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 말고 다: Chapter 281 - Chapter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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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1화
신유리는 이신의 시선을 살짝 피하며 눈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방금요.”이신은 신유리 목에 둘러져있는 스카프를 보고는 동공이 흔들리는 듯 했고 생각에 빠져드는 모습이었다.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신 때문에 조금 민망한 신유리는 그 자리에 굳어 무슨 일부터 손을 봐야 하는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아까 호텔에서 임아중과 마주했을 때도 이런 기분이 안 들은 신유리지만 이신의 눈을 바라보자니 긴장감이 맴돌았다. 마치 거짓말을 하다가 들킨 어린 아이처럼.이신의 시선은 신유리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그의 시선을 애써 계속 피하고만 있었다.곡연은 둘의 모습에 신유리가 부끄러워 말을 못하는 줄 알고 화가 나 씩씩대며 아까 그녀가 했던 말들을 다시 막 뱉어냈고 마지막엔 이런 말도 덧붙였다.“오대표님도 참... 경희영씨 소문이 그렇게 안 좋은데 왜 그 사람을 데려왔을까요?”곡연의 말을 다 들은 허경천은 방금 전 곡연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고 첨엔 화가 나 얼굴이 빨개지다가 후에는 오대표님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상황인지 따지려고 하였다.신유리는 곡연과 허경천이 같이 나가는 것을 보고는 긴장했던 마음이 점차 진정되는 것 같았지만 고개를 들면 보이는 이신의 얼굴 때문에 또다시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그녀가 마음을 굳게 먹고 말을 꺼내려고 준비할 때, 이신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어제... 많이 무서웠지?”“...”이신은 말을 하지 못하는 신유리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위로를 건네듯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그런 일은 여자인 너 혼자 감당하게 만들었네... 미안해, 빨리 나타나주지 못해서.”신유리는 이신의 입에서 이런 말들이 나올 줄 몰라 잠시 당황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안 무서웠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어찌 안 무서웠겠는가? 어제 복도에서 버티다 못해 주저앉았을 때의 심정은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려오는 신유리였다.그 순간, 이신이 큰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다정하게 위로했다.“이젠 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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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연우진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신유리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고 그녀의 대답에 모든 신경을 다 쏟아 붓는 것 같았다.신유리는 전에 진송백 또한 자신에게 부산에 친척이 있는지 물어보던 일이 생각이 났고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연우진에게 되물었다.“왜 물어보는거야?”하지만 연우진은 입을 꾹 닫아버렸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얼른 부인하더니 말을 꺼냈다.“아니야, 내가 잘못 생각했나보다. 미안.”요즘 일이 바쁜 탓인지 신연과 신유리가 아는 사이 일 것이라고 착각을 한 연우진은 자신의 잘못임을 인정했고 신유리는 평소와 무척이나 다른 그의 모습에 걱정 어린 표정을 하고 물었다.“무슨 일이 있는 거라면 나 먼저 가볼게.”연우진은 입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무슨 말을 하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결국 꾹 참아내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리고는 한참 뒤, 낮은 목소리로 결심이라도 내린 듯 신유리에게 말했다.“유리야, 그때 말이야... 왜 계속 서준혁씨랑 헤어지지 않았던 거야?”신유리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연우진이 당황스러웠고 그녀는 그를 유심히 보며 생각했다.[옛날에 대판 싸웠을 때도 이런 건 안 물어보더니...][그냥 아무 말 없이 날 도와주던 애가 왜 이러지?]지금 연우진의 모습과 저번에 말했던 지연이가 생각이 나 신유리는 더욱 더 생각이 많아졌고 그녀는 책상위에 놓인 얼마 마시지도 않은 커피를 보며 아무 감정도 없이 대답했다.“그러게 말이야. 그땐 내가 너무 멍청했어. 누가 와서 말려도 안 될 정도로.”예전의 신유리는 서준혁이 저지른 크고 작은 나쁘고 악한 만행들을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르는 척해줬고 한번, 또 한 번 자기 자신을 위로하며 서준혁은 단지 지금 재밌는 게임을 하면서 논다고 생각하려고 애썼다.하지만 결국 서준혁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신유리였다.연우진은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고 신유리는 그런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떴다.그녀가 몸을 일으키기 전, 연우진이 대뜸 입을 열었다.“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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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그녀의 부름에 서준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상태로 천천히 머리를 들고 송지음을 쳐다보았다.송지음은 순간 그의 눈빛에 뜨끔했고 곧이어 온 방엔 서준혁의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네가 이석민씨한테 말한 거 그거 다 사실이야?”서준혁에게로 다가가려고 하고 있던 송지음은 발걸음을 멈췄고 첫마디부터 이런 물음을 던지는 그에게 실망한 것 같아 보이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그거 다 경희영씨가 술에 많이 취해서 저한테 알려준 거예요.”그녀의 대답에도 서준혁은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고 까만 눈동자 속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리지 않았다.송지음은 마음을 굳게 먹고는 계속 서준혁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말을 이어갔다.“오빠, 전에 일은 제가 다 설명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화 좀 풀어요. 네?”서준혁은 말을 하는 송지음을 흘긋 째려보며 물었다.“너는 내가 왜 너를 고소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네?”송지음은 그의 질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고 서준혁은 손에 들고 있던 펜을 책상위에 툭 던져놓으며 차갑게 말했다.“회사 내 비밀문서들을 팔아넘긴다... 이 하나로도 넌 절대 법의 심판을 피하지는 못 할 거야.”가만히 서있는 송지음은 새하얗게 질려있었고 그녀는 지금 서준혁이 하는 말들이 다 사실이고 그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차렸다.서준혁이 송지음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건 다 화인 그룹을 위해서이고 그런 줄도 모른 송지음은 사실 그날 이석민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그래도 아직 서준혁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가 혼자 속으로 기뻐하고 있었다.그러나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서준혁의 굳은 표정을 보고는 그제야 반응을 했다. 그가 자신을 남겨둔 건 오직 회사를 위해서이고 아직 그녀가 이용가치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송지음은 포기하지 않았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다 제쳐둔 채, 울먹거리며 입을 열었다.“오빠... 이렇게 독한 사람이었어요? 저 요 며칠 많이 반성했잖아요. 왜 저를 용서하려고 하지 않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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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긴 복도와 큰 사무실은 넓기 그지없었기에 하정숙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는 신유리가 무시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그녀와 하정숙은 아예 모르는 남보다는 조금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신유리는 전에 서준혁 때문에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다.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은 신유리가 무엇을 하든, 어떤 짓을 하던 지간에 하정숙은 그녀를 얕잡아보았고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하정숙과 신유리가 제일 많은 소통을 하는 시간은 서씨 집안의 큰 행사나 파티가 있는 날이었고 그때마다 하정숙은 신유리에게 좀 도와달라고 늘 먼저 말을 걸었었다.하지만 대부분 시간 신유리는 하정숙과의 소통과 교류를 숙제삼아, 임무삼아 완수하려고 하였고 그리하여 매일 참고 인내하며 그녀와 함께 했었다.하정숙은 신유리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자 화장을 세심하게 한 얼굴엔 미소가 띠었고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주현에게 말했다.“나중에 너랑 준혁이 결혼하면 준혁이를 좀 잘 관리해봐, 회사가 얼마나 성스럽고 중요한 곳인데 개나 소나 다 들어오게 하고 말이야.”그녀의 말에 주현의 시선은 자연스레 하정숙을 타고 신유리에게로 떨어졌고 생긋 웃으며 마치 불난 집 불구경이라도 하듯 대답했다.“화인 그룹의 룰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 회사는 절대 잘린 직원을 다시 회사 내에 발 들이게 하지 않던데요.누가 잘 통하는 사이 아니랄까봐 주현과 하정숙은 사람을 조롱하는 말투마저 똑같았고 신유리가 여전히 대꾸조차 해주지 않자 또다시 신유리를 쳐다보며 물었다.“요즘 업무 때문에 화인에 자주 들락거린다고 들었어요. 한 걸음 물러나는 척하며 두 걸음 다가서는 거... 좋은 방법이네요.”신유리는 딱히 아무 감정이 없어 무덤덤한 얼굴로 주현을 쓱 훑어보고는 천천히 입을 뗐다.“화인그룹이랑 버닝스타의 협업을 제가 담당하고 있어서요. 주현 아가씨랑 정숙 부인님이 그렇게 불만이 많으시다면야 직접 서대표님께 가서 합작을 취소하라고 말씀하세요. 위약금만 낸다면야 버닝스타도 의견은 없을 거예요.”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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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신유리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눈빛으로 서준혁을 쳐다보았고 사무실은 물을 뿌린 듯 조용했다.그녀는 원래 사무실 안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었고 밖의 휴게실에서 서준혁을 기다리려고 하였지만 예상에는 없던 하정숙과 주현을 만나는 바람에 안으로 발을 들인 것이다.신유리는 서준혁의 눈빛을 보곤 주먹을 꽉 쥐며 똑바로 서 있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그는 그런 그녀를 슬쩍 보고는 여전한 말투로 대답해줬다.“당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제가 지음이를 너무 좋아해서 꽉 쥐고 있는 게 됩니까?”“신유리 씨 지금 너무 박력 있습니다?”말을 마친 서준혁은 바로 전화기를 집어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들어오세요.”그가 전화를 끊자마자 이석민이 기다렸다는 듯 사무실로 들어왔고 서준혁은 고개를 들어 이석민을 쳐다보며 말했다.“데리고 나가세요.”이석민은 서준혁의 말에 앞으로 몇 발자국 다가와 신유리에게 천천히 말을 꺼냈다.“신유리 씨, 저랑 가시죠.”서준혁이 지금 신유리와의 대화도, 소통도 거절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신유리는 그것을 아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그 순간 서준혁의 낮지도 크지도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이석민 씨, 마지막으로 경고해주죠. 아무 사람이나 막 제 사무실에 들어올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시겠어요?”신유리는 턱 끝까지 차올랐던 말들을 다시 삼켰고 서준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서야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이석민은 회사 아래까지 배웅해줬고 둘의 사이는 꽤나 좋았기에 오는 길 내내 조용한 신유리가 걱정됐는지 잠시 생각을 하다 말을 내뱉었다.“택시 불러줄게요.”“아니요, 괜찮아요.”신유리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이석민을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고 말을 끝내자마자 바로 회사를 빠르게 떠나버렸다.이석민은 그 자리 그대로 서서 신유리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다시 회사 안으로 옮겼다.하지만 이석민이 모르는 사실 한 가지는 신유리가 구석진 코너를 돌고나서 한 행동이었다.우울하던 얼굴은 삽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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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이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신유리는 당황했다.이신은 더 이상 못 봐주겠다는 듯 말했다.“그만해.”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나의 얼굴에 웃음은 사라졌고 답답하다는 듯 이신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네 여자 친구가 아니라고 해봐, 이 자리에서 당장 기절할 수도 있어.”이신은 이마에 핏줄이 선명해지며 많이 난처했다.신유리도 마찬가지로 이나 같은 캐릭터는 처음이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손에 들었던 물건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 전 이신의 친구 신유리라고 합니다. 많이 다치셨다고 들었는데 여긴 보양식이에요. 하루빨리 쾌유하시길 바랍니다.”그녀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이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고맙지만 아직 건강합니다.”이나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쇄골도 보호대로 고정한 채 두 팔과 다리는 모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신유리는 이나의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또 묻기에는 난감했다.그저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많이 쉬면 아무래도 좋겠죠.”이나는 피식하고 웃었다.“그래도 프로 카레이서인데 이 정도쯤이야.”제임스는 이내 옆에서 말을 이었다.“네, 매우 강한 여자입니다.”“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기 전까지 말하지 말아 줄래?”이신은 빈틈도 없이 제임스의 말을 가로챘다.두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어에 영어를 섞어가며 말다툼 했다.“신경 쓰지 마. 어쩌면 둘만의 애정 표현이야.”이신은 옆에서 한편으로 난감하고 한편으로 어이없었다.신유리는 이신을 바라보며 말했다.“누나랑 사이가 좋아 보이네.”이신은 평소 허경천 그들과도 사이가 좋았지만 이나 앞에서 긴장을 풀지 않았다.이신은 짧게 대답했다.“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어.”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이내 이나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제수씨, 번호라도 교환하시죠. 이신이 감히 괴롭히기라도 하면 저를 찾아오세요.”이나가 너무 열정적으로 말하는 바람에 신유리는 거절하기도 난감했다.이신이 옆에서 입을 열었다.“누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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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사실 신연이란 이름은 서준혁에게 낯설지 않았다.부산시에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름이었다.불과 몇 년 사이에 허경의 인턴에서 총경리로 승진하였고 최근에는 더욱 독한 수단을 써서 허경의 그 노인네들까지 직접 제압하였다.그래서 허경 그룹이 성을 바꾸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신연은 올해 24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서준혁은 우서진의 말을 곱씹으며 새까만 눈동자에 생각이 솟구쳤다.우서진은 눈치채고 그를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보는 알려줬으니 난 이만 갈게. 이정이 기다리고 있어.”말을 이어가던 그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발걸음을 옮기더니 서준혁을 향헤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물었다.“들은 데 의하면 벌써 신유리를 데리고 서준혁 부모까지 만났다던데.”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역시 신유리 이 여자는 밑지지 않는다니까.”서준혁은 눈꺼풀을 치켜올리며 그를 바라보더니 차츰 평온해지더니 결국 차갑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말 다 했으면 그만 나가.” 우서진은 어깨를 들썩이면서 오히려 서준혁의 차가운 말투에 일도 개의치 않았다.“대표님께서 참 무정하셔. 오늘 밤 술 한잔 마시고 싶은데 넌 아마 시간이 없겠지?”“나가.”우서진은 외투를 챙겨 여유롭게 사무실을 나섰다.그가 문을 나서는 순간, 마침 이석민이 서류 두 개를 안고 걸어왔다.이석민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그와 인사를 나눈 후에야 문을 밀고 사무실로 들어갔다.“대표님, 새로 만든 기획안입니다.”서준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반쯤 감은 채 이석민에게 물었다.“버닝 스타 쪽은 요즘 어떻게 돼갑니까?" 이석민은 멈칫하더니 솔직하게 대답했다.“2단계는 곧 완공될 것 같습니다. 버닝 스타 쪽에서 몇 번 와서 다음 단계 송금을 요구했는데 요즘 회사 상황이 좋지 않아서 시간 내서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신유리는 이석민의 전화를 받고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이석민의 여전히 공적인 일은 공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였다.“메시지 남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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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신유리의 이 말은 다소 자조적이었다.비록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확실히 서준혁은 지난번 그의 사무실에서 주현과 하정숙을 만났을 때 직접 뱉은 말이었다.신유리의 성격은 인자하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었다.송지음의 일도 아직 처리되지 않아서 좋은 태도로 서준혁을 대하기는 어려웠다.그래서 요즘 버닝 스타와 화인 그룹의 일은 당분간 허경천이 맡고 있었다.이번에도 허경천은 화인 그룹의 사람들과 연락이 안 돼서 신유리가 직접 이석민한테 연락한 것이었다.그녀는 속눈썹을 떨더니 서준혁을 바라보았다.커피숍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단지 느리고 경쾌한 피아노곡 한 곡만 울려 퍼졌다. 서준혁의 새까만 눈동자 속에 신유리의 그림자가 비쳤다.그는 손가락을 굽혀 손가락 마디로 탁자 위를 덤덤하게 두드리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내 탓이라는 거네?” 신유리는 눈을 내리깔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께서 생각이 많으신 것 같네요. 전 그저 이런 상황에 대해 말했을 뿐이에요.”서준혁은 새까만 눈동자에 냉소가 스쳐 지나갔지만 신유리의 안색은 전혀 변함없었다.  “대표님.”옆에 있던 이석민은 상황을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서준혁에게 주의를 주었다.“4시에 미팅이 잡혀있어서 아직 40분 남았습니다.”서준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훑어보더니 이내 신유리를 바라보았다.그의 목소리는 냉담했고 얼굴의 감정도 모두 거두어들인 채 공적인 일은 공정하게 처리하려는 모습이었다.“3단계 기획안과 2단계 보고서까지 모두 올리고 나서 재무부를 찾아가 송금받으세요.”이건 거의 다 됐다는 뜻이었다.신유리는 원래 서준혁이 또 트집을 잡으면서 며칠을 끌 줄 알았는데 이번에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처리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서준혁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럼 대표님께서 먼저 서명해 주세요.”서준혁은 신유리가 정 없이 서류를 내밀자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이내 눈을 내리깔고 입을 오므린 채 양미간 사이도 어둡게 드리워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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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초가을의 바람은 차가웠다. 신유리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이신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마가 왜 이렇게 차? 옷 너무 얇게 입은 거 아니야?”신유리는 머리를 옆으로 돌리며 이신의 손을 피했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바람 때문에 그래.”이신은 그녀가 분명히 피하는 모습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는 손을 거두어들이며 신유리 머리 위에 있는 청록색의 작은 덩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시 있으니까 조심해.”신유리는 그제야 그가 가리키는 덩굴을 보았다. 청록색의 덩굴 위로 파란색 작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꽃 옆에는 작고 뾰족한 가시들이 나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리지 않았다. 이쪽은 모두 오래된 집이라 집집마다 지붕이나 베란다가 이런 덩굴에 둘러싸여 있었다. 신유리는 처음에 평범한 식물로 알고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녀는 뭔가 이상한 듯 물었다. “왜 집집마다 이 식물을 심는 거야?”“예전엔 안전을 위해서 심었어. 이 식물은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서 좋은 보안 수단이었어.”이신이 말을 마치자 신유리는 그제야 그가 거둬들인 손등이 약간 붉어진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신을 향해 물었다. “손 좀 보여줘 봐.”이신은 잠시 멈칫하다가 손을 신유리 앞으로 내밀었다. 손등은 가시에 긁힌 상처가 나 있었다. 비록 상처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붉게 부어올랐다. 신유리는 그 몇 갈래의 긁힌 자국을 보면서 가책을 느꼈다. “미안해. 나 때문에 다쳤네.”이신은 대수롭지 않은 듯 손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그 가시의 날카로운 정도를 신유리가 모르는 것도 아닌 데다가 이미 이신의 손등에 상처까지 나 있었다.신유리는 눈을 내리깔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내 기억이 맞으면 앞에 진료소가 있었던 것 같아. 같이 가자. 네 손이 얼마나 귀중한 손인데.”이신은 버닝 스타의 디자이너로서 평소 전시회의 설계도마저도 그가 그려야 하는 상황인데 신유리는 이대로 그냥 놔둘 수 없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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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한참이 지나서야 헛구역질이 사라졌다. 신유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눈꺼풀을 치켜올렸다. 이신은 그녀에게 휴지를 건네며 걱정했다. “왜? 어디 아파?”신유리는 머리를 흔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왜서인지 마음이 갑자기 두근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당황한 마음을 달래려고 자신의 명치를 눌렀다. 다만 그 후 그녀는 더 이상 레이싱할 흥미가 없었다.그녀의 심드렁한 모습을 보자 이신은 손에 든 헬멧을 내려놓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다음에 다시 올까?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어.”신유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이마에 손을 대보더니 그만 머리를 끄덕였다. “아마도 환절기라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돌아가는 길에 아까 같은 구역질 증상은 잠시 나타나지 않았다. 신유리는 잠시 쉬었다가 정말 환절기에 마침 감기 걸렸나 보다 싶었다. 별장으로 돌아가자마자 그녀는 이신에게 말하고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 거실에 앉아 있던 임아중은 신유리가 자신을 못 본척하자 이신에게 물었다. “뭔 일 있어?”“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이신은 임아중에게 물었다. “넌 웬일이야?”임아중은 다소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뭐가 웬일이야? 이나 언니가 다친 것도 나한테 안 알려주고. 너 정말 그럴 거야?”이신은 눈을 내리깐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아중은 잠깐 침묵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저씨께서 우리 아빠를 찾아갔어. 사실 네가 다시 이씨 가문으로 돌아가길 여전히 바라고 있어.”“나와 우리 아빠는 네가 먼저 그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어쨌든 먼저 재산을 가지고 와서 다시 이야기해야지. 그게 아니면 정말 이정한테 줄 거야? 걔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야?”이씨 가문의 골치 아픈 일들은 사실 임아중이 생각해도 돌아가서 참견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그러나 이씨 가문도 작은 집안이 아닌 만큼 이신이 정말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다면 사실 손해가 너무 크다. 임아중은 엄청 진지하게 말했지만 그에 비해 이신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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