게 영업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조은서는 과거의 일을 거의 잊어버렸고 갑자기 THEONE의 총 100개 매장을 인수하자니 시간과 노력이 두 배로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일을 배우고 싶었고 그 노력을 하고 싶었다.그녀는 유선우에 의지해
조은서가 멍하니 넋을 잃었다......오후에 박연희는 박연준을 떠나보내고 별장으로 돌아왔다.그녀는 줄곧 진범이의 곁을 지켜주었다.진범이는 그들의 사랑을 만끽하며 하얗고 통통하게 잘 자랐다. 집안의 아주머니는 모두 그를 매우 좋아했고 특히 장씨 아주머니는 진범이를 정말 친손자처럼 아껴주었다...밤에 박연희는 진통제를 먹고 몸이 좀 나아져 목욕을 한 뒤, 진범이를 안고 토닥여주며 가볍게 달래주었다.아마 몸에 배어있는 바디워시 냄새가 좋았는지 진범이는 계속하여 엄마 품속을 파고들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몽롱해 있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그를 바라보는 박연희의 눈에는 부드러움이 가득했다.그녀는 진범이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동요를 흥얼거렸다. 그녀는 진범이가 이 순간을, 그리고 엄마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랐다. 그렇다면 먼 미래에 진범이가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만나거나 기분이 나쁘면 자정에 꿈을 꿀 때, 엄마의 냄새를 꾸게 되지 않을까.진범이는 그녀의 품에 안겨 눈을 반쯤 감은 채, 어떻게든 잠을 자려 하지 않았다.아이의 작은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보던 박연희가 얼굴을 살짝 갖다 댔다.진범아, 엄마는 정말 오래 살고 싶어. 그러면 네가 자라는 것을 보고, 학교에 가는 것도 보고, 네가 녹음이 우거진 풀밭에서 축구하는 것도 볼 수 있을 거야.진범아, 엄마는 네가 빨리 어른이 됐으면 좋겠어.진범아, 그런데 엄마는 또 네가 너무 빨리 자라서 갑자기 어른이 될까 봐, 많은 고민을 안고 자랄까 봐 두려워.밤이 깊어 만물이 쥐 죽은 듯 평화롭고 고요했다.그때, 누군가 침실 문을 밀고 들어왔는데 다름 아닌 조은혁이었다.그는 살짝 문을 열어놓고 진범이가 잠들듯 말 듯 한 모습을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진범이 왜 아직도 안 자?”“장씨 아주머니가 낮에 많이 잤다고 하더라고요.”그는 천천히 다가와 아이를 안고 살며시 몇 번 만지작거렸다...그리고 박연희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