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 말고 다: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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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잘 닫히지 않은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신유리의 몸에 걸쳐진 얇은 가운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멈칫하던 그녀는 그제야 서준혁의 말뜻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시무룩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야?”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지만, 서준혁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출근 시간에 이렇게 온 걸 보면 몰라?”이건 점심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차가워 보이는 서준혁이지만 그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읽을 수는 없었다.하지만 서준혁은 점심에 그녀를 버리고 주현과 함께 손님을 만나러 갔다.입술을 깨물던 신유리가 입을 열었다.“당신한테 주현 씨면 되는 줄 알았는데?”그녀의 말에 서준혁의 눈썹이 희한한 곡선을 그렸다.“주현은 정화의 직원이 아니야.”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던 신유리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그녀는 지금 너의 비서잖아?”서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신유리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신경 쓰여?”그의 차가운 말투는 불어오는 바람과 어우러져 신유리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녀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닫았다.일자리도 뺏겼는데 그녀더러 뭘 하란 말인가?신경 쓰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창문을 닫으니 바람이 사라졌다. 신유리는 몸을 미처 돌리지 않았는데 뒤에서 남자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신경 쓰인다고 해도 신유리, 너는 나한테 이럴 자격 없어.”창문 고리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떴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서준혁을 보았다.“늦은 저녁에 직원의 방에 나타난 대표님은 이럴 자격 있고?”그녀는 서준혁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했다.그녀의 긴 속눈썹은 유난히 냉담해 보였다.신유리는 선 채로 앉아 있는 서준혁을 내려다보았다.서준혁은 신유리의 이런 위압적인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긴 다리를 움직였고 신유리를 단번에 창가로 밀어붙였다.그리고 몸을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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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신유리는 서류를 챙겼다.주현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신 비서님, 회의 전에 가급적이면 메이크업 좀 하는 게 어때요? 화인을 대표하는 얼굴이 그 모양이면 되겠어요?”차에서 쪽잠을 잔 신유리라 머리가 훨씬 맑아진 상태였다.“별걱정 다하시네요.”서준혁은 어제 그녀가 화인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었기에 그녀는 화인의 이미지를 걱정할 자격도 없었다.주현은 요즘 서준혁과 함께 다니며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신유리에 이미 익숙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신유리가 지금 그녀에 맞서려 하고 있다.“뭐라도 된 것처럼 건방지네요? 어제는 무단결근에 오늘은 졸기까지 하다니요. 아주 훌륭한 비서네요.”주현은 훌륭하다는 단어에 힘주며 말했다.그녀의 말에 심기가 불편했던 신유리가 뭐라 말하려는데 서준혁의 목소리가 들렸다.“주현 씨.”경고를 의미하는 서준혁의 말투에 주현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그를 따라 회의실에 들어서자, 그에게서 평소와 다른 낯섦이 더욱 짙어졌다.메인 자리에 앉은 그는 왕대리를 보며 말했다.“오늘 준비 잘했길 바라요.”왕대리가 서류를 건넸다.“전 계획안과 대표님이 요구했던 것들입니다.”서준혁과 멀리 떨어져 앉은 왕대리는 하는 수 없이 먼저 신유리에게 건넸고 그녀가 다시 서준혁에게 전달했다.앞으로 뻗어 마중 나온 서준혁의 손에 차가운 신유리의 손이 맞닿았다.따뜻한 서준혁의 온기에 신유리는 급히 손을 거두었다.회의 내용은 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상대의 악의적인 경쟁에 대안을 마련하는 내용이었다.신유리는 옆에서 노트하며 한편으로는 서준혁을 위해 각종 필요한 예시와 수치들을 보여주었다.일에 관해서 유난히 확실한 것을 지향하는 서준혁이다.신유리도 그런 그를 알고 있었다.오늘은 그날과는 달리 순리롭게 진행되었다.회의가 막바지로 향하던 그때, 왕대리가 갑자기 물었다.“대표님, 오 주임의 자리가 비었는데 새로 채용할까요? 아니면 본부에서 사람을 보내주시나요?”오 주임이 숨어있던 간첩이었고 화사의 일부 자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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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던 신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알 것 같아.”그녀는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입술에 혈색이 없었고 서준혁을 바라보는 눈빛도 전차 평온해졌다.신유리는 다시 입을 열었다.“미안, 내가 오바했어.”휴대폰을 내려다보던 서준혁은 아무 말도 없었다.잠시 후, 그는 다시 고개를 들며 물었다.“내가 데려다줘?”다른 스케줄이 있었지만 신유리가 다쳤으니, 호텔로 돌아가 쉴 수밖에 없었다.반면 신유리는 서준혁이 진심으로 그녀를 데려다주려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물어보지 않을 거라 여겼다.그래서 신유리는 다친 손을 움직이며 느릿하게 말했다.“아니, 차를 부르면 돼.”서준혁이 뭐라 말하려는데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고 시선을 내려 확인하던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자리를 떠났다.몸이 불편했던 그녀는 걸음이 느렸다. 모퉁이를 돌면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그녀는 거기에서 걸음을 멈췄다.여기는 비지니스 파크였고 오가는 차들은 모두 자가용이었다.급할 것이 없었던 신유리는 벤치에 앉아 조용히 오가는 차량을 지켜보았다.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한 것 같다.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 탓에 서준혁이 예전처럼 대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하지만 결국 사람은 변한다.호텔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5시가 되었고 막 쉬려는데 이연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요즘 이연지는 너무 빈번하게 그녀를 찾았다. 신유리는 휴대폰을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그녀도 마침 이연지에게 사실인지 묻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하지만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이연지의 목소리가 아닌 거칠고 심술 궂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네가 이연지의 딸이야?”남자는 예의가 없었다.신유리의 얼굴도 일그러졌다.“당신은 누구죠?”“난 이연지의 남자야. 네 엄마가 나한테 2,000만 원을 빚졌어. 네가 대신 갚아!”휴대폰을 잡은 그녀의 손이 분노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전화 바꿔요.”남자는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돈만 축내는 걸 데리고 병원에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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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신유리는 한참 후에야 이신의 뜻을 알아듣고 눈썹을 치켜세웠다.“난 안 될 것 같은데?”“왜?”이신은 허리를 곧게 세우며 되물었다.“전시 기획을 배우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신유리는 고개를 떨구고 붕대를 감은 팔을 보며 대답했다.“다쳐서 도울 수 없어.”그녀가 해명했지만, 그는 도리어 개의치 않은 표정이었다.“일손이 부족하단 게 아니고 배우라는 거야. 게다가 하루 이틀에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야.”신유리는 고개를 저었다.“민폐일 것 같아.”“네가 민폐를 끼치면 얼마나 끼친다고 그래?”이신의 말에 살짝 흔들리는 신유리였다. 그녀도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그녀는 연차를 내서 오후에 다른 일이 없었다.그녀는 이신을 따라 그의 작업실로 향했다.작업실에 들어서니 몇 명의 젊은이들이 무언가에 대해 다투고 있었다. 그들은 이신의 등장에 즉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딱이며 인사했다.이신은 고개를 돌리고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편한 데 앉아.”신유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방안은 잡동사니로 쌓여있었고 구석에 테이블 하나가 놓여있었다. 앉을 수 있을 곳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신유리를 본 젊은이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중에 안경을 쓴 여자가 신유리를 뚫어지고 바라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형수님을 어떻게 이런 누추한 곳으로 모시나요?”“그러게.”체크 셔츠를 입은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이신은 그들을 노려보고는 대꾸하지 않았다. 도리어 테이블 위의 설계 도안을 보며 물었다.“방금 뭐 한 거야?”일에 대해 묻자, 젊은이들의 태도가 급변했고 안경 쓴 여자가 대답했다.“전에 설계는 미관상에서나 실용성에서도 대리석 테두리가 더 낫다고 생각해요.”그러자 셔츠 남이 반박했다.“실용성이란 뜻을 모르는 것 같은데 대리석이 얼만 줄 알아?”옆에 서서 그들의 언쟁을 지켜보고 있던 신유리는 흥미를 느꼈다. 그녀의 몸이 그들에게로 다가갔다.점점 흥분하던 셔츠남은 하마터면 신유리를 다치게 할 뻔했다.“잠깐!”이신이 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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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오빠?”신유리가 입을 떼려는데 갑자기 송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녀가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트렁크를 든 송지음이 심술궂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서준혁도 갑자기 나타난 송지음에 어안이 벙벙했다. 멈칫하던 서준혁은 신유리의 손을 놓고 송지음에게로 다가갔다.“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그게...”송지음은 신유리를 한번 흘기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그러자 우서진이 끼어들었다.“어제 내가 여기로 온다고 하니 자기도 온다며 따라온 거야.”그는 웃으며 덧붙였다.“어때? 여자 친구가 그 멀리에서 여기까지 와서 좋아 죽겠지?”서준혁은 대꾸하지 않았다.그는 손을 뻗어 송지음의 트렁크를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올라가서 쉬자.”송지음은 붉어진 눈망울로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멈칫하던 서준혁이 그녀를 타일렀다.“방으로 가서 자세하게 말해 줄게.”두 사람은 아주 애틋해 보였다. 마치 옆에 신유리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송지음이 그녀의 곁을 지나치며 인사를 한 후에야 그녀도 뒤늦게 반응했다.송지음에게 한없이 다정한 서준혁의 모습에 손목의 통증이 더해졌다.아마 방금전 서준혁의 품에 안겼을 때 무의식적으로 반항하며 그의 가슴을 밀친 것 때문인 것 같다.송지음도 왔으니, 신유리가 아는 서준혁이라면 송지음을 곁에 두려 할 것이다.하지만 점심시간에 서준혁은 그녀를 불렀다.“유리 언니.”활짝 웃으며 인사하는 그녀를 자세히 보니 옅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목에서 빛나는 목걸이는 그녀를 한결 성숙하게 만들었다.그녀의 모습을 보니 서준혁이 잘 해결한 것 같다.아무리 둘러보아도 서준혁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송지음에게 물었다.“준혁이는?”“통화하러 갔어요.”송지음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뭔가를 탐색하고 있는 것 같았다.신유리는 그녀와 화젯거리가 없었던지라 그저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하지만 송지음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녀가 신유리를 부르자 신유리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할 말 있어?”“준혁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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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서준혁의 말을 들은 신유리는 움직이던 것을 멈추었다. 그녀의 시선이 서준혁에게로 향했다. 그는 마치 일상적인 말을 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서류를 보고 있었다.“뭐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신유리 씨는 아직 마무리해야 할 업무가 있어서, 제가 대신할게요.”왕 대리가 조심스레 서준혁에게 물었다. 안 그래도 표정이 좋지 않던 서준혁의 얼굴이 더 굳었다.“그쪽은 아주 한가한가 봐?”서준혁이 왕 대리를 바라보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긴장한 왕 대리가 손을 비비며 쭈뼛거렸다.사실 왕 대리도 나름 사정이 있었다. 서류 정리야 직접 해도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본사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쪽 직원이 직접 살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서준혁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왕 대리가 속으로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쯤, 신유리가 서류를 서준혁에게 내밀었다.“최근 3개월 치 시장 자료 여기 있어요.”서준혁의 고개가 신유리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그의 눈에 아직 다 낫지 않은 그녀의 손목이 들어왔다. 그러나 입에서 나온 것은 걱정이 아닌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이쪽 일이 꽤 적성에 맞나 봐?”“업무는 어디나 비슷하니까요.”그의 시선을 느낀 신유리가 얼른 손목을 거두며 나지막이 말했다.잠시 후,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실은 비교적 작은 편에 속했다. 신유리는 서류를 편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서준혁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데 회의 시작 2분 전, 송지음이 말을 꺼냈다.“유리 언니, 서류 저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오빠한테 넘겨줄게요.”서류가 워낙 방대하고 복잡했던 탓에 신유리도 어렵게 정리를 마친 상황이었다. 그러니 정리를 한 장본인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서류를 다루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니, 정리 다 끝났으니까 내가 직접 할게.”신유리는 반사적으로 거절하고 말았다. 그러자 송지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포기할 줄 모르는 송지음은 계속해서 자신을 피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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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신유리가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비평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말을 마친 그녀가 서류를 챙겨 자리를 떠나려던 순간, 뒤에서 울먹이는 송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언니, 저 마음에 안 드시는 거 알아요. 하지만….”한참이 지났는데도 목소리가 더 들려오지 않자, 신유리가 먼저 고개를 돌려 송지음을 바라봤다.“내 말이 심했다고 생각해?”신유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송지음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미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 말이 틀렸어? 좋게 말하면, 없던 실력이 생겨나?”신유리의 표정은 무덤덤했으나, 그 내용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일하면 화인 그룹에 오래 버틸 수 없을 거라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면 송지음 뒤에는 서준혁이 있었으니까. 그가 뒤에 있는 한, 송지음은 아무리 엉망이어도 화인 그룹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위험한 건 송지음이 아니라 어쩌면 그녀일지도 몰랐다. 신유리는 한숨을 내쉬며 회의실을 나섰다. 오늘 다음 일정은 병원이었다. 그녀는 서류들을 호텔에 가져다 놓은 뒤, 붕대를 갈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사실 붕대 갈고 연고 바르는 것 정도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 기분이 매우 저조했던 탓에 번거롭게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괜히 호텔에 혼자 남아 있는 것도 싫었다.병원에 막 도착했을 때쯤, 이신한테서 연락이 왔다. 오늘 사무실에 들를 건지 물어보는 내용이었다.서준혁이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오늘 신유리는 병가로 쉬는 날이었다. 게다가 옆에 송지음도 있으니,그가 신유리를 찾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막 사무실 앞에 도착하자, 안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일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신유리는 문 앞에 멈춰 들어갈지 말지 고민했다. 그런데 이때 곡연이 그녀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오셨어요? 이신은 급한 일이 생겨서 방금 나갔어요. 그래도 가기전에 다 말해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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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송지음은 입술을 깨문 채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문선경은 시한 지사의 중요한 고객이었다. 이번에 서준혁이 시한시에 온 이유도 문선경과의 계약 때문이었다.서준혁이 말없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자, 옆에 있던 주현은 더 신이 나 송지음을 자극했다.“송 비서, 할 말 있으면 어디 해봐.”“저는….”갑자기 이름이 불리자, 당황한 송지음이 서준혁을 향해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그 모습에 주현이 더 신이나 말을 이으려던 찰나, 옆에서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신유리가 정중한 미소를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 술이 담겨 있는 컵을 높이 치켜들더니, 문선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대표님, 송지음 씨는 제 조수로 일하고 있어요. 제가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좀 필요해서요.”신유리가 미소를 유지한 채 진심을 담아 말을 이어갔다.“그래도 기분이 상하셨다면, 제가 이 벌주로 사과를 대신할게요. 부디 두 분 모두 마음 푸셨으면 좋겠어요.”그렇게 말을 마친 신유리는 손에 들고 있던 술을 원샷해버렸다. 신유리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문선경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문선경은 기분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으나, 그녀에게도 화인 그룹은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일단 이 상황을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분위기가 다시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송지음은 아직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분노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신유리를 바라봤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곤 얼른 표정을 바꿨다. 빈 잔을 내려놓은 신유리가 송지음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송 비서, 밖에 가서 술 좀 더 시키고 와줘.”없는 술이 없는데, 밖에 나갔다 오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송지음도 모르지 않았다. 송지음은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거절도 할 수 없는 게, 옆에 있던 서준혁도 눈치를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지음아, 얼른 말 들어.”서준혁의 말에 송지음은 물론 신유리조차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송지음은 결국 눈물을 머금은 채 자리를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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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호텔로 향하는 길 내내 서준혁과 송지음의 어색한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하지만 신유리도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둘의 분위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호텔에 도착한 신유리는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 도착한 그녀는 불도 키지 않은 채 전화부터 걸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이연지, 그녀의 엄마였다.“누구세요?”이연지는 한창 바쁠 때여서 누군지 살필 틈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저요.”창가에 기댄 채,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밖에 풍경을 바라보며 신유리가 말했다.“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신유리의 전화를 받은 이연지가 놀라 물었다. 평범한 모녀간엔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다.신유리는 몸을 돌려 까맣게 어둠이 내려앉은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별일은 없어요. 그냥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요.”전화 너머 잠시 침묵이 흘렀다.“그저 그렇지 뭐. 미미가 이번에 또 병원에 입원했거든.”그러자 이번엔 신유리가 말을 멈췄다.“넌 요즘 어떻게 지내?”“전 시한에 출장 왔어요.”“아, 출장. 그 있잖아….”잠시 머뭇거리던 이연지가 말을 이었다.“혹시 돈 좀 더 붙여줄 수 있니? 미미가….”“미미 아빠가 돈 달라고 연락 왔어요.”신유리가 이연지의 말을 끊으며 본론을 꺼냈다.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창가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거뒀다.“전에 제가 줬던 돈, 설마 다 그쪽에 준 거예요?”이연지는 쓴웃음을 지었다.“어쩔 수 없었어.”신유리는 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통화를 끊었다. 그동안 힘들게 번 돈을 계속 보내왔던 이유는 미미 때문이었다. 비록 아버지는 달랐으나, 엄마는 같은 동생이었고 나이도 어렸으니까. 하지만 그게 모두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을 줄이야, 신유리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답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에 고민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러 갔다.한편, 서준혁과 송지음 사이엔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송지음은 이 상황이 너무 억울했다. 서준혁이 주현과 문선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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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신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용기 내어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차가 덜컹하고 크게 흔들렸다. 신유리의 몸이 옆으로 쏠리며, 자연스레 그의 품에 안긴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앞에 턱이 있었는데, 못 봐서 죄송해요. 어디 안 다치셨죠?”신유리가 부딪힌 머리를 감싼 채 신음을 하고 있을 때, 앞에 차를 몰던 기사가 걱정스레 말했다. 그녀는 얼른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 사이에 머리가 어디에 끼었는지 두피에 아픔이 느껴졌다.신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다시 몸을 낮추며 머리가 낀 단추를 찾아 서준혁의 가슴을 더듬었다.“휴가가 뭐라고, 차에서까지 이런 짓 하고 싶어?”서준혁이 비꼬며 말했다. 그의 시선이 단추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신유리의 손으로 갔다.그 말을 들은 신유리는 하던 것을 멈추고 얼른 해명했다.“머리카락이 단추에 끼었을 뿐이야.”신유리는 머리가 긴 데다가 곱슬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한 번 엉키거나 어디에 걸리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한 손으로 되지 않자, 양손을 써 단추에 엉킨 머리카락을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제대로 풀리지 않자, 짜증에 점점 손에 힘이 들어갔다.“이러다가 내 셔츠까지 뜯어지겠다.”그 말과 함께 서준혁은 직접 엉킨 머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의 조심스러운 손길에 신유리는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엉켰던 것이 풀렸다. “고마워.”“그래서, 언제까지 내 품에 안겨 있을 생각이야?”서준혁이 살짝 입꼬리를 올린 채 미동도 없는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그제야 신유리는 자신이 아직 서준혁 품에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놀란 그녀는 빠르게 몸을 일으키며 태연한 척 말을 꺼냈다.“곧 도착하겠네.”그러자 옆에 있던 서준혁도 서서히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문선경의 집무실에 도착하자, 주현의 모습도 보였다. “이제야 좀 성의 있어 보이네요.”그녀는 오늘 송지음을 데리고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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