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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닐 리가
사랑이 아닐 리가
Author: 변해솔

제1화

고3 추석 때, 날씨는 쌀쌀했다.

유신우의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우리 집에 들렀고, 우리 가족을 포함한 총 스무여 명의 사람이 함께 식사를 했다.

술이 몇 잔 들어가니 분위기가 더욱 달아올랐다.

그날엔 사람들이 많았다. 남자들은 함께 술을 마셨고 여자들은 수다를 떨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쩌다 보니 나와 유신우의 이야기가 나왔고 다들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런 상황은 거의 매번 외식 때마다 벌어졌다. 처음엔 솔직히 쑥스럽기도 했지만 매번 그러니 이젠 면역이 생겼다.

그들이 뭐라고 떠들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난 그들을 말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신우의 어머니가 옆에서 새우 껍질을 까면서 말했다.

“우리 애가 이렇게 빨리 클 줄은 몰랐어. 수능 끝나면 집을 떠날 거로 생각하니 시간이 참 빨리 지나는 것 같네.”

“그러니까. 가까운 대학교면 좋겠는데 왜 그렇게 먼 곳으로 가는 건지. 수진이 곁에 챙겨줄 사람이 없을 걸 생각하니 걱정이 되네. 얘가 좀 많이 덜렁대잖아.”

“수진이도 신우랑 같은 대학교에 가면 되지. 우리 신우가 수진이 잘 챙겨줄 거야.”

간단한 말 몇 마디로 두 사람은 날 어느 대학교로 보낼 건지 결정했다. 내 의견을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들은 날 없는 사람 취급했다.

유신우의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두 명 있었다. 장남 유신혁은 24살로 성문대 한국화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데 1년에 겨우 한 번쯤 돌아왔다. 난 그를 오빠라고 불렀다.

작은아들 유신우는 나보다 1살 연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서 그런지 난 나와 유신우의 사이가 꽤 좋다고 생각했다.

난 걸음마를 뗀 뒤부터 그를 졸졸 쫓아다녔고, 말을 떼고 나서는 유신우의 이름을 제일 많이 불렀다. 그리고 연애 감정을 깨우치기 시작할 때쯤부터, 그는 하나의 작은 씨앗이 되어 내 마음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큰 나무가 되었다.

난 그를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와 같은 대학교에 갈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화를 배워서 한국화 전공이라면 어느 대학교로 가든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와 유신우의 엄마가 좋으면 나도 좋았다.

진정한 사랑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난 그를 좋아했다. 밤마다 그를 떠올릴 때면 이번 생엔 꼭 유신우와 결혼할 거라고 할 정도로, 내 평생 남자는 오직 유신우뿐일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난 유신우 엄마의 곁에 앉아 있었고 유신우는 남자들만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등지고 앉아 있었기에 당연히 그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난 몰래 그를 힐끔거렸다. 유신우는 기분이 좋지 않은지 표정이 조금 어두웠다.

난 그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유신우는 원래도 잘 웃지 않았고 항상 냉담했기 때문이다.

“우선 가정부터 꾸리고 일해야지. 애들 대학 졸업하고 나면 일단 적당한 도시를 선택하는 게 좋겠어. 집은 내가 살 테니 일단 결혼부터 시킬까? 그러면 애들도 일에 집중할 수 있잖아. 먼저 아이가 생기면 우리 둘이서 번갈아 가면서 보면 되고.”

“아줌마,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난 겨우 17, 18살 소녀였다. 그래서 우리 엄마와 아줌마가 출산까지 거론하자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아줌마는 껍질을 깐 새우를 내 그릇 안에 놓으면서 날 꾸짖었다.

“뭘 부끄러워하는 거니? 어차피 그렇게 될 텐데 말이야.”

“그러면 우리 집에서는 혼수를 서둘러 준비해야겠어. 어머, 그러고 보면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네. 지금부터 준비해야겠어.”

엄마는 맞장구를 쳤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자리였다면 엄마는 아마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통장 잔고를 확인한 뒤 아빠와 함께 신혼집을 어떻게 꾸밀지, 어떤 차가 내게 더 어울릴지를 의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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