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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6화 승우의 부탁

만약 한 달 전이었다면 승우는 고민 없이 시윤에게 사실을 털어놓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시윤이 도준을 얼마나 감싸는지, 다른 사람이 도준을 비방하는 걸 얼마나 참지 못하는지 똑똑히 봤는데, 자기가 감싸던 사람을 본인조차 알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면 시윤이 어떻게 될까 두려웠다.

결국 한참을 생각한 승우는 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준 씨,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

오후.

시윤이 도준과 함께 집에 도착하자 양현숙은 이미 음식을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달 동안 경성 음식을 꾸준히 연습한 덕에 요리 솜씨가 놀라울 정도로 늘어난 양현숙은 손수 막국수까지 준비했다.

찬물에 헹군 국수를 그릇에 담아 식탁에 올려놓던 양현숙은 도준과 함께 들어온 시윤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어떻게 민 서방이랑 같이 들어와? 산책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네? 제가 그랬어요?”

시윤은 눈알을 굴리며 양현숙의 눈을 피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양현숙은 화가 나 젓가락을 내팽개쳤다.

“너 이제 하다 하다 엄마까지 속여? 공항이 얼마나 복잡한데 아무 말도 없이 그런 곳까지 왜 혼자 갔어? 엄마가 안중에 있기는 해?”

시윤은 도준의 등 뒤에 숨어 고개를 쏙 내밀고 변명했다.

“공항에 가는 것도 산책이잖아요.”

양현숙은 못 당해내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이제 너 상관 못 하겠어. 민 서방, 앞으로 자네가 윤이 챙겨.”

양현숙이 정말 화를 내자 시윤은 얼른 다가가 양현숙의 팔짱을 꼈다.

“죄송해요. 다음엔 안 그럴게요.”

양현숙은 콧방귀를 뀌고 홱 돌아서더니 시윤을 무시한 채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투명 인간 취급에 멍하니 서 있는 시윤을 보자 도준은 얼른 손에 쥐고 있던 상자를 건네주며 주방을 향해 고개를 까닥거렸다.

상자를 슬쩍 열어본 시윤은 이내 눈을 반짝이며 양현숙에게 달려갔다.

“엄마, 이것 봐요. 이거 엄마가 지난번에 티브이에서 본 옥으로 된 찻잔이잖아요. 엄마 컵 수집하는 거 좋아하잖아요. 이걸 봐서라도 화 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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