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 말고 다: Chapter 301 - Chapter 310
355 Chapters
제301화
서창범은 잔뜩 화가 나 있었지만 서준혁은 되려 무표정한 얼굴로 덤덤하게 대답하고 그만 전화를 끊어버렸다.“알겠어요.”어르신께서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네 아버니냐?”서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르신은 콧방귀를 끼더니 입을 열었다.“센 척 하기는, 벌써 내가 죽은 줄 안다느냐?”서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어르신과 함께 식사를 끝까지 했다.어르신께서는 식사를 마친 후 곧장 방으로 향했다. 다만 그의 곁을 지날 때 걸음을 멈칫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내가 예전부터 일만 하다 보니 네 아버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똑똑하지 못한 양반이야, 절대 닮아서는 안 된다.”서준혁의 새까만 눈동자는 더욱 깊어졌고 혹시라도 들킬까 봐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 서창범은 전화를 걸어와 잊지 말고 오라고 일깨워주었다.서준혁은 아무런 심경의 변화도 없이 덤덤하게 전화를 끊어버리고 핸드폰 화면을 아래로 스크롤 하더니 신유리의 번호에 시선을 고정했다.사실 서준혁의 개인 핸드폰에는 가족의 번호를 별로 저장하지 않는 편이었다.가까운 사람의 번호는 머릿속에 기억하고 연락처에 저장하지는 않았다.이 모든 것은 서창범이 어릴 때부터 그한테 요구했던 습관이었다.서창범이 처음 서씨 가문의 기업을 인수한 몇 년 동안 시시각각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는 바람에 서준혁도 다소 그를 닮아갔다.반면 신유리의 번호는 기억한 지 몇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손끝이 그 일련의 번호에 멈췄을 때 서준혁의 미간은 움찔거리더니 이내 다시 풀렸다.다만 다시 고개를 들자 그의 눈동자는 다시 밝아졌다.그는 차를 운전하여 화인 그룹으로 향하지 않고 오히려 서창범한테로 돌아갔다.문에 들어서자 하정숙과 서창범은 마침 아침을 먹고 있었다.아침 식사 분위기는 조용했다. 하정숙은 잡지를 읽고 있었고 서창범은 신문을 읽었다. 마치 낯선 사람이 아무렇게나 합석한 것처럼 썰렁했다.서준혁은 차갑게 그들을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서창범에게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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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왜?”신유리는 물었다.“부산시에서 진행하는 정상회의가 올해 앞당겨졌어. 바로 다음 주인데 그쪽에도 배울 기회가 많아, 거기 가면 좋을 것 같아.”이신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게다가 이랑이 가버려서 작업실에 당분간 마땅한 사람이 없다 보니 네가 갈 수밖에 없어.”이 정상회담에 대해 이신은 전부터 여러 번 말했었고 신유리도 가고 싶어 했지만 이연지의 일 때문에 계속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지금 다시 그 회의에 대한 말이 나오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 내가 갈게.”어쨌든 이연지의 일은 당분간 결과가 없을 것 같았다.이신은 그녀의 진지한 모습을 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그냥 평범한 교류회야, 너의 현재 능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어.”“그러니까. 유리야, 부탁인데 좀 쉬면서 하자.”임아중은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며 아무런 표정도 없이 말했다. “너 왜 이토록 필사적으로 하는 거야? 나처럼 빈둥빈둥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곡연은 덤덤하게 한 마디를 뱉었다.“유리 언니가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넌 언니랑 만날 수 없었겠지.”사실이었다.비록 임아중 같은 재벌 2세에 비하면 신유리의 가정은 확실히 평범했다. 심지어 하정숙의 눈에는 기초생활수급자와도 마찬가지였다.신유리가 만약 자신의 능력과 의지에 의존하지 않았다면 평생 임아중 같은 사람과 함께 엮일 일이 없었다.사회의 계층이 이처럼 뚜렷하게 나누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신유리는 곡연의 말에 전혀 개의치 않았고 그녀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채리연이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그들은 전부터 오늘에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녀는 바로 이신한테 말하고 떠났다.계약서를 거의 한 달 동안 갈고 닦아서야 마침내 쌍방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채리연이 펜을 놓는 그 순간을 지켜보면서 신유리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어.채리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잘 해보죠.”신유리도 미소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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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신유리가 요즘 입덧에 조금씩 적응해서 그런지 처음보다 힘들지는 않았다.단지 그녀가 방금 아래층에 있을 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는지 가슴이 답답해 났다.그녀는 마음속의 답답한 느낌을 간신히 억누른 후에야 비로소 고개를 들어 서준혁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대표님께서 제 사생활에 너무 신경 쓰시는 거 아닌가요?” 비즈니스석은 원래 사람이 적은 데다가 신유리의 말투에는 약간의 거리감이 들어있었다.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덤덤했고 만약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굳이 말한다면 그것은 참을성과 방비일 뿐이었다.서준혁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녀의 감정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았다.그는 코웃음을 치며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며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그저 신유리를 깊게 쳐다보더니 돌아서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통로를 사이 두고 신유리는 심지어 서준혁의 몸에 옅은 솔향까지 맡을 수 있었다.그녀는 침묵을 지키며 가방에서 이신이 그녀에게 준 레몬 사탕을 꺼내 한 알 먹었다. 레몬의 상큼한 단맛이 서준혁의 솔향을 덮고 나서야 그녀는 본래 긴장하고 있던 신경을 조금 놓았다.성남시에서 부산시까지의 비행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겨우 두 시간 정도였다.봄이 되어 부쩍 잠이 많아진 데다 건강상의 이유로 신유리는 안대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잠이 들었다.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비행기가 기류를 만나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다.신유리는 눈을 뜨고 싶어도 뜰 수없는 비몽사몽한 상태가 사실 괴로웠다.그녀는 숨까지 가빠지면서 눈꺼풀은 붙어있어서 좀처럼 뜰 수 없었다.게다가 안대까지 가리고 있으니 더 힘들었다.순간 따스한 손바닥이 그녀의 이마를 쓰다듬자 그녀는 그제야 조금 편안함을 느꼈다.그리고 그 무거운 눈꺼풀도 완전히 내려앉았고 신유리의 호흡은 점차 안정되자 비행기는 간혹 흔들기는 했지만 그녀는 아까처럼 초조하지 않았다.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스튜어디스의 목소리에 다시 잠을 깼다.부산시의 갑작스런 폭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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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서준혁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차 안은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신유리는 속눈썹을 떨더니 감정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왜?”서준혁의 새까만 눈동자는 마치 그녀의 모든 거짓말을 간파한 듯이 이글이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느릿느릿 대답했다. “대답만 하면 돼.”신유리는 그의 물음에 거절을 표하고는 고개를 들어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듯한 말투로 반문했다.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게 네 취미야?”폭우는 차에 쏟아져 내렸고 간혹 번개가 치기도 했다. 서준혁의 목소리는 차가우면서도 날카로웠다. 마치 바깥의 비바람을 동반한 듯이 신유리의 가슴에 불어닥쳤다. “난 그냥 확인하고 싶을 뿐이야.”“뭔데?”서준혁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윽한 눈동자로 생각에 잠긴 듯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유리, 넌 원래부터 사람을 잘 속였잖아.”그의 말에 신유리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거의 순식간에 서준혁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챘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신이랑 관계를 가진 적이 있는가 하고 그녀를 떠보았다. 신유리가 한가지 생각지 못했던 것은 그녀 스스로 서준혁을 충분히 안다고 자부하는 반면 서준혁도 마찬가지로 그녀를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속눈썹을 내리깐 채 여전히 자신한테 머물러 있는 서준혁의 시선을 느꼈다. 거의 순간적인 반응으로 그녀는 고개를 들어 당당하게 서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나랑 이신이 잤다고 생각하는 거야? 더군다나 잤다고 해도 너랑 무슨 상관인데? 다 큰 성인이 관계를 갖는 게 안될 건 또 뭐야?”서준혁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대답했다. “당연히 되지.”신유리는 양미간을 움찔하더니 싸늘함이 고여있었다. “그럼 대표님께서 다시는 이런 외람된 질문을 하지 마시죠.”서준혁은 안색 하나 변함없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침묵한 채 호텔로 돌아갔다. 신유리는 카운터에 가서 방 키를 갖고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온 후에야 그녀는 겨우 유지해 오던 침착함은 산산이 깨졌다. 서준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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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그녀의 눈빛은 줄곧 이석민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석민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신유리를 소개해달라고 하던 신연의 말을 떠올리며 이마에 엷은 땀이 배어 나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옆에 있는 서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표님...”서준혁의 눈빛은 잠시 반짝이다가 곧 신유리를 그윽이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누가 궁금한 거야? 신연?”이석민이 옆에서 마른기침을 하자 신유리는 비로소 자신이 방금 한 말이 너무 직설적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멈칫하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제가 아는 사람과 너무 닮아서요.”서주혁은 눈을 내리깐 채 웃는 듯 마는 듯 피식거리며 말했다. “너무 구린 핑계네.”신유리는 속으로 엄청 궁금했지만 서주혁과 더 이상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저녁에 카톡으로 이석민에게 따로 물어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결정 내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이석민에게 인사하고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돌아서는 순간 서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 건드리지 마.”신유리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서주혁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눈동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처럼 깊고 비어있었다. 신유리의 눈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덤덤하게 말했다. “아직 머릿속에 그런 일만 생각할 정도로 무료하지 않으니까 걱정마.”“그게 무슨 일이든 신연은 네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서준혁은 신유리의 대답에 다소 불쾌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잠긴 목소리로 유달리 엄숙하게 말했다. 호텔은 사람들이 계속 드나들었고 머리 위의 샹들리에가 반짝이며 신유리의 머리 위에 흘러내렸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준혁을 바라보며 그를 일깨워줬다. “설령 내가 그를 건드린다고 하더라도 네가 상관할 바는 아니잖아?”서준혁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하려는 참에 옆에 있던 이석민이 앞섰다. “유리 씨, 대표님께서 유리 씨가 걱정돼서 하는 말입니다. 신연은 성부가 깊고 일 처리도 잔인해서 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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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슬림한 핏의 슈트는 그의 다리를 더 길어보이게 만들었고 가슴에는 버건디색의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챠콜색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그는 일거수일투족 귀해보였다.서준혁은 스태프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는 위에서 덤덤한 눈빛으로 훑어보더니 정확하게 신유리에게 시선을 멈췄다. 신유리는 마침 그의 시선과 마주치자 입술을 오므리며 개의치 않은 척했다. 화인 그룹은 줄곧 부산 시장에 진입할 계획이 있었기에 서준혁이 투자자의 신분으로 나타난 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신유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발언을 듣더니 사람들을 따라 형식적으로 박수를 쳤다. 현장에 여자 스태프들이 적지 않게 있었는데 회의가 끝난 후 그녀들은 한결같이 서준혁을 칭찬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신유리는 이런 화제에 별로 관심이 없어 대충 핑계를 둘러대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나 하필 이 층 화장실은 청소 중이라 신유리는 위층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엄청 마르고 야윈 아가씨가 세면대 옆에 선 채 혈관이 보이는 하얀 손목으로 검은 대리석 세면대를 짚고 있었는데 손목이 너무 얇아서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몸에 맞지 않는 타이트한 민소매 스커트까지 입고 있어 더욱 여위어 보였다. 신유리는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 화장실을 나가려 했다. 바로 그때 아가씨가 마침 돌아섰다. 그녀는 약간 올라간 눈매에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진 미녀였다. 다만 그녀의 표정이 그렇게도 슬프지 않았다면 말이다...그녀는 신유리의 곁을 지나갈 때 자신도 모르게 어설픈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마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방금 일어난 일은 신유리에게 에피소드 같았고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신유리는 회의 시간을 맞춰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전에 이신이 말했던 몇 명의 커리어가 대단하신 분들께 가르침을 청하려고 했다. 그러나 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한 남자와 부딪힐 뻔했는데 신유리는 뒤로 두 발짝 물러섰고 그 남자는 서둘러 사과했다. 그 남자는 고개를 들어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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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이 점을 깨닫고 나니 신유리는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 다만 서준혁과 같은 차에 탄다는 것이 여전히 조금 꺼림칙했다. 신유리가 말하려고 하자 오혁이 옆에서 낮은 소리로 그녀를 재촉했다. “빨리 타세요. 다른 사람들은 이미 출발했어요.”“아무래도 저는 택시 타고 가는 게 낫겠어요. 대표님과 부 선생님께서 일을 이야기하는데 제가 차에 같이 있으면 불편하지 않을까요?”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오혁은 조수석의 문을 열고 신유리에게 말했다. “방금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잘 듣지 못했어요. 거참, 조수석에 타도 괜찮죠? 뒷좌석은 모두 남자들이라 여성분 혼자서 불편하니까요.”오혁은 그녀를 위해 많이 고려해 주었다. 뒷줄에 부 선생께서 이미 타고 있었고 서준혁은 멀지 않은 곳에서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시간 지체하지 마시고 빨리 타죠.”“유리 씨, 어서 타세요. 쑥스러워하지 마시고 저도 이따가 버닝 스타에 대해 물어볼 게 있어서요.”부 선생은 이신과의 관계가 밀접하다고 하니 신유리는 더 이상 거절할 수도 없었고 묵묵히 조수석에 올랐다. 다만 이렇게 되면 난감한 것은 오히려 오혁이었다. 신유리는 조수석에 앉았고 부 선생님과 서준혁은 뒷좌석에 앉았다. 그는 이 두 분과 함께 앉는 것도 쉽지 않았고 누구더러 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는 머쓱해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선생님, 저는 아마 택시 타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좀 불편해서요.”신유리도 상황을 보며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마침 부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마침 가는 길에 연구실로 돌아가서 내가 준비해 놓은 자료를 갖고 와. 이따가 조 선셍과 곽 선생힌테 보여줘야겠다.”오혁은 대답하고 재빨리 떠났다. 신유리는 조수석에 앉아 투명 인간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들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다만 이런 상태가 오래 유지되지는 않았다. 부 선생은 그녀한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유리 씨, 방금 대표님께서 화인 그룹과 버닝 스타가 현재 합작하고 있다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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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그는 자연스럽게 말을 하며 신유리를 바라보았다.신유리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장수영이 배시시 웃으며 서준혁에게 다가와 특별히 신경 써서 한 화장을 거울로 슬쩍 확인하고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했다.“어머, 서대표님.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모셔다 드리기로.”장수영은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지라 말을 할 때 섞여있는 애교는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편하게 만들었다.그녀는 신유리를 보며 웃더니 계속 말했다.“서대표님이랑 아시는 사이세요?”장수영의 말투에는 떠보려는 의도가 가득했고 신유리는 담담히 대답했다.“저희 사무실이랑 서대표님이 협업하는 사이죠.”“그러시구나~”신유리의 대답에 장수영은 말끝을 묘하게 올리며 입을 열었다.“어쩐지 서대표님이 유독 챙기시더라고요. 근데 지금 날씨도 안 좋고 외지 사람들은 이런 태풍 부는 날에 적응을 못할 테니 제가 서대표님을 모셔다 드릴게요.”장수영은 에둘러 말하는 것 없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뜻을 표달 했고 예전의 신유리였다면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거절의 의사를 내비췄겠지만 현재 그녀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알겠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서대표님~”몸을 돌려 떠나려고 하던 신유리의 뒤에선 장수영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고 그녀의 목소리와 더불어 진한 술 냄새와 서준혁 특유의 냄새가 주위에 가득 퍼졌다.남자는 어두운 얼굴로 살짝 취한 듯한 목소리를 하고는 천천히 입을 뗐다.“이러지 마시죠, 저 지금 정말 불편합니다.”신유리는 재촉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서준혁을 쳐다보았다. 은은한 조명 아래 비춰진 서준혁의 눈빛엔 취기가 가득했고 그 덕에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은 검은 보석처럼 더욱 선명해졌다.서준혁은 단추를 꽁꽁 잠근 셔츠 차림이었지만 하필 눈꼬리 쪽이 빨개지는 바람에 평소 그 냉정하고 도도한 기질 때문에 더욱 더 유혹적이었고 섹시해 보였다.그는 신유리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에 그의 체온마저 신유리는 느껴질 것만 같았다신유리는 무의식적으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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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물수건을 쥐고 있던 신유리의 손에 힘이 조금 실리더니 고개를 천천히 들어 서준혁을 쳐다보았다.서준혁도 신유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침대에 앉아있고 신유리는 서있는 상태라 분위가는 더욱 이상해졌다.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는 물수건을 침대 옆의 상에 놓고는 말을 꺼냈다.“내려가 볼게요.”“기억나십니까?”서준혁의 목소리와 공기 중에 퍼지는 은은한 술 냄새는 방안 분위기를 달궈주는 듯싶었고 서준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안색은 하얗게 질려있었다.그는 신유리를 바라보지도 않고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나중에 우리 아이 낳으면 이름을 서유희라고 하자고 했잖습니까.”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서준혁은 말을 할 때 신유리를 보지도 않았고 그 말을 들은 신유리는 굳더니 복잡한 눈빛을 하곤 서준혁을 보며 씁쓸히 아려오는 마음을 달랬다.전에 신유리는 확실히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이름은 서유희라고 하자고 약속했다. 서준혁의 서, 신유리의 유자도 있기에 알 맞춤이라고 생각하며 까르르 좋아하던 일이 엊그제 같았다.신유리는 주먹을 꽉 쥐고 한숨을 푹 쉬더니 단호한 눈빛으로 서준혁을 쳐다보며 말했다.“서준혁씨, 많이 취하셨어요.”“그런가 봅니다, 옛 생각이 막 떠오르는걸 보니.”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가리며 담담하게 대답했고 신유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물었다.“뭐 좋을 게 있다고 자꾸 생각해요?”방 밖으로 나올 때, 마침 해장국을 가져다주는 카운터 직원과 마주쳐버렸고 신유리는 더욱 더 짜증이 밀려왔다.방으로 도착한 신유리는 베란다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서준혁은 오늘 누가 봐도 많이 취한 사람이었고 신유리도 신경을 덜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서유희라는 이름 석 자를 듣자마자 마음에서 파도가 치듯 일렁거렸다.신유리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이 안에 새 생명이 무럭무럭 자라난다는 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신기해하며 바라보고 있었다.베란다에서 돌아가자마자 이석민에게서 걸려온 전화로 인해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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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신유리와 주언이 몸을 돌려 올라가려고 할 때, 뒤에서는 신연인지 서준혁인지 모를 시선이 느껴졌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주언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저 방금 제대로 못했죠?”“뭘 제대로 하는데요?”신유리는 말을 하는 주언을 옆으로 힐끔 쳐다보며 되물었고 주언은 얼른 자신의 생각을 말해줬다.“임아중씨가 저보고 서준혁씨 앞에선 특히 더 조심해라고 해서요. 제가 방금 서준혁씨 앞에서 좀 더 친한 척 친밀한척 했어야 했는데...”임아중이 도대체 주언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는 신유리는 얼른 대답했다.“아중이 말... 너무 새겨듣지 마요.”“음, 네.”주언의 짧은 대답을 마지막으로 둘 사이는 어색하기 짝이 없어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했다.그의 방은 신유리보다 높은 곳에 있었기에 신유리는 자신의 방이 있는 층에 도착하고는 바로 내려버렸다.현재 그녀의 모든 신경은 주언이 아닌 신연에게로 쏠려있었고 아까 신연과의 눈 맞춤은 신유리로 하여금 이상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그 사람도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많은 생각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진 신유리는 소파에 앉아 한참을 진정하려 애썼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어딘가 불편했다.신기철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신유리가 15살 되는 해였다.그때 신유리는 갓 중학교를 졸업해 명문고에 붙은 상황이라 기쁜 마음에 몰래 신기철에게 전화를 걸었었다.하지만 신기철은 원래 기억속의 자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닌 억지로 힘듬을 억누르고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변했었고 전화를 건 신유리에게 무슨 일이 있냐 고만 물었다.자신이 알던 사람과는 180도 달라진 신기철의 모습에 신유리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지만 그래도 그에게 자신이 명문고에 입학한다는 사실을 알려줬고 그것을 들은 신기철은 잠시 당황하더니 얼른 축하의 말들을 건넸었다.그 후 신기철은 아무도 몰래 신유리의 계좌로 5만원을 입금해줬고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연락 이였다.오늘 뜻밖으로 신연을 마주한 신유리는 담담하게 굴었지만 사실 못내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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