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 말고 다: Chapter 21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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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걔는 안돼 아직 어려
서준혁은 송지음을 데리고 약속에 참석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싸웠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송지음은 굳은 얼굴로 한쪽에 앉았고, 서준혁도 딱히 그녀를 달래주지는 않았다.우서진과 서준혁은 사이가 좋았다. 그는 술잔을 든 채로 그의 옆에 앉더니 몇 마디 잡담을 나눈 후에야 본론으로 들어갔다.“준혁아, 너 저 아가씨랑 진심이야?”서준혁의 얼굴에는 아무런 파동이 없었다. 그는 담담한 말투로 되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아니야. 그냥 이 말하고 싶어서. 진지하게 만나는 거면 얼른 가서 달래줘. 괜히 애타게 만들지 말고.” 우서진은 뭔가 생각이 있는 듯 송지음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나이가 어렸다. 그래서인지 얼굴에 속상함과 억울함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다.우서진은 관심 없는 듯 코웃음을 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신유리처럼 성격 좋고, 네가 손 흔들면 바로 꼬리 흔들며 다가 올거라고 생각하지마.”서준혁의 무리에 있는 사람들이 신유리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신유리가 너무 도도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서준혁밖에 없었고, 다른 사람들 말에는 대꾸도 해주지 않았다.두 번째 이유는 그녀가 서준혁의 어떤 말도 들어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마치 성격이라는 게 없는 것처럼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서준혁이 여자랑 논다고 호텔을 예약하라는 말에도 그녀가 직접 방 카드를 그에게 건네줄 정도였다.이런 재벌 2세들은 타고난 우월감이 있어서 말 잘 듣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 잘 듣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았다.그래서 신유리가 그들의 무리에도, 그들의 눈에도 들지 못하는 것이었다.잠시 앉아 있던 그는 바로 다른 사람을 찾으러 갔다. 그가 떠나자마자 송지음이 우물쭈물 그에게 다가왔다.서준혁은 시선을 내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화났어?”송지음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화 안 났어요. 그냥 유리 언니를 볼 때마다 자꾸 나도 모르게 두 사람 옛날 일이 떠오를 뿐이에요.”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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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쓸데없는 사람 얘기는 꺼내서 뭐 해?
신유리가 대표 사무실에서 인사이동 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화인 내부에 퍼지게 되었다. 오전 내내 그녀의 앞에 다가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러 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다행히도, 평소에 회사에서 도도하게 지낸 데 습관된 덕분에 감히 진짜로 그녀에게 다가와 입을 놀리는 사람은 없었다.이제 금방 직책을 받아서 그런지 인수인계받아야 할 일이 무척이나 많았다. 점심에 나갈 시간이 없었던 그녀는 회사 구내식당에서 대충 한 끼 때울 수밖에 없었다.엘리베이터를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대표 사무실 직원들이 송지음을 둘러싸며 떠들썩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사람은 눈치가 있다. 신유리가 서준혁에게 유배까지 당한 이 상황에 송지음의 신분이 요동한다는 건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녀의 환심을 사고 싶어 했다.신유리는 담담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엘리베이터를 탔다.오히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 껄끄러워졌는지 말소리가 조금 작아졌다.송지음 혼자 그녀를 쳐다보며 자연스럽게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신유리에게 물었다. “유리 언니, 밖의 일은 할만해요? 준혁 씨한테 물어봤는데, 밖이 언니를 더 필요로 한데요. 나중에 아마 다시 부를 거예요.”만약 그녀의 말투에 섞인 의기양양함을 무시한다면, 꽤나 진심 어린 말이긴 했다.신유리는 그녀의 말에 대충 응답했다. 무척이나 냉정했다.서준혁이 그녀를 다시 부르든지 말든지, 그녀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어디서 일하든 의미는 비슷했다.송지음이 이겼다는 생각에 얼굴의 웃음기를 참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대기업의 생활 템포는 무척이나 빨랐다. 오후, 신유리가 퇴근하기 전, 그녀는 갑자기 접대가 있다는 소식을 받게 되었다.접대를 하면 술을 마셔야 했다. 하지만 신유리의 생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그녀가 도착했을 때, 클라이언트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그녀는 물 만난 고기처럼 클라이언트를 응대했고, 세잔의 술잔이 지나갔을 때, 양쪽은 이미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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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서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게 좋겠어요
연우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두 손으로 신유리의 팔을 잡았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괜찮아?”신유리는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녀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느릿느릿하게 몸을 세우고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말투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너였구나. 미안. 미처 못 봤어.”“유리야.” 연우진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신유리는 그런 그를 쳐다보았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입술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눈꼬리에도 취기가 어느 정도 물들어 있었다.연우진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곧이어 그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데려다줄게.”신유리가 연우진을 따라 밖으로 나갈 때, 우서진과 다른 사람들이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우진의 모습에 그가 입을 열었다. “GT에서 좀 더 놀래? 하준우가 그러는데, 거기에 요즘 쌔끈한 여자가…”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서진은 연우진의 뒤에 서서 인상을 찌푸리는 신유리를 보게 되었다. 그의 말소리는 순식간에 멈춰버렸다.연우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유리 집에 데려다줄 거야. 너네끼리 가.”신유리는 몸매가 늘씬했다. 연우진의 옆에 있는 그녀의 모습은 참대와 다름이 없어 보였고 무척이나 꼿꼿했다.우서진은 풉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핸드폰을 들어 그들의 뒷모습을 단톡방에 올려버렸다.옆에 있던 친구가 그 모습을 보고 궁금증을 자아냈다. 우서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신유리, 정말 여성스럽지 못하지 않냐? 남자랑 같이 가는데도 아무 생각이 안 들어. 쯧. 어쩐지 준혁이가 한밤중에서 송지음한테 밥 배달 하러 가더라.”신유리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단톡에 올린 사진을 확인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들을 놀리기도 했다.신유리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원래 클라이언트에게 문자를 보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잘못 누른 탓에 단톡방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뒤로가기를 누르려던 그때, 송지음의 메시지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유리 언니랑 우진 씨 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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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그녀는 그의 다정함을 느껴본 적 없을 뿐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서준혁이 깊은 눈동자로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손가락을 구부리며 책상을 두 어번 더 두드렸다.그가 신유리의 이름을 부르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신유리, 남 탓 하지 마.”그 말에 신유리는 순간 당황했다. 그녀는 서준혁에게 되물었다. “내가 남 탓한다고?”서준혁은 무척이나 태연했고,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신유리는 눈을 감으며 한참 동안 감정을 추슬렀고, 한참 후에야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가 뭐라 말하려 하던 그때, 송지음이 안으로 들어왔다.송지음은 에코백을 멘 채로 똑바로 서준혁에게 다가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퇴근했어요. 이제 가요.”말을 끝낸 후, 그녀는 그제야 신유리를 본 것처럼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신유리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송지음은 눈을 깜박이더니 뭐가 생각난 듯 갑자기 입을 열었다. “유리 언니, 오후에 쥴리 언니보고 준혁 씨 회의 끝났다고 언니한테 말하라고 했는데. 왜 안 왔어요?”쥴리는 화인의 오래된 직원이었다. 신유리가 금방 회사에 들어오게 됐을 때, 그녀에게 적지 않는 괴롭힘을 당했었다.신유리와 쥴리가 서로 대꾸하지 않는다는 건 화인의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송지음이 쥴리보고 말을 전하라고 한 것도 분명히 일부러 그런 것이다.어쩐지, 나보고 남 탓한다고 하더라.신유리는 조용히 서준혁을 쳐다보며 그에게 펜을 건네주었다. “서…” 말을 이어 나가던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말을 바꾸었다. “서 대표, 사인해.”그 말에 서준혁은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피식대고는 펜을 들어 사인을 했다.송지음은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꼬리는 선명하게 올라갔다.그녀가 서준혁을 끌고 사무실을 나설 때까지, 신유리는 그녀의 발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준혁 씨, 같이 레스토랑 탐방하러 가면 안 돼요?”다정하게 행동할 때면, 그는 정말 부드럽고 세심했다. 단지 아쉽게도 그녀는 그의 다정함을 느껴본 적 없을 뿐이었다. 신유리는 그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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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내가 너랑 자기라도 할까 봐?
신유리는 고개를 돌려 서준혁을 쳐다보았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물 묻은 셔츠를 벗더니 그것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는 신유리를 쳐다보며 눈썹을 들썩였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가늠할 수 없었다.신유리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고개를 돌려 가벼운 목소리로 연우진에게 말했다. “출장 중이야.”말을 끝낸 후 그녀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에게 서준혁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서준혁은 그녀를 쳐다보더니 이내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연우진?”“응.”“둘이 언제부터 그렇게 친해진 거야?”신유리는 서랍에 있는 타올을 꺼내더니 넋을 놓은 채로 그의 말에 대답했다. “우리 계속 친했어.”서준혁은 시선을 거두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청아가 예약한 방은 스위트 룸이었다. 침대는 무척이나 컸고 거실에는 작은 소파도 놓여 있었다.그녀는 서준혁이 샤워를 끝낸 후에 바로 소파에서 잘 줄 았았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그는 웃옷을 벗은 채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머리는 촉촉이 젖어있었고 쇄골에는 아직 닦이지 않은 물기가 남아있었다. 그 물방울들은 그의 피부를 따라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더니 결국 선명한 복근 사이로 사라졌다.서준혁은 자연스럽게 침대에 앉으며 신유리에게 타올을 던졌다. “닦아.” 그의 말투는 무척이나 간결했다.신유리는 그때 서류를 검수하고 있었다. 그 말에 그녀는 조금 얼어버렸다.잠시 후, 그녀는 타올을 받아 들더니 서준혁의 옆에 꿇어앉았다.신유리는 서준혁의 머리를 많이 닦아줬었다. 항상 서준혁이 머리가 아플까 걱정이 됐던 그녀는 그에게 먼저 제안을 했고, 몇 번 거절하던 그는 이내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었다.하지만 그것도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언제부터인지 서준혁은 더 이상 그녀보고 머리를 닦으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서 야릇한 일을 하고 난 후에도 그는 항상 젖은 머리로 자리를 떠나곤 했다.신유리는 열심히 그의 머리를 닦아주었다. 그때 서준혁이 옆에 두고 있었던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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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너 진짜 사람 흥미 식게 만든다
하지만 곧이어, 서준혁은 바로 손을 거두었다. 눈앞에 있던 그림자가 사라지자 신유리는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이내, 서준혁의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너랑 자기라도 할까 봐?”그 말에 신유리의 속눈썹이 멈칫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눈을 떴다.그녀가 서준혁에게 물었다. “그럼 뭐 하려 했는데?”무드 등 하나만 켜져 있어서인지 불빛은 조금 어두웠다. 그의 표정은 희미했고, 단지 차갑고 담담한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잘 거야.”“여긴 내 방이야.” 신유리는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로 방 하나 더 잡아.”“번거로워.”그 말에 신유리는 움찔했다. 그녀는 등을 돌려 눈을 감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수면이 얕았다. 그 어떤 인기척도 그녀의 수면을 방해할 수 있었다.자정이 넘은 시각, 서준혁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고 날카로운 기계음이 귀를 때리기 시작했다.신유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잠에서 깼고, 전화를 받고 있는 서준혁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래서인지 송지음의 무너진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준혁 씨, 지금 어디예요? 제일 병원으로 와주면 안 돼요? 아빠가 교통사고가 나서… 지금 긴급구조하고 있어요. 나 너무 무서워요.”그녀는 의식적으로 서준혁을 쳐다보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금방 갈게.”전화가 끊긴 후, 서준혁은 이마를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옷을 갈아입으며 신유리에게 명령했다. “성남 가는 비행기 티켓 한 장 예매해.”신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일 계약해야 해.” 그녀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이번 계약은 화인에게 아주 중요한 건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에게 말했다. “돈 먼저 부쳐줘. 계약 다 하고 가면 되잖아.”그 말에 옷을 입고 있던 서준혁의 행동이 멈칫했다. 그는 그녀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신유리, 나 두 번 말하기 싫어.”화난 말투였다. 신유리는 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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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그녀가 자주 쓰는 핑계
서준혁은 신유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는 송지음의 손에 들린 가방을 받아 들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몰라. 일단 짐부터 올려놓자.”강운에서 성남으로 돌아왔을 때 그와 신유리가 유쾌하게 헤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금 서준혁은 그녀에게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송지음은 그의 말에 대꾸했다. 확실히 많이 피곤해 보이긴 했다. “유리 언니, 아빠가 아침에 금방 수술 끝내셔서 아직 중환자실에 있어요. 아직 면회는 안 돼요.” 그녀가 신유리에게 말했다.신유리는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그들에게 해명을 했다. “나 요양원에 가.”송지음은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얼굴에 어색한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죄송해요.”“그래.” 신유리는 그들을 스쳐 지나가더니 곧바로 요양원으로 다가갔다.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그녀는 등 뒤에서 억울하게 서준혁을 원망하는 송지음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창피해 죽겠네. 왜 말 안 해줬어요?”서준혁이 작은 목소리로 뭐라 말했지만 신유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는 짐을 들고 병원으로 들어갈 뿐이었다신유리는 거의 매달 한 번씩 요양원에 찾아왔다. 하지만 요즘에는 너무 바빠서 거의 두 달 만에 외할아버지를 찾아뵙게 됐다.신유리의 외할아버지는 은퇴한 선생님이었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어르신은 나무 아래서 안경을 쓴 채로 신문을 보고 있었다.그녀의 모습에 어르신은 안경을 벗더니 허허 웃으며 말했다. “왔어?”신유리는 챙겨온 디저트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정심원 지나가면서 샀어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밤 양갱이에요.”“우리 유리, 말은 안 해도 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외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나이가 지긋했고 사람들에게 인자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그는 신유리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그녀에게 물었다. “준혁이는? 또 바쁜가?”제일 처음에, 신유리가 서준혁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을 때, 서준혁은 가끔씩 요양원에 찾아와 어르신을 챙기곤 했다.어르신의 생각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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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못 된 서브
”뭐 하는 거야?” 신유리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등 뒤에서 서준혁의 냉혹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 말에 신유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난 그냥 서류 수정하라고 말하러 온 거야.”“네가 쟤한테 서류를 수정하라고 한다고?” 서준혁의 말투에는 조롱이 조금 섞여 있었다. 그는 담백한 눈빛으로 신유리를 쳐다보았다.신유리는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신유리가 예전처럼 송지음을 부려 먹고 있다고 오해한 것 같았다.그녀는 조금 움찔거렸다. “이 서류, 송지음이 준 거야…”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송지음이 눈시울 붉히며 서준혁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녀가 낮고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준혁 씨, 유리 언니 탓이 아니에요. 요즘 아빠 일 때문에 너무 속상해서… 그래서 서류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어요.”입을 우물거리던 신유리는 결국 목젖까지 올라온 말들을 다시 삼켜버렸다.그녀는 서준혁을 쳐다보며 그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지음이 요즘 집에 일이 좀 있어. 무슨 문제 생기면 네가 먼저 처리해.” 결국 그는 차갑게 말 한마디를 던지며 송지음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갔다.신유리는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더니, 이내 서류를 들고 사무실을 떠났다.오후, 신유리가 일부러 송지음의 트집을 잡아 그녀를 혼냈다는 사실이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되었다.신유리가 화장실에서 들었을 때, 소문은 이미 신유리가 송지음 아빠가 사고 난 사이에 일부러 그녀를 괴롭혔다는 내용으로 버전이 업그레이드 되어있었다.소문 속의 송지음은 얌전하고 불쌍한 인턴이었고, 서준혁은 다정하고 세심한 대표였다. 그녀만 뻔뻔하고 못된 서브 여주의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그들은 마치 그 장면을 직접 본 것처럼 열정적으로 토론했다.신유리는 태연하게 화장실 문을 열었고, 아무 표정 없이 손을 씻고 자리를 떠났다. 남은 사람들은 어색함에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자리로 돌아오자, 오전의 그 인턴은 다시 겁에 질린 얼굴로 그녀의 앞에 섰다. “유리 언니, 홍 주임님이 서류 빨리 달라고 재촉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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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그는 그녀의 대표이지, 남자 친구가 아니었다
신유리는 멈칫하더니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그녀는 의식적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준혁을 쳐다보더니 입술을 오므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 급한 일 있어. 당신들이랑 밥 먹을 시간 없어.”송지음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서준혁의 옆으로 걸어갔다. 엄청 억울한 일을 당한 듯한 모습이었다.서준혁은 차가운 얼굴로 신유리를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송지음의 손을 확인했다.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마치 송지음을 달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그 말에 송지음은 고개를 흔들었다. “난 괜찮아요. 준혁 씨, 우리 이제 가요. 오늘 아빠한테 사골 가져다준다고 했잖아요.”말을 끝낸 후, 그녀는 자발적으로서 서준혁의 손을 잡으며 자리를 떠났다. 신 유리를 지나칠 때 특별히 그녀를 쳐다보기까지 했다.서준혁은 그렇게 송지음이 이끄는 대로 걸어갔다. 그는 걸음이 빨랐다. 하지만 송지음의 뒤를 따르는 그는 세심하게 속도를 늦춰 주었다.신유리 외할아버지의 상황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그냥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스쿠터에 스쳐 발목을 다친 것뿐이었다. 며칠 쉬면 괜찮아지는 부상이었다.걱정이 되었던 그녀는 외할아버지보고 입원하라며 고집을 부렸다. 의사에게 증명을 떼고 병원비를 지불하려던 그때, 그녀는 마침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준혁을 만나게 되었다그는 혼자 그곳에 서 있었고, 손에는 보온병까지 들려 있었다.신유리의 모습에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왜 여기 있어?”신유리는 움찔하더니 이내 손을 들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녀의 말투는 무척이나 담담했다. “가족이 입원했어.”그녀는 항상 담담한 말투였다. 말에 엄청난 감정이 섞여 있지는 않았다.하지만 잠시 침묵을 지키던 서준혁은 피식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신유리를 쳐다보고 있었고, 검은 눈동자에는 냉랭함과 번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유리야, 요즘은 전처럼 재미없지는 않네.”신유리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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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언제 헤어졌어
신유리는 숨을 얕게 쉬며 제자리에서 있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서준혁을 쳐다본 후에야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뱉어냈다. “예전에 약속했잖아. 우리 외할아버지 잘 보살펴준다고.”이건 아주 옛날의 일이었다. 그때 신유리는 처음으로 서준혁을 외할아버지에게 데리고 갔고, 그는 그녀가 얌전하게 자신을 따르기만 한다면 그녀의 외할아버지를 잘 보살펴주겠다고 말했었다.신유리는 말을 잘 들었고, 항상 얌전했다. 하지만 나중이 되자 서준혁은 인내심이 사라지고 말았다.그 말은 아주 오래된 말이었다. 서준혁이 과거를 한참이나 회상한 후에야 입을 열 정도로 오래된 말이었다. 그가 신유리에게 물었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어?”그의 대답에 신유리는 고개를 숙였다. “기억 안 나면 그냥 못 들은 걸로 해.”“나가 봐. 시간 있으면 갈게.” 서준혁이 대답했다.그는 정확한 답을 알려 주지 않았고, 신 유리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퇴근할 때 그녀는 사무실에서 서준혁을 1시간이나 기다렸다. 하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저녁을 지나고 있었다.어르신은 금방 밥을 다 먹고 침대에 기대 책을 보고 있었다.신유리의 모습에 그는 책을 내려놓으며 그녀에게 관심을 표했다. “저녁은 먹었어?”비록 저녁을 먹진 않았지만 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먹고 왔어요.”그의 말에 어르신은 고개를 흔들며 책망이 섞인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유리야 할아버지 속이지 마. 네 얼굴색이 이렇게 안 좋은데. 저녁 안 먹은 게 분명해.”말을 끝낸 그는 더듬거리며 서랍을 열더니 안에서 케익 두 개를 꺼내 신유리에게 건네주었다. “오후에 학교 선생님들이 가져다준 거야. 일단 먹고 있어.”“맞다, 준혁이…” 그는 케이크를 신유리에게 건네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말에 신유리는 의식적으로 대답을 뱉어냈다. “준혁이 일 하느라 바빠요. 요즘 중요한 클라이언트가 있어서 다 야근하고 있거든요.”그 말에 어르신은 당황하고 말았다. 그는 신유리의 얼굴을 보며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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